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달라!
동양최대의 석유화학공단인 여수산업단지(이하 여수산단)에는 12,000여명의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이 용접, 배관 등의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67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여수산단의 오래되고 낡은 시설을 보수·교체하는 일을 주로 하는 이들 건설노동자들은 온갖 산재사고와 유해 물질, 직업병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10월 3일 여천공단내 호남석유화학 제1공장 폴리 에틸렌 가공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사망 1명을 포함한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호남석유화학 폭발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수산단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약창고나 다름없고, 여수산단 산재사고 희생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다. 여수시가 발표한 71년부터 2001년까지 여수산단의 산재사고 현황에 따르면 88명의 노동자가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여수건설노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와 직업병으로 숨졌다. 올해도 엘지 칼텍스 정유 등에서 벌써 4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공해로 인해 '죽음의 땅'으로 불리던 여수산단이 이제 '산재천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산재사고 외에도 유해물질 노출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 직업성 질환은 거의 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은폐되어 있다. 지난해 민주노총 조사에 따르면 여수산단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의 65%가 근골격계 직업병, 소음성 난청 등의 직업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산재처리는 20%정도밖에 안될 만큼 산재 은폐가 심각했다. 매번 채용 시마다 실시하는 채용신체검사는 직업병 노동자를 걸러서 노동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이를 감추고 일을 하면서 병을 악화시켜간다. 산재처리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먼 나라 얘기다.
여수산단 건설노동자들이 이처럼 산재와 직업병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한편으로 일용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과 다른 한편으로 중층의 복잡한 하도급 구조 때문이다. 보통 네 단계에서 다섯 단계를 거치는 중층의 하도급구조는 엄청난 중간 착취와 함께 공사기간 단축 압박으로 다가온다. 공장을 멈춘 상태에서 보수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사를 발주한 원청 회사 입장에서는 공기가 단축될수록 그만큼 이익을 남기는 것이 되고, 매번 공사 때마다 건설하청업체를 옮겨다닐 수밖에 없는 건설노동자들은 다음 채용 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주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안전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진다. 하도급구조에서 하위에 위치할수록 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늘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좀 더 오래 작업하기를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생계를 잇기 위해 작업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이 무시된 사각지대에 있으나 정부와 자본은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오늘도 죽음의 현장으로 이들을 내몰고 있다. 잇따른 산재사고에도 정부는 형식적인 사후조치만을 취할 뿐이고 사업주들은 사고를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사고를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다. 중층의 하도급 구조를 통한 공기단축 압박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정부와 자본의 재발방지 대책이란 공염불에 불과하다.
지난해 70여일 간의 강고한 파업투쟁으로 하루 8시간 노동, 주월차 유급 휴가 등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쟁취하고, 파업기간 동안 7,000여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조직했던 여수건설노동조합은 이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해 또 다시 투쟁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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