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112차 수요집회를 계기로 글리벡공대위의 투쟁에 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보건복지부는 농성단과의 간담회 장소를 일방적으로 고집하며 결국 간담회는 파기되고, 설 연휴까지 농성은 이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설 연휴 마지막날 농성장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설날에 준비한 음식들을 조금씩 가지고서 방문했을 때는 마침 농성단이 서울역으로 선전전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간단한 여비를 풀어놓고 농성단과 함께 서울역으로 갔다.
연휴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서울역에는 귀경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노숙자들이 여기저기서 술을 먹고, 어떤 이는 구걸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찬바닥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이도 있었다. 또한 확성기를 갖다댄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주 예수를 믿으라' 를 외치는 사람들도 더러는 눈에 띄었다. 이런 인간 군상들 가운데 고풍스런 서울역 건물이 건장하게 서있고, 그것을 뒤로하고 으리으리하게 민자역사 신축부지의 공사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신자유주의가 한국땅에 들어온 풍경이리라. 한마디로 참 묘한 풍경이었는데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가판대를 차려놓고 서명을 받고 유인물을 돌렸다. 집이 많아 유인물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가 주는 유인물이 예수를 믿으라고 주는 걸로 착각하며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전전을 정리하고 튼튼한 다리를 자부하며 서울역에서 시청역까지 걸어서 국가인권위에 있는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같이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었는데, 우리는 거기서 실제 백혈병을 앓고 있는 백혈병 환우회 김상덕 간사와 자세한 얘기를 나누었고 하루 최소한의 양인 4알에 십만원 상당하는 그 비싼(?) 글리벡약도 볼 수 있었다.
농성단은 지난 1월 2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한국에서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약가가 23,045원으로 결정된 이후, 약값인하와 보험적용확대를 요구하며 23일부터 백혈병환우회와 글리벡공대위(글리벡문제해결과 의약품공공성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국가인권위원회에 농성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 농성투쟁은 한국사회의 GNP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진 7개국 평균가를 기준으로한 약가결정으로 인해 당장 2월 1일부터 하루에 10만원에서 20만원, 한달에 300만원에서 600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해야만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 환자들의 절박함 속에서 이루어졌다.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들에게는 기적의 신약으로 불린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도 높지않은 골수이식이나 인터페론 복용이 최선이었던 과거에 비해 글리벡의 개발은 백혈병 치료의 선택폭을 넓히게 한 희망의 빛줄기였던 것이다. 실제 글리벡의 원가는 많은 것도 아닌데 노바티스사는 자신의 이윤을 위해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돈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허에 의한 살인. 이 얘기가 정말 실감나는 상황이다. 게다가 만성 백혈병환자와 소아 백혈병환자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선 돈이 있으라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는 누구나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보장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젠가 TV에서 방송되는 '병원24시'나 '러브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이 정말 싫다고 쓴 글을 본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병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간호하고, 어려운 생계를 극복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착한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을 그리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건강과 빈곤의 문제가 인간의 권리로서 사회나 국가가 책임져야할 문제가 아니라 헌신하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마는 심각한 오류를 드러낸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병에 걸린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의 문제이고 가족의 문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 언제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런 TV프로그램에 감동만하며 살 것인가. 적어도 '약가인하'를 시작으로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인 '건강권'이 만들어 져야 하지 않을까.
|
|
|
|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