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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상식적 판단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켜켜이 쌓인 판결과 결정들, 그 판결을 내리는 이들은 시대에 따른 노동관계의 변화를 읽기 보다는 정치권의 마음을 읽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눈을 시대의 아픔이 있는 곳으로 돌리는 것 역<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동자성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의 문제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투쟁을 하면서 한동안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판결들이 난무했었다. 노동자로서의 종속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산업의 특성상, 계약의 특성상, 종합적인 판단 등의 말들로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쉽게 부정되어 왔다. 그렇게 법원의 보수적인 판결이 이어지자 자본은 소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노동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어내고 그로써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자 했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야 판결은 아주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리고 상시적인 지휘감독 여부가 아니라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보다 포괄적인 지휘감독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확장하였고, 사업자로서의 활동 가능성을 조금 더 고려하여 실질적인 판단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취업규칙 등 규정의 적용이나 4대 보험 적용 여부 등은 판단의 주된 요소로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약간의 진전은 다시 되돌려졌다. 8월 2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에 대해 노조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2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부정하면서, 그나마 노조법상 노동자성에 대해 인정했던 판결에서 다시 후퇴한 것이다.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던 법원의 판결은 실상 표현만 바뀐 것일 뿐 실질적인 판단을 바꾸지는 못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에 대해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했던 지난 서울행정법원 판결 역시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진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에 대해서는 그 이전의 보수적 판결을 답습했다. 수수료 형태의 임금에 대해 실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유로 임금성을 부정했고, 업무지침의 적용을 받지만 징계규정이 별도로 없다고 하면서 계약을 해지 하는 방식의 사실상의 해고를 행함에도 그는 징계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 출퇴근 의무가 없고 교육에 참가하지 않아도 제재가 없다는 점, 업무 수행에 관한 지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위탁업무 수행을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부정했었다.
다만 노조법상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보다 개념이 넓고, 임금이나 급료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학습지 교사의 수수료는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해당되고, 이에 의하여 생활하고 있기에 노조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해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노조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지난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개념을 축소함을 통해 얻는 반사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보수적 판결의 한계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노조법상의 노동자성까지 부정하고 있다. 노동자성 판단 지표의 표현만 바뀌었을 뿐 ‘노동자성 부정’을 의도한 판단의 과정은 자본의 입장에 선 정치적 판결이 현실에서 어떻게 눈을 돌리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없고, 학습지 교사들의 수수료는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볼 수 없으며, 학습지 교사의 회원 가입 및 홍보 활동 등에 부여한 시간 및 비용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고, 겸직에 제한도 없고, 수수료가 유일한 수입원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부정하였다. 노조법의 취지도 고려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판단과 동일한 이유로 노조법상 노동자성도 부정되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점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지휘감독 여부에 대해서다. 이는 노동자성 판단에 있어서 핵심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구체적 지휘감독이 아니라 ‘상당한’ 지휘감독이라는 판단지표의 변화는 업무지시의 강도나 구체성이나 상시성 등이 아니라 지시나 통제의 정도가 해당 노동자의 업무를 통제하기에 충분한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학습지 교사의 업무 내용이 위탁사업계약에서 정해지고, 관리구역이나 과목의 배정에 대해 교사가 협의하여 정할 수 있고, 업무시간이 과목이나 수업당 소요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장소도 회원의 주거지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재능교육 측에서 지도서를 제작하고 표준필수업무를 작성하여 시달했지만 권고일 뿐이고, 출퇴근 의무가 없고, 계약해지 외에는 다른 징계가 없고, 업무 수행을 독려하고 지시를 하지만 이행 여부자체에서 오는 불이익은 없다는 점 등으로 상당한 지휘 감독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휘감독 여부가 인정되는 요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시의 강도나 강제성 등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지휘감독 여부에 대한 법원의 자의적 판단을 낳고, 그 자의적 판단은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문제는 ‘충분한가’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법원이 지휘감독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그 정도의 지시로도 학습지 교사의 업무 수행을 강제하기에 충분한 것인지를 보아야 하는데, 법원이 상당한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한 지시의 내용들은 현실에서 노동자들을 통제하는데 충분한 힘을 발휘한다. 바로 법원이 제대로 판단하지 않은 ‘위탁사업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지점과 임금성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한 실적급 수수료 체계가 그 힘을 만들어 주는 구조이다. 이 두 가지가 강력하게 작동해 형태상으로는 자유롭게 원하는 시간만 일하고, 일한만큼 벌어갈 수 있는 프리랜서로 위장되어 있는 이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넣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형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질을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임금성에 대한 부분이다. 임금체계는 나날이 변모하고 있고 보다 다양한 형태가 생겨나고 있다. 법원은 물량에 따른 수수료, 실적이나 성과에 따른 수수료, 기본급이 정해져 있지 않고 변동된다는 등 형태상의 이유로 노동시간에 따른 급여가 아니고 노동 대가성이 부정되어 임금이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게 형태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보다 다양한 임금 지급형태나 지급체계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다수의 경우 임금체계라는 것 역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며, 그 본질이 임금이냐 아니냐를 형태를 중심으로 따져서는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형태와 무관하게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되는 것인지, 사업자로서의 영업활동의 성과인지의 문제이다. 학습지 교사들이 일하고 있는 구조는 사실상 한 학습지 회사에 종속되어 그 회사의 제품을 판매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 실적에 따라 수수료가 지급되지만 실적을 많이 내기 위한 노동을 영업활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수수료 역시 영업활동에 따른 이윤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의 임금인 것이다.
현재 법원이 판단하는 임금의 지급기준 및 형태, 기본급 유무 등은 노동통제의 수단 혹은 결과물일 뿐이다. 통제의 결과물을 가지고 통제의 본질을 다시 따지는 것은 ‘통제의 부정’이라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낳게 된다. 지금까지 법원은 ‘임금이냐 아니냐’를 노동자성 판단의 핵심적인 지표의 하나로서 사용해 왔으나, 이는 변화하는 세태에 따라 폐기되어야 할 지표이다.
덧붙여 학습지 교사들의 수수료가 유일한 수입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속성을 부정하고 있는데, 노동자성 판단에 있어서 해당 임금이 유일한 수입원일 필요는 없다. 통상의 노동자가 임금 외의 다른 소득이 있다고 하여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업장에서의 노동자성이 부정되지 않는데, 종속성이 더욱 은폐된 형태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있어서 더 강도 높은 입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다.

마지막으로 사업자성에 대한 판단이다. 지금까지 노동자성 여부의 판단에 대해 실제로 사업자로서 스스로 위험부담을 지며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이러한 사업자성에 대한 판단조차 왜곡된 방식으로 전개했다. ‘학습지 교사가 회원가입 홍보활동 등에 부여한 시간 및 비용에 대한 위험은 원칙적으로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점’이라는 것이 그 부분이다. 실제로 학습지 교사들은 회원의 유지와 증원을 위한 업무를 스스로 떠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무임노동으로 수행되는 부수적 업무를 스스로 떠안게 되는 것은 바로 실적에 연동된 수수료체계, 저단가를 기초로 한 100% 성과급 구조로 인한 것이다. 사업자로서의 이윤의 획득 및 상실에 대한 위험, 스스로의 경영과 그로 인한 손실에 대한 부담이라는 것은 다만 회원을 잃거나 늘리는 문제와는 다른 수위의 판단을 요한다. 그런 판단을 법원은 수행하지 않았고, 손쉽게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법원의 상식적 판단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켜켜이 쌓인 판결과 결정들, 그 판결을 내리는 이들은 시대에 따른 노동관계의 변화를 읽기 보다는 정치권의 마음을 읽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눈을 시대의 아픔이 있는 곳으로 돌리는 것 역시 우리의 역할일 것이기에 다시 한 번 어깨가 무거워진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부정당하지 않고,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 그 싸울 권리조차 짓밟히는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겠다.

2014년 9월 3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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