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패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도 노동자 민요패를.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그 꿈을 쉽게 이룰 줄 알았다. 그때 조합원이 50만 명을 웃돌았으니 그까짓 민요패 하나 못 만드랴 생각했다. 전국으로 공문을 보냈다. 수도권에 있는 대사업장 문화담당자들에게는 따로 부탁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몇 달을 모았는데도 민요패 한 팀을 꾸릴 인원이 안 되었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도 실망스러웠다. 민요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두 명 정도였다. 그 만큼 민요를 하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민요에 대한 관심이나 인기도 시들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민요를 배워보겠다고 온 인간들은 약간 특이하거나, 좀 모자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 괴상한 인간들의 살아 온 내력을 살짝 들춰 보자. 괴상한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은 단연코 왕 형님이다. 10여년 정도 강호를 떠나 은둔생활을 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협박과 회유로 다시 전선에 등장한 인물이다. 해병대 출신이라는 걸 자랑으로 안다. 해병대 출신들은 계급적으로 노동자일 수밖에 없고, 해병대 출신의 운동가들만큼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고 떠들고 다닌다. 대다수 사람들이 ‘개병대’는 보수꼴통에 관으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에만 관심이 있는 부류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왕 형님은 해병대에서 생긴 사고와 스트레스로 신장에 이상이 생겨 일주일에 3번은 투석을 한다. 말이 쉽지 온몸의 피를 빼서 기계에 집어넣었다가 걸러진 피를 다시 몸으로 넣는 것이 투석 아닌가? 4시간에 걸쳐서 투석을 하고나면 그야말로 사람이 파김치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면 인간이 자기 몸을 잘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인간은 거의 만날 술에다 담배까지 피운다. 그러고도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몸으로 노동운동한다고 그 나이에 동분서주 하고,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버둥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언짢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민요나 잘 하면 괜찮기나 하지. 본인이 자랑삼아 해주었던 유명한 일화 한 대목. 해병대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란다.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면서 구보를 하고 있는데 교관이 잠깐 대열을 멈춰 세우더란다. 제일 크게 노래를 부르는 놈이 누구냐고 묻기에 자랑스럽게 손을 들었더니, 넌 다음부터 구보 때에 군가는 부르지 말고 입만 벙긋거리라고 하더란다. 세상에 너 같이 노래를 못 부르는 놈은 처음이라면서. 노래를 못하면 목소리라도 작아야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쩌렁쩌렁 울려대니 오죽했으면 그 교관이 그런 조치를 내렸겠는가? 지금도 강습 때면 그 때 그 장면이 연상되곤 한다. 도대체 남들은 신경 안 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꾹 참고 있는 우리 강습생들이 어쩔 때는 측은하기까지 하다. 눈치껏 옆 사람들도 신경 써가면서, 옆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고 따라 해야지, 그것도 잘 따라하지도 못하고 번번이 삼천포로 빠지면서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크게 불러대는지 그 배포가 부러울 따름이다. 나쁜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더니 왕 형님은 정말 멋있는 형수님과 같이 산다. 그야말로 ‘미녀와 야수’, ‘나무꾼과 선녀’가 딱 들어맞는다. 형수님은 한국무용을 하신다.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건 아니고 준프로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가끔씩 공연에 출연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우아하게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 민요모임의 춤선생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왕 형님 같은 사람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다른 남자들은 진정성이 없어 보였는데 왕 형님은 진실되고 멋있어 보였다고 한다. 제 눈에 안경도 유분수지. 하여간 100명의 남자 중에 주저없이 고른 한 명이 바로 왕 형님이란다. 에고 우리 왕 형님은 참 복도 많으시지. 형수님은 주변 사람들을 참 잘 챙긴다. 한번은 집에서 취사도구 일체를 가지고 오셔서 직접 칼국수를 끓여서 강습생들과 같이 나눠 먹은 적도 있다. 스승의 날은 종이로 만든 예쁜 장미꽃 한 송이와 맛있는 빵을 내 자리에 두고 가기도 하셨다. 우리 민요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분이시다. 두 분은 가끔씩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시지만 - 왕 형님은 자기가 참고 산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형수님이 마음씨가 좋아서 안 깨지고 사는 것 같다 - 옆에서 보기에도 참 좋아 보인다. 왕 형님 부부가 고참 역할을 한다면 우리 민요모임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것은 토수부부다. 토수의 고향은 저 멀리 완도다. 완도 중에서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노화’라는 섬이다. 노화도는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유명한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된 곳이기도 하다. 작년 겨울에 노화도를 토수네 가족과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정말로 전복을 물리도록 먹었다. 회로 먹고, 참나무 숯에 구워서 먹고, 토종닭에 낙지와 전복을 넣고 삶아서도 먹고, 아침에는 죽으로 끓여 먹고, 먹고 남아서 라면에 넣어서도 먹었다. 토수는 젊어서부터 그 일을 하지는 않았고, 어찌 어찌 하다보니까 토수가 되었단다. 토수가 되기 전까지는 이런 저런 마음고생도 많이 한 것 같은데, 지금은 토수일이 적성에 잘 맞는지 활기차고 좋아 보인다. 손재주가 좋아서 기능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작년에는 전국대회에서 3등인가를 했다는데, 올해는 건설부문 기능경기대회 토수부문에서 우승을 했다. 상금도 1백 5십만 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잔치를 한번 했다. 고향인 완도에서 전복과 갑오징어를 보내게 해서 민요 강습팀과 지역떨거지들을 모아서 거하게 한번 판을 벌였다. 토종닭에 전복과 한약재를 넣어서 토수처가 끓인 백숙은 정말로 별미였다. 그날 속이 안 좋아서 많이 먹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 토수는 민요도 잘하고, 시간도 많아서 벌써부터 여기저기 공연에 같이 다니고 있다. 토수처는 복지사 일을 하고 있다. 주로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한다. 이자의 가장 큰 특기는 쉬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그놈의 주둥이가 한 시를 쉬지 않는다. 무슨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춘삼월 제비새끼마냥 조잘댄다. 아마도 입안에 거미줄 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복지사 일이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앞둔 허황한 노인들에게 이자의 높고도 카랑카랑하면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포수 같은 말은 큰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본인도 노인들 돌보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이자는 다재다능하다. 못하는 요리가 없다. 우리 민요강습팀이 수련회를 가거나 휴가를 같이 갈 때면 음식 만드는 일은 의례 이자의 담당이다. 손도 빠르고 음식도 맛깔스럽게 잘 만들어서 실망을 준 적이 없다. 민요도 잘 한다. 음감도 있고, 박자도 잘 맞춘다.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우리 민요모임에 감초 같은 존재이다. 토수의 고향 후배인 ‘곰팡이’는 건설노동자다. 토수처럼 ‘한식미장문화제기능증’도 떡하니 가지고 있다. 토수와는 달라서 기능대회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매일 출근하지 않고 일이 있을 때만 나가는 토수를 ‘반백수’ 취급한다. 올해는 유난히도 ‘곰팡이’에게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몇 달째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처형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도 뇌경색으로 신체 일부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형님도 결혼 초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까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런데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곰팡이’를 보면 한편으론 짠하고 또 한편으론 대견스럽다. ‘곰팡이’는 얼굴도 되고 목청도 좋아서 민요꾼으로서 자질이 보인다. 음감이 약간 부족하고, 박자가 몸에 익지 않은 것이 염려스럽긴 하나 앞으로 고쳐 나가면 충분히 좋은 민요꾼이 될 것으로 믿는다. 민요강습의 시초가 된 인간은 ‘간고등어’다. 민요에 대한 애정이 정말 대단하다. 민요를 몇 곡 CD로 복사해주면 판이 닳도록 듣고 다닌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몇 번 듣고서 술자리에서 발표회를 하기도 한다. 듣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겠지만 본인은 무척이나 행복해 한다. ‘간고등어’는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단다. ‘간고등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섬진강 물줄기가 굽이쳐 흘러가는 ‘곡성’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야말로 골짜기 천지다. 산이 많으니 자연히 들이 적고, 들이 적으니 농사지을 땅이 없는 건 당연지사. 농사가 생업의 전부였던 그 때 땅이 없었으니 얼마나 먹고 살기가 팍팍했겠는가? 바다가 멀어 비린내 나는 음식은 먹어 보지를 못했단다. 그나마 먹어 본 것이 간고등어라고 한다. 지금도 횟집에 가면 회는 못 먹고 매운탕에만 숟가락이 간다. ‘간고등어’는 올해 너무나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동안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큰 탈 없이 노사관계가 유지되던 사업장이었는데, 올해 초에 노조파괴 전문 사장이 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공장안에 현수막 하나 붙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사건건 사측에서 시비를 걸었다. 온갖 모임들을 만들어서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공장 전체를 철조망으로 둘러쳐서 감옥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타임오프제’ 문제까지 겹쳐서 ‘간고등어’는 여름 내내 휴가도 반납하고, 공장안에서 노조 간부들과 철야농성을 했다. 단사 지회장만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다른 직책도 맡고 있어서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민요강습에도 나오지 못했다. 본인도 그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간고등어’가 일과 사업에서 벗어나 민요를 맘껏 배우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행복해지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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