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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4|05|2009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전략 비판

:: 2009-09-15   조회: 2107


들어가며


5월 1일 메이데이,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동안 누적되어온 민주노총의 위기는 많은 곳에서 진단되었고 많은 곳에서 혁신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다보니 성폭력사건 은폐문제로 사퇴한 지도부의 뒤를 이어 등장한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있어서 이번 메이데이는 그야말로 혁신의 고민을 토해내야만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건데 과연 새로운 방향과 대안이 없어서 그동안 민주노총이 위기가 고착화되고 혁신이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수많은 대안과 진단 속에서 제대로 실현할 자세와 진정성이 부족해서는 아닐까하는 생각에서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이번 메이데이에서 단연 다시 한 번 고민을 하게 만든 것은 사회연대선언이었다.
지난 3월 ‘민주노총 혁신 대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주되게 말한 실천방안은 종파주의 청산, 대중투쟁 활성화와 더불어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민주노총”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이렇게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한다. 약방의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사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운동의 방향과 기치가 아니라 어떤 도덕주의에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좀 과도한 의혹까지도 든다. 우리는 분명 비정규직 문제를 운동의 과제로 삼은 것인데 이것이 어느 순간에 어떠한 방향도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절대 선(善)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더 문제는 그것이 말 뿐인 절대 선(善)으로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얘기하지만 어느 누구도 실천하지 않는 공문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또다시 선언으로 얘기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우리가 그동안 지켜온 연대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이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를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이라고 얘기해왔다. 스스로 주체가 되기 위해 자주성과 민주성이 중요한 만큼 연대성이 중요하게 얘기된 맥락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만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문제를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야말로 계급적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번 사회연대전략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선배 노동자들이 ‘민주성’을 조직의 생명으로 삼아 민주노총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연대성’을 혁신의 징표로 삼아 사회연대노총으로 거듭 나겠습니다. ‘사회연대’는 비단 민주노총의 새로운 깃발만이 아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

연대성이 새로운 가치인가. 우리는 그러면 그동안 연대성을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그 동안 무수히 실천으로 보여 왔던 연대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멀리는 80년대 구로동맹파업에서부터 최근에 뉴코아-이랜드 투쟁으로 이어지는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 수많은 지역총파업은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연대성이 새로운 가치는 아니다. 그전부터 연대성은 우리 투쟁에 있어서, 민주노조 운동의 중요한 가치로서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대성이 마치 새로운 것처럼, 아니 그 전에는 연대성이 부족해서 투쟁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면 오히려 그동안 투쟁하며 지켜왔던 민주노조의 정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문제는 연대성을 강조하며 민주노총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는 것에 있다. 투쟁에 있어서 연대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연대성을 왜곡되게 이해하며 실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연대란 자신의 사안과 의제를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조적인 문제, 사회 전반의 문제와 연결하는 시야와 전망 속에서 다른 투쟁이 왜곡된 사회구조에 대한 투쟁을 함께 만들어 갈 때 가능한 것이다. 다른 투쟁에 시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여긴다면 사회연대전략의 연대는 자칫 위험하고 왜곡된 형태로 남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시민권을 획득한 기득권이라는 틀 안에 자신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투쟁하는 주체가 아니라 사회를 운영하는 세력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써 민주노총은 아직도 싸워야할 수많은 과제가 있다. 권리가 완전히 주어진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노동자답게 싸울때 계급형성이 가능하고, 진정한 의미의 연대성도 발휘 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투쟁의 주체가 아닌 기득권 세력으로 간주하고 다른 투쟁은 동정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연대라면 문제가 있다. 그건 정확히 말하면 연대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망각하지 말고 노동탄압에 맞서고 노동의 권리를 쟁취해야하며, 이와 함께 다른 투쟁에도 함께 해야 한다. 주거권 쟁취와 탄압에 맞서 싸우는 용산참사투쟁에, 일제고사 반대를 하는 교육 문제에, 함께 결합하며 자신의 과제로 만들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로 우려스러운 것은 자칫 가장 중요한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내부의 반성과 연대성의 강화로 치닫는 것이다.

“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하며 건설된 민주노조는 지난 시절 해고와 구속·수배 등 모진 탄압 속에 전진해 왔습니다. 노동법 날치기에 맞선 총파업과 노조탄압에 맞선 동맹파업 등 수많은 투쟁과 함께 성장해온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대표체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자신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 내부의 격차와 차별은 더욱 심화됐습니다.”

물론 내부의 반성과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자 내부의 격차와 차별은 지난 정권이 호도했던 것처럼 정규직노동자 이기주의가 원인이 아니라 노동자를 분할하고 나누었던 자본의 비정규직화 전략에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자신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지 못해 노동자 내부의 격차와 차별이 심화된 것은 아니다. 차별을 영속화하는 구조에 맞서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명확히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지금 민주노총의 과제이다. 그것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투쟁을 포기하고 스스로 저들이 내린 잘못된 원인과 진단을 고스란히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사회연대선언은 마치 싸워야 할 대상을 묵과하고 스스로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에는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최근 그간의 비정규직 투쟁을 돌이켜 보면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화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가가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여전히도 주체화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해 져있다.

“민주노조운동이 벌인 투쟁의 성과가 오히려 노동자 내부의 차별로 전화되는 역설적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자랑스러운 대표체인 민주노총이 ‘정규직 노동자’의 조직으로 간주되고 비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보다 근본적인 혁신 없이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조직된 노동자만의 임금·고용투쟁을 넘어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이주노동자 등 전체 노동자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어깨를 걸고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선언 안에는 정확히 말해 비정규직이 없다. 현재 민주노총에는 비정규직 조합원의 숫자가 많다. 그간 10년간의 투쟁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도 민주노총의 조합원으로 당당히 가입되어 있는데, 여전히 사회연대선언에는 민주노총은 정규직노동자만으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명명되고 있다. 그 숫자가 어떻든 비정규직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가 분명 하나의 주체로 민주노총 안에 존재하는데도 민주노총 스스로가 자신을 정규직노동자만의 조직이라고 단언하고,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연대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내부의 분열과 차별을 불러오고 있다. 왜 민주노총 안에 있는 비정규직, 이주, 여성 조합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가. 이들의 존재와 이들의 투쟁을 방기하고 다른 곳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한다면 그게 제대로 될 것인가. 또한 왜 비정규직, 이주, 여성 조합원들을 민주노총의 조합원으로 조직해 민주노총의 과제로 받아 안으려고는 하지 않는가. 이쯤에서는 사회연대선언이 비정규직의 차별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필요한 것은 제대로 실천할 자세


사회연대 전략은 실질적 투쟁을 하는 것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헌장을 통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메이데이에서 사회연대선언에 이후 사회연대헌장 제정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헌장이 아니라 제대로 실천할 자세이고, 제대로 실천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연대 전략에 걸맞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안을 제안하여 대정부 교섭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교육, 의료, 주거 등 자기요구를 가지고 투쟁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 인가에 있다. 그럴듯한 헌장제정운동이 아니라 내부의 시스템을 어떻게 배치하고 투쟁의 집중성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에는 이러한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가며


앞서 얘기했지만 더 이상 혁신의 논의는 새롭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것은 어떤 선언이 아니라 투쟁의 자세이고 투쟁의 과제를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있다.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대표체이자 자부심이었던 것은조직된 노동자의 수가 많아서도 다른 사안에 연대를 많이 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의 과제를 설정할 때 끊임없이 노동자 전체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위해 고민하며 그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명확히 계급적 시야 속에서 자본의 분열 책동을 막아내고 이에 맞서 중심을 잃지 않는 투쟁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는 자들을 도와주겠다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선언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노동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고민을 진척시키는 것이 진정 민주노조운동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연대선언에서 말한 것처럼 자본의 위기와 민주노조운동의 반성은 그 자체에 대한 분석에 머물러선 안 되고 스스로 투쟁을 조직하고 나아가야 한다.
정지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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