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나는 <질라라비>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불안정노동철폐 투쟁에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기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참 많습니다.
질라라비에서는 2006년 5월호부터 회원 동지들 및 불안정노동철폐 투쟁의 그 길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기는 꼭지를 마련했습니다.
꼭 파업 투쟁의 현장소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이야기, 길을 걷다가 차를 타다가 술을 마시다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이야기, 싸우고 사랑하는 이야기…. 그 어떤 이야기도 좋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면 대환영입니다. |
작년 말, 한 독립 영화제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 시작될 때부터 옆에서 지켜봤던 영화제였고, 영화를 직접 만드는 감독들이나 제작자, 배급담당자들이 주체가 돼서 하는 영화제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몸이 안 좋아서 꽤 오래 쉬고 있었기 때문에 ‘놀면 뭐하냐’라는 마음도 컸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제 일은 나름대로 재밌었다. 사실 일이랄 것도 별로 없었다. 간간히 회의 나가고, 지난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들을 몰아서 보는 것 정도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심지어 삼주 남짓한 기간 동안 70여 편의 다큐멘터리들을 몰아서 보는 일도 할만 했다.(나중에는 멀미가 나긴 하더라만...)
그렇게 널럴하게(내가 그렇다는 말이고 실제로 영화제 실무를 담당하는 동지들은 무지하게 바쁘고 힘들게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영화제 준비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 가지 작은 사건이 아무생각 없던 나를 이런 저런 고민에 들게 했다. 고민의 처음은 영화제 무료화에 관련된 논란이었다. 2001년 시작된 영화제는 상업영화보다는 적은 관람료를 받고 있었는데, 작년 영화제 평가에서 처음으로 무료화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내부에서 무료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나는 작년 영화제에는 결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올해 영화제 측의 무료화 근거는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 올해는 영화제시기를 변경하면서 국내 신작이 없이 회고전 위주로 진행되는데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돈을 받기는 미안하니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무료로 하자는 것. 두 번째는 영화제의 무료화는 영화상영의 환경을 바꿀 수 있고,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의 정치적 지향과도 일치한다는 것. 세 번째는 이는 결국 좀 더 많은 대중이 독립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서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나는 당연히 무료로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입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올해 영화제에 직접적으로 결합하고 있지는 않지만)영화제의 실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감독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영화 진영의 반대가 꽤 많았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영화제에서 관람료의 포기는 이후 영화제 진행에 만만찮은 타격을 준다거나, 어렵게 구축되고 있는 배급망의 확대(극장상영 등의)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거나, 독립다큐멘터리는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인식을 부추기거나, 기존 독립영화 배급정책에 어긋난다거나 하는 이유들이었다.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뭐 크게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제가 아니라서 관객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제에서 관람료는 무시할 수 없는 재정원이고, 지금도 가뜩이나 독립영화나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료화는 영화제 외의 배급정책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지역이나 단체, 학교 등에서 작은 영화제나 공개상영회를 하면서, 심지어는 관객들에게 관람료까지 받는 경우에도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제작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복사본으로 상영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건 정말 나쁜 경우인데, 이런 상황을 더 부추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여러 번의 회의와 이러저러한 논란을 거쳐 일단 올해에 한해서라는 전제 하에 영화제는 무료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무료로 하면 좋지 뭐 하고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제의 수익이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상영되는 영화들에 상영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그렇다. 관람료가 상영영화의 수익으로 돌아간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관객들에게 무료로 상영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데 왜 반대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혹시 관람료라는 돈으로 결정되는 영화의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데 좀 더 고민을 하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는 판단이 든다. 문제는 독립영화의 재생산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돈을 벌수 있기는커녕(그래서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는 커녕) 제작비도 건지기 힘든 상황에서(대부분의 독립 다큐멘터리는 다른 수익사업을 통해 번 돈으로 제작비를 충당한다) 다음 영화제작을 위한 수익구조를 낼 수 있는 배급 사업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단체에서 안정적으로 활동비를 받아가며 일만 하면 되던 나로서는(재정은 선배들의 몫이었다. 그 선배들 덕에 나는 가장 어려운 일은 피해갔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 또 한 가지 내가 간과했던 문제는 공적자금이나 기금에 대한 부분이다. 이 영화제는 지자체와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공적 자금으로 대부분의 재정을 충당한다. 돈이 없어서 영화제를 못하게 될 지경이라든가, 자본의 후원을 받아서 영화제를 진행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나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관객들에게 관람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적자금에만 무조건 기대는 것은 옳은 일일까? 사실 독립영화 제작이나 영화제들에게까지 공적자금이나 기금이 돌아온 것은 몇 년 안 된 일이다. 어느 날 문화정책의 기조가 바뀌어서 이런 돈들이 싹없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하나? 최소한의 재정적인 자립도 없이 공적자금이나 기금에만 의존한다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영화제는 진행된다. 내게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영화제는 인디다큐페스티발 2007이다. 영화제가 유료이든 무료이든, 영화를 만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알고, 공감하고 더 나아가 함께 고민하거나 실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인디다큐페스티발 2007에 보다 많은 관객들이 오면 좋겠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12편의 국내 독립다큐멘터리들과 5편의 해외신작 독립다큐멘터리, 두 편의 오픈마켓작품이 상영된다. 아주 기대되는 전야행사인 ‘다큐, 음악이랑 정분나다’와 흥미진진한 포럼, 오픈마켓 세미나도 부대행사로 진행된다. 영화제는 3월 30일부터 4월 2일까지 5일 동안 열린다. 자세한 영화제 정보는 www.sidof.org에서 확인하고 종로로 오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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