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기 바로 3일 전인 2월 15일 호남선 감곡역 부근 철로에서 일하던 노동자 7명이 사망하고 1명은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더 큰 참사인 대구 지하철 사건에 파묻혀 우리 시야에서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 틈을 타고 철도청은 유족과 재빨리 합의하여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문제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된 것도 아니며 사고재발의 가능성은 달라진 게 없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철도청 직원은 아니며 철도청에서 하청 받은 (주)대진철도에서 재하청된 이중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이었다. 사고 당일 작업현장은 03시 20분에서 08시 25분까지 선로를 차단할 계획이었으나 노동자들은 00시 40분 경에 도착하여 작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는 적정 인원을 투입하여 정해진 선로차단시간 이내에 작업을 완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청업체는 이윤 확보를 위해 적은 인원만을 투입하였고, 그 인원으로는 선로차단시간 이내에 당연히 작업을 완료할 수 없으므로 선로차단 이전 시간에 작업을 조기 감행한데 따른 사고이다. 또한 작업자들이 일하고 있던 고성천 교량은 철길 양옆은 철제로 막혀 있었으며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설치했어야 할 '교측보도'와 같은 대피공간이 전혀 없고, 작업자들은 사용선로 변경과 같은 긴급 상황을 전달받기 위한 무전기 등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피신조차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한편 열차의 운행과 선로 내의 작업 등 철로 내에 일어나는 모든 작업을 총괄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철도청은 경영개선이라는 미명 하에 인력감축에 주력하면서 그동안 외주화를 남발해 왔다. 이제 외주화 업체들이 진행하는 작업 구간이 엄청나게 증가하자 철도청은 이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철도청은 94년부터 경영개선을 추진해 왔다. 경영개선의 주내용은 노동자 감축이었다. 1994년 철도노동자수는 36,013명이었지만 2001년 7월 현재 31,178명으로 4,835명이 감소되었다. 특히 97,98년에 집중적인 감축이 있었는데 계획상의 3,195명보다 351명이 더 많이 감축되어 110% 초과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감원 추세 속에서도 일반직 노동자수는 오히려 증가하여 왔고 현업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기능직 노동자는 이 기간동안 5,500여명이 감원이 됨으로써 기능직 중심의 감원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월 15일 사고가 일어났던 직종인 시설분야에선 같은 기간 동안 전체 노동자의 35% 이상이 감원됨으로써 90년대 중반 10여명이 근무하던 선로반원은 5∼7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무분별한 인력감축은 철도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 2001년에는 34명, 2002년에는 22명, 2003년 올해에도 이미 몇차례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 이번 2월 15일 사고는 한꺼번에 7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된 것이고, 1-2명이 사망, 혹은 사상을 입는 경우는 부지기수일 것이지만 거의 통계로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철도노동자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철도청은 이러한 감원정책과 병행하여 외주화 정책과 비정규직 채용을 추진하여 왔다. 외주화 정책은 직종을 떠나 전 분야에 걸쳐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추진 중에 있다. 시설분야는 새로운 선로를 만드는 경우 거의 전부를 외주화하고 있으며, 기존 선로의 레일이나 침목 교환 작업의 상당부분도 외주화하고 있다. 전기분야도 이미 외주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일부 노동자들 내에는 외주화를 통해 고용불안과 강화된 노동강도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무의 경우 전동차 구간의 역업무의 상당부분이 외주화된 상태이고, 예매업무는 여행사를 통해 진행된 지 이미 오래다. 차량은 이미 민영화 대상 우선순위로 낙점된 바 있으며 수원-천안간 복복선 개통과 아울러 추진되고 있는 병점차량기지에 대한 자회사 정책을 추진하다 노동자들의 강력한 제제를 받은 바 있다.
또한 각 직종을 불문하고 각 사무소에는 이미 일용직과 계약직 노동자들이 상당수 들어와 있다. 2001년의 경우 철도청 직원채용시험 합격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철도노동자들은 내부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악화된 노동강도 때문에, 합격자들은 대기 상태로 마냥 지낼 수 없어 계약직 채용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건설교통부는 구조개혁방안을 일부 조정해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 내용은 철도 시설과 운영의 상하분리는 기존 정부안대로 하고, 운영부문은 민간기업으로 전환하려는 당초 정부안을 변경해‘공사화’한다는 것이다. 이 안은 세간에 철도가 공사화 된다는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시설부문(시설과 전기)에 대한 외주용역화의 전면화와 운영부문(차량, 역무, 운전)에 대한 단계적이고 변형된 민영화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철도노조에서도 밝혔듯이 철도산업은 시설부문과 운영부문의 상호관계가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통합 관리될 때만이 철도의 정시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감곡역 사고의 경우에서도 반추할 수 있듯이 시설부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운영부문(역과 기관차)과의 밀접한 상호 관계에 있었더라면 사고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 들 수 있게 된다. 현재 철도청은 시설과 운영이 통합관리 되기는 하지만 사고당사자인 시설부문 노동자들이 이중하청이라는 관계 때문에 운영과 시설의 직접적 관계가 형성될 수 없었고 이는 철도청의 총괄 관리의 부재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철도사망사건, 대구지하철 참사, 2호선 단전 사건 등 궤도 산업에 잇달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제대로 진단하지 않은 채, 온 국민의 애도 분위기 조성, 성금 모금 등의 가시적 이벤트 등에 진정한 대책은 묻혀져 가고 있지나 않은지 안타깝다.
아래는 일본 철도 민영화 과정에서 해고되고 16년 동안 원직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일본철도 해고노동자의 글이다. 이 글은 우리 철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에 이 글로 맺음말을 대신하려 한다.
"이익제일주의에 의해 인원삭감이 진행되어 일본철도 민영화 이후 큰 사고가 다량 발생하였다. 큰 역외에 역 플랫폼에는 역무원이 없어졌다. 그 때문에 플랫폼에서 전락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 2001년 1월 26일 JR 新大久保역에서 플랫폼에서 떨어진 남자를 구하려 희생된 한국인 이수현씨와 일본 사람 세키네씨의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지금도 근본적으로 해결 못하고 있고 전락사고는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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