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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02|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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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02|2005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 2004년 활동 평가

:: 2006-07-27   조회: 1390

이번호 <진단>은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의 2004년 활동평가자료입니다. 다음은 지난 1월 15일∼16일 열린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 간부수련회에 제출된 평가안입니다. 지면 관계상 분량을 약간 줄였습니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 2004년 활동 평가

[총평]

1.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이 비정규문제를 전국적·전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내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위상을 정립하고 비정규노조운동의 조직적 성과를 한곳으로 응집시키기 시작했다.

2. 다양한 영역의 비정규 문제에 대해 공동의 요구를 구체화시킴으로써 향후 업종과 고용형태, 지역을 뛰어넘는 전국 비정규노조 공동투쟁의 기반을 닦았다.

3. 비정규노조의 정치총파업을 최초로 성사시켰고, 하반기 개악저지 및 입법쟁취투쟁과정에서 전국의 비정규직노조 공동투쟁을 현실화시켰다.

4. 정세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바로 그 지점에 부족한 역량이나마 집중시키고 희생·헌신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전국적 투쟁정세를 일정하게 선도할 수 있었다.

5. 여전히 취약한 조직력과 투쟁력으로 인해 문제의식을 선도하는 데에는 상당한 역량을 발휘했으나,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조직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를 노정하였다.

6. 높아진 위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민주노총 소속 다수의 비정규직노조를 조직하고 있지 못하며, 안정적인 상근역량 등 집행력이 대단히 취약하고 재정자립도 또한 낮은 편이고, 지역 및 업종별 결합도가 대단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7. 하반기 법개악저지와 입법쟁취투쟁에서 보여준 전국비정규노조 투쟁에 대한 지도력·관장력이, 단위노조나 고용형태별 공동투쟁에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8. 대표자들의 연대체에서 이제 간부급 수준의 연대체로 발돋움하고 있으나, 여전히 노조 수준 내지 조합원 수준의 연대체로 성장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시기별 평가]

▶ 이용석, 박일수 열사와 함께 탄생한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

전국비정규연대회의 탄생시점을 가장 멀리 잡자면, 아마도 2003년 9월27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에서 16개 비정규노조들이 모여 연대체 구성을 논의한 시점이 될 것이다. 당일 회의에서는 비정규노조들의 독립적인 연대체가 과연 필요한가 (이를테면 비정규노조들이 연맹과 지역본부에 다 속해있으니 미조직특위 사업 속에서 녹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 하는 논의를 거쳐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라는 이름을 확정하고, 10월26일로 예정된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 총집결하여 전국비정규연대회의의 확대된 2차 회의를 하기로 결정하였다.10월26일, 양대노총 비정규노조들이 중심이 되어 치러진 대회에서, 총파업을 앞둔 근로복지공단비정규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이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바로 우리들 눈앞에서 분신자결, 산화해가셨다. 이용석 열사의 죽음은 비정규노동자대회에 모인 비정규직노조들에게 커다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이미 전사회적 문제가 되어있는 비정규직 사안에 대해,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는 얼마나 책임있게 이 문제를 다뤄왔던가? 혹시 비정규노조운동이 너무 힘들다보니 우리들 스스로도 단사 문제에 매몰되고 현안 문제에만 집중해왔던 것은 아닌가?

전국비정규연대회의 탄생시점을 가장 가깝게 잡자면, 올해 1월30일~31일 유성 동학산장에서 진행된 전국비정규노조 간부수련회일 것이다. 이날 수련회의 주제는, 당연히 비정규직 공동투쟁의 필요성, 비정규직 공동요구와 공동실천 프로그램, 비정규연대회의 확대·강화 방안 등이었다. 이날 수련회를 전국비정규연대회의 탄생시점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수련회 마지막 프로그램인 전국비정규노조 대표자회의 자리에서,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의 임원진(초대의장 홍영교 현자아산사내하청지회장)을 선출하고 운영위원회와 대표자회의 등 회의체계를 확정함으로써 어엿한 조직체계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이 공식체계를 출범시킨지 2주일만인 2월14일,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동지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결, 산화해가셨다. 연대회의는 곧바로 상황실을 설치하고 열사투쟁의 한 주체임을 선언하고 투쟁에 나섰으나, 여전히 미진한 조직력 등으로 인해 열사투쟁에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국비정규연대회의(준)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조직의 내면에 바로 이용석 열사의 정신과 박일수 열사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정신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전국적인 공동투쟁을 일궈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머지않아 파견법 개악을 비롯한 노동법 개악 반대투쟁에서 실현되게 된다.

▶ 박일수 열사투쟁

2004년 1월 조직체계를 세우고 준비위원회를 공식 출범한 직후 박일수 열사투쟁이 시작되었고, 당시 제대로된 공동투쟁의 경험조차 없는 상태에서 전비연이 열사투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상당히 제한되었다. 비정규직으로서 차별과 설움을 받아온 고통은 상당했지만, 조직력과 투쟁력의 측면에서는 취약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열사투쟁에 미미한 지원투쟁 수준에 머물렀다.

취약한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3월13일 약 5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울산에서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사전집회의 형식으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열기도 하고, 서울지역의 비정규노조들을 중심으로 계동 현대사옥과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수차례 항의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비연의 이름으로 조직한 최초의 비정규 공동투쟁이라는 점에서 작지만 소중한 경험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상반기 지리한 소강국면

박일수 열사투쟁 이후 전비연은 상반기 내내 전비연의 조직체계를 안정화시키고 조직 자체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조차 힘겨웠던 여러 국면들을 거치게 된다. 노동조합의 유지조차 어려운 것이 다수 비정규노조들의 상황이었고, 전비연 스스로 공동요구·공동투쟁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상을 명확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반기 비정규투쟁은 각 노조들의 각개약진의 형태를 띠었다.

상반기에 비정규 관련 중요한 투쟁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비록 박일수 열사투쟁시기와 맞물려 있어서 전비연 차원에서 이렇다할 지원을 하지는 못했으나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승리를 거두며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금호타이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불법파견이라는 제조업 사내하청의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냈으며, 이후 제조업 사내하청노조들의 불법파견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타워크레인기사노조는 4월3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여 조직력을 확대하고, 수도권지역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이라는 고강도 파업투쟁전술을 구사하며 수십개의 사용자들과 단체교섭을 쟁취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개별 단사들 위주의 비정규 투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투쟁 또한 상반기에 뜨겁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비연의 상황을 돌아보자면, 위에 거론된 중요한 투쟁에 이렇다할 지원투쟁이나 공동투쟁 및 연대투쟁을 조직해내지 못하였다. 운영위원회와 대표자회의조차 성원을 맞추지 못해 무산되기도 하고, 집행력의 취약으로 인해 결의된 사업조차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지금까지도 온전히 극복되지 못하였는데, 전국 비정규 노동자들의 공동투쟁 조직은 여전히 전비연에게 숙제로 남아있었다.

▶ 7월24~25일 전비연 간부수련회

무기력하게 지내온 상반기를 평가하고 하반기에 본격적인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비연은 7월24~25일 간부수련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전비연 지도부가 기획했던 수련회 취지는, 하반기에 예견된 파견법 개악안 등 비정규관련 개악안에 맞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입법발의한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전국비정규노조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것이었으나, 7월 간부수련회에서는 그동안 전비연이 가지고 있던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너무나 다양한 업종과 고용형태가 망라되어있고, 따라서 "이렇게 다양한 노조들에서 어떻게 공동의 요구를 끌어내고 공동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간부수련회 내내 무거운 과제로 부과되었다.

특히 특수고용, 사내하청, 건설일용, 공공부문, 지역일반노조 등 다양한 고용형태의 비정규 현안에 대해 서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전비연 내부의 통일성이 취약하다는 점이 중요한 극복과제로 대두되었다. 서울지역비정규연대회의와 특수고용대책회의 등 이미 3~4년 이상 연대틀을 갖고 공동투쟁을 조직해본 경험이 있는 조직들과 그렇지 못한 신생노조들 간의 편차 또한 심한 편이었다. 특히 현장투쟁과 법제도개선투쟁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민주노조운동진영 전체가 하반기 노동법 개악과 관련한 정세인식에서 드러냈던 안이함이,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비연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반기 파견법 개악안을 비롯한 노무현 정부의 대대적인 비정규 개악 공세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 내지 위기의식이 비정규노조운동 내부에서도 약했던 것이다. 심지어 '보호입법'과 '권리입법'의 차이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 전비연 지도부는 하반기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하루총파업 결의를 주문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정세인식과 위기의식에 대한 부족함으로 인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적인 비정규공동투쟁의 일천한 경험으로 인해, 그리고 과연 전국적 비정규공동투쟁이 가능할까 하는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 당일 수련회에서는 하반기 투쟁의 수위를 결정하지 못하고 8월 긴급대표자회의를 재차 소집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

▶ 8월26일 대표자회의에서의 하루총파업 결의

8월26일 재차 소집된 대표자회의에서 제출된 '권리입법쟁취를 위한 하반기 비정규직노조 하루총파업'이라는 원안에 대해 과연 성사 가능한 것인가, 총파업의 구체적 양태는 무엇인가 등등의 쟁점을 놓고 토론을 전개하였으며, 솔직한 실력으로 과연 하루총파업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제기가 다양하게 나오게 되었다.

이에 대해 올해 하반기에 비정규직노조들이 결사항전의 자세로 하루 총파업 정도의 전선을 치지 못한다면 비정규운동 자체가 하강세로 돌아서고 말 것, 비정규 주체들이 결사항전의 전선을 쳐야만 전체 민주노조운동진영의 총파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숫자가 얼마가 될 것인가 생산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최대한 비정규직 주체들이 파업을 선언하고 최선을 다해 조직하자 라는 의견을 매우 어렵게 모아내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자면 왜 그 당시에 하루총파업 결의조차도 힘겨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전비연은 당시까지도 다양한 고용형태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공동투쟁으로 묶어 세울 공동요구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러한 공동요구가 조직 내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되는 것은 열린우리당 점거농성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한 비정규운동을 포함해 민주노조운동진영 전체가 빠져있던 정세인식의 안이함 속에 여전히 젖어있었다는 사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7월24~25일 간부수련회에서 드러났던 서로 다른 고용형태에 대한 낮은 이해수준 역시 극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실질적으로 어떤 비정규노조가 총대를 메고 총파업투쟁의 선두에 설 수 있을까를 전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모든 난점이 일정하게 극복된 계기점이 바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의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이었다.

▶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의 열린우리당 점거농성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

양대노총 위원장의 항의방문을 받은 이부영 의장은 노·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그에 따라 9월 16일 열린우리당 대회의실에서 공청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날 공청회에는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주관한 차별철폐대행진 당일 일정을 오후 1시에 마치고 행진에 참석했던 비정규노조 간부와 조합원들 다수가 참관을 하게 되었는데, 노동부 측의 기조발제 직후 비정규직노조 대표자 15명을 비롯해 40여명의 비정규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2층의 당 의장실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열린우리당 의장실 점거농성단이 내걸었던 요구는 다음과 같다.

○ 노동법 개악안 즉각 철회!
○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
○ 노동3권 보장 등 노무현 대통령 비정규직 대선공약 즉시 이행!
○ 이 모든 요구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당 의장 및 대통령과의 직접 면담!

또한 농성단은 권리보장입법의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구체화하였다.

① 파견법 철폐
②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③ 간접고용 원청 사용자성 인정
④ 기간제 사용 엄격 제한

농성 하루만인 17일부터는 농성단 전원이 단식에 돌입했고, 이부영 당의장 및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요구가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선언했다.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벌인 점거농성이라는 고강도투쟁은 민주노조운동진영 내부에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고, 하반기 노동법 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가장 핵심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가져왔다.

농성 4일차인 19일, 농성장을 찾은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점거농성 투쟁을 두고 "정부의 개악안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장 적절한 투쟁이었다"고 평가했으며,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농성단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안고 총파업 조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밝혔다. 또한 이수호 위원장은 사회적 교섭 혹은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도 "쓰레기같은 개악안이 나온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노력은 의미없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농성 6일차인 21일에는, 전국의 지역일반노조를 비롯한 비정규노조 및 지역본부 간부들의 열린우리당 시도지부 동시다발 점거농성이 진행되었으며, 같은날 하반기 총력투쟁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파견법 개악안 국회 상임위 상정시 총파업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기에 이르렀다.

농성 7일차인 22일, 농성단은 열린우리당 이부영 당의장을 면담하고 "노동부의 입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법안을 만들겠다"는 등의 답변을 끌어내고 농성자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명확하게 받아낸 후에 일주일간의 점거농성을 해제했다.

▶ 11월 총파업투쟁 및 타워크레인 고공농성

전국비정규연대회의를 이끌어가고 있는 핵심부대의 정신에는 이런 것이 있다. "비판에 주력하기 전에 스스로의 실천을!" -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세인식 오류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 전체의 투쟁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라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의장실 점거농성도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먼저 희생과 헌신을 각오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투쟁결의를 이끌어냈고, 마찬가지로 26일로 예정된 총파업투쟁에 임하는 비정규노조들의 각오 또한 그러했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는 개악저지와 권리입법쟁취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의 최선두에서 투쟁을 전개해왔다. 특히 민주노총의 총파업 돌입 이틀 전인 11월24일, 전국의 비정규직노조가 일제히 간부파업에 돌입하고 국회 앞으로 상경투쟁을 전개했으며, 비정규노조 대표자 20여명의 집단삭발과 1,000여명에 달하는 비정규노조 간부들의 구속·해고결단식을 가졌다.

결전의 날이었던 26일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에서 건설운송(레미콘)노조와 타워크레인기사노조를 필두로 레미콘차량을 동원한 상경시위 등 위력적인 파업전술을 구사하며 건설현장을 마비시키는 총파업투쟁을 전개했고, 사내하청노조들은 정규직노조와 함께 원하청 공동총파업에 돌입했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가 전개한 24일 간부파업과 26일 총파업투쟁은, 민주노조운동 역사상 비정규노조들이 벌인 최초의 정치총파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정규노조의 투쟁은 대단히 격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단위사업장의 문제로 100일 이상 파업투쟁을 기록한 노조의 숫자도 많다. 그러나 1,400만 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걸고 정치파업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첫 번째 사례이다. 그 선두에 섰던 건설운송노조와 타워크레인기사노조의 경우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서, 정부 입법안에는 특수고용과 관련한 개악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노동자의 투쟁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희생을 각오한 파업투쟁과 차량상경시위를 전개한 사례로서, 이번 총파업투쟁의 중요한 모범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 총파업 돌입과 동시에 시작된 비정규노조 대표자 4명의 국회안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은 자칫 정부 개악안 유보로 전선이 흔들릴 수 있었던 정세 속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전선을 '개악안의 유보가 아닌 완전 철회'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라는 성격으로 명확히 했다는 소중한 성과를 남겼다. 아울러 비정규'보호'입법이라는 미명 하에 마치 비정규직을 위한 법안인양 호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사기행각을 폭로하고,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정부 입법안에 가장 처절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을 던져 선언하는 등 충분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일주일간 지속된 타워크레인 농성단이 사수하고자 했던 것은 "개악안 완전 철회"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라는 전국 노동자들의 투쟁전선이었고, 그들이 들고올라간 현수막에 담긴 문구들은 열린우리당 점거농성단이 채택했던 것의 연장으로서 전체 노동자의 절실한 요구를 담고 있었다. 크레인 농성단의 요구에는 열린우리당 농성단의 요구에 한가지를 더했는데, 그것은 "이주노동자 노동허가제 쟁취"라는 요구로서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 요구까지를 포함하려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을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 전국비정규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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