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민주노조운동은 자신의 성격과 이념의 지향을 분명히 해 왔다. 기존 한국노총의 비민주성, 자주성은 물론 자유주의적 사고형태에 비판을 하며 평등세상, 노동해방이라는 우회적으로 변혁을 지향해왔다. 이러한 이념과 실천의 올바른 가치의 총체를 ‘민주노조운동’이라고 규정해왔다.
민주노조운동은 억압과 굴종을 떨치고 노동자계급의 함성을 모아 장엄한 투쟁의 성과로 시작되었다. 왜곡된 역사와 운동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워왔고, 빼앗긴 노동자계급의 이념을 쟁취하기 위해 지금도 투쟁하고 있으며 야만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에 대한 확신으로서 조직을 만들고 모순에 저항하고 있다.
이념이란, 세계에 대한 체계화된 태도와 전망으로서 노동자계급 자신에 대한 이해방식인 동시에 세계에 대한 해석과 실천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라는 자주성과 민주성, 투쟁성과 연대성은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이 되고 있다. 어떤 편의적 발상도 이 범주를 벗어난 상태에서 강조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운동의 범주를 벗어난 편의적 발상, 그 이상 무엇이겠는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공식성
최근에 민주노조운동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공식성’이라는 잣대가 등장했다.
일상사업에서 기획되는 투쟁이나 집회가 공문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집회에 참여조차도 꺼리는 상황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직도 공식조직이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지 않으면 그에 대한 지원도 잘 되지 않고 민주노조운동과 더불어 활동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80만 명의 조합원이 조직된 민주노총에서 ‘공식성’을 강조하는 건 일상적 사업이나 투쟁을 가장 효율적이며 조직적, 체계적으로 한다는 방식의 선택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식성이라는 방식이 자주성, 민주성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정신을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침체된 운동의 어려움을 더욱 부채질 하는 꼴이 될 것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공식성이란 무엇인가?
민주노총에서 언제부터 공식성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공식성’이 왜 강조되어야하는지 이해가 어렵다.
또 ‘공식성’을 이해하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공식성’이 강조되면 그만큼 자율성이 소멸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기에 심각한 문제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타율은 늘 자율을 침범하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에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자율은 인격적 자유의 신념이지만 타율은 예속과 맥을 같이 한다는 뜻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공식성’에 사전적 의미는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된 공적인 방식’을 ‘공식성’이라고 한다. 민주노총에서 강조하는 공식성은 합법화된 총연맹이나 산별조직, 노동조합조직이 의결, 집행단위에서 결정된 결과를 ‘공식성’이라고 하는 걸로 이해하는데, 이런 종류의 ‘공식성’이라면 노조규약이나 규정, 규칙을 기본으로 하는 ‘조직적’ 처리방식이라는 표현이 훨씬 타당성이 있으며, 자주와 민주의 의미를 포괄하는데. 왜 굳이 관료와 권위주의 냄새가 진동하는 ‘공식성’을 들이대는지 알 수가 없다.
전국조직이 업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나 행정 사무 처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공식성’이라는 표현자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다양하게 나타나는 ‘공식성’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그 자체가 권위주의와 관료적 발상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식성이 있으면 비공식성도 존재한다
모든 사안과 사물에 상대성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공식성’을 강조하면 ‘비공식성’도 있을 수밖에 없는데, 비공식은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가?
합법 조직에 몸담지 않은 노동자그룹은 비공식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단체와 연구소 부문별 전문단체 등등이 있는데 이들 단체와 조직은 민주노총의 기준으로 보면 어떤 범주에 속하는가?
지금까지 공식성의 기준을 보면 비공식 대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산별 재편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조직형태가 다르고 성격에 차이가 있다고 비공식적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체 노동자 중 6%대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민주노총은 조직원만이 ‘공식성’의 대상이고 비공식의 이름으로 노동자내부에 차별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비정규, 미조직노동자는 물론 실업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계급 전체가 민주노총이 강조하는 공식성의 범주에서 구분될 사안이 아니다. 계급의 범주 내에서 현재 행해지는 ‘공식성’이 강조되는 순간, 동지에 대한 차별을 부추기는 심각한 오류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성이라는 명분이 운동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총연맹 산하 몇몇 조직은 조합원들이 투쟁, 활동을 하다가 희생되게 되면 노조에서 조직적으로 다양한 구제기금을 지급하는데, 문제는 노조에서 ‘공식성’을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또 투쟁사업장에서 투쟁지원을 요구했을 때, 공식성을 갖고 오려면 연맹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산파역할을 했던 전해투의 위상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었다.
8,90년대 노동운동은 치솟는 열정과 결의로 탄압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노동자들의 자존심만으로 치열한 투쟁에 복무했었다. 몇 년의 징역을 살고 복직의 희망이 없어도 노동자계급의 전망을 꿈꾸며 어려움을 극복했었다. 조합의 규모가 있고 재정여력이 있는 노조의 경우에는 당시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해 왔으나 공식성이라는 교묘한 언어로 계급적 사안을 터부시한 기억은 없다.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했다고 해고동지들을 비조합원적 성격으로 구분했던 기억도 없다. 이런 과정들은 활동가들이 탄압에 노출되었을 때 형식과 절차에 대한 해석보다는 계급적 성격으로 해석했다는 뜻이고, 희생사유의 본질을 계급적으로 이해했으며, ‘공식성’을 고려하기에 앞서 상식 자체가 동지라는 범주의 명료한 방식으로 작동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상황은 상급단체에서 지침으로 내려오지 않는 투쟁에 참여했다가 다치거나 해고된 문제에 대해 ‘공식성’을 이유로 노조에서 인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상식선에서 바꿔 생각해 보자.
어느 활동가가 조합 활동을 하면서 사전에 회사의 공식적 인정을 받지 않고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고 가정하자. 공식성의 논리대로라면 이 활동가는 회사에 몸담고 있으며 회사의 공식성을 인정받지 않은 행위를 했기 때문에 회사규정대로 해고는 당연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운동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계급적 이해를 위해 투쟁했는가? 라는 본질적 문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관료들이나 자본가 집단들은 노동자를 탄압할 때, 늘 형식적 논리를 근거로 노동자를 억압, 탄압한다. 그렇다고 우리 운동이 과정과 형식에 논리에 매몰되어 공식성을 강조한다면 계급적 이해를 근저로 판단해야 하는 운동의 본질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긴박하게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공식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사안이라면 민주노총이 총연맹으로서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우선 ‘공식성’을 부여하고 산별 등과 절차를 밟는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과정
민주노조운동의 탄생배경에는 역사적으로 한국노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해방이후 조직된 한국노총은 역사적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이지도 않고, 조직내부의 체계와 운영의 절차들이 민주적과정이 생략되고 편의적이며 관료적 작태로 중앙상근간부들이 군림과 권위의 역사를 이어왔다. 수 십 년간 지속되었던 한국노총의 반노동자적 행태가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 하에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앙상한 골격만 남아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한국노총의 형식적 조직체계에서 그들의 공식성은 조합원은 없고, 상층간부만 군림하는 관료와 권위의 소통만으로 조직을 지배해왔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민주노총이 합법화 된지 겨우 10년을 경과하며, 한국노총의 잘못된 행태를 조금씩 답습하는 거 같아 안타깝다. 투쟁에 대한 토론의 문화도 소멸되고 있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일상사업도 중간체계, 현장체계로 위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오백만 노동자의 가슴에서 꿈틀되어야 할 노동해방 깃발도 실종된 상태에서 차츰 권위와 관료의 상징인 공식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조운동에서 사안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형식적 절차와 체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적 토론이 활성화되고, 일상적 사업들에 대해 조합원대중의 관심이 집약되고, 총체적 기획과 사업의 진행들이 계급적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가? 이다. 따라서 지금 지적하는 ‘공식성’에 대해서는 언어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관점에 대한 지적이다.
공식적이지 않는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자본의 증대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함께 불안정노동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를 안착시킴으로서 노동자간 경쟁을 유도하고 분열을 촉진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안정된 정규직은 소수로 남게 되고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고용으로 노동자계급의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공식성이라는 단어는 분할과 통제적 본질을 동반하고 있다. 공식성이라는 개념이 또 하나의 차별성을 생산할 가능성조차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정규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과제가 민주노총 조직사업에 핵심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직률의 확대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절박한 고용문제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비정규 장투사업장 문제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혹여 비정규사업에 대한 사고 속에 ‘공식성’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 간 투쟁은 논리로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립적 노자관계에서 충돌하는 문제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는 투쟁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역사의 교훈임이 틀림없다.
조직력이 느슨해지고 투쟁력이 소멸되는 현재의 상황이 강조되는 ‘공식성’과 연관이 없지 않다고 판단되기에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공식성’의 본질적 의미와 과제
노동자들이 속한 조직에서, 민주노조운동과 관련된 조직에서 공식적 어쩌구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특히 노동자가 주인이 되고, 평등세상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에서는 사용할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노동조합은 일상사업(투쟁, 조직 등)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조직체계가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의 성격은 수평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상집과 중집과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 등은 각각 의결, 집행이라는 성격에 차이는 있지만 상하개념이 아니다. 나아가 중앙조직이든, 지역조직이든 성격상 수평적 관계의 연장이며 사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체계에 불과할 뿐이며 상, 하의 개념이 절대 아니라 계급공동체의 개념일 뿐이다.
‘공식적(公式的)’이나 ‘공식성’이라는 표현은 회사나 정부, 국가에서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 자체에 권위적 속성이 담겨있기에 이들은 매우 즐겨 사용한다. 그들이 ‘공식적’...을 즐기는 이유는 공식을 전재로 하는 말에는 문제제기나 이유를 달지 말라는 패권적 권위가 실리기 때문이다.
‘공식적’의란 뜻은 능률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상호관계를 이성적, 합리적,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제도화한 조직을 말하며 여기서 조직이라는 건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종적(수직적) 조직이다.
이런 의미의 공식성은 자본과 정부관료들에게 수직관계로서의 직급간 권위를 사수하기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조직은 정부나 자본의 그것과 본질부터 다르다. 그리고 우리 운동의 조직형태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의 특징을 갖고 있기에 ‘공식성’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서 ‘공식적’이란 표현은 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권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공식적의 표현은 ‘조직적’으로 바뀌는 게 바람직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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