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교육현실
자녀를 둔 노동자들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아이들의 교육문제이다.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실상은 점증하는 교육비 때문이고, 임금의 상당부분은 교육비로 지출된다. 이렇게 노동자 개개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어 자녀교육에 목을 매이지만, 현재의 교육구조속에서 과연 노동자의 자녀들은 더 낳은 일자리를 제공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종 통계가 말해주듯이 “왜 좋은 대학을 들어가려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주저 없이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서이다. 즉, 학력간 임금격차로 인해, 성적이 좋아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에, 너도 나도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입시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출발에서부터 노동자들은 배제되어 있으며, 소수의 기득권층의 계급재생산 기제로 작동하는 입시체제의 들러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의 지불능력이 아이들의 성적을 좌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계급, 계층별 통계로 분명히 확인된다.
이는 영어교육 하나만 보아도, 충분히 드러난다. 돈 많은 집안의 자녀들은 1년에 수 천만원이 드는 조기유학을 다녀온다. 그보다 아래는 한 달에 수 십만원을 상회하는 학원을 보내고 방학에는 수백만원짜리 어학연수를 보낸다. 그 밑은 겨우 몇 만원짜리 학습지영어를 시키거나, 보습학원에서 끼워 파는 식의 영어교육을 시킨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시키는데, 이러한 계급간의 차이는 교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아이는 알파벳을 이제 배우는데 어떤 아이는 영어로 일기를 쓰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영어를 포기(일명: 영포)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대학입시와 취업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결국 현재의 교육은 계급간의 차이를 재구조화하고 고착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권의 교육정책
그러면 이명박 정권이 내놓고 있는 교육정책은 이러한 교육현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공약대로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명박정권의 교육정책은 노골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며, 교육시장화를 전면화하는 방식이다.
우선, 고등학교를 시장화 서열화 시켜서, 초·중등교육마저 입시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른바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가 그것인데, 이에 따르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50여개의 특수목적고 이외에 자율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 공립학교 150개 등 입시 명문고등학교를 추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고교 평준화마저 해체되며, 고등학교는 한해 수 천만원의 등록금을 내야하는 자립형사립학교를 최상위 정점으로, 특목고, 기숙형 공립고, 일반고, 실업고의 순으로 서열화가 될 것이다. 상위권대학 입학률은 이들 입시 명문 고등학교들이 싹쓸이 할 것이며, 한해 수백에서 수 천만원의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자녀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게 될 것이고, 초 중학교 시절부터 명문입시고 입학을 위한 경쟁과 사교육비로 학생과 학부모들은 더욱 시달리게 될 것이다.
다음, 대학의 경우 입시 자율화라는 미명하게 사학자본의 배를 더욱 불릴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고교시장화 서열화정책은 반드시 이들 입시명문고에게 유리한 입시전형을 요구한다. 이른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변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미명하에 고교등급제, 본고사부활 등과 함께 대입전형의 결정권을 대학들이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우수한 학생 즉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등록금을 더욱 인상하게 될 것이며, 노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이윤을 위한 대학간 경쟁의 과정에서 돈이 되는 학과를 중심으로 모집단위를 재편하고, 지출을 줄이기 위하여 인력을 줄이거나, 학생복지를 축소하거나, 기부금을 유치하거나,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철저히 시장화 될 것이다. 결국 대입자율화는 대학시장화와 맞물리면서 이들 사학자본의 배만 불리고, 가난한 자들의 자녀들은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어 교육 문제이다. 이명박정권은 영어몰입교육, 영어인증 시험제 도입을 하겠다고 한다. 그 명분은 영어교육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공교육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영어가 왜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고, 대신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오히려 영어광풍을 조장하여 사교육시장에 뛰어든 자본의 이익만을 증대시키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 않는 우리사회에서 공교육만으로 영어몰입교육은 불가능하다. 영어는 언어로 다른 과목과는 달리 경제적 문화적 자본의 유무에 따라 습득능력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며, 영어몰입교육을 위해서는 별도의 영어사교육을 요구한다. 여기에 수능에서 영어를 제외하고 별도의 영어 인증시험제를 도입한다면 이는 초 중 고 모두에서 엄청난 영어사교육비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른바 영어 수능시험이 초중고 12년간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영어수업만을 위한 교사를 3천명 양성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기간제 비정규직교사가 될 것이며, 영어 외 과목도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은 영어사교육을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평가시스템의 전면화 즉 학생평가, 학교평가, 교원평가 등은 학교시장화를 위한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배치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교육정책은 실상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온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전의 정권들이 교육문제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한 것에 비해, 이명박 정권은 이미 진행된 교육시장화의 성과를 모아 급속히 제도화, 법제화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명박이 당선되면 경제가 나아지고, 그러면 고달픈 삶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소박한 바램과는 달리, 이명박정권은 자본가정권으로서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장관 내정자들의 재산규모만 보아도, 이 정권의 계급적 기반이 어디에 있는가 분명히 확인된다.
주지하다시피 임금은 노동력재생산 비용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다음세대의 노동자를 양육하는 비용 즉 노동력재생산 비용도 부담한다. 때문에 교육비의 상승은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의 하락에 다름 아니다. 투쟁을 통해 임금을 올려도 교육비가 오르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을 시켜서 사회에 나가면 그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얻는 것은 결국 자본가들이다. 때문에 이른바 수혜자부담의 원칙이라는 미명하게 교육비를 피교육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으며, 당연히 국가와 사회가 노동력재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는 교육비는 온전히 개별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려지고 있으며, 교육과정에서 온갖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주입되어도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개입의 경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의 자녀가 노동자를 부정하는 교육을 받는데도 우리들은 그저 앉아서 당하고 있는 꼴이다. 자본은 우리주머니를 털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자본의 입맛에 맞는 체제순응적인 노동자들을 길러내고 있으며, 이젠 교육기회 마저 원천적으로 봉쇄당할 판이다. 언제까지 이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치솟는 등록금과 점증하는 사교육비는 개별 노동자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또 노동자출신 국회의원 몇몇이 아니 수십, 수백명이 나온다고 해서 교육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지금 자본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통해서 노동력재생산 과정 전반을 자본의 입맛에 맞게 재편해 들어오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교육비민중전가, 교육노동자들에 대한 통제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그리고 교육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는 학교 간 위계서열화 마지막으로 교육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교육시장화정책이 놓여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시장화 공세에도 불구하고, 교육공공성을 쟁취하려는 투쟁은 결코 멈추어지지 않고 있다. 대학등록금 문제를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민중의 과점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 사회단체들의 공동투쟁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범국민교육연대 등을 중심으로 진행중에 있으며, 나아가 입시제도를 철폐하고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며, 만인에게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운동도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준)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이제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땅에서 솟는 물이 만인의 것이듯, 아픈 사람은 누구라도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며, 에너지와 교통은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어야 하며, 누구나 살 집을 무상으로 제공받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교육은 만인에게 보편적인 권리로, 평등하게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함을 이제 공공연히 주장하고, 교육시장화에 맞서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교육 문제는 개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이 문제의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고, 교육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제공되는 사회공적서비스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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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정 |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민중학부모회(준) 집행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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