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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2014년 12월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 한국노총의 강력 반발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 처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부 입법으로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다.                               - 박근혜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 분석 ․ 비판 -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방향으로 점철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고용노동부는 2014년 12월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내놓았다. 한국노총의 강력 반발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 처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부 입법으로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다.


1. 잘못된 기본방향

(1)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
-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의 확대가 ‘시장경쟁 심화로 인한 기업의 비용절감과 인력운용의 유연성 확보 및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며, 취업애로계층의 노동시장 진입 촉진 및 자발적 시간제 근로 선택 등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현실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며, 차별과 근로조건의 격차, 기간제의 고용불안, 체불 등 비정상적 관행 등이 문제일 뿐이라는 진단을 하고 있다.  
- 이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안일한 진단이다. 비정규직 확대는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도 ‘경제사회개혁’의 미명아래 진행되는 노동유연성에 반대하는 파업이 지속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확대로 인한 생활의 고통으로 각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높아진다. 세계적인 비정규직 확대가 사회 불안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하고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한국에서 ‘취업애로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자리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한사람 벌어서 가족 전체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만큼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자, 노인들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비싼 대학등록금 때문에 대학생들도 알바를 해야 하는 형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자들의 미래를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파괴하며, 경제와 사회의 불안요소를 가중시키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2) 고용형태별로 문제를 갈라놓는 정책
- 정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는 고용형태의 다양화는 정상적인 추세라고 간주하며, 고용형태별 맞춤형 대책이라는 미명 아래 여러 대책을 나열한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사회안전망이 없는 것이 문제이고, 기간제는 고용불안정이 문제이며, 일용직과 용역노동은 실질적 처우개선이, 파견 도급은 비합리적인 외주노동시장 정상화가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특수형태업무종사자는 사회보험적용 확대와 공정계약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용형태별 분리대책이야말로 기업들이 원하는대로 고용형태를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들면서 각 고용형태별 활용도를 높이는 대책들이다.
- 비정규직은 ‘정상적’ 고용형태가 아니다. 합리적인 사용사유가 없는 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이 기본이어야 하고, 직접고용이 원칙이어야 한다. 그리고 특수형태업무종사자라는 것은 당연히 노동자인 이들을 고용의 형식만 달리해서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비정규직의 다양한 형태를 마치 정상적인 고용인 것처럼 간주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부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정부 정책이야말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책일 수밖에 없다.
- 모든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정’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근원에 안고 있다. 심지어 고용이 안정되어 있다고 하는 무기계약직도 별도의 관리지침에 의해 언제라도 계약해지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고용형태별로 노동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근원적으로는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발언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므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과 ‘직접고용’ 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이 기반 위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이상 지금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3) ‘노동시장의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노동자 권리 축소정책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는 ‘노동시장과 공정성과 활력 제고’라는 이름의 대책을 내놓는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과 양극화 해소’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활력을 제고하여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 격차를 도모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시장 활력을 도모하겠다면서 내놓은 방안은 주로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하향시키는 정책들이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가 너무 강해서 기업들이 저임금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비행기 회항사건에서 보듯이 노조가 있는 대기업 노동자도 쉽게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소위 강성노조라고 하는 것도 자신의 고용을 지키기 급급하지 적극적으로 기업의 고용구조에 개입할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된 이유는 대기업의 요구에 부응한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기간제와 파견 확대를 골자로 한 비정규직 정책이 기업들의 정규직 채용 필요성을 감소시켰고, 경제민주화 정책이 후퇴하면서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 등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한 수탈과 자영업자의 몰락을 초래했다. 그로 인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고 자영업자들은 일용직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이야기하려면 후퇴한 경제민주화 조치를 되돌리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동자 내부’의 공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는 것이다.


2.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1)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상적인 고용형태인 것처럼 만드는 정책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35세 이상은 기간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그 이후 정규직 전환이 안 될 경우 이직지원금을 주도록 했다. 기간제법 제정 당시 정부는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2년의 기간제한을 하는 것으로 정규직 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질은 2년간 기간제를 자유롭게 쓰고 난 이후 해고하는 것이었다. 기업과 정부의 목표는 기간제한을 비롯한 그 어떤 제한도 없이 기간제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노동자를 편하게 사용하고 필요없어지면 아무 때나 해고할 수 있게 된다. 기간제한이 없어지면 기간에 대한 모든 권한이 기업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 중간 단계로 기간제한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만큼 정규직 전환 기회는 멀어진다.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고령자의 경우 기간 제한과 업종 제한 없이 파견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은 기간제와 마찬가지로 파견에 대한 제한도 없애도록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성역규제’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파견허용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그동안 파견허용업종은 26개에서 32개로 확대되었고 이번 대책이 입법화되면 고령자는 업종 제한 없이 파견을 사용하게 된다. 또한 농림어업 등 이주노동자를 많이 사용하는 곳도 파견허용업종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만간 정부는 파견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하면서 전업종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 정부는 ‘불법파견’으로 간주되어왔던 사내하도급을 합법화하는 조치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포함시켰다. 정부는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하면서 원청의 공동직업훈련이나 기업복지, 산업안전보건조치 등을 불법파견 징표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말로는 원청의 배려를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은 ‘불법파견’의 징표를 없애서 사내하도급을 합법화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이미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판정이 난 제조업 생산공정에서의 불법파견이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 아래 합법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 노동조건 개선안은 재탕이거나 추상적이거나 후퇴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 최저임금에 소득분배개선분을 추가 반영하겠다고 했다.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하다. 특히 공익위원들이 노사양측의 입장을 조율하여 결정하는 지금의 최저임금 결정방식으로는 최저임금이 현실화되기 어렵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위해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바꾸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최저임금이 낮은 수준에서 유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소득분배개선분을 추가 반영한다 하더라도 최저임금이 획기적으로 오를 가능성은 없다.
-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3개월 이상 퇴직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퇴직급여가 생계보장을 할만큼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쪼개기 계약금지라는 명목으로 2년 내 3회의 계약갱신을 가능하게 만들어서 사실상 1년 미만계약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정규직 전환의 경우 법적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으로 ㅈ기하고 있다. 차별시정제도에서 노조가 조합원들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의미가 있으나, 기간제와 파견노동자들은 노조 가입률이 낮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내놓은 대책도 실효성이 없거나 법적 강제력이 없다.
- 정부는 또한 생명과 안전 관련 핵심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생명 안전분야를 여객운송과 선박, 철도, 항공사업으로 제한하고, 이 중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대상업무를 선장과 기관장, 철도기관사와 관제사, 항공기 조종사 등으로 제한하여, 실질적으로 공항의 소방이나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나 철도 승무원 등 안전을 담당하는 이들을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의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 사용 금지를 내놓은 것은 의미가 있으나, 유해위험업무에 대한 도급을 금지하지 않고, ‘도급인가제도 강화’로 원안에서 후퇴하였고, 산업안전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공동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후퇴하였다. 결국 생명과 안전을 강조한다고 하면서도 생색내기 정책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3)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정책 유지
-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가입 허용을 확대하고, 관련 협회와 단체를 통한 관리 및 보험료 경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또한 종사 여건 보호 및 거래질서 공정화를 위한 ‘특수형태업무종사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계속 주장해왔고 이미 현장에서 임단협이 체결되고 있는 만큼 법을 통해서 노동자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업종별로 분리하여 하나씩 가입을 허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 전면적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바탕 위에서 노동조건 개선 방안을 내놓으려고 하다보니 실효성 없는 방안이 되는 것이다.
- 이것은 가사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ILO에서 가사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으나 한국정부는 가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의 적용 예외로 둔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는 ‘가사서비스 이용 및 가사종사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하면서 가사노동자를 특수형태업무종사자의 범주에 넣으려고 한다. 분명히 노동자이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되는데, 애써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려고 하다보니 편법적인 고용형태가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3. 공정성 주장하며 노동자 권리 축소와 격차 확대

(1) 노동자 전체의 권리 빼앗는 정책들
- 정부는 노동시간 총량 제한 후 총량 범위에서 탄력근로, 재택근로, 재량근로 등 노동시간 유연성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시간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근무시간의 불안정성을 높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초과노동을 하는 대가로 받는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므로 잔업을 통해 부족한 임금을 보전해왔던 노동자들은 더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정부는 노사분쟁 예방을 위해서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통상해고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개인별 성과를 측정하여 저성과자를 해고하겠다는 것은 결국 회사에 불만이 있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들을 걸러내어 해고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이는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제도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원하고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공공부문에서부터 임금체계 개편의 선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직무 성과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바꾸게 되면 직무에 따라 임금에 차등이 생기고, 개별성과제도가 강화되어 임금의 집단성이 사라진다. 평가과정에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채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면, 직무에 따른 임금격차가 심해지고,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중요한 임금결정기준이 되어버릴 수 있다.
-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기준의 절차를 바꿔서 ‘사회통념상 합리적으로 인정되면 취업규칙을 기업이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취업규칙의 변경절차 완화 시도는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약화시킨다. 기업이 개별 노동자를 통해서 노동조건을 변경하게 되면 기업은 단체협약보다는 개별 노동자의 취업규칙 변경을 종용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마저 허물어지는 것이다.

(2) 중소기업,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축소
- 정부는 위의 대책이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활력을 제고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점이 일자리 부족과 격차문제이므로 그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변화시키고 고용의 경직성을 바꾸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규직의 임금을 줄이고 쉽게 해고하기 위한 정책임을 고백한 셈이다.
- 그런데 문제는 이 정책이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축소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청업체들은 원청의 요구에 따라 물량이 일정치 않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물량이 많을 때 잔업과 특근을 통해 모자란 임금을 보전해왔다. 그런데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대되면 잔업수당을 보전받지 못하게 되므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 지금도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기업의 요구에 의해 취업규칙이 일방적으로 변경된다.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을 원하지 않더라도 노조가 없는 경우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회사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사회통념상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게 되면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임금체계나 노동시간을 변경하는데 있어서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고, 노조가 없는 대다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이 불이익하게 변경될 수밖에 없다.  

(3) 노동자 내부를 위계화
-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결코 완화할 수 없고, 오히려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를 심화시킨다. 정규직의 처우를 낮춤으로써 큰 틀에서는 하향평준화할지 모르지만 노동자 전체를 보면 직무성과급제를 통해 직무에 따라 고용형태를 달리하고, 직무별 임금체계를 만들어서 노동자를 위계화한다. 그 경우 고용형태에 의한 차별은 직무에 의한 합리적인 차이로 둔갑하고 차별이 고착된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통해 ‘무기계약직에 대해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 방안 마련’을 이유로 직무급제 도입을 서두른다. 이처럼 비정규직부터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차별시정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 특히 정부는 고용형태별 대책을 세운다는 명분 아래, 정규직-무기계약직-기간제-간접고용-특수고용-일용직 대책을 따로 구상하면서 비정규직의 유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고용형태를 ‘다양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직무별로 서로 다른 고용형태로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고용형태에 따른 분할이 심화된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그런 점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하락시킬 뿐 아니라, 노동자 내부를 가르고 경쟁시키는 정책이다.


4. 문제는 기업의 권한과 노동자 권리 사이의 불공정

(1) 노동자들의 요구 귀를 기울이지 않은 정부
-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제대로 세우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 10여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이야기해왔다. 그것은 비정규직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 우선 ‘근로기준법’에 ‘기간제의 사용사유를 명시’하고, 중간착취와 간접고용을 용인하는 ‘파견법’을 폐지하고 근로기준법에 직접고용을 명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근로기준법 2조의 사용자 개념을 넓혀서 원청이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노동자 개념을 넓혀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몸으로 깨달은 요구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 정부는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왜곡했다.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노동자 11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0% 이상이 당사자 합의시 기간연장 및 이직수당 지급방안에 찬성했다“고 밝혔으나 이 문항에는 정규직 전환의사를 묻는 질문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애초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정규직 전환은 대책에 포함시킬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 기업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기업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귀를 닫은 대책이다.

(2) 정규직에게서 현금을 빼앗아 비정규직에게 부도율 높은 어음 지급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고, 정규직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하면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이나 정규직화를 할 것이라는 전제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는 중소중견기업 기간제근로자 정규직 전환 지원 등 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은 법적 효력 없이 기업의 ‘배려’나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법적 강제력이 있는 ‘3개월 이상 근무시 퇴직금 지급’ 정도가 기업에 부담이 될 내용이지만 기업들은 이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을 명목으로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 또한 임금체계 개편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정규직 해고요건을 완화시키면 기업들이 알아서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이미 기간제한 연장과 파견허용 업무 확대로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을 채용할 이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그저 기업들에게는 ‘배려’나 ‘선처’를 바랄 수밖에 없다. 정규직 채용 확대와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은 노동자들의 힘으로만 가능한데, 지금처럼 통상해고 요건을 완화시키고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변경시키면 노동자의 힘은 더 약화되고, 노동조합도 무력화된다. 따라서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점점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3) 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전반적인 기조는 “기업을 권한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기간제의 기간연장과 파견허용업종 확대는 기업이 비정규직을 편하게 활용한 후 필요 없을 때 해고할 수 있도록 기업에게 허용한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기업에게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변경할 권한을 주는 것이고, 통상해고 요건 완화는 기업이 손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도 기업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결국 노동자들은 고용과 노동조건 모두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지키지 못하고, 기업의 권한은 더욱 커졌다.
-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게 있다. ‘시장경쟁 심화로 인한 기업의 비용절감과 인력운용의 유연성 확보’라는 필요를 정부가 보장해주었고, ‘경제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잘못된 재벌총수들의 비리와 관행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비용으로만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그 권한을 이용하여 하청업체들에게 단가인하 압력을 가하면서 비정규직을 늘리도록 만들고,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고 투자하지 않으며, 각종 횡령과 배임으로 기업과 재벌총수들의 부만 늘리고 있다. 대기업은 수익이 높아지는데 노동자는 가난하고 나라 경제는 피폐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업의 권한을 더 크게 만드는 비정규대책은 결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자’를 비용으로 간주하지 않고,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식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시작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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