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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원회 이슈페이퍼>

 

불안정노동을 통해 화려한 영상과 최신 트렌드를 만드는 방송산업

 

 

한상규(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1. 들어가며

 

최근 ‘방송계갑질119’의 활동과 <한겨레21>의 보도를 통해 화제가 된 ‘상품권 페이’, 작년 12월 무리한 촬영 스케줄로 작업 중 추락해 하반신 마비를 당한 드라마 스태프, 작년 7월 촉박한 일정과 부족한 예산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작하다 머나먼 타국에서 사고를 당한 故 박환성‧김광일 PD, 재작년 10월 본인이 겪어야 했고 또한 비정규직 동료들에게도 강요해야만 했던 과도한 업무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故 이한빛 PD. 사회적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방송산업 종사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임금, 과로, 열악한 제작 환경 등의 문제들은 화려한 영상과 최신의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문화산업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우리에게 아로새겼다.

 

물론 장시간‧고강도 노동, 프리랜서 고용형태, 사고예방을 위한 노력 부족 등 방송산업의 고질적인 노동 문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도 진행되어 왔었고,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본 이슈페이퍼는 이러한 실천에 기여하기 위하여 현재와 같이 방송사와 제작사로 나뉜 외주제작 환경을 전제로 한 공정한 제작 환경 구축에 초점을 맞추는 ‘갑을 관계 관점’으로부터 방송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권리의 쟁취와 확장을 해나가야 한다는 ‘노동의 관점’을 강조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현재와 같은 ‘외주제작에 의한 불안정노동 체제’가 일반화되기까지의 방송산업의 변화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방송산업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 및 프리랜서 고용 형태와 관련한 쟁점을 짚고, 공정한 제작 환경보다 방송산업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권리 요구 및 쟁취가 왜 더 중요한 것인지를 토론하고자 한다.

 

 

2. ‘외주제작-불안정노동 체제’의 일반화

 

현재와 같은 방송산업의 ‘외주제작-불안정노동 체제’의 일반화는 방송이 ‘공공재’ 내지 ‘공공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으로부터 이윤을 남기기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변모하는 ‘상품화’ 또는 ‘산업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울러 자본에 의한 ‘기술혁신’과 ‘노동의 유연화’와도 맞물려 있다. 이는 이미 <질라라비> 2017년 6월호와 7월호에서 이만재 동지의 “TV 속 무자비한 착취 구조의 전복을 위해”라는 글을 통해 자세히 다뤄진 바 있고, 본 글에서는 논의의 전개를 위하여 이를 간략하게 다시 짚어보고자 한다.

 

현재와 같은 방송콘텐츠산업 구조는 ‘외주제작’ 및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을 통해 노동자를 외부화하고, 이와 더불어 방송사들의 ‘방송콘텐츠 저작권 기반 매출 비중 증대 전략’ 등에 의하여 수익을 내부화하는 방식으로 고착되었다. 궁극적으로 이는 방송사들이 노동자들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면서 제작비는 절감하는 ‘외주제작-불안정노동 체제’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로의 고착화 과정은 아래 표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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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991년에 영상산업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작된 외주정책은 기존 100% 자체제작만을 하던 방송사들에게 총량제를 통해서 의무적으로 외주제작을 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방송산업에서의 외주제작이 시작되었는데, 외주정책 시행 목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는 사실상 공공서비스로서의 방송을 산업적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이는 1995년 케이블 TV 도입을 통해서도 확실해지는데, 정부와 자본은 방송을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으로서 인식하고 이 시장을 키워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미 ‘공공의 원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를 통해 산업으로서 거듭나기 시작한 방송계는 1997년 경제위기와 광고수입의 감소 등에 직면하자 정원 감축 등을 통한 정리해고와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무엇보다 1998년 파견법이 시행되자 기존 정규직들이 다양한 비정규직 형태로 전환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방송사 정규직이었거나 정규직이 되지 못한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프리랜서가 되거나 외주제작사 및 파견회사에 소속되는 등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탈규제정책에 의하여 거대 미디어자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방송 촬영 및 편집과 관련한 기술혁신에 의하여 값싼 미숙련 노동력의 활용이 가능해졌다. 전자에 따라서 방송산업의 인력수요는 분명 늘어났지만, 수많은 방송직 관련 대학 내 학과 또는 양성기관(아카데미)의 양산과 맞물려 해당 수요를 충당한 것은 외주제작부문의 성장과 계약직 및 프리랜서 등 값싼 노동력이었다. 이 시기에 방송산업 노동의 외부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2010년대에는 인터넷 사용이 대중화되고 공중파방송사 외에도 방송사들이 늘어나고 방송 외 플랫폼도 다양화되는 등 방송이 매스미디어를 독점하던 시대가 끝이 났다. 더불어 방송산업의 핵심 수입원인 방송광고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방송콘텐츠 제작 비용도 지속적으로 상승해오고 있었다. 이에 방송사들은 광고 매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방송콘텐츠 저작권에 기반한 매출 비중 증대 전략을 꾀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플랫폼에 방송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 등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제작 비용 절감을 위해 자체제작을 더욱더 축소하고 외주제작을 확대해 나갔다. 자체제작의 경우도 값싼 외부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펼쳐나갔다.

 

작가나 독립PD들에게는 보장되지 않는 방송콘텐츠 저작권 문제나,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 장시간‧고강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방송제작 프리랜서 스태프들의 문제를 상기한다면, 결국 현재 방송산업은 모든 비용과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지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외주제작-불안정노동 체제의 확대에 의하지 않고는 현재와 같은 방송산업의 구조나 이윤의 확대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관건은 제작비 현실화 같은 ‘갑을 관계’의 공정성 회복보다 방송의 산업화나 상품화를 위해 작동하는 ‘외주제작-불안정노동 체제’의 종식에 있다.

 

 

3. 프리랜서 고용 형태와 장시간 노동

 

방송산업의 외주제작-불안정노동 체제는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으로 표현되는 ‘프리랜서 고용형태’와 ‘프로그램별 계약’을 통해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이 방송사-제작사 구조에 의한 외주제작 환경 속에서 프리랜서 고용형태와 프로그램별 계약을 통해 방송콘텐츠 제작을 하고 있고 있는 것이다. 근로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고 노동자성도 인정받기 어려운 프리랜서 고용형태를 통해 일을 하고, 현재의 외주제작 환경에 의하여 1~2년과 같은 고용기간 마저도 보장받지 못한 채 프로그램별 계약을 통해 해당 콘텐츠의 제작 기간에만 일을 하면서 임금은 회당(건당) 지급 받기도 한다. 따라서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에게는 4대보험, 안정적 고용기간과 급여 등이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 현재와 같은 프리랜서 고용 형태가 방송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조직된 노동을 우회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한 노동의 유연화 측면에서 비정규노동이 증대한 이유와 동일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외주제작이 주도하는 방송산업에서 프로젝트형 제작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다수 방송 스태프들이 프로젝트형 노동시장 속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의 경우를 보면 초장시간 노동시간 속에서 촬영 간 이동 중에 쪽잠을 자거나 찜질방에서 1~2시간 휴식 후 다시 촬영 및 편집 노동의 강행군에 시달리고 있다. ‘쪽대본’으로 표현되던 예전과 달리 사전제작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스태프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이유는 갑인 방송사와 을인 제작사 간의 제작비 절감과 광고수입 확대라는 줄다리기 속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철저한 병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한 병이어도 노동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라면 초장시간 노동 관행에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미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바처럼 방송산업은 근로기준법 제59조에 의한 특례업종이다. 하지만 배우 허정도가 이미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는 불법이다”라고 일갈한 것처럼, 방송산업에서 자행되고 있는 무제한노동은 전혀 합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해당 법의 적용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수많은 방송산업의 불안정노동자들은 초장시간 노동과 관련해 자신들의 대표에 의한 합의도, 불합리한 압력으로부터 자율적인 본인 스스로의 합의도 한 적이 없다.

 

아울러 해당 법은 ‘공중의 편의’라는 단서에 근거하여 특례업종을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오로지 상품으로 제작되고 유통되는 방송콘텐츠를 통해 그리고 제작비 절감과 외주제작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방송산업을 공익을 위한 특례업종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는 걸까? 공익을 위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하는 노동시간 특례 제도 자체가 사라져야 마땅한데도 말이다. 방송의 공공성 회복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은 허용되어선 안 된다. 제작방식의 합리화와 인력 충원 등을 통해서 방송 제작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충분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4. 이제는 ‘갑을’이 아닌 ‘노동’으로! ‘공정’에서 ‘권리’로!

 

결국 노동자를 착취하고 또 착취하여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려는 방송사와 제작사로 구성된 방송산업의 문제는 방송사와 제작사 간의 공정한 제작 및 거래 환경 조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 최근 화두가 된 상품권 페이 문제도 제작비를 절감하려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꼼수에 노동자들이 희생되는 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수많은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이 프리랜서, 즉 개인 사업자로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거래 관행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앞서 살펴본 방송산업에서의 외주제작 및 노동의 외부화 과정을 통해서 프리랜서와 같은 불안정노동자가 확대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단적으로 프로그램을 외주제작하지 않고 방송사에서 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로 제작을 했다면 상품권 페이 문제는 생겨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갑을’ 관점이 아닌 ‘노동’의 관점에서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더불어 외주제작 환경 속에서 일하는 수많은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이들이 주체적으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 당사자들이 겪는 열악한 제작환경에서의 고강도‧장시간 노동 문제와 더불어 수많은 노동권 및 인권 침해의 문제들은, 정부와 자본 또는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일부 방송사 정규직들이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권리와 해결방식은 당사자인 불안정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정부와 자본은 그것을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 요구 및 쟁취 없이는 방송의 공공성 회복과 공정한 방송 제작 환경의 구축도 불가능하다.

 

지난 2월 28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방송업에 대한 노동시간 특례 적용은 올 9월부로 폐지가 된다. 하지만 대다수 방송 스태프들이 프리랜서 계약 등에 의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이 사라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또한 외주제작 등의 방송제작 구조 속에서 규모가 작은 여러 제작사나 업체들에 소속된 방송 스태프들이 52시간 노동시간의 기업규모별 차등 적용이라는 정부 방침(5~50인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적용. 5인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적용하지 않음) 속에서 과연 적정 노동시간을 누릴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자신들이 틀어쥐고 있는 고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원천 봉쇄를 통해 근로기준법 자체의 적용을 회피하고자 할 것이며, 스태프들의 분할을 통해 일부는 방송사와 대형제작사에 노동자로 고용하더라도 외주제작방식의 유지 및 확대를 통해 다수의 스태프들을 개인사업자나 영세업체 소속으로 남겨 근기법의 한계를 적극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이 줄어든 게 아니라 오히려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의 힘을 결집시켜서 방송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이 더욱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방송산업 불안정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으로 뭉치고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계속해서 박탈당할 것이고, 초장시간노동에 계속해서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도 실현시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끝으로 같은 노동자이자 방송콘텐츠의 소비자인 우리는 방송산업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과 더불어 정부와 자본에 다음과 같이 요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위험하고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 장시간‧고강도‧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노동자가 생산한 이윤만을 위한 콘텐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다운 노동조건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 받은 노동자들이 제작한 공공재로서의 방송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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