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을 가장 뜨겁게 달군 투쟁의 하나가 바로 플랜트건설노조의 공동파업투쟁이었다. 7월 12일 포항지역건설노조의 전면파업을 필두로, 7월 14일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 7월 19일 여수지역건설노조의 총파업투쟁이 이어졌다. 올해 5월 건설연맹 산하에 플랜트건설노조협의회가 결성되고, 사상 처음으로 플랜트건설노조가 공동요구를 내걸고 시기집중 연대파업을 벌였다. 4,400여 명의 건설비정규직노동자가 참여한 이번 파업투쟁은 건설일용노동자의 투쟁 역사에 있어서나 전체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나 의미가 큰 것이었다.
대정부. 대포스코 서울상경투쟁으로 2,000여 플랜트건설노동자가 모였던 지난 7월 27일, 각 노조의 활동가들을 만나 보았다.
사내하청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플랜트건설
플랜트노조협의회 소속 포항, 여수, 전남동부, 울산지역건설노조는 공단 내에서 공장 설비의 설치?유지?보수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점에서 주택건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다른 지역건설노조와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 등 주택건설의 경우는 완공되면 건설현장 자체가 사라지고 이에 따라 건설일용노동자들도 이동을 하게 된다. 반면 플랜트건설은 현장이 고정되어 있고 공장밀집지역 내에 건설노동자들도 대규모로 밀집하게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기후조건에 따라 1년에 평균 8개월 정도만을 일할 수 있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용직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플랜트건설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금속이나 화학섬유 등 제조업 사업장의 노동자들과 유사한 측면도 가지고 있다. 가령 올해 1월에 조직된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의 경우 조직대상의 일부가 조선업종 노조와 겹치기도 한다. 한 건설조직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건설플랜트 노동자가 금속연맹이 아니라 건설노조로 오는 이유는 일용직이기 때문이다”
플랜트노조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포항지역건설노조는 1989년 결성되었다. 포항지역건설노조는 1989년 10월에 사측과 8개 조항의 합의서를 체결한 이후 계속적으로 단협을 체결하고 있다. 포항지역에는 30～40개의 건설업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업체는 포스코(발주처) → 포스코개발(원청) → 전문건설업체(하청) 형식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교섭대상은 포항지역에 현장을 가지고 있는 30개 건설업체로 하청업체대표와 노조가 협약을 체결한다. 여수지역건설노조는 2002년에 134일간의 파업투쟁 끝에 임단협을 쟁취하였다. 전남동부지역건설노조는 2003년 결성되어 임단협을 쟁취하였고, 울산지역건설노조는 2004년 1월 결성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발주처의 다단계 하도급과 저가낙찰
건설산업의 부실시공과 비리, 노동조건 악화의 근본에는 다단계 하도급과 저가낙찰이 자리잡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1997년까지 설계가의 95% 선에서 공사를 발주해 오던 것을, 현재는 77% 선에서 발주하고 있는 상태이며, 이것이 또 다시 원청에서 하청으로 넘어가면서 20% 이상 삭감되어 공사실행단가가 정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포스코 건설현장에서는 실제 설계가의 46% 선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최저?최악의 저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원인이다.
[표] 포스코 현장의 하청 노동자들의 후생복지 시설 현황
▶ 휴게실 문제. 샤워장도 없다.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은 샤워장이라도 있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컨테이너 하나에서 옷 갈아입고 거기 먼지 구덩이에서 밥 먹고 그런 실정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담배를 많이 피는데 흡연장소도 없어서 담배를 피면 뭐라고 한다.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직업병이다. 직업병 없는 사람이 없다. 먼지 많이 마시지, 소음 때문에 귀 안 좋지. 45세 이상이 많은데 건강검진해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나오면 안 받는다. 그러면 하루 아침에 어디 가서 일하겠는가. 포스코건설에서 입찰을 하면 반드시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데 노동자가 돈을 내고 검진해야 한다. (전남동부)
문제의 원인이 발주처 및 원청에 있다보니 노조의 교섭 , 투쟁의 대상도 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랜기간 동안 하청업체인 전문건설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으면서도 발주처인 포스코를 상대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들어 보자.
▶ 포항은 포스코, 여수는 LG가 발주처이다. 포스코건설, LG건설, 대림건설 등이 원청이고, 전문건설업체가 하청이다. 노조의 교섭은 전문건설업체와 한다. 그러면 사측은 원청과 발주처의 핑계를 댄다. 원청과 발주처와 엮어지고 이것이 다시 정권과 이어진다. 여수 같은 곳은 석유화학단지가 있기 때문에 국정원이 바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여수)
▶ 포스코가 플랜트노조협의회를 부정할 뿐 아니라 최대한 자본의 힘으로 꺾으려 한다. 예년과 달리 아직까지 교섭이 답보상태인 것을 보면 포스코 건설, 전문건설업체에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포항)
▶ 전문건설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만 우리의 노동조건, 임금문제는 발주처와 관련 있다. 그래서 올해 대포스코 투쟁이 필요했다. 이제는 발주처와 교섭해야 할 때이고 플랜트노조협의회의 역할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포항)
플랜트노조 공동요구는 생활임금.유급휴일 쟁취, 노조활동 보장
2004년 건설플랜트노조의 공동요구는 생활임금 쟁취, 유급휴일 보장,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조활동 보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 법정공휴일과 추석, 설연휴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청원휴가도 필요하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삼오제를 치를 수 있도록 휴가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조차 3개월 이상 근속한 사람만 보장되고, 3개월 미만자는 부모가 돌아가셔도 결근 처리된다. 아주 기본적인 거다.
▶ 생활임금을 확보해 달라. 1년에 7～8개월 밖에 일을 하지 못하는 계절적 노동이고, 비가 온다든지 눈이 오면 일을 하지 못하는 조건이다. 경력이 20년, 30년인 기술자들이 연봉 2000만원도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요구는 20～30년된 기능공들이 4명의 가족을 데리고 함께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되어야 한다. 건설노동자로 일하지만 같은 현장에서 일할 때는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화장실, 휴게실 등에서의 차별이 너무 심하다.
▶ 현재 건설업에 3만 5천 명 정도 이주노동자가 들어와 있다고 한다. 외국인노동자가 들어 왔을 때 건설일용직의 고용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노조에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 결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잡았다. 포항에 들어오면 우선 단체협약 적용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했다.
▶ 플랜트의 경우에도 원청이나 발주처가 조합 지도부의 현장 출입을 금지해서 옥신각신하는 경우는 있다. 우리는 현장에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싸우기도 하고, 현장 조합원 중심으로 간부를 세우기도 한다. 현장 출입이 관건이다. 여수에서는 LG정유에만 못 들어가는데 이것이 다른 사업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꾸 후퇴하면안된다. LG정유의 벽을 넘어야 한다.
2004년 공동요구-연대파업의 의미
2004년 플랜트노조의 투쟁은 공동요구를 내건 최초의 연대파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4,400여 명의 건설플랜트노동자들이 공동요구를 내걸고 한 달이 넘게 파업투쟁을 전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적인 공동투쟁에 대해 주체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 공동요구를 내걸고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 2002년 파업을 하면서 혼자 싸우는 것이 힘들다는 판단을 하면서 공감대를 이루었다. 또 연맹에서도 준비를 했다.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동질감이 있었다. 간부들이 많이 노력을 했다. (여수)
- 이렇게 해야 한다. 조합원들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광양만 파업하고 여수나 포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조합원들이 지역을 빠져나가 버린다. 지금은 예전에 참여 안하던 사람들도 파업에 참여한다. (전남동부)
특히 여수지역건설노조의 경우 여수산업단지의 화학섬유연맹 소속 노조들과도 공동투쟁을 전개하였다.
▶ 화섬노조와도 공동투쟁-시기조절을 했는데 상당히 어려웠다. 아직까지 적극적이지는 못했지만 꼭 필요하다고 본다. 화섬노조에서도 건설일용직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현장에 돌아가 건설 조합원들이 정규직 조합원들과 인간적 관계를 가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7월10일 공동투쟁을 선언하고, 5,000여 명이 모여 총파업 진군식도 했다. 그리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여수에는 LG그룹이 1/3을 차지하고 있다. LG그룹을 뛰어 넘어야 우리의 현실적인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다. 전문건설업체(하청)를 상대로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여수)
한편 공동투쟁에 따른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 아직 조합원이 의식화되지 못한 점이 어려움이다. 지역간에 서로 거리가 너무 멀다. 각자 사안이 있으면 거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하나하나 이러한 것을 시정해가면서 해야 한다.
아직까지 조합원 교육은 기초적인 수준이다. 올해 단협에서도 교육시간을 많이 확보하려 한다. 자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교육에 예산을 1순위로 투입하려 한다. 아직까지는 교육역량이 부족한 점도 많다. 조합원 연령대도 높다. (여수)
건설플랜트노조의 경우도 다른 지역건설노조와 마찬가지로 다단계 하도급구조에 따른 열악한 노동조건의 개선이 요구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원청과의 단체협약을 체결해온 지역건설노조나 하청과 단체협약을 체결해온 플랜트노조나 모두 실질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발주처나 원청을 상대로 요구를 내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건설산업에서 원청이 가지는 실질적 힘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지역건설노조의 조합활동 보장을 위해 원청과의 협약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의 경우에도 조합원임을 이유로 원청인 SK에서 현장출입증을 빼앗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고시켰다. 포항지역건설노조의 경우에도 파업투쟁을 이유로 발주처인 포스코에서 노조 지도부를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고 현장출입을 금지시킨 바 있다.
2004년 플랜트노조의 공동투쟁은 지난 8월로 일단락되었다. 비록 요구로 내걸었던 생활임금을 쟁취하지는 못했으나,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정부에 대해 공동요구를 제기하고 시기집중 공동투쟁을 전개한 경험은 건설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소중한 성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이동성이 높고 조직하기 힘들다는 일용직노동자를 지역적으로 조직해 내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가로질러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또는 발주처)에 대해 투쟁을 전개한 점, 나아가 지역적 차이를 넘어 자본의 선을 따라 공동의 투쟁요구를 만들어내고, 공동투쟁을 통해 조합원의 의식과 자신감을 높여 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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