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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호 NO.5|05|2002
【심층분석】대우조선 4.4 폭력사태의 전말과 배경요인

:: 2002-05-01   조회: 2144

4.4 폭력사태의 전말



지난 4월4일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한 회사측의 폭력적 테러가 발생했다. 이날 폭력사태 그 자체의 전말은 이렇다.

2002년 4월4일 아침 노동조합이 탑재1부의 불법적 조직개편과 물량외주화 저지를 위해 출근하는 조합원들에게 선전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부서협의가 끝난 사항이다' 라며 탑재 1부 대의원 2명이 플랭카드를 들고 있던 조합원의 몸을 밀치면서 시비를 걸자 그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던 민정추 회원들과 직반장 관리자 50여 명이 노조 상집간부와 조합원들에게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언제 왔는지 인력부 직원들도 함께 폭행에 가담하였고, 인력부 직원 1명은 "죽여버린다"며 수석부위원장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폭행했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 방송차량의 방송장비들을 훼손했다. 폭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상집위가 경화제를 가져와 폭행장소에 뿌리자 폭행이 중단되었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그 자리에 앉아 연좌농성을 시작하고, 인력부 직원과 민정추 회원 및 직반장 관리자들을 철수시키기 않으면 농성을 풀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분 뒤에 그들이 모두 철수하자 노조간부들은 농성을 풀고 해산했다.


노동조합은 이날 아침의 위와 같은 사태에 대해 회사측의 계획적인 폭력행사라고 판단하고 오전 11시경 상집위 간부들이 회사 인력부 사무실로 찾아가 신나를 자신들의 몸과 사무실 바닥에 뿌리고 인력부 점거농성투쟁에 들어갔다. 그리고 회사측에 탑재1부 폭력사태에 대한 교섭을 요구했다.

노조측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회사는 탑재 1부 등에서 자행되고 있는 하청업체와의 불법적인 도급계약을 파기하고 해당 업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즉각 직영으로 채용할 것.
둘째, 탑재 1부의 폭력사태에 대한 원인 제공이 회사측에 있음을 인정하고 향후 폭력행위의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를 문서로 확약할 것.
셋째, 탑재 1부 담당 임원과 부서장 및 관리자들에 대하여 폭행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하고 해고 조치할 것.
넷째, 탑재 1부 폭력사태에 직접 가담한 인력부 직원, 현장의 직/반장, 민정추(민주와 정의를 실현하는 노동자 추진위원회) 회원 등 직접 폭행 가당자 전원의 직위해제 및 징계 조치를 취하고 향후 폭력 재발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노동조합에게 제출할 것.

회사측은 노조가 먼저 인력부 사무실에서 철수하고, 특별 노사협의회를 구성해서 처리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노조측은 이를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답했다. 교섭은 결렬되었다.

저녁 7시 30분 경 회사의 인력부 직원들이 인력부 사무실과 회의실 벽을 해머로 부수고 소방호스의 물과 소화기를 품어대며 농성장 안으로 진입해서 농성 중이던 노조간부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수부다, 죽여라"고 소리치며 상집위 한명 당 여러 명의 인력부 직원들이 둘러싸고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면서 농성을 강제해산시켰다. 회사측은 노조 상집위 간부 등 23명을 업무방해, 방화, 기물파손, 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우조선 폭력사태 관련 진상조사 보고서], 2002.4.19.)


이 사태의 발단과 배경



이번 사태의 발단과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회사측의 외주인력 사용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조직개편이다. 이는 물량외주화 및 분사를 축으로 해서 진행해온 그간의 대우조선 구조조정의 확대실행이라는 맥락으로 파악된다.

둘째는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이 1999년 대우조선 워크아웃 결정 이후 극도로 강화된 노동강도와 이에 따른 대량의 사망사고를 포함한 노동재해가 초래된 데 있다.

셋째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폭력적인 저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 세 가지가 한 덩어리로 얽히면서 이번 4.4 폭력이 노동조합에 가해졌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살펴보자.

사태는 노동조합이 주도한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신청과 직업병인정 투쟁 결과 3월25일 요양에 들어간 76명의 조합원 전원이 직업병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한 회사측의 대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집단요양투쟁에서 탑재 1부에서는 검진 후 직업병 유소견자가 23명이 나왔는데, 회사는 그 공백을 외주인력으로 채웠다. 그리고 조직개편안을 내서 기존의 직영 과별로 1직, 2직으로 편재했던 것을 변경하여 1직은 직영으로, 2직은 외주로 편재한 것이다. 탑재 1부는 산재요양 이전부터 자연감소인원을 외주인력으로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명백한 불법 인력파견을 아예 조직재편을 통해 구조화시켜서 집단적으로 도입하려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탑재 1부뿐 아니라 노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우조선에서는 조립부를 포함해서 곳곳에서 외주인원을 직영라인에서 일하게 하는 혼용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불법적인 인력파견이자 위장된 물량도급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물량도급은 발주회사(원청)가 협력업체 노동자의 작업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가질 수 없게 돼 있다. 조선소에서 협력업체와 직영의 법적 관계는 물량도급 방식의 계약에 의해 성립되고, 사업장 내에 외주업체가 들어와서 작업하는 경우(사내하청)와 사업장 바깥에서 작업하는 경우(사외하청)로 나뉜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사내하청인데, 물량도급 방식이지만 사업장 내에 들어와서 작업하는 사내하청의 특성을 이용하여 직영 작업장에 사내하청 인원 즉 외주인원을 배치하고 실제 작업지시를 원청 즉 대우조선측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물량도급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 현재 대우조선 회사측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왜 근골격계 집단요양신청과 직업병인정 투쟁에 나서게 되었는가. 1998년 대우그룹 해체와 대우조선의 분할독립 회생 과정 즉 대우조선 워크아웃 과정(1999.8~ 2001.8)에서 이루어진 회사측의 구조조정과 극도의 노동강도 강화가 현장의 비정규직화 및 중대재해와 직업병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강화된 노동강도와 중대 재해의 빈발



대우조선은 대우그룹 해체를 배경으로 199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부는 대우그룹 해체 사태에 직면해서 다른 계열사들의 처리문제와 함께 대우조선을 매각할 것인지 분할 독립 상장시킬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고, 1년 여 만에 대우조선에 대한 워크아웃 결정을 내리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워크아웃 즉 '기업개선작업'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기업개선 작업이라는 게 결국은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높여서 최대한 이익을 내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른바 재무구조 개선과 투명경영 등의 이름이 붙여져 실행되었다.
이에 따라 워크아웃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우조선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의 구조조정이 가해졌다. 첫째, 조선 물량을 최대한 수주하여 확보하고 그 물량들을 빠르게 처리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이고자 했다. 둘째, 이를 위한 인력정책에서 정규직 인원을 더 이상 채용하지 않고 사내하청의 물량처리비율을 크게 높이는 방식을 취했다. 셋째, 내부 조직을 슬림화시키기 위해 외부화(아웃소싱)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그 결과 대우조선 현장에서 우선 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대폭 줄어들었다. 대신에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은 대폭 늘어났다. 둘째로 노동강도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셋째로 각종 직업성 질환과 중대 사망재해가 잇달았다.

조선산업의 유례 드문 호황 속에서 대우조선의 경우 특히 워크아웃 사업장으로 지정되어 수익률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인건비 경쟁을 뚫고 대량수주하여 물량이 폭주하면서 1999년부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수는 대폭 늘어났다.
사태하청 노동자 비율은 2001년 10월 현재 조합원 대비율로 약 70%였다가 2002년 들어서는 더 높아져서 이제는 조합원과 사내하청 인원이 거의 1:1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다.
대우조선측은 다른 한편으로 정년 등으로 빠져나가는 노동자와 자진 퇴사자 등 직영 정규직 결원 인원을 충원하는 대신에 대량의 하청노동자를 동원하여 속도전적으로 물량을 처리했다.

노동강도를 엄격한 지표로 뽑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생산 단위당 산출물 대비 투입인원 비율로 나타나는 맨아워의 경우로 볼 때 1995년에 19.5에서 2000년에는 9.4로 두 배 이상 인력은 감소하면서도 생산량은 79만CGT에서 168CGT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본다면 대우조선 현장에서 노동강도는 대략 5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1> <그림 1>).

한편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노동조합이나 현장 노동자들은 문제제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우재벌 해체로 인한 기업 존폐 상황을 앞세운 이데올로기 공세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엄청난 고용불안의식을 갖게 하였고, 강화된 노동강도에 대한 불만 표현은커녕 옆에서 동료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무감각하게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회사측의 현장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현장 직반장 체계를 통해 각 개별노동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일상적으로 낱낱이 관찰되고 체크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1990년대 초반부터 짜여져온 이와 같은 노무관리 체계는 이제 현장에 그대로 내부화되어, 노동조합의 행사나 집회에조차 조합원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현실이 되어 있다.



자료: 대우조선노조, 2001.


2000년 11월 노동조합 임원선거로 노동조합의 9대 집행부(위원장 김정곤)가 새로이 구성되었다. 이 집행부는 위와 같은 현장 상황이 품어내고 있는 죽음의 냄새를 지우고 노동조합 활동을 현장에서부터 회생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현장 노동자들의 잇단 중대재해를 발생시키고 있는 근본원인이 무차별적인 수익추구와 그것을 위한 구조조정에 있다고 판단했고, 현장 노동자의 상황에 근거한 노동조합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현실을 바꾸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컸다.

76명의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과 직업병인정투쟁 승리 그리고 회사측에게 눈엣가시가 된 노동조합



9대 노조집행부 출범 이후인 2000년 12월부터만 보더라도 2001년 7월까지 대우조선에서는 7명의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한 달에 한 명 꼴로 노동자가 죽어 가는 현실이었다. 끊임없이 다치고 병들고 죽어 나간다. 이런 현장의 노동조건은 연속적인 동료노동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려니' 하는 조합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계속 재생산되고 있었다. 노동조합은 01년 7월부터 대책마련을 위한 현장 조사연구사업에 들어갔다.
1차 건강검진, 2차 정밀검진 실시와 인체공학 역학조사,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노동환경 평가 과정을 통해 대상인원 380명 중 248명이 근골격계 질환 소견자로 판명되어 그 중 88명이 지난 3월5일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산재요양을 신청, 집단요양에 들어갔다. 그리고 3월25일 그동안 요양신청을 취소하거나 요양에 들어가지 못한 12명을 제외한 76명 전원이 직업병으로 인정받고 요양하고 있는 중이다.
이 사실은 일반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회사측은 집단요양신청을 극렬하게 막으려 했다. 진상조사단이 해당 조합원들을 면담한 내용을 일부 들어보자.

"반장이 당신보다 증상이 더 심한 사람도 검진을 안받는데 왜 당신은 받냐며 회사에서 알아서 치료해 줄테니 가지 마라고 했다"(조합원1), "반장이 저녁먹자고 집으로 왔다는 것을 알고 혼자 술 마시러 갔다. 술을 다 마시고 나오는데(이후 기억이 없다) 승용차에 납치되어서 일어나니깐 아침이었다. 일어나 보니 가까운 횟집이었고 나와 반장 둘만이 있었다. 반장이 시간을 끌면서 요양신정 하지 마라면서 교통이 불편한 곳에 나를 내려 두고 갔다. 시간이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도착하여 결국 그 다음날에 부산에 와서 입원하였다"(조합원2), "반장이 검진하러 갈 것인지 물었다. 다시 와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확실하게 답변하라며 요구하였다. 그리고 반장이 조선소 생활 10년 이상 한 사람 중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냐며 가지 마라고 이야기하였다"(조합원3), "산재를 해 줄테니 집단요양신청은 하지 마라, 집단요양 환자 수를 내려야 한다. 저번 현대에서 나온 집단요양자 수보다는 작아야 한다며 반장이 이야기하였다"(조합원 4), "차장과 면담을 하였는데 회사에서 치료해 줄테니 조합에서 하는 것 하지 마라, 요양신청하러 조합에 가는데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계속해서 회사에서 치료받게 해주겠다고 이야기하였다"(조합원5), "팀 과장과 면담하였는데 노조가 회사 말 안듣고 멋대로 하고 있다. 회사에서 치료해 줄테니까 기다려 봐라. 요양신청서 사인할 때 안 갈 수 없겠느냐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3월4일에는 작업현장에 부장과 함께 찾아와서 부장이 된 지 얼마 안되니깐 좀 봐달라며 30분 동안 이야기하고 갔다. 한번만 더 부탁하니 회사를 꼭 믿어달라고 사정하였다"(조합원6), "회사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10분 간격으로 전화가 왔었는데 식구들에게 없다고 말하라고 하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서에서 집으로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팀장과 2번 정도의 면담을 했었다"(조합원7).


현장의 야드에는 온통 물량으로 가득 차 있는 가운데, 노동강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아지면서 사망재해가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이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짤릴까 봐 눈치보면서 숨죽이며 그저 임금액수가 삭감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해왔다. 직영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같은 현장에서 노동조합 조합원들(직영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신분상, 노동조건상 차별적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또 있다. 노동조합은 근골격계 집단요양 및 직업병 인정투쟁이 전체 조합원 나아가 하청노동자들에게까지도 포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금속산업연맹과 함께 추진중인 노동강도 강화 저지투쟁의 기본인식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을 회사측은 눈엣가시로 여겼다. 출범 후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인 2001년 4월2일 노동조합에 대한 폭력적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1년만인 올 4월4일 폭력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현장에서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기업회생이라는 것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준 대우조선 사태



결국 이 사태는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첫째, 노동유연화를 폭력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한 전형적 사례다.
둘째, 노동강도가 극도로 강화되어 사상자가 빈발해도 수익추구와 그를 위한 생산성 향상 논리의 독재가 계속되었다. '회사 위기 상황'이라는 구사운동이 이를 정당화시켰다.
셋째,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대항노력들에 대해서 관심보다는 무관심에 익숙해져 있다.
넷째, 1년 6개월 전에 새로 들어선 노동조합 집행부가 그러한 현장의 극악한 상황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고 이를 쉴 새 없이 문제제기하며 조합원들에게 알려내는 활동을 일상화하자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한 육탄공격을 주기적으로 가했다.
다섯째, 폭력적인 노무관리 방식은 회사의 논리를 그대로 현장에 적용하고자 하는 일군의 그룹에 의하여 대리폭력 행사 형태를 띠고 표출되고 있다. 이른 바 '노노싸움' 보다도 더 구조화되어 있는 형태로서 회사측에 의해 한쪽은 일방적으로 비호되고 한쪽(노조쪽)은 일방적으로 비난되었다.

사태의 발단과 거기에 얽혀 있는 요인들이 사실은 한가지 원인으로 귀착되어 있다. 회사측의 무차별적인 수익추구 논리이다. 그 앞에서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합심해서 회사측에 문제제기하고 항의하고 투쟁하는 것을 자의반타의반으로 잊고 있다. 현재의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자체의 일상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이러한 현장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조합원들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 고투하고 있다. 회사측은 이러한 노동조합 활동을 극렬하게 싫어하고 막으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조합측의 문제제기 방식이 점거 방식 등으로 직접적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은 회사측이 자신들의 폭력행사를 정당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다. 그러나 회사측의 논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회사측에 의하여 가해지고 있는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현장 노동자 통제와 무차별적인 이윤추구 수익추구 논리, 노조탄압형 노무관리가 사태의 근원적인 원인임은 노동자의 눈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하다. 더욱이 조합원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켜버릴 만큼 압도적으로 제도화된 노무관리 시스템에 비추어본다면, 거의 선택지가 없어져버린 노동조합 집행부의 투쟁은 현재로서는 악전고투 상황이다.
대우조선에서는 현재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는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위원장을 포함한 핵심 간부 5명이 이미 구속되었고, 수석부위원장은 옥포의 거제성당에서 농성하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고 내부 집행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에서는 대우조선노조를 필두로 해서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을 추진 중에 있다. 대우조선 노조와 금속산업연맹의 이 투쟁은 현장 노동자의 생명권을 사수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그리고 대우조선 노조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듯이 이 투쟁은 현장의 현실에 기초하여 활동하는 노동조합운동이 회사에 의해 얼마나 배타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은 노동조합 사수투쟁으로 귀결되고 있지 않은가. 생명권 사수와 노동조합 사수는 단위 현장에서 뗄 수 없는 투쟁임을 대우조선 노조 투쟁이 보여주고 있다.
거제도라는 남단의 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싸움에 전국의 노동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2002.4.30.)
이정현 | 노동자의 힘(회원)


  :: [자료] 2002년 대우조선 진상조사 보고서 2002/09/27
  :: [수요집회] 76차 수요집회 유인물 2002/04/22
  :: [수요집회] 76차 수요집회, 불법파견 폭력만행 대우조선 규탄한다. 2002/04/22
  :: [소식] 대우조선 진상조사 보고서 2002/04/22
  :: [소식] 대우조선 '불법파견, 산재요양방해, 노조 폭력탄압 ' 진상조사 나서 200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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