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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입장

[입장] 휴게시설 설치에 대한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며, 정부의 책임 방기다.

 

 

고용노동부는 4월 25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에는 올해 8월 18일 시행이 예정되어 있는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 법제화에 대한 세부적 내용으로 ▴휴게시설 설치의무가 부과되는 사업주의 범위 ▴휴게시설의 기준 ▴위반시 과태료 부과기준 등도 포함되었다.

 

휴게시설 설치의무 법제화는 휴게권을 법에서 직접 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을 위해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할 쉴 권리가 제도적으로 확인되고 보장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정부는 구체적 적용에서 이를 모든 노동자의 권리로 두지는 않았다. 입법예고된 내용에 따르면 휴게실 설치 등의 의무가 부여되는 사업장은 20명 이상의 노동자가 상시적으로 일하는 경우(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20억원 이상), 전화상담원, 돌봄노동자, 텔레마케터, 배달원,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10명 이상인 경우로 그 기준을 제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는 해당 내용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장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단계적인 적용도 당연하다는 듯이 포함되어,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미만)인 경우에는 1년을 유예하여 2023년 8월 18일부터 해당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한다.

 

이 같은 차별적 적용과 배제, 유예의 이유로 사업주의 재정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등장하고 있고, 사업주가 제도에 순응하고 법규를 준수할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본래의 의미보다 제도의 효율성을 고려한 논리가 등장한다. 20인 이상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 비율이 93.2%에 이르기 때문에 제재 대상이 될 사업장 비율이 높지 않고, 최소한의 안전보건 관리가 가능한 사업장의 규모라는 판단 등이 작용되었다.

 

결국 의무를 부과받게 되는 사업주의 반응과 행정의 수월성을 고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90% 이상이 휴게실이 설치되어 있어, 적용의 부담이 적다고 하면서 다시 1년을 유예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제도의 적용 과정에서 사업주의 준비가 필요하다면 과태료 적용 시기를 유예하면 될 것이지 적용 자체를 유예할 이유는 없다.

 

관계 수급인의 노동자를 노동자 수 산정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어 하도급, 하청, 용역 등의 경우에도 함께 포괄하도록 조치하고 있으나, 이러한 조치의 의미는 사업장 규모에 따른 구분 적용이라는 규제 방식 자체에서 이미 허물어진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단계적 적용과 2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배제 방식으로는 불안정 노동의 활용을 통한 사업장의 규모 축소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에서 보듯이 기업들은 고용형태를 위장하거나 사업장 쪼개기 등으로 계속해 법적 의무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탈법 시도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휴게권을 비롯한 노동자의 권리가 사업장 규모 등에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서 보장되도록 하는 것에서만 찾을 수 있다.

 

물론 휴게실 설치가 물리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공동 휴게실이나, 정부의 책무로 부여하는 등의 보완적인 조치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 입법예고안에서도 다른 사업주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도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이와 별도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휴게시설 설치 시 재정지원 방안도 마련한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사업장에 대한 의무를 면제해 준 상태에서는 보완적인 조치도 무색할 뿐이다. 이미 의무에서 벗어난 사용자들이 공동 휴게실을 마련해야 할 유인도 없고, 재정지원 방안은 정부의 정책으로 운영될 뿐 제도화되어 있지도 않다. 무엇보다 이미 의무 자체 면제의 효과가 발생하는데 별도의 지원을 신청하고 자비를 들여가며 굳이 법이 부여하지 않는 의무를 이행하려는 사업주가 얼마나 되겠는가.

 

휴게시설 설치의무에 대한 이번 입법예고안은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사업주의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를 우선 순위에 두는 정부의 판단, 적극 행정을 회피하는 오래된 관행을 벗어나지 않는 한 모두의 안전과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오랜 차별 관행을 답습하지 말고, 보편적 권리로 휴게권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그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2022년 4월 27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리스트 사진 출처 :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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