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 2호(2002년 11월)에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삶'을, 3호(2002년 12월)에서는 '대형 소매점 판촉노동자의 상태와 가능성'에 대해 실었다. 이번 호에서는 텔레마케터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청소용역, 대형 소매점 여성노동자들에 비해 텔레마케터 분야는 실태조사의 면에서든, 조직화의 면에서는 아직까지 많은 부분 미약하다. 이번 호 텔레마케터 여성노동자들의 글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주요하게 다루고자 한다.
1. 언제부턴가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전화가 걸려와, 상냥한 목소리의 텔레마케터들이 새로 나온 서비스며, 상품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성인 대부분이 휴대폰을 소지하게 되었고,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신용카드를 한 두장 이상 가지게 되었다. 유선전화의 한계를 극복한 휴대폰과 신용카드의 소지는 텔레마케터의 급속한 성장을 거들었다. 텔레마케터들로부터 상품 소개를 받고 신용카드 번호만 알려주면 바로 판매가 성사된다. 물론 상품매입철회는 텔레마케터와의 전화 통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용증명’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하는 언제나 그렇듯 자본은 손쉽게 전화 한 통화로 판매하고, 여기에 불만이 생기면 소비자는 번거롭고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거래를 취소해야 한다.
이제 대부분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전화를 이용한 홍보와 판매는 자본의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2. 텔레마케터의 현실
1) 텔레마케터가 뭐예요?
텔레마케터는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과 마케터(marketer)의 합성어다. 전화를 매개로 수화기 저쪽편의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홍보, 판촉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한 평 남짓한 부스 안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며 짜여진 스크립터를 염두해 두고 전화 통화를 한다.
텔레마케터의 업무는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로 나뉜다. 걸려오는 전화에 응하는 인바운드(inbound) 업무와 먼저 소비자에게 전화를 걸어 홍보■판촉하는, 좀더 적극적인 형태의 아웃바운드(outbound) 업무로 구분한다. 텔레마케터가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에는 주로 고객의 전화를 받아 상담해 주는 고객상담센터나 서비스센터가 주를 이루었다. 1980년대가 주로 인바운드 업무였다면, 1990년대를 넘어오면서 아웃바운드 업무의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아웃바운드의 성장과 함께 텔레마케터도 익숙하게 우리들 생활에 들어왔다.
2) 전국 25만명, 90% 이상이 여성
홈쇼핑, 신용카드가 우리 생활과 가까이 있고 많이 노출되고 있어서 홈쇼핑, 신용카드가 텔레마케터의 전부인 듯 보이지만, 지금 텔레마케터가 들어와 있지 않은 산업은 없다. 홈쇼핑, 신용카드를 비롯하여 보험회사,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통신서비스회사, 제조업의 서비스부분, 항공업과 여행업, 택배■운송, 백화점■대형할인점을 포함한 유통업체, 교육과 그와 관련한 출판, 신문■방송, 기타통신판매 등 산업 전분야에서 텔레마케터들이 일하고 있다.
현재 텔레마케터는 25만명을 넘어섰다. 그 중 여성노동자가 90%를 넘는다. 연령대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많다. 고객응대는 곧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연결되고 그 친절성과 상냥함에 당연하게도 여성이 뒤따르는 게 현실이다. 호텔, 콘도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업종과 항공, 여행관련업종 그리고 스포츠관련업종에서 남성의 비율이 20%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통신서비스, 신용카드, 보험, 교육■출판, 홈쇼핑 등 상위 업종들에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텔레마케터를 여성전문업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2) 입직경로
특별히 자신이 원하는 회사를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텔레마케터의 취업은 쉽다. 콜센터 대행업체나, 텔레마케터 관련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회사(콜센터 대행업체)가 적극적으로 구인에 나서고 있다. 심심치않게 신문기사에서는 앞으로 5년간 전망 있는 직업으로 어김없이 텔레마케터를 꼽고 있고, 여성들이 도전해 볼만한 직업이라고 기사를 내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다. 작년에는 국가기술자격증에 텔레마케팅 관리사 자격증이 신설되었고, 12월 8일 첫 번째 자격시험이 실시되었다.
3) 노동과정
텔레마케터의 업무는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로 나뉜다. 노동과정은 단순해 보인다. 하루종일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는다. 모든 일이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복잡하고 힘들 듯이, 텔레마케터도 마찬가지다.
인바운드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때문에 한가할 듯 보이지만, 대부분 업체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중앙컴퓨터가 통제하고, 자동으로 텔레마케터에게 연결한다.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전화가 연결된다. 잠시 쉬고 싶을 때 ‘대기’를 누를 수 있지만, 콜수■콜시간이 기록■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맘놓고 휴식은 가질 수 없다. 인바운드의 경우 일일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약 120-130통 정도의 전화를 받으며, 아웃바운드의 경우는 100통의 전화를 건다. 이것은 전체 평균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콜수가 상대평가되기 때문에 이 또한 평균만 채우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출근 후 퇴근시간까지 점심시간을 빼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헤드셋(head-set)-마이크가 달린 헤드폰-을 끼고 보이지 않는 고객과 통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보통 6명 내지 7명 정도-를 짜서 30분 정도의 휴식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불만이 많이 나오는 걸로 봐서 모든 텔레마케터가 30분의 휴식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아웃바운드의 경우는 직접 전화를 건다. 하루동안 전화를 걸어야할 고객명단(데이터베이스)은 하루 업무시작 전에 제공되고, 스크립터라고 하여서 일종의 시나리오를 짜서 전화를 건다. 인바운드 업무보다 아웃바운드가 더 힘들다. 그래서 콜센터 대행업체에는 인바운드라고 모집공고를 내지만 실제 입사하면 아웃바운드 업무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사무직이라고 뽑아놓고는 아웃바운드 업무를 강요하기도 한다.
맘 편한 친구랑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도 하루 8시간의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텔레마케터들은 보이지 않는 고객과의 통화라는 긴장감을 안고, 스크립터를 신경쓰며, 고객의 질문에 대답해가며 그리고, 잘 모르는 문의사항이 있으면 자료를 찾아가며 떠들어야 한다. 10명의 신규 텔레마케터가 일을 시작하면 한달안에 반이상이 떠난다. 하루만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1년이 지나면 1명 정도가 그 자리에 남아있다.
4) 임금 - 난무하는 카더라 통신
어느 업종에나 있듯이 ‘월급이 500만원이나 한다더라’의 ‘카더라’ 통신이 텔레마케터에도 떠돌아다닌다. 부동산이나 보험 쪽에서 다른 업종보다 고소득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 두명이 많이 받는 경우를 일반화시켜서 카더라 통신을 유포한다. 임금은 업체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초임기준으로 월평균 70만～80만원 수준이다. 1년 이상 경력자는 120만～150만원 가량을 받는다.
전직■이직을 원하는 텔레마케터는 80%를 넘는다. 전직■이직의 고려 원인이 힘든 업무에 비해서 임금이 적다, 고용이 불안정하다를 많이 이야기한다. 다른 여성노동자들에 비해서 적지 않은 임금을 받고 있지만, 노동강도에 비해서 임금이 낮다는 불만이 많다. 소규모 콜센터 대행업체의 경우에는 임금체불도 자주 발생하며, 배짜라는 식의 대응도 허다하다.
5) 강요되는 감정노동 - 당신들은 친절해야 한다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이라는 멘트가 유행되면서 ‘솔’ 음에 맞춰진 텔레마케터의 독특한 발성이 한동안 유행했다. 청각적으로 잘 들린다는 이점과 함께 친절하고 상냥해 보인다는 이유로, 닭살스러운 목소리가 강요된다. 실제로 ‘시장판 아줌마 목소리가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고객이 상품과 서비스의 내용을 요구하지만, 가끔 ‘미친 고객’들도 나타난다. 아웃바운드의 경우엔 원치 않는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불친절하게 전화를 끈어버리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인바운드의 경우는 미친 고객의 출현이 텔레마케터들에겐 큰 스트레스가 된다. 하지만 미친 고객의 출현 앞에서도 ‘고객님,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된다.
텔레마케터들은 고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하고 상품을 판매하면 된다. 판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고객과 통화하는 것이 텔레마케터의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친절이 강요된다. 한 평 남짓한 부스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고객과 통화하고 있지만 복장단속, 화장단속까지 한다. 이유는 깔끔한 복장과 화장으로 정돈된 얼굴과 상냥한 목소리를 하나의 세트로 묶어, 친절하고 상냥한 여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6) 고용형태 - 정규직이 뭐예요?
텔레마케터는 정규직이 없다. 파견회사인 콜센터 대행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1년 혹은 2년마다 고용계약을 새로 맺는 계약직이 일반적이다. 파견회사의 정규직인 경우도 있지만, 고용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직을 고려하는 원인 중 많은 부분이 임금불만과 고용의 불안을 꼽는다. 텔레마케터의 고용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언제나 불안하다.
상위 10개의 대형 콜센터 대행업체가 70～80%의 콜 대행을 하고 있고, 작게는 5～7명 정도의 소규모 콜센터 대행업체도 많이 있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소규모 대행업체는 필요한 인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필요하겠다 싶은 예상인원을 뽑는다. 그래서 사람을 뽑아놓고는 일이 없다며 아주 솔직하게도(?) 나가라고 한다. 일도 제대로 해보기 전에 해고되는 셈이다. 인원 충원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교육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으며 어이없게도 교육비를 지급하지는 못할망정 교육을 시켜줬다는 이유로 교육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비 때문에 입사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7) 100% 모니터링
텔레마케터와 고객이 하는 모든 대화는 녹음된다. 고객이 간혹 '난 그런거 가입한다고 한 적 없는데요'라고 반박을 하면 녹음내용 중 일부분만을 때어내서 '가입에 동의하지 않았냐'고 우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를 위해서 통화내용이 녹음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텔레마케터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통화내용이 녹음된다. CCTV가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듯이, 통화내용 녹음은 텔레마케터들의 업무인 전부를 통제하는 것이다.
마치며
텔레마케터들의 현실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업무와 그에 걸맞는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 고용불안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 이와 함께 한달에 한번 실시하는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모니터링 때문에 전직 혹은 이직을 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만들을 가진 텔레마케터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과제가 남는다.
2001년 SK생명에서 텔레마케터 노조를 결성했지만 3개월만에 깨진 경험이 있다. 현재 텔레마케터들이 가진 불만에 기초해서, 텔레마케터 노조건설을 위한 고민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고민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역시나 비정규직이라는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카드업계의 경우, 콜센터 대행업체의 사장을 관리하는 카드회사의 정규직이 기업별 노조의 조합원이다. 보험업의 경우에는 텔레마케터들이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보험모집인이어서, 보험모집인이자 텔레마케터가 되는 이중구조다. 이러한 문제를 넘어서는, 전체 텔레마케터를 조직화해 내기 위한 고민과 노력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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