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민주주의는 어떠해야 하는가>
■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뒤집기
■ 노동자 민주주의란 어떠해야 하는가
■ 우리안의 민주주의, 코스콤사례
이명박 정권 들어서 ‘민주주의가 죽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민주당마저 ‘민주주의가 죽었다. 다음선거 때 심판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은 마치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해결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 노무현, 김대중 정권 때, 그들이 말하던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을 때도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고, 삶이 어렵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실현되거나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선거와 같은 형식적인 절차를 갖추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분명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야 할 것도 있겠지만, 민주주의라는 말 속에 담겨야 할 철학 또한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분노들 속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노동자의 민주주의,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도 위기입니다. 예전보다 형식과 절차는 잘 갖춰졌지만 그 형식과 절차를 갖추어 가는 동안 단결과 계급성을 놓쳐 온 측면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소수의 의견, 투쟁하는 개인, 집단을 때로는 배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고 단결과 연대를 실현하는 노동자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노조에서 민주주의의 의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적 권리를 방어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가장 광범위하고 초보적으로 묶을 수 있는 대중조직이라는 것이 세계노동운동이 보여준 역사적 사실이다. 노동조합은 자본의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의 계급조직인 동시에 투쟁조직으로서 자본과 대립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한 구성으로 체제내화하는 2중적 성격을 갖는다. 노동조합이 합법성을 쟁취하게 되고 자본과 국가권력의 포섭전략에 말려들면 노동조합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동자대중을 대상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으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바로 민주노조운동의 핵심 이념인 민주성이었다. 노동조합의 민주성이란 조합원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조합의 결정이 조합원의 총의에 의해 형성되고 결의에 의해 집행되는 것이고, 조합원 스스로가 노조의 주체가 되어 노동조합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인 동시에 기준이 된다. 민주성은 현행 노동조합법에서조차 “모든 조합원은 균등하게 노동조합의 모든 문제에 참여할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법의 근거를 들추는 것은 노동조합법을 선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다만 노조운동에서 제기하는 민주주의는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라는 필연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법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법으로도 명기된 제도, 형식적 민주적 절차도 생략한다면 그 조직은 민주노조가 아니라 노동조합조직으로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절차적 민주주의도 노동조합의 결정구조에 따른 형식과 결과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과정에서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사안에 따른 중요성은 물론 의미와 성격이 이해되는 가운데 조합원은 충분한 토론의결과로 모아내는 절차와 과정이 담보되지 않는 결정이라면 민주주의 방식이 생략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 시기에 제기되는 노동자민주주의는 노동자가 일상활동을 통해 토론으로 노동자대중의 의견을 자유롭게 모아내고 투쟁에 대한 결의를 높여가며 결정에 대한 책임과 실천이다. 노동조합이 민주성을 바탕으로 계급조직, 투쟁조직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계급적 투쟁과 분리할 수 없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대중이 주체가 되어 이념적, 조직적과제를 쟁취하기 위해 피어린 투쟁을 계속 해 왔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규정했듯이 노동자 민주주주의를 향한 투쟁들은 숱한 동지들이 목숨을 잃었고 엄청난 해고와 구속이라는 아픔을 가져왔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쏟은 피의 대가로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이 건설되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희망이었고, 민주노조운동의 전망을 밝혀가기 위한 타오르는 횃불이었다. 지금도 민주노총은 자본과 권력에는 위협적인 세력이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의 대표적 지위는 물론, 조합원의 신뢰조차 형편없이 약화되었고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조차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시도가 쌍용자동차로부터 시작 되었다. 여기에 맞선 쌍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목숨을 건 영웅적 투쟁이었다. 이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야만적이고도 잔인한 폭력이었다. 하늘에서 쏟아 붓는 독극물, 공기총, 테이저건, 테러 진압부대인 경찰특공대 투입뿐만 아니라 음식물과 의료품 반입을 막는 것도 모자라 단전단수는 물리적 진압보다 더 잔인한 살인적 폭력이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투쟁한 쌍차동지들은 두 달이 넘는 동안 민주노총의 요구인 ‘총고용보장’을 외치며 사력을 다한 투쟁을 하면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대대적인 지원군이 달려와 연대의 함성으로 ‘살인적 침탈’을 저지한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쌍차동지들은 ‘총고용보장’이라는 민주노총의 투쟁지침에 의해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대리전’을 치루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투쟁해야 할 노동자들은 평택에 없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깃발과 소수의 간부들뿐 이었다. 쌍용차가 무너지면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 전체 노동자들에게 자본의 융단폭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떠들면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사안의 중대성과 구조조정의 파급력에 대해 토론은 물론이고 홍보와 선동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살인적 폭력이 난무하는 역사적인 투쟁의 현장에는 조정자와 중재자만 있을 뿐, 노동자대중을 조직하기 위한 전략, 전술은 고사하고 긴장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의결기구에서 결의된 ‘쌍차 공권력 투입 시 총파업’ 결정이 지도부에 의해 총파업 검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생명인 민주성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편의적이고 관료적 행위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명박정권의 노동정책 전반과 관련해 정세의 균열을 예고하는 계급적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대중에게 토론의 장조차 확보하지 못한 조직의 비민주성과 최고 의결단위 결정을 위반하는 과정은 민주노총 이름에 역사적 오욕이 덧칠을 하는 결과가 되었다.
비판의 자유와 실천의 통일
노동자민주주의 기본원칙에서 가장 강조해야할 것 중 하나가 비판의 자유와 실천의 통일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켜나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실천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의 목소리로 일관된 실천이 뒷받침되었을 때 투쟁의 결과는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조합에는 다양한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상, 모두의 생각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이견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 역시 조직의 주체이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은 차이를 방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상대 의견을 경청하고 비판하면서 차이를 이해하고 차이의 폭을 좁혀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이 민주적 과정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모아진 결의만이 투쟁의 거대한 힘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서 다른 동지들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면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토론의 장이 생략되고 지도부의 판단에 따른 지침에 따라 실천하는 조직이라면 그 조직은 민주성을 잃은 생명력이 실종된 노동조합이 될 것이다.
비판과 비난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비난이라는 것은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의견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을 말하며, 비판은 노동자계급의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의 표현이며 노동자민주주의에서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노동조합의 기구와 체계
민주노조운동이 양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지령, 명령, 지침이라는 용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현장에서는 ‘그런 건 지도부가 알아서 지침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안타깝게도 노동자민주주의가 실종된 상태이며 민주노조의 정체성을 완전히 벗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진행되는 투쟁은 희망이 없는 형식적 투쟁이라는 의미 이상을 부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대중의 자유로운 의사로 결정이 아닌, 형식적 과정만 거친 투쟁은 노동자가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노동자계급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안에 중대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실천에 대한 결의가 생략된 것이다.
노동자조직의 지도부는 같은 계급 내에 동지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지도부라고 하여 관료적이거나 특정한 지위로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조직은 기구나 체계자체가 조직과 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긴 하지만 명령체계에 따른 조직이 아니다.
노동자대중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없이 형식적 기구나 체계를 통한 간접적이고 형식적 결정의 방식은 민주주의를 방기하는 것이며 노동조합의 주체인 조합원대중을 대상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지도부의 이름으로 혹은 조직의 이름으로 조합원대중에게 지령, 명령, 지
침을 남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실종시키는 것이고 노동조합운동의 정체성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민주주의 실종에서 비롯된 위기를 극복하자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민주노조운동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자체가 특별한 형태의 운동이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담보되어야 할 가치가 노동조합 민주주의라는 사실 때문이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자본가 집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본가집단의 민주주의 개념은 대중을 통치하고 억압하는 방식이라면 노동자민주주의는 광란적인 자본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단결과 투쟁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노동자대중은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사실은 운동의 심각성을 알려준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정규직 양보론이나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재정모금이다.)
노조운동의 정체성을 확보했던 총회민주주의는 형식만 남았고 민주성은 고작 제도, 형식적 절차로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최근 들어 노동조합이 ‘대리주의’와 ‘관료주의’가 부각되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가들의 일상활동은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노조권력을 잡기 위한 활동으로 전락하고 있다. 또한 중앙조직의 지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활동은 민주노총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조직 내 민주주의 실종이 가져온 결과이다. 때문에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노동자민주주의를 복원하는 방법이 우선되어야 한다.
민주성의 의미는 대중의 ‘자기권력화의 형성과 강화’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대리주의 관료주의를 극복해 나가면서 노동자계급을 운동의 주체로 우뚝 세워야 한다.
오랜 관성을 접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힘은 노동자 대중에게 있으며 대중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그 방안을 얻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자주성과 계급성, 투쟁성과 해방성조차도 대중 토론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자민주주의를 복원시키지 않는 이상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으로 자리할 수 없으며 운동에 대한 희망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용적 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실천적 결의가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자민주주의 없이 운동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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