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유통업체 비정규직에 주목하는가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할인점 규모 및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2003년 할인점 매출 규모가 20조에 달할 것이라 한다. 취업한파 속에 허덕이는 구직자들에게 유통업계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실제로 유통산업은 90년대 이후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성장 부문이다. 도매기관, 소매기관, 물류센타를 포함하고 있는 유통산업은 2000년 현재 GDP의 9.9%, 고용인구의 19.1%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는 연평균 6～8%의 성장이 예상되는 부문이다.
또한 유통산업은 노동유연화가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정착된 부문이다. ‘아르바이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할인점 아르바이트일 정도로 유통산업은 비정규직의 비율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올해 개장한 엘지마트 상당점의 620명 직원 가운데 비정규직이 560명이고, 이마트 청주점 670명 가운데 정규직이 70명에 그친다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또한 매우 다양하다. 파트타이머나 일용직 외에도 계약직, 판촉사원, 파견, 도급 등이 있어 가히 비정규직 고용의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의 팽창산업인 유통산업에서의 비정규직 문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현시기의 노동유연화가 단지 사양산업화 같은 산업구조변동이나 경기변동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팽창산업도 비정규직 고용형태로 전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은 현시기 자본주의가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는) 고용 없는 성장’이란 전략을 통해 그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유통산업의 비정규직화는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가 얼마나 심각하고, 어떤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지를 보여준다. 98년 현재 여성 임시직의 35.3%가 서비스 및 판매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여성 파견제근로자의 주요 취업 업종으로는 ’소매 및 소비용품 수선업'이 27.5%를 차지하여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98년 현재 종합소매업의 종사자수는 모두 123,182명인데, 이중 약 59%에 해당하는 72,651명이 여성이다. 이를 백화점과 대형할인점만을 살펴보면, 백화점의 경우 66.8%, 대형할인점의 경우 57.3%가 여성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언론 보도나 광고는 가정경제를 돕고자 하는 주부들에게 꼭 맞는 직업으로 유통업체 판매 아르바이트를 소개하곤 한다. ’가사와 부업을 병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냥한 여성들의 적성에 맞기 때문에‘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설명 또한 빠지지 않는다. 가정 내에서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면서 착취받는 여성들이 그로 인해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강요받으며, 이는 ’여성에게 잘 맞는 일‘ 또는 ’주부에게 적합한 직장생활‘이라고 포장된다. 여성에게 적당한 일이기 때문에 서비스 노동, 판매 노동은 시급 이삼천원 짜리 값싼 노동으로 저평가된다.
유통산업은 여성차별에 기반한 노동유연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된 부문임에도 그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유통산업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생각하는 경향, 대안적인 고용형태로서의 비정규직을 강조하는 경향이 다른 산업에 비해 더 강하다. 이는 경제 위기 이후 비정규직 투쟁이 활발해졌는데 유통산업에선 왜 그렇지 않았는가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될 수 있다. 유통산업에 대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작은 것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유통산업에서의 노조 조직률은 대단히 낮으며 그나마 정규직인 관리직, 영업직 중심이다. 유통 산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판매직, 캐셔, 물류 업무 종사자들에 대한 조직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글은 유통산업 내 여성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촉 노동자의 상태 및 조직화 사례를 정리하고자 한다. 판매직의 경우 고도의 노동유연화로 인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간에 노동조건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편이지만, ‘판촉사원’이라는 특수한 고용형태는 유통 판매직에게 더 열악한 조건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2. 고용형태의 특수성
1) 고용형태의 특수성
판촉노동자는 유통업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비정규직 형태이다. 백화점, 할인점, 슈퍼마켓 같은 대형 소매점에 가면 진열대에서 상품을 선전하고 홍보하면서 구매를 권유하는 여성들을 보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상품 제조업체에서 판매를 위해 소매점에 파견한 사원들로 유통업체의 직원들은 아니다. 백화점의 경우 직영매장, 수수료 매장, 임대 매장에, 슈퍼마켓이나 할인점의 경우 해당 상품의 판매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판촉노동자라는 형태는 입점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백화점의 요구에 의해 생겨났다. 상품 판매업무를 입점업체에 맡겨서 판매 관련 인건비를 입점업체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백화점 판매직은 대부분 판촉노동자였고, 한국의 백화점은 매장 임대업에 불과하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이 형태가 새로이 등장한 소매점인 할인점에도 도입된 것이다.
판촉노동은 근무는 유통업체에서 하고, 임금은 상품제조업체에서 받기 때문에 소속업체와 사용업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파견노동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소속업체가 인력파견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고, 상품을 제조하거나 중개하는 업체라는 점에서 근로자파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논리상으로 파견노동자와 다르나 판촉노동자는 파견노동자가 겪는 이중의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다. 판촉노동자는 상품제조업체에 소속되어 있으나 노동시간, 휴일 휴가 사용, 업무 감독 등에 있어 소매점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노조 활동 관련해서 이들의 작업장은 상품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인데 어디에서 노조활동을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농심 소속 판촉노동자가 이마트 휴게실에 노조 선전물을 게시하거나 파업을 한다는 이유로 이마트가 교체를 요구한 경우 부당노동행위가 설립될 수 있는가가 대표적인 예이다.
판촉 노동자는 상품제조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시간외 근로 산정 같은 급여 문제나 승급■승호, 투입매장 선정 같은 인사문제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관리한다. 그러나 노동시간, 휴일 휴가 사용, 업무 감독 등에 있어서는 유통업체의 관리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민주노총 전국상업연맹에서 9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판촉 노동자의 62.1%가 ‘자신의 일을 직접 감독, 통제하는 사람은 근무처의 담당급 사원’이라고 답하였다. 이러한 이중감독 상황은 판촉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증가시킨다. 판촉노동자는 자사 제조업체의 상품판매를 위해 유통업체의 개점시간에서 폐점시간까지 판매활동을 벌여야 한다. 유통업체가 연장영업을 하면 연장근로를 해야 하며 이에 대해 소속 상품제조업체에서 시간외 수당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폐점 후 백화점 직원이 소집한 종례를 한 시간씩 하기도 하고, 백화점 직원이 같은 층 모든 노동자를 모아서 창고정리를 9시 반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소속 제조업체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당 유통업체의 청소, 잡무 등을 대신하거나 혹은 정규직의 업무를 대체하는 경우마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근무처 유통업체의 일을 하지만 유통업체로부터 이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한다.
“출근하면 매장 청소하고 우리 자체 물건이나 타사 물건 만지고... 야채 들어가죠. 12시까지는 야채만 해요. 점심시간 후에는 우리 물건하고... 그런데 지금은 여기 직원으로 자체적으로 운영이 안 되니까 파견사원더러 카운터까지 시킨다구요. 그리고 방송세일까지 시켜요. 우리가 그것까지 한다니까요. 그러다 보면 하루가 어떤 때는 자사 물건도 제대로 옳게 못보고 하는 경우가 많죠(B기업 판촉 노동자)”
“다른 매장이랑 가격경쟁 하다 안 되니까. 그리고 이제 여기 인원들이 다 빠져나가니까 파견사원을 가지고 로테이션 식으로 세 명씩 나눠서 일요일, 공휴일을 일하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쉬고 명절 전날까지 나와 일했어요. 그런데 본사에서는 명절이라고 돈을 빼버리더라고요. 그래서 9월 한 달은 명절 빼고 계산하니까 월급이 얼마 안 나왔어요.... 그러면 우리는 중간에서 뭐냐구요(A기업 판촉노동자)”
- 97년 상업연맹 설문조사
유통업체에서는 판촉사원을 통해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이 때문에 판촉노동자는 추가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쉬는 날에도 근무처 유통업체가 영업을 하기 때문에 쉬는 날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기도 한다.
“제가 처음에 입사해서 (휴일에도) 제가 막 나가서 일한 적도 있어요... 도저히 불안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못 맡기겠어요... 그래서 가서 진열해주고 오후에 들어와 쉬고 그랬어요(B기업 판촉노동자)”
- 97년 상업연맹 설문조사
할인점의 강요에 의해서 2～3군데의 납품업자가 1인의 고정적인 판촉노동자의 급료를 부담하여, 이 고정적인 판촉노동자들은 마치 그 할인점의 직원인 것처럼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단속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사복차림으로 근무케 하거나 아예 출근을 하지 말도록 한다. 심지어는 납품업자가 자발적으로 파견했다는 서약서를 요구하여 받아두는 경우도 있다. 또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판촉노동자들에게 낮은 수당을 지급하면서 백화점 업무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2002년 10월 롯데백화점은 판촉노동자에게 롯데백화점카드 회원모집목표를 부여하고 실적을 관리한 것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중소규모 슈퍼마켓에 나가는 동원F&B 소속 판촉사원인 000씨는 월,수,금에는 소속회사의 상품을 판매하고, 화,목,토에는 해당 유통업체의 일을 해주면서 동원F&B으로부터 45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유통업체 판촉노동자에 대한 유통업체의 사용자 책임이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히 인정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2) 판촉의 파견노동화 경향
판촉노동자의 소속업체가 수십 수백개여서 관리나 교육 혹은 인력충원에 어려움이 많다고 보고, 대형소매점이 직접 관리하는 방식을 추진하려는 흐름도 나타나도 있다. 또한 상품을 납품하는 주로 제조업체들도 각 점포별로 산재해 있는 이들 사원들의 관리에 어려움을 느껴 용역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렇지만 현재 판매업무는 근로자파견법상 허용되는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자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총 등에서 판매업무를 근로자파견법 허용업무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으며, 그 전까지는 여러 편법을 동원해 이를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판매직에 대한 파견근로가 허용되지 않음에도 대형유통업체가 판촉사원을 파견으로 전환하는 이유는, 첫째,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서 파견된 판촉사원을 관리할 수 있지만 이런 통제력을 보다 직접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이다. 해고와 계약의 해지가 더욱 용이하기 때문이다. 둘째, 납품업체에게 파견노동자에 대한 인건비를 부담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개별 납품 업체에 맡겨져 있는 고용관계를 유통업체가 주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비용상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전에는 유통업체 정규직이 판촉노동자를 관리했으나 유통업체 자체의 인력감축으로 관리능력이 저하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파견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하나로마트에 상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들한테서 판촉사원 인건비와 관리비 명목으로 납품대금의 1～5%에 이르는 수수료를 징수해, 납품업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12일 하나로마트에 상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들에 따르면, 농협 하나로마트 분사는 지난 7월부터 전국 하나로마트 점포 가운데 시범점포 44개를 선정해 그동안 납품업체가 파견해온 판촉사원을 철수시키고, 대신 인력파견업체로부터 판촉사원을 파견 받아 상품 판촉업무를 맡기고 있다. 그런데 이 인력업체 판촉사원의 인건비와 매장 관리비 명목으로 납품업체들로부터 물품 납품대금의 1～5%를 수수료로 떼고 있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농협 쪽이 수수료 공제 약정서를 강요했으며, 약정서에 동의하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업체별로 1～5%씩 수수료를 물품 결제대금에서 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00년 10월13일자
3. 판촉노동자의 현실
1) 대형 소매점 판매 노동자의 구성 및 규모
대형 소매점 고용형태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이미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일반관리비 절감이라는 명목 하에 관리직을 제외한 보안, 미화, 안내도우미, 직원식당 등을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캐셔나 판매직은 파트타이머 또는 판촉사원으로 대체하는 상황이다.
백화점 판매직은 대부분 판촉노동자이며 백화점에서 직접 채용하는 아르바이트직이 그 나머지를 구성하고 있다. 할인점 판매직 또한 판촉사원이 중심이고 약간의 아르바이트직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데, 고객 서비스를 중시하는 백화점에 비해 (판촉, 아르바이트 불문하고) 판매사원의 규모가 매우 작다. 신선식품 매장, 가전 매장을 제외하면 할인점엔 판매직원이 매우 적은 편이다. 대형소매점 판매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촉노동자의 규모는 현재 백화점에만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각종 대형슈퍼, 할인점 등까지 포함하면 20만 명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 정규직 종사자를 3～4만으로 봤을 때 이 수치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이러한 판촉 노동자에 대한 총체적 규모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나 서울특별시 조사(1995, [서울 산업의 실태조사 및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95년 현재 판촉노동자는 대형소매점 종사자의 39.55%나 차지하고 있다.
[표2] 서울시 대형 소매점의 종사자 구성비(단위 %)
프랑스계 다국적 할인점인 까르푸는 판촉 노동자 중심의 판매직 고용 형태와 다소 차이가 있는 경우이다. 국내 진출 초기 까르푸는 유럽식 정규직 파트타이머 모형을 취해 정규직 파트타이머 판매직을 두기도 했으나, 결국 점포확대와 더불어 계약직 파트타이머형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판매직 중에 정규직이 있기도 한데 이는 전문적인 가공■제조기술을 요구하는 축산, 수산, 베이커리, 조리 분야에만 예외적으로 해당된다.
2) 판촉노동자의 특성
판촉 노동자는 소속 상품제조업체의 정규직인 경우도 있고, 파트타이머나 촉탁형태인 경우도 있다. 판촉노동자에도 정규직, 비정규직이 있는 것이다. 참치, 냉동식품업체로 잘 알려진 동원F&B에는 1400여명의 판촉노동자가 있는데, 현재 이중 30% 정도가 정규직 판촉노동자이며, 70%는 파트타이머 판촉노동자이다. 93년에만 해도 당시 동원산업 판촉노동자의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비율은 7 : 3 수준이었다고 한다. 정규직 판촉노동자는 대부분 20대 미혼 여성이고 파트타이머 판촉노동자는 기혼여성이다. 기혼, 미혼 여부에 따라 맡는 고용형태를 다르게 한 사례이다. 동원 판촉노동자 가운데 80%가 직접 매장에 투입하여 업무를 하고 있으며, 15%는 매장의 특별 행사시 투입하여 운영하며, 나머지 5%는 고정적으로 근무하기에는 매출액이 작은 매장을 순회하며 판매를 지원하는 형태이다. 정규직 판촉노동자가 매장을 순회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비정규직 판촉노동자는 대개 한 매장에서 고정적으로 근무한다.
민주노총 상업연맹의 97년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촉노동자의 91.6%는 여성이며, 미혼이 65.6%를 차지했다. 미혼이 다수라는 결과는 식품매장의 비중이 크지 않은 백화점 판촉노동자가 응답자의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보다는 슈퍼마켓이나 할인점에 주로 파견되는 동원F&B 소속 판촉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기혼자의 비율이 84%에 이른다. 판촉노동자의 근속기간을 보면 3년 이상의 근속기간을 가진 경우가 25.0%였으며(97년 상업연맹 조사결과), 동원F&B조사에서는 약 2년 4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의 소득을 포함한 월평균 가구소득은 무응답 및 해당사항 없음을 제외하고 250만원 이하가 전체의 70%를 차지하여 파트타이머 판촉노동자의 전체적인 소득이 그리 높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다. 기혼여성의 평균 자녀수는 1.75명이고, 막내의 연령이 13.4세이다. 이는 판촉노동자의 경제활동이 가계수입의 중요한 부분임을 말하는 것이며, 가장 사교육비의 지출이 높은 시기임을 증명한다.
여성 판촉노동자가 고용된 분야는 성별직종분리의 전형적 사례가 된다. 여성들은 주로 식품, 의류 판촉에 고용되는 반면, 남성은 전자, 가전 판촉에 고용되는 성별직종분리가 명확하다. 97년 상업연맹 조사 결과를 보면 백화점 가전부에서 남성 판촉이 여성 판촉의 7배였다.
3) 입직경로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취업이나 이직을 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식이다. 취업을 할 때 상품제조업체가 직접 모집해서 채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점차 판촉사원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파견되기도 한다. 인력파견업체 광고를 보면 판매직 파견사원 모집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파견 대상 업무에 도소매점 판매직이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불법의 여지가 크다. (주)LG생활건강은 2001년 11월 아예 자사 상품에 대한 판촉업무 부분을 ‘시스케어’라는 회사로 분사시켰다. 상품제조업체 소속 판촉사원이라 해도 인력알선업체를 통해 채용 알선되는 경우에는, 상품제조업체의 면접이나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유통업체에 곧장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판촉노동자에 대한 인건비를 상품제조업체가 부담할 뿐 유통업체에서 교육, 관리하는 성격이 더 큰 것이다. 지역상권 붕괴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할인점들은 판촉사원의 대다수를 지역 상권에서 뽑아 충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원F&B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판촉노동자 대다수가 30분에서 1시간 사이의 출근시간이 걸리는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4) 노동시간 및 휴일 휴가 사용
동원F&B 소속의 파트타이머 판촉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8.64시간이다. 이는 파트타이머라고는 하나 정규직과 비슷하게 일하는 명목상의 파트타이머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슈퍼에서 근무하며, 거의 대부분의 조사대상자자가 월 4회의 정기 휴무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 유통업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앞다투어 연중무휴 영업을 도입하면서 판촉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99년 4월 노동부가 광주의 3개 백화점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세 백화점 모두 주휴일 미부여, 연장근로시간 주당 12시간 초과, 여성근로자 야간, 휴일근로 위반, 월차, 생리휴가 미부여 등 근로기준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판촉노동자들은 백화점 소속이 아닌 탓에 월1회 휴무를 제외하고는 월차휴가, 생리휴가 등을 전혀 챙기지 못했으며 이에 대해 휴일근무수당을 지급받지도 못했다. 매출이 적고 이익이 안나온다고 1명을 파견해 놓았는데 연중무휴로 영업을 하니 도저히 휴일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5) 건강
유통업체 판촉노동자들은 항상 서서 근무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허리 통증과 부정맥, 과다한 작업량으로 인한 어깨결림과 관절의 통증을 호소한다. 이러한 신체적 고통보다 더 큰 것은 대면접촉 서비스를 하면서 생기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이다. ‘손님은 신’이라는 유통업체 정책 아래서 손님에게 무조건 친절할 것을 강요당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해지고 있다. 때문에 판촉노동자들은 술이나 담배 등으로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경우가 많고 쉬는 날에는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는 대인기피 증상을 겪곤 한다.
6) 임금
임금은 기본급 내지 월정급에 판매성과를 반영한 수당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동원F&B는 ‘월정급 + 평가상여금’ 체계인데, 월정급이나 평가상여금의 규모는 배치된 유통업체 또는 소속 부서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에 따라 실적이 열악한 매장이라는 이유로 차등 지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관리자의 보직 변경이나 부서 실적에 따라 임금이 바뀌며 그 기준 또한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하는 일에 있어 차이는 없는데 동원F&B 소속 파트타임 판촉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의 60% 정도이다. 월50～60만원이 36.8%, 60-70만원이 33.8%으로 동원 소속 판촉사원의 대다수가 50～70만원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7) 승진승급 체계
판촉노동자의 경우, 낮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때문에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업무에 집중하고 소속업체에 대한 충성심을 갖도록 하는 포섭 기제가 발견되지도 않는다. 판매실적을 바탕으로 하는 임금 체계로 노동자들간 업무 경쟁을 유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포섭기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기혼여성이라는 노동력 풀이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판촉노동자들을 저임으로 착취하고 그때그때 새로운 노동자들을 충원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동원F&B의 경우, 파트타임 판촉으로 일하다가 촉탁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있으나 극히 드문 사례일 뿐이라고 한다. 한 번 파트타임 판촉사원이 되면 정규직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트타이머로 고용된 판촉노동자 중에는 일단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한 경우가 38%를 차지했다. 이렇듯 판촉 노동자 사이에는 보다 안정적이고 임금이 높은 정규직으로의 전환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러나 파트타이머가 정규직 판촉사원으로 전환된 경우는 극히 적다. 심지어 정식 판촉사원으로 입사한 경우마저 수습 3개월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10개월을 거치는 것으로 고용지위를 전화시켜 월 45～50만원 정도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조차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각 부서의 관리자들은 “비정규직의 능력을 알고 있다. 곧 회사가 촉탁사원을 많이 뽑을 예정이다”와 같은 비젼을 제시하면서 파트타이머 판촉노동자들간 판매 경쟁, 충성심 경쟁을 유도한다. 설령 촉탁직으로의 발탁이 있다 해도 누가 촉탁사원으로 발탁되었는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등 그 과정의 투명성이 전혀 보장되어 있지 못해서 판촉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은 편이다. 동일한 업무를 하는 판촉 노동자 사이에 파트타이머, 촉탁, 정규직 같은 고용형태상의 차이를 둠으로써 촉탁, 파트타이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노동자들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 고급 의류매장 판촉노동자들에는 이러한 체계가 좀더 정교하고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다. 백화점 고급의류와 같은 고가상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샵마스터-둘째-막내라 불리는 위계를 둔다. 같은 매장에 있는 2～3명의 판촉노동자들 사이에 있는 이런 위계 속에서 샵마스터는 상품판매와 관련한 상당한 재량권한을 갖고 판매 실적에 비례한 높은 임금을 받는다. 샵마스터 아래에서 ‘둘째’, ‘막내’는 여러 가지 잡무를 처리하면서 샵마스터가 되기 위한 경력과 노하우를 쌓아간다. 물론 이런 체계는 백화점 고급 매장에서만 해당되며 같은 백화점이라 하더라도 식품과 슈퍼 매장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8) 모니터링 제도
유통업체는 서비스 업종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고객에 대한 친절을 강조한다. 고객 항의가 들어오거나 수시로 실시한 모니터링에 걸린 경우 문책을 당하게 된다. 특히 백화점의 경우, 고급 서비스를 강조하기 때문에 고객서비스 관련 교육이 대단히 많은 편이고 모니터링 제도에 대한 판촉노동자들의 불만도도 높았다. 반면 할인점은 저가 상품에 대한 셀프서비스 개념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진열된 상품에 대한 판매원의 구매 권유 노동과 친절 노동은 최소한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모니터링도 고객에 대한 친절한 질의 응답 상황을 파악하기보다는 상품의 진열 상황을 중심으로 한다. 서비스 교육 또한 백화점 같은 수준이 아니라 아침 조회 시간에 코멘트하거나 지침을 내리는 정도이라고 한다. 물론 할인점에서 고객과 직접 대면을 가장 많이 하는 경우가 주차장 관리와 계산대이기 때문에 캐셔 파트타이머나 주차관리 용역노동자는 매주 강도 높은 서비스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모니터링 제도나 서비스 교육은 유통업체가 판촉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4. 판촉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고민
동원F&B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판촉노동자들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한다고 한 문제는 주로임금, 정식사원과의 차별, 후생복지(고용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 퇴직금 외)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파트타이머 판촉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96%가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기존 조합(동원F&B노조)의 가입이 그 대안임을 70.5%가 피력하였다. 유통업체 판촉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보니 당연히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판촉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한 사례로는 동원F&B노동조합(민주노총 민간서비스산업연맹)과 시스케어노동조합(민주노총 여성연맹)이 있다. 동원F&B노조는 상품제조업체에서 결성된 기업별 노조인 반면 시스케어노조는 시스케어라는 업체 자체가 판촉업무를 분사한 회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직 배치된 유통업체를 기준으로 해서 판촉노동자를 조직한 사례는 없다. 그래서 유통업체에 노조가 결성되어도 다수를 형성하는 판촉노동자는 다른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조직대상에서 제외된다.
동원F&B이나 시스케어처럼 소속업체 노조를 결성한 겨우 가장 큰 어려움은 조합원이나 조직 대상자들이 전국 곳곳의 유통업체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형할인점이라 해도 한 상품제조업체당 2～3명 이상을 파견하지 않기 때문에 판촉노동자들은 1명에서 2～3명씩 각 매장별로 흩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조합원을 조직하고 조합활동을 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동원F&B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자의 53%가 아직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런 조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일단 유통업체 매장에 배치되면 상품제조업체보다는 유통업체의 지휘 감독 하에 있기 때문에 판촉 노동자 스스로도 상품제조업체 소속이라는 의식을 약하게 갖고 있다는 점도 소속업체 노조로 조직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된다. 동원F&B노조 정광철 사무국장은 “각각의 점포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집단적 분노에 의한 조직화는 요원하고, 모두 혼자서 근무한다는 점 때문에 본인의 자발적 의지가 그만큼 중요한데, 제 개인적 생각으로 20대 초반의 여성이란 특수성도 있다고 봅니다.”라고 노조 활동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조건이다 보니 동원F&B노조는 인맥이나 친분관계가 조합원 조직, 조합원 관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규직 판촉사원으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이 있으면, 이 사람을 아는 조합원이나 간부가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조합활동을 권유해요. ‘언니 잘 지내요?’ 하는 식으로 조합원이 전화 걸어오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공동체적 경험을 하죠. 노조에선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모든 판촉 정규직 사원들에게 조합 소식 등을 알려줍니다. 고동소리라는 노보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1년마다 문화제를 해서 일상활동의 공백을 채우고자 합니다.“
- 동원F&B노조 대의원과의 인터뷰
판촉 노동자의 대다수가 3.,40대 기혼여성이라는 점도 조직화에 있어 어려운 점이다. 기혼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애들 학원비 벌러 나오는’ 부업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조 활동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낮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기혼여성노동자의 특성 운운하는 것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여성 집중 업종, 직종에 대한 조직화 노력이 얼마나 미비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평가일 것이다. 여성독자노조 설립 후 기혼, 미혼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의 여성노동자가 조직화되는 상황을 보면 기혼 여성이라는 특성이 조직화에 있어 결정적 장애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건에 맞는 다양한 조직화 방식, 여성 불안정노동층의 상태와 조건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더욱 진전되야 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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