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섬산업의 고용과 비정규직
국내 화섬산업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총 망라한 절대적인 인원의 축소로 표현할 수 있다. 절대적인 고용의 축소와 상대적인 비정규직의 확대로 진행되고 있다.
효성 안양공장의 예를 보면
비수익라인의 점진적인 폐쇄와 자연감원에 따른 인원 비정규직으로 투입, 라인도급 진행으로 절대적인 인원의 축소에서도 비정규직의 인원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섬산업 특히 섬유산업에 있어 비정규직의 역사는 산업의 시작과 함께 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화섬연맹에서 2001년 5월 조사된 비정규직의 현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업종별 비정규직 현황(단위 : 명, %)
<참고>화섬-효성안양, 코오롱, 한국합섬, 금강화섬(미제출-효성 울산/언양, 태광산업, 고합울산)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화섬산업구조조정의 방향은 이러한 점진적인 방안이라기 보다는 생산라인의 폐쇄 등 공격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격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포함한 총고용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울산 화섬3사 연대파업을 전개하며 화섬산업 구조조정에 맞섰던 화섬3사의 고용조정을 보자.
투쟁의 일주체였던 고합의 울산공장의 경우에는 작년 11월 126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통보되었고, 이 과정에서 34명에 대해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화섬산업의 대표적인 생산라인인 폴리에스테르 19개 생산라인중 9개의 라인이 정지된 상태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여파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 더욱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합 의왕공장의 경우 90년대 국내 화섬경기가 좋았을 때에는 한때 2,000명의 노동자가 일했으나, 최근의 화섬산업구조조정과 내부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는 정규직, 비정규직을 총 포함해서 300명만이 남아있다. 이마저도 P&A방식의 기업분할방식으로 언제까지 고용이 유지될지는 모르는 불안한 상태이다. 그나마 고용조정과정에서 살아남은 조합원들은 채권단과 자본의 제2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자본과 채권단은 노동조합에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적자폭 만큼 임금삭감해야 한다. 만약 임금을 삭감하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겠다. 임금을 삭감하고 계속 공장을 다니든지, 아니면 퇴직금을 받고 나가든지 그 선택은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하시요. 그리고 언제까지 대답하시요"라고 협박하고 있다.
국내 화섬산업의 구조조정의 진행과 총고용의 축소를 무리하지만 도식화시킨다면 다음과 같다.
자본의 과잉 ⇒ 경쟁의 격화 ⇒ 수익성 저하 ⇒ 적자라인 폐쇄, 생산시설 중국 이전 및 국내투자 중지, 중국으로 투자 집중 ⇒ 정리해고, 도급화, 임금삭감, 노조파괴 ⇒ 총고용의 축소 ⇒ 중국내 생산물 국내 역수출 ⇒ 국내화섬의 경기 악화 ⇒ 자본의 과잉 확대 ⇒ 수익성 저하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효성과 태광도 별반 다를 바 없다.
효성의 경우 113일 파업의 시작은 연신D/T 일방적 전환배치 및 도급화, 반장교육의 문제였다. 그러나 효성에서 이러한 문제는 비단 작년 뿐만이 아니였다. 하나의 사례를 놓고 보면 90년대 중반 폴리에스테르 공장 1,100명에 달하던 직원이 이제는 400명에 불과하다. 범용사의 축소, 도급의 확대, 자동화 추진에 대해서 노동조합 차원의 대응이 미비하거나, 없었던 것이 모순이 쌓이다, 폭발한 것이다. 이 문제가 확대되어 구조조정과 맞물리는 순간 파업은 113일 장기파업으로, 단위사업장의 문제에서 산업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즉각적인 공권력 투입, 40명 해고, 330명 징계, 그 여파로 노동조합이 무력화를 불러온 113일 장기파업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자본의 구조조정은 노조파괴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용대의원을 조정하여 민주노총 탈퇴, 직선제를 간선제로 규약 변경을 불법적인 대의원 대회를 강행하였고 급기야 회사측 대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는 만행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자본은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조문제는 법으로 가겠다. 법으로 가면 대법원까지 3년이 걸린다. 그 3년동안 구조조정은 계속된다." 그리고 효성울산공장의 경우는 파업종료이후 회사가 5년간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을 선언하고 현장에 대한 일방적인 전환배치와 기계재배치가 진행되고 있다. 언양공장의 성형팀 해체, 국내 투자 중단, 중국으로 투자 집중. 효섬의 대표적인 주력품목인 스판텍스, 타이어코드, 산업용 원사에 대해 중국공장을 만들고 그 투자를 계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자본의 투자가 중국으로 집중된다면 국내 화섬시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그 시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은 어떻게 되겠는가?
태광산업의 경우에는 한 술 더 뜬다.
연대파업의 시발이 되었던 탄소섬유라인의 일방적인 중단과 휴업은 83일간의 파업투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127명 징계해고, 400명 희망퇴직(사실상 정리해고),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한 후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을 선택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무력화되고 현장권력이 회사로 넘어간 순간 조합원들에게 희망은 너무나 먼 미래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리고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현장을 협박하고 노골적인 현장통제 속에서 자신의 위원장을 당선시킨 후 민주노총 탈퇴, 제 2의 고용조정을 시작하였다. 회사는 직물과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등 일부 적자사업의 생산규모를 기존의 절반정도로 줄이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 재편작업 추진하겠다고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했다. 그리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 설비노후 등으로 생산성이 낮은 부문, 인력 투입이 많은 사업부문 등을 1차 적으로 사업재조정 대상" 임을 명확히 하였다.
그 결과 폴리에스테르 단섬유 9개 라인 중 6개는 놀고 있고 이에 따라 생산도 폴리에스테르 원사의 경우 일 840t에서 345t으로 축소되었다. 파업의 시발점이였던 탄소섬유 공장은 아예 문을 걸어 잠근 채 가동 중지된 상태이다.
제 1, 2차 구조조정을 거친 이후 조합원은 파업이전의 절반수준에 불과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절반의 고용이 정리해고와 징계해고, 희망퇴직으로 축소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하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생산라인의 절대적인 축소와 폐쇄에서 그 라인에 해당하는 조합원과 비정규직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효성의 현장문제에서 장기파업으로, 효성의 파업투쟁이 고합, 태광의 연대파업으로 발전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화섬산업구조조정에 대한 위기감과 연대의 필요성이였다.
화섬3사의 연대파업에 맞선 자본의 위기도 이전과 달리 단호했다. 화섬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장치산업에서의 파업은 다른 산업에 있어서의 파업과는 다른 점이 있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던 라인이 한 번 멈추면 다시 이전 상태수준의 생산품질과 정상화에는 몇달이 소요된다. 그래서 장치산업에서의 장기파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사업장에서 80일이 넘는 장기파업이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의 대응이 단호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자본은 단호함 뿐만 아니라 공세적이였다. 임단협과 달리 구조조정에 있어서 노동과 자본간에 타협의 지점이 없었던 것이였다. 파업의 장기화되는 순간 자본은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재고물량을 소진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한편,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기간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종료하는 순간 계획을 현실로 전환시켜 나갔다. 이러한 자본의 대응의 이면에는 국내의 대표적인 화섬 3사의 연대파업으로 인하여 장기간 정상적인 생산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화섬가격은 변동이 없었다. 주력 3사의 생산이 중단되었음에도 물량이 달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화섬산업의 과잉문제는 심각했던 것이였다.
2. 화섬산업의 과잉
화섬산업의 현재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산업구조조정 진행 中", 과잉생산, 경쟁의 격화"이다.
다음 생산능력과 생산량을 단순히 비교해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주요생산국의 화섬 생산능력 추이 (단위 : 천톤)
출처 : 산자부 섬유생활산업과, 화섬업계 동향 中
지역별 합섬생산량 통계(단위 : 천톤)
(출처 : 한국화섬협회)
국내 화섬사들은 90년대 들어 한국합섬, 대하합섬, 성안합성 등 6개 사가 새로이 생기면서 14개사로 늘었다. 생산능력도 폴리에스테르의 경우 90년 일산 1,305톤 수준에서 99년말에는 4,670톤으로 3.6배가 늘어나는 등 공급과잉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기의 시작 : 99년 화섬 14개사중 99년 6개사(98년 3개사) 순이익 적자.
경쟁의 격화로 고합(워크아웃 98. 10), 동국무역(워크아웃 99. 2), 금강화섬(화의 00. 6), 새한(워크아웃 00. 6), 대하합섬(법정관리 00. 6) 등.
이와 함께 중국의 WTO가입과 무역자유화는 화섬사의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국화섬산업은 2005년까지 2~3개의 화섬사로 재편이 예상된다.
구조조정의 촉진 : 중국으로의 자본이동
효성, 고합, 휴비스, 코오롱, SK케미컬 등 생산설비의 중국이전과 투자확대.
※ 휴비스 : 2000년 7월 삼양사와 SK케미컬이 폴리에스터 사업부분 합병
화섬은 화학 + 섬유이다. 현재 대표적인 화섬의 원료인 TPA를 생산하는 석유화학의 경우도 과잉생산으로 구조조정을 맞고 있다. TPA, 폴리에스터, 나일론의 가격은 95년 대비 50%에 불과하다. 최근 TPA가격은 대폭 상승하는 반면 화섬가격은 소폭 상승하면서 화섬산업의 과잉의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한 생산설비의 폐기와 이에 따른 총고용의 축소가 예상된다.
중국의 생산설비 확대.
2000년 기준으로 세계 화섬수요는 2,823만t인데 비해 공급능력은 3,390만t으로 567만t 공급과잉상태.
한국, 일본, 대만 등 주요 화섬국들이 공급과잉을 우려해 일제히 감산에 들어간 반면 중국은 자국 내 생산량을 320만t(95년)에서 694만t(2000년)으로 급속도로 확대.
【 하나의 사례 】
2001년 11월 27일 효성은 중국 저장성에 공장을 설립한다고 발표.
2003년 3월 준공될 이 공장에서는 7,300t의 타이어코드와 3,700t의 산업용 원사 생산.
"초기 투자는 3,000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시장 및 경기상황에 대응해 늘릴 계획"
이미 10월에도 스판덱스의 중국내 생산시설을 당초 계획보다 네 배 많은 1만2000t 규모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투자를 해외에 한다면 국내공장은?
"앞으로 국내에서의 투자는 설비교체의 차원에서만 이뤄질 것이며 신규투자 등 증설은 중국에 집중될 것"이라고 한다.
국내 섬유업계의 중국내 생산은 그 동안 범용사 중심으로 생산되었으나, 이미 중국시장의 생산시설의 대규모 확대와 경쟁의 격화로 범용사에서 차별사로 시장이 전환되고 있다.
대하합섬은 화섬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최신 설비도 과잉으로 인하여 고철로 변했고 끝내는 파산되었다.
정부는 "이제 IMF는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은 "IMF는 멈추지 않는다. 구조조정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화섬산업노동자는 "IMF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화섬협회가 2001년 7월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은 다음과 같다.
- 20년 이상 노후설비 폐기 및 경쟁력 없는 시설 폐기, 자율감산
- 설비 해외이전
- 차별화 신제품 생산 비중 확대
- 2005년까지 고용인원 40% 축소(1만6,000명 ⇒ 1만명)
- 임금 한시적 동결(화섬산업의 위기는 고임금)
- 업계 M&A 추진 등
결국 자본의 경쟁적인 설비확충으로 인한 공급과잉과 경기침체, 중국의 생산량 급증에 따른 자본의 이윤의 축소와 경영의 어려움을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로, 임금삭감으로 전가하고 있다.
3. 화섬산업을 통해 살펴본 교훈
1)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안정의 안정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노조운동 차원에서 그 동안 비정규직의 문제를 접근할 때, 조합원의 고용이 우선이고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내지는 대안이 있느냐?라는 얘기로 합리화시키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안정의 안정판으로 바라보며 구조조정을 인정하는 사례도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화섬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98년 정리해고의 회오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 할 수 있다.
2)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산업구조조정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였다. 가발, 전자, 신발 등 수많은 산업구조조정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총고용의 폭력적인 축소에 맞서기 위한 노동운동의 대안 모색은 이제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구조조정에 있어 일면 투쟁, 일면 타협은 잠시 그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대안이 아님은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3) 비정규직의 문제, 결국 노동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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