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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0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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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01|2003
"2003년 상반기, 레미콘 운전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群을 주목하자"

:: 2003-02-18   조회: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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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0일 대법원은 레미콘 운전사들의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레미콘 노동자들이 2000년 9월, 전국건설운송노조를 설립하고 2001년에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이들이 레미콘 차량을 소유한 독립사업자이므로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확인을 법원에 구하였고, 이에 대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 번 판결을 시초로 하여 전국건설운송노조가 2001년 투쟁과정에서 제소했거나 제소를 당하였던 10여건의 노동자성이 쟁점이 된 사건들에 대하여도 올 상반기 내에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중에는 노동조합활동금지가처분과 같이 명백히 노동조합법 상 노동자성을 다룬 것도 포함되어 있다. 1월 10일 판결은 잇따를 후속판결들에도 영향을 미쳐, 2003년 상반기에는 레미콘 운전사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일련의 판결군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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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법원 판결의 법적 부당성에 대하여는, 즉 레미콘 운전사들이 왜 노동자인지에 대하여는 이미 충분히 언급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자. 어차피 우리는 기간 법원이 비정규직 사건에서 보여 준 태도에 비추어 이 번 레미콘 운전사들에 대하여도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더더욱 현실의 변화에 무지한(또는 무시하는) 법원구조 상 대법원이 차량불하를 통해 노동법을 회피하려는 사측의 탈법적 시도를 이처럼 법적으로 추인한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판결이 미칠 영향은 절대 만만치 않다. 이러한 판결군들은 기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일궈놓은 성과들을 되돌릴 수 있을 정도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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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레미콘 운전사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를 살펴보면, 96년 이전의 판결에서는 대법원은 레미콘 운전사들이 당연히 레미콘 회사의 노동자임을 전제로 하여(사측도 전혀 노동자성을 문제삼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징계나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하였다. 그 후 차량 불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이 때부터 이들의 노동자성 자체가 쟁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성이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이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었으나(97다7988 판결. 고등법원까지는 노동자성을 긍정했다), 노동조합법 상 노동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한 사안은 아직 없었다.
보험모집인,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를 보아도 대법원이 이들의 노동조합법 상 노동자성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 이에 대한 유일한 대법원 판결은 유성관광개발CC 경기보조원 노조에게 설립신고증 교부취소를 구한 것에 대한 90누1731 판결인데, 여기서 대법원은 노동조합법 상 근로자개념을 다소 넓게 파악하여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을 근거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설립신고증을 받아 냈었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하여 노동위원회는 구제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후 레미콘 운전사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부정한 판결이 나오자 일부 학자들은 대법원이 태도를 바꾸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근로자개념을 동일하게 판단하기 시작했고 위의 경기보조원 판결은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 최근 들어 하급심법원이나 검찰에서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판결, 결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일단 노동조합법 상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있음으로 인하여 구청을 압박하여 설립신고증을 받아냈고 노조의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해고나 임금 등의 문제는 법이 아니라 실력행사로서 지켜왔다. 적법한 노동조합의 설립이라는 것은 이들이 단결할 수 있고, 투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 해 상반기에 선고될 판결군에서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등장한다면 이제 설립신고증을 받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사실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물리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러한 투쟁에는 '적법한' 노조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뒤따라 조직 및 투쟁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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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대법원 판결군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특수고용관련 입법 논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1월 20일 판결은 원심고법판결이 선고된 지 4개월 만에, 그리고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와 노동부 사이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보호방안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을 때 선고되었다. 대법원은 새 정권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입법논의는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출발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노사정위나 노동부, 인수위 등에서 얘기되고 있는 방안으로는 ■준근로자■개념을 도입하자는 안, 노조법상 노동자성만 인정하자는 안(특히 노동부의 경우는 최근 교총이나 공무원직장협의회처럼 노조라는 이름이 아닌 단체결성권을 보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경제법적 보호방안 등이 있다. 이 중 경제법적 보호방안이라는 것은 이들을 독립사업자로 보고 약관규제법이나 독점거래방지법 등의 적용을 검토하자는 것으로 명백히 노동자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며(약관규제법은 명문으로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 계약만을 그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다), 준근로자는 독일 입법례를 보면 일단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지만 단지 보호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노동법상부조항만을 적용시켜 준다는 것이며, 인수위 안으로 얘기되는 단체결성권 보장이라는 것은 결국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서 단체협약을 맺을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과거에는 법원의 노동자성 인정 징표와 관련하여 논의가 있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입법론으로 논의의 추가 옮겨졌다. 과거의 '누가 노동자인가'라는 쟁점보다 최근의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쟁점이 보다 실질적이고(보호방법을 언급하므로) 보다 세련된다고(외국의 예까지 검토하니)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점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논의의 공통점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주로 문제가 되는 보험모집인, 건설차량 차주,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들은 대부분이 과거 정식 노동자였다가 사측이 노조결성을 막고 경영위험 및 비용을 노동자에게 이전시키기 위해 고용외형만을 변경한 것에 불과하며, 외국의 예와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 정도의 종속성이면 외국에서는 모두 의심 없이 노동자로 인정되고 있는 점에서 당연히 이들은 노동자여야 한다(미국의 경우 보험모집인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어도 1개의 보험회사와의 계약을 대행할 경우 노동자로 본다). 또한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노동법의 일부 조항이나마 적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범주를 도입한다는 것인데(■준근로자■처럼) 이러한 새 범주의 도입은 노동자와 다른 이류 노동자군을 형성하여 차별을 정당화하고(너는 근로기준법도 일부밖에 적용 안되니 임금도 일부밖에 줄 수 없다는 식의), 사측으로 하여금 계약서의 문장 몇 개만을 고침으로써 간단히 새로운 범주의 노동자들을 양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나 민주노총 등은 이러한 입법논의를 반대하고 근로기준법 제14조(근로자의 정의)를 개정하여 이들을 모두 노동자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입법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차례로 나올 후속 판결들은 이러한 주장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 것이다.
상반기에 나올 이러한 판결들에 주목하고, 시급히 대응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3심제에서 일단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남은 것은 사회적 투쟁으로 이 번 판결을 명백한 오심으로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것 뿐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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