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 시엔푸에고스
1.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닌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배우는 것, 그것이 여행
자, 오늘은 쿠바 여행기 3번째. 중부 여행의 두 번째 이야기다. 그러니까 아바나를 떠나 시엔푸에고스에서의 3일이 이번 여행의 이야기이다. 주말이 중요한 쿠바의 여행에서 첫 주말은 조용한 시골도시 시엔푸에고스에서 보내냈다.
(1) 여행은 감사의 마음을 배우고 감사의 마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아주 소중한 실천
시엔푸에고스행 버스는 아침 9시쯤에 출발이라 아침부터 서둘렀다. 다른 지역과 달리 시엔푸에고스행 버스는 버스 터미널이 아닌 근처 호텔에서 대행하는 투어버스로 갔다. 숙소에서 터미널도 멀었고, 길도 잘 몰랐고, 무엇보다도 가격도 조금 더 싼 투어버스로 이동하는 거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 좋은 정보는 아바나 숙소에 머문 포항 여학생한테 들었다. 뿐만 아니라 아바나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 토시, 중국계 콜롬비아인 보야, 두 명의 한국인 등에게서 다음 도시의 숙소며 버스 타는 방법이며 가보면 좋을 곳이며 여행의 경험과 지혜 등등을 전수 받았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음 여행자의 등불이 되어준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이들에게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이들은 자신의 여행 동안의 경험과 지혜를 전해주고 간다. 처음에는 그저 고맙기만 했는데 나중에는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할까 싶었다. 그런데 감사의 기억은 꼭 도움을 준 사람에게만 갚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다음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그 감사의 기억을 전해주는 것이 그 고마움의 보답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라 했는가. 나 역시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이의 도움을 또 길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주고 왔다. 그러니까 여행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뿌려주는 ‘축복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사는 윤활유가 되는 거 같다. 내가 받은 도움을 그 당사자에게 다시 돌려주면 그저 둘만의 소통이고 둘만의 일로 끝나지만, 이렇게 길에서 만난 인연들은 스쳐지나가면서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받았던 도움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면서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온 세상으로 퍼지는 것이다. 둘만이 마주보는 좁은 시야의 사랑이 아니라 온 민중을 사랑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2) 드디어 나온 예상 질문!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
아바나 잉글라테라 호텔 앞에서 시엔푸에고스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참이나 기다려도 안 오는 지루한 시간에 호텔직원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남에서 왔냐 북에서 왔냐를 묻는다. (norte? sur?) 드디어 예상 질문이 나오는 구나. 쿠바에 여행을 오면 종종 듣는 질문이 남에서 왔냐 북에서 왔냐는 질문이라고 들었는데 역시나 였다. 오히려 나는 이 질문이 왜 이제야 나왔나 내심 늦게 나온 예상 질문에 반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바나에서의 3일은 거의 쿠바 현지인들과 대화보다는 같이 동행한 부산 여학생 M과 같이 다니고 이것저것을 먹고 보느라 들을 틈이 없었기도 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sur' 라고 대답했다. (sur(수르)는 스페인어로 남쪽, 즉 south라는 뜻) 그랬더니 이 호텔 직원은 바로 ‘꼬뮤니스타’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M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얼른 아니라고 한다. 사실 그 순간에 나 혼자 있었으면 그렇다고 해 볼 걸 그랬다. 그 뒤로는 이 질문을 아주 종종 들었는데 참 재밌고 우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추후에 더 얘기하기로 하자.
2.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줬던 마을 - 시엔푸에고스
(1) 열정은 불이 아니라 물과 같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다. 떠나는 길에 보인 혁명박물관. 그 위에 붙여진 “인더스트리알 챔피온” 플랭카드를 보고 다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열정은 형체가 없어서 어떤 그릇에 담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쿠바민중들의 열정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는 혁명의 그릇에 담았으나 지금은 글쎄... 이들의 열정은 다시 형체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어떤 그릇에 우리의 열정을 담아야할까 고민이 되었다.
혁명박물관에 붙여진 “인더스트리알 챔피온” 플랭카드를 뒤로하고 떠난 다음 여정은 ‘시엔푸에고스’였다. 사실 여기는 여행객들이 그리 많이 가지 않는 곳이었는데 왠일인지 조용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 끌려 이곳을 다음 여정으로 정했다. 정신없이 보냈던 아바나의 3일이 지난 후 3시간 남짓 가는 시엔푸에고스행 버스에서 처음으로 MP3에 저장해온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들었다. 쿠바의 시골 길이 보이고 비로소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제야 쿠바에 왔음을 실감했다.
(2) 죽어서도 쿠바 민중을 먹여 살리는 위대한 혁명가 체게바라!
시엔푸에고스에서는 쿠바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질 수가 없었다. 시엔푸에고스에 내려 첫 여정은 호세마르티 공원을 가는 길에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거리에 관광객들 상대로 관광물품을 파는 작은 노점이 있길래 지나갔는데 역시나 온통 체게바라 관련 상품들이다. 나는 체게바라 물품들이 도시인 아바나 정도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작은 도시에도 이렇게 팔려나간다니 갑자기 쿠바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체게바라를, 혁명을 팔아먹다니……. 이곳 사람들은 체게바라를 팔아먹고 사는 느낌이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좀 화가 났다.
쿠바에서는 호세 마르티, 카스트로, 체게바라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호세마르티는 곳곳에 동상이 있고 기념관도 있지만 위인으로 추대 받는 느낌이고, 카스트로는 아직 살아있어서 동상은 없지만 각종 선전 선동 포스터에 아직도 혁명을 지도하는 선동가나 지도자로 남아있는 거 같은데, 체게바라는 그들에 비하면 심하게 말해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분은 좀 불쾌했지만, 그가 어째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게바라는 살아서는 혁명으로 죽어서는 상품으로라도 쿠바 인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그렇게라도 인민들을 위해 살아있는 것이다. 체게바라가 불쌍하고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부탁한 선물 말고는 체게바라 상품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것이 체게바라를 모독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3)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곳 시엔푸에고스는 작은 시골 도시이다 보니 아바나보다 더 여유롭다. 바로 거기서 나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일상이 집 앞에 나와 하루 종일 앉아있고 어린아이들은 골목 곳곳에서 야구에 한참이다. 이 할 일 없이 나와 있는 쿠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기나긴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척 철학적인 고민이 들었다.
문득 이곳은 작가가 머물면 좋을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가가 되어 글을 집필하러 온다면 이 조용하고 작은 시골 마을이 무척 맘에 들겠지만 이곳 사람들처럼 현지인이라면 어떨까. 누군가의 여행기에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썼던 쿠바의 ‘코히마르’라는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을 가보며 처음에는 여유로워 보였으나 그곳에 계속 살면 못 살 것 같다고 말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빨리빨리를 외치고 엄청난 양의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았던 몸에 밴 습관과 생활방식 때문일까. 이들의 할 일(소일거리) 없이 사는 생활은, 그리고 일상은 나에게는 다소 견디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이 가난하긴 하지만 문맹도 아니고 몸이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그 기나긴 생활을 무엇으로 채우고 보내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 몸에 밴 자본주의적 생활방식 (효율성을 따지고, 소비로 점철된 방식)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들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해 늙어서도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이 즐비한 한국에 사는 나는, 하루 종일 집 앞에 나와 앉아있는 쿠바의 노인들을 보며 잠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를 생각해 봤다.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질문의 답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어서 하나의 정답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살던 곳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드는 가운데 시엔푸에고스에서 조용한 그리고 조금은 무료한 주말 3일을 보냈다.
(4) 체게바라냐 카스트로냐, 그 순간에 떠오른 라울의 하얀 헬리콥터
조용한 바닷가 마을답게 주변이 해변이다. 유명한 휴양지처럼 큰 해수욕장은 없지만 작게나마 동네 사람들이 찾아오는 작은 해변들이 더러 있었다. 그 중에서 시엔푸에고스에서 머문 마지막 날 일요일에 ‘라구나 델 쿠라’ 해변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사 가족들과 친구들은 무료했던 나의 주말을 아주 흡족하게 해줬다. 그들이 권해준 술도 먹고 춤도 추고 광장에서의 댄스 대회도 가고 아주 즐거웠다.
특히 돌아다니면서 궁금했던 이것저것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걸로 시작된 이들과의 만남은 길거리 벽에 있는 'tres joven' (세 명의 젊은 혁명가)이 뭐냐, 마을 ‘시엔푸에고스’의 이름은 혁명가 ‘시엔푸에고스’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냐, 쿠바에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 많은 것을 묻는 것으로 나의 궁금증을 무척 풀어줬다. 그들 역시 단순하지만 나의 신상, 한국에 대한 것들을 물어봤는데, 참 난감해졌다. 나보고 한국에서 뭐하냐고 물었다. 어딜 가나 그들은 그 질문을 아주 간단하게 물어 본다. ‘일하냐? 공부하냐?’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 학생은 아니니 일한다고 했다. 그런데 일한다고 하는 순간부터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을 하냐고 한다. 음.. 활동가를 설명하기 어려워 고민 끝에 선생님이라고 둘러댔다. 나도 생계 때문에 과외를 하기도 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기도 하니 그 말이 맞기도 했고, 그게 설명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대단해하며 자기도 선생님이라고 한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면서 뭘 가르치냐고 한다. 순간 난감했다. 요새 내가 하는 것은 논술선생인데, 이걸 설명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대충 글짓기, 독서 뭐 이런 걸로 둘러댔는데 난감해 하니 이번에는 그럼 누구를 가르치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어느 학교에서 근무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초등학교 선생이란다. 점점 수렁에 빠진다. 학교도 아니고 학원이라는 것을 과연 자본주의도 아닌 쿠바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짧은 영어로 그걸 어떻게 설명하냐고……. 그래서 대충 고등학교라고 둘러댔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니 완전 거짓말도 아니긴 했다. 참 난감한 순간이었다. 어디서나 사교육을 해야만 하는 한국 사람들의 교육과 (주입식 이데올로기 교육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경쟁을 위해서가 아닌 모든 인민들에게 먹고사는 것처럼 당연한 교육을 받고 있는 쿠바 사람들에게, 어디서 뭘 가르치냐는 질문이 아주 쉽고 간단한 질문이었을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참 어렵고 복잡한 질문이었다. 그들과 나는, 그들과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참 대화가 오가는 중에, 결정적으로 내가 쿠바로 오기 전 가장 궁금했고 쿠바사람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그 질문, 바로 ‘체게바라냐 카스트로냐’를 묻는 순간이었다.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고, 뒤늦게 생각해 보면 내가 물어보기에 참 미안하고 어리석은 질문이었을 텐데 나는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 대답을 회피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부담스러운 질문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 순간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순간 그 초등교사는 나보고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를 보라고 한다. 난 뭐 그냥 헬리콥터가 지나가는가 보다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는데 그녀가 얘기하길, 하얀색 헬리콥터는 유일하게 대통령만이 타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그럼 저기에 피델 카스트로가 있냐고 물었다. 현재 대통령이 피델이 아니라 그의 동생 라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순간 거기에 피델 카스트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랬더니 그녀는 피델이 아니라 라울이라고 얘기한다. 나도 모르게 거기에 몰입해서 진귀한 장면이라도 본 것처럼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높이 있어서 사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 어색하고 애매한 타임에 라울의 하얀 헬리콥터가 절묘하게 나타난 것이다. 쿠바 사람들은 현 대통령인 라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자신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는 그 순간에 어째든 라울이 그들을 구해준 것이다. 음.. 라울도 쿠바 인민들을 위해 하는 일이 있구나 싶었다. ㅋㅋ
그날은 모처럼 지루했던 나에게 쿠바가 재밌는 곳이고, 쿠바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게 즐겁다는 인상을 가득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쿠바에 온지 딱 일주일 만에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라구나 델 쿠라’ 해변에서 만난 초등학교 선생 일행과 술도 엄청 마셨다. 물론 과음을 해서 다음 날 좀 힘들었으나 그렇게 쿠바에서의 첫 주말은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