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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가사노동자 권리보장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시행에 부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022년 6월 15일

 

 

6월 16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다. 그러나 가사노동자에게도 드디어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는 의미는 선언에만 그치고 있다. ‘가사근로자법’은 가사노동자의 고용관계를 공식화하여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그 제정의 이유를 밝히고 있지만, 상세 내용에서는 그런 취지를 읽어 내기가 어렵다.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 보장보다는 기관에 대한 인증을 통해 가사노동을 공식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두고, 그를 통해서만 노동자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증기관을 통해 일을 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권리 적용 여부를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가사근로자법’은 이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근로기준법 및 기타 노동법상의 권리를 보장한다. 「근로기준법」은 제11조 제1항 단서를 통해 ‘가사사용인’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이 한 줄의 규정이 모든 가사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기에, 이의 삭제를 통해 가사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훨씬 더 용이하게, 보다 충분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가사근로자법’은 이 적용 배제에 해당하지 않는 가사노동자의 기준을 별도로 만드는 방식으로 권리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그 기준은 노동관계로서의 실질이나 권리 보장의 필요성 등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를 공급하는 기관의 상태에 의해 정해진다. ‘가사근로자법’은 ‘인증’받은 기관과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경우에 한해 ‘가사근로자법’이 정한 노동조건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행령을 통해서는 이처럼 인증받은 기관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5인 이상’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에 대한 노동관계법의 적용은 일면 당연한 문제다. 최근 문제제기가 확산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의 문제도 5인 이상일 것을 규정하는 것으로 벗어나고 있다. 즉 이 경우에 해당한다면 ‘가사근로자법’ 여부와 무관하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받는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이 ‘가사근로자법’은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될 수 있는 대상에 해당하는 가사노동자들을 오히려 근로기준법 밖으로 빼내 와 별도의 법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를 요건으로 제시하면서 마치 이들에게 특별히 노동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 ‘가사근로자법’인 것이다.

 

‘근로계약’을 체결한다고 모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해석될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간병인과 같이 가사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을 하는 경우에 대해 설사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혹은 법적으로 근로계약을 강제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가사사용인’과 유사하다고 하여 권리를 부정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사노동자에 대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는 없으며, 이러한 사례들은 오로지 가사노동자에 대한 법적용을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조항에 근거할 뿐이다.

 

결국 근로기준법에서 가사노동자에 대한 적용 제외의 부분을 삭제하면 되는 문제였고, 그것이 본질적인 권리 보장의 방안이다. 노동관계의 실질에 따라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주장은 논점이 다른 문제이며, 노동관계로서의 실질을 증명하고, 사용자로서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를 논쟁하면 되는 문제다. 이것이 더 쉬운 길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가사근로자법’을 적용받을 노동자들의 규모는 크지 않고, 그 외의 노동자들, 어쩌면 거의 전부에 해당할 수도 있는 대다수 가사노동자들은 여전히 권리 공백의 상태에 남아 있다. 그들은 노동자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노동에 대해 책임을 질 사용자를 찾아 법적 책임을 지우는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가사근로자법’은 노동자들에게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았다.

 

‘가사근로자법’의 제정이 정작 필요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사노동을 공식화해서 시장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애초 ‘중개업체’를 통한 가사노동자 구직 경로의 비중 자체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데, 이는 연구자에 따라 적게는 3.1%에서 많게는 36%로 나타나고 있어 그 편차가 크다. 얼마나 많은 중개기관이 ‘가사근로자법’에 따른 인증절차를 밟을 것인지도 불확실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의 제도적 안착을 위해 고용노동부는 시행에 앞서 전국을 돌며 법 설명회를 갖고,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의 조치들을 더했다. 중개업체를 통한 경우가 아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 외의 취업 경로를 공식적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에 정책의 성패도 달린 것이다.

 

현실에서 중개업체를 통한 취업 규모가 크지 않고 ‘가사근로자법’을 통한 공식화의 효과성이 매우 불분명함에도 이 법이 필요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플랫폼 노동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다. 플랫폼을 통한 노무공급의 확산에 따라 가사노동 역시 이후에는 플랫폼 노동의 형태로 확산될 것이 자명한 상태다. 그 점에서 ‘가사근로자법’은 플랫폼 시장에 대한 규율과 맞물린다. 지난 정부에서 제정하고자 했던 ‘플랫폼종사자법안’은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것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도모하고, ‘노무중개’라는 새로운 노동력 거래를 만들어 내는 것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플랫폼을 통한 ‘노무중개’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중개를 통해 노동자를 특정 일자리에 안착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감을 찾아 떠도는 상태를 삶의 양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 플랫폼에 대한 규율을 정비하는 것에 대해 플랫폼 기업들은 기업활동 규제라며 반발을 하기도 하지만, 플랫폼 기업에 대한 신고 등의 관리구조 마련은 노동관계의 종속성을 은폐하고 노동자의 권리 박탈, 불안정 노동의 영속화를 야기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에 늘어나는 가사노동의 수요를 공식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방안, 그를 통해 ‘노무중개’를 활성화해 나가는 방안으로서 ‘가사근로자법’의 제정이 첫 단추로서 필요했던 과정인 셈이다.

 

그렇기에 ‘가사근로자법’은 노동자 보호의 취지도, 사용자 규제의 취지도 아닌, 시장 자체를 공식 영역에서 확대함으로써 다양한 노무 중개 시장이 ‘건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목적의식이 다분히 포함된 제도인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해 노동자의 노동력에 ‘노무서비스’라는 이름을 붙여, 그를 거래하는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라는 ‘사람’을 지워가는 제도화의 흐름에서 어떻게 노동자 권리 보장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덧붙여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다른 가사서비스 제공과의 겸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플랫폼을 통한 가사서비스 공급업을 별도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 이전에 직업안정법상 다른 모집, 소개업 등과의 겸업은 이미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당 업체의 규율에 대한 부분도 통일적으로 다루는 것이 마땅하나, ‘가사근로자법’은 제8조의 결격사유를 「직업안정법」 제38조의 결격사유보다 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직업안정법을 위반해 벌금형이 확정된 경우 2년이 지나지 않으면 업을 행할 수 없으나 ‘가사근로자법’에서는 이를 1년으로 단축했다. 집행유예의 경우에도 직업안정법은 유예기간이 끝난 날부터 3년이라는 기간을 제한하지만, ‘가사근로자법’은 집행유예 기간 중에만 금지된다. 가사서비스 인증기관에게 유리하게 규정되어 있는 이 차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에서 우리는 이후 전반적인 직업안정법의 규제 완화로 이어지게 될 것을 또한 우려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가사근로자법’에 의해 보장받게 되는 권리 수준이라도 양호해야 할텐데, 이 역시 한계가 많다. 먼저 최소노동시간을 1주 15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가 명시적으로 원할 경우 15시간 미만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인증의 요건이 아니기에 중개기관이 소개 권한을 이용해 15시간 미만화 하는 것을 제어하지는 못한다. 그럴 경우 유급휴일 및 연차유급휴가는 적용받지 못하게 된다. 인증에 이용되지만 권리는 보장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계약기간에 대한 규정은 언급이 없다.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은 인증요건이 아니기에 단시간, 계약직 노동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안정된 고용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휴게’시간을 근로계약에 명시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근로기준법에서도 명시해야 할 근로조건에 휴게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는 취업규칙의 작성 사항에 포함되도록 되어 있어 근로조건의 내용을 형성한다. 그러나 ‘가사근로자법’이 가진 독특한 규정은 휴게에 관해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이용자 및 이용자 가족이 노력해야 하는 사항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근로계약이 아닌 제공기관과 이용자가 맺는 ‘가사서비스 이용계약’에 포함되어 있다. 근로계약의 상대방은 제공기관이 되지만, 휴게에 대해서는 책임을 이용자에게 넘기고 있는 셈이며, 결국 휴게에 대한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고 감독되기 어렵게 된다.

 

즉 ‘가사근로자법’은 근로조건의 명시(근로기준법 제17조), 휴게시간(제54조), 휴일(제55조), 연차유급휴가(제61조)를 근로기준법과 달리 별도로 정하고 있다. 이 부분이 가사노동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달리 정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 구체내용에 있어서는 표현을 달리 했을 뿐 큰 차이가 없다. 휴게시간은 노력 정도에 그치고 있고, 고용안정도 확보하지 못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기울인 노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가사근로자법’의 제정에서 가사노동자의 권리보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권리보장의 취지라면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 부분을 삭제하고,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할 부분을 별도 명시하거나 해당 사항에 대해서만 적용을 달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오히려 권리 보장이라는 관점을 더욱 명확히 하는 방법이지만, 이는 정부와 국회의 선택지 가운데는 없었다.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오랜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 조항은 그 적용 제외에 대한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많은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기능해 왔다. 가사노동자가 왜 노동자가 아닌지, 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지에 대한 여러 견해들은 존재하는 제외 규정을 납득하고자 덧붙여진 해석에 불과하다. 7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강제로 납득해야만 했던 권리 배제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시장을 규율할 목적에 권리 보장이라는 명목을 억지로 덧댄 결과가 ‘가사근로자법’이다. 노동권의 보장은 노동관계법에서 논의하자. 가사노동자 권리보장은 근로기준법의 개정으로 처음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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