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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06|2003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현황과 과제

:: 2003-07-07   조회: 2680

인간의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사항은 안정된 일자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그리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지속적이고 급격한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하여 이러한 사항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안정된 일자리와 노동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지만 비정규직의 건강권에 관해서는 현실도 잘 알려지지 않을뿐더러 대안의 목소리도 아직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기업의 '인력의 양적 조절용이'와 '일시적 결원의 보충'이 용이하다는 점, 저렴한 임금과 사회보장이나 기업 내 복리후생에서의 배제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 때론 정규직 중심으로 조직화된 노조의 조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활용가능하다는 기업의 논리에 따른 것이며 이로 인해 일하는 사람의 약 60% 가량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현실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건강권을 보장해 줄 만한 제도적, 법적 장치가 부재하여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우리는 먼저 정규직과 비정규직, 즉 고용형태가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차이점에 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점이고 이러한 고용불안정은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고용상태가 불안한 노동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악화되고, 일과 휴식의 단절이 쉽지 않으며, 노동강도가 강화되어 건강이 좋지 않을뿐더러 직무만족도와 같은 직무태도의 수준을 저하시키고, 직장의 헌신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EU, 2001). 많은 연구결과들이 직업불안정성은 실업만큼이나 노동자의 복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데 불안정고용의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91개의 연구를 검토한 퀸랜의 연구(2000)는 병과 관련된 결근률, 산업안전보건지식, 산업안전보건정책의 모든 분야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검토된 논문의 90%에서 불안정고용은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밝혔다. 굳이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최근 발생하는 사망자나 질병자의 다수가 비정규직이지만 이에 대한 조치는 아주 미비한 상황이다.

비정규직의 다수는 사회보장에서 제외되어 있거나 적용을 받고 있지 못해 사회보장내에서 비정규직의 건강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수준이 매우 미흡하다. 한 조사(홍주환, 2000)에 따르면 특히 건강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주 1회 휴일은 67.1%, 월차휴가 45.5%, 연차휴가는 31.8%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일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각종 휴일을 적용 받고 있는 비정규직의 숫자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건강검진은 48.2%로 과반수 이하의 비정규직이 정기적인 건강진단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고 병이 발생했을 때도 병가가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70%이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정규직 중 여성노동자에게 주로 적용될 수 있는 산전산후휴가와 육아휴직은 15%만이 적용되고 있어 이로 인한 여성비정규직의 고용문제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와 태아의 건강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 조사에 따르면 4대 보험의 적용현황을 볼 때 고용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은 모두 50%를 약간 상회하는 대상자만 제대로 적용을 받고 있고, 산업재해보상보험은 36%의 수준에 그쳤다. 4대 보험 적용에서 가장 낮은 적용을 받고 있는 산재보상은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한 발생한 병을 치료하거나 요양하는 경우, 그리고 발생한 질병에 관한 소득감소분을 보존할 수 있는 보험으로 이의 적용이 가장 미비하다는 사실은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 정규직보다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후대책이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보겠다.

비정규직이 주로 집중하고 있는 산업 중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에서 많이 배제되고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주요 적용대상은 제조업이고 이 중에서도 대기업과 중기업이 주요 법적, 정책적 대상이 된다. 따라서 3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안고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이외에 산업안전보건의 적용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이중의 고통을 안고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비정규직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사회보험의 적용이 낮고 보건관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간접고용의 경우 실제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람과 근로를 해야하는 장소와 지휘, 감독을 하는 사람이 달라져 산업보건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불안정노동자나 정규직 노동자 모두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현실에서는 가시적/비가시적 업무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업무가 증가하거나 정규직이 하기 힘든 일을 비정규직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을 포함한 공식적인 훈련이나 안전보건에 대한 교육의 기회도 갖기가 힘들며 비정규직의 건강문제는 기존의 노동조합의 산업안전보건 문제에서도 제외되기가 일쑤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은 자신의 안전을 방어하기 위한 협상력과 기술을 갖기도 힘들다.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위험의 책임을 개인적으로 떠맡게 되고 특히 잠재적이고 잘 드러나지 않는 위험한 물질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한 연구(남재량, 김태기, 2001)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비경제활동 실업 비정규직'의 폐쇄되고 순환적인 고용구조 내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비정규직에서 다른 곳으로 탈출한다해도 2년 내에 다시 비정규직으로 돌아오며 중간에 실업자의 상태를 대체로 거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정규직의 건강의 문제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것뿐만 아니라 실업과 연계시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실업의 양상이 반복성 실업, 즉 불안정 고용상태에 있다 다시 실업이 되는 현상으로 증가하고 있어 실업의 문제와 분리되어 볼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실업자가 직업이 있는 사람보다 삶의 질과 건강의 측면에서 훨씬 저조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971년과 1981년에 영국(England와 Wales)에서 인구조사에 포함된 대상을 분석해 본 결과(Moser et al, 1990)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평균 사망률보다 낮은 사망률을 나타내고 있다. 실업이전에 질병이 있었던 실업자는 평균사망률보다 3배나 높고 병이 없던 실업자는 37%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계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회계층에서 실업은 고용된 사람보다 높은 사망률을 나타냈고 특히 심혈관계질환, 폐암, 사고, 자살로 인한 높은 사망률을 나타냈다. 실업에 따른 빈곤은 직접적으로 물품과 서비스(적당한 영양, 주거, 의료서비스 등)를 구입할 능력을 감소시키고 사회참여의 감소와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 간접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빈곤의 영향은 적절한 사회보장체계가 부재한 국가에서 훨씬 더 크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낮은 임금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칙을 적용하여 비정규직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는 것이 건강권 확보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둘째, 현존하는 사회보험이 고용형태와 관련없이 비정규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취업여부나 취업형태와 무관한 전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체계가 마련되어 비정규직이 그 제도 속에서 건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보험의 목적이 질병, 사망 등 인간에게 다가올 수 있는 위험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것이므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비정규직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사회적 책임은 더욱 포괄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고용순환의 측면에서 반복되므로 전 사회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비정규직의 경우 사고나 직업병의 발생이후 보호받을 수 있는 산재보상보험의 적용도가 매우 낮아 이 부분에 보다 강조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셋째, 비정규직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단은 여성이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남성이 주로 종사하고 잇는 사업장에 비해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예방조치나 산재보상의 적용이 매우 저조하다. 특히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모성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여성비정규직의 건강에 관한 현황 파악과 대안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사업장 차원에서는 현재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운영되고 있는 노-사 동수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비정규직의 대표를 참여시켜 비정규직의 건강문제를 다룰 수 있는 구조와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청노동자의 경우 하청노동자의 노동과정을 지배하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정규직과 같은 방식으로 비정규직에게도 최소한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시켜야 한다.

다섯째, 정규직이 언제 비정규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건강권은 비정규직에게만 그치는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 정규직도 이제 협소한 자신만의 협소한 경제적 이해를 떠나 이해를 떠나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과 건강에 관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 나갈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본다.
정진주 |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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