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전에
패소가 확정된 다음 담당변호사가 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사건이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났을 때 변호사는 스스로에게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하는데, 농협 사내부부 사건이 끝나고 난 뒤에 내가 그랬다. 게다가 비슷한 사건이 승소 판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직후의 패소 판결이라 더욱 그랬고, 후유증을 극복하고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해보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이 글 역시 농협 사내부부 우선해고 사건의 최종적인 분석이라기보다는 법원 판결의 요지와 이에 대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에 그 내용을 한정하고자 한다.
2.. 사건의 개요와 재판 청구의 취지
가. 원고들은 농협중앙회에 입사한지 8년, 15년 된 여직원(계장, 대리대우)으로 모두 입사 후 사내 연애를 통해서 같은 직장 동료와 결혼한 이른바 ‘사내부부’였다. 1997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구조조정의 여파와 그 일환인 2000년 축협■인삼협동조합과의 통합을 앞두고 농협도 구조조정을 시작하였는데, 1999년에 1,360명, 2000년에 1,150명 감원이 그 목표였다. 농협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① 명예퇴직 대상자를 확대하고(거의 전 직원이 신청할 수 있고 11~15개월분 임금의 명예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② 순환명령휴직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나. 농협은 명예퇴직 대상자의 기준만을 정해 놓았던 것이 아니라 ‘순환명령휴직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 사람들을 ‘명예퇴직대상자’로 정하여 명예퇴직을 우선 권유하였는데, 기준의 하나인 ‘경제적■사회적 충격이 덜 심한 직원’, 그 중에서 ■상대적 경제적 생활안정자■에는 ‘부부직원 ’이 포함된다. 이러한 기준 하에 행해진 구조조정 과정에서 농협의 인사담당자들은 “순환명령 대상자들에게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으라”고 하면서 “부부직원 중 1명이 퇴직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부부직원 중에는 남편이 순환명령 휴직대상자이며, 명예퇴직 및 순환명령 휴직제도는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시행되는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
다. 예정된 기간 동안 향후 2년간의 목표(2,510명)를 훨씬 초과하는 3,529명이 명예퇴직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농협은 2차 명예퇴직 기간을 정하면서 고령자와 다면평가불량자를 순환명령휴직 대상에 포함하였고, 원고들은 이 기간 동안 명예퇴직을 신청하였다. 이후에도 원고들은 1년 동안 농협에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같은 지점에서 같은 일을 담당하였다.
라. 원고들은 이후 노동부 조사와 여성단체■변호사와의 면담을 통해 이와 같은 명예퇴직이 부당한 것으로서 무효인 해고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법원에 해고가 효력 무효와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3. 법원 판결의 요지와 이른바 ‘설명자료’
가. 법원판결의 요지
1) 이 사건 명예퇴직 처분이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하고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라는 원고들의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는,
“피고가 부부직원들인 원고들과 그 남편들에 대하여 수차례 명예퇴직을 종용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원고들의 남편들이 순환휴직대상자가 될 것이고, 그 후에 복직이 불투명하며, 그들이 바로 정리해고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고지하였다는 사실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ⅰ) 순환명령휴직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정리해고를 실시할 경우에 부부직원의 일방을 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아 합리적인 정리기준에 어긋나지 아니하며, 피고가 인원감축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부부직원의 일방을 대상으로 정하였을 뿐 아내인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헌법이나 근로기준법 등이 정하는 남녀평등에 반하여 여성을 차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순환명령휴직대상자나 정리해고대상자로 부부직원의 일방을 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위와 같이 사회■경제적 관점이나 법률적인 관점 양 측면에서 용인되는 합법적인 행위이므로 이러한 명예퇴직종용과 함께 이러한 기준에 의한 해악을 고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박이라고 할 수 없고,
ⅱ) 당시 피고가 처한 사정과 제반 사회여건으로 미루어 피고가 원고들을 기망하는 등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불공정한 행위를 한 것으로도 볼 수 없으며,
ⅲ) 나아가 원고들은 그 당시 또는 장래의 동종업계 실정이나 경영상황, 피고가 제시하는 명예퇴직의 조건, 퇴직할 경우와 계속 근무할 경우에 있어서의 이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시의 상황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위 퇴직원을 제출한 것이므로 내심의 의사가 아닌 강요된 의사라거나 강행법규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2) 나아가 원고들의 이 사건 명예퇴직 신청의 의사표시가 강박■기망에 의한 의사표시이거나 착오에 의한 것이어서 취소한다고 하거나 사회질서■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는,
ⅰ) 원고들의 이 사건 명예퇴직의 의사표시가 강박에 의한 것이거나 비진의의사표시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점은 위 가.해고무효확인 청구에 대한 판단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고 하면서, 피고가 실시하지도 않을 명예퇴직 등을 거론하여 원고들을 기망하였다고는 볼 수 없고,
ⅱ) 원고들 제출의 증거를 모두 배척하여 달리 원고들이 착오에 빠졌거나 피고의 기망에 의하여 이 사건 명예퇴직의 의사표시에 이른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ⅲ) 피고가 원고들과 그 남편들에게 명예퇴직을 종용하면서 원고들의 남편들에 대한 순환휴직대상자가 될 것이고, 그 후 복직의 불투명성,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고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명예퇴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 피고로서는 정리해고를 시행할 수밖에 없을 것임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 경우 해고기준으로 부부직원의 일방이 그 대상으로 되는 것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아 합리성을 결하는 것이 아니므로 명예퇴직의 의사표시를 종용한 피고의 행위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거나 헌법상의 기본권 및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상의 제반 규정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 1심 판결과 2, 3심 판결의 차이
당초 서울지방법원 제41민사부의 제1심 판결은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들의 사직원 제출이 피고중앙회의 강요, 협박 등에 의한 것이고 나아가 그것이 사직의 의사 없는 비진의의사표시에 해당하여 그에 따른 원고들의 퇴직을 피고중앙회의 일방적 의사에 의한 해고로 볼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한정한 다음, 원고들의 퇴직 경위와 전후 사정을 검토하여 “■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원고들이 사직의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피고중앙회의 협박, 강요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위 사직원을 제출하였다고 볼 수 없고, ■ 오히려 원고들은 위 사직원을 제출할 당시 진정으로 사직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 또는 장래의 피고중앙회를 비롯한 동종업계의 실정이나 경영상황, 피고중앙회가 제시하는 명예퇴직의 조건, 퇴직할 경우와 계속 근무할 경우에 있어서의 이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시의 상황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위 사직원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고 보아 사직원 제출이 ‘유효한 합의해지’라고 판단하였다. 1심 판결에는 (사실관계 인정에서 드러나는 간접적인 판단 외에) 직접적으로 ‘명예퇴직 기준 자체의 정당성’에 관한 판단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제2, 3심 판결에서는 1심 판결에는 없던 새로운 부분이 추가된다. “피고가 순환명령휴직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정리해고를 실시할 경우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아 경제적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부부직원의 일방을 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리기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판단되지 아니하고, 피고가 인원감축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부부직원의 일방을 대상으로 정하였을 뿐 아내인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은 앞서 본 바와 같으니 어느 편이 퇴직할 것인가는 당해 부부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사항(실제로 남편이 퇴직한 경우도 있음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이라 할 것이므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용인되는 그와 같은 부부직원에 대한 퇴직의 종용을 두고 실제로는 아내인 사원이 퇴직하는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정만을 들어 곧바로 헌법이나 근로기준법 등이 정하는 남녀평등에 반하여 여성을 차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면으로는 원고들이 실질상 해고■비진의 의사표시■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만을 주장하였던 1심에서와는 달리 2심에서 “합의해지 의사표시가 유효하게 성립하였다고 하여도 강행법규 위반이므로 해지 계약 자체가 무효”임을 주장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기에서 부부직원에 대한 퇴직의 종용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용인된다’는 법원의 판단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 구조조정에 대한 법원의 판단
법원 “피고가 명예퇴직제를 시행할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상황과 당시 모든 금융기관이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대대적인 인력감축을 시행하고 있어 피고 또한 인력감축이 필요하였고 더욱이 2000년으로 예정된 축산업협동조합 등과의 통합을 앞두고 있어 인력감축이 절실히 필요”하였다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직접적으로 정리해고의 경영상 긴박한 필요를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의에 의해 명예퇴직 신청을 하였다는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보고 있다.
라. 알리안츠 사건과의 차이점에 대한 법원의 설명
정반대의 결론을 가져온 알리안츠 사건과의 차이점에 대한 언론의 관심에 부담을 가진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언론용 판결문에 ■설명자료■를 첨부하였다.
이에 의하면 “이번 사건과 2002다19292 해고무효사건(알리안츠생명보험 주식회사, 이하 지난번 사건이라고 함)의 결론이 다른 이유”는 1) 이번 사건에서는 지난번 사건과 달리 금융기관 전체에 걸쳐 구조조정을 하여야 하였고 특히 농협의 경우 축협 등과의 통합을 앞두고 있어 인력감축의 필요성이 절실하였고, 2) 이번 사건에서는 인력감축방안으로 명예퇴직제도를 대폭 확장하는 순환휴직제도 (Job-sharing)를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안들을 마련하였는데 지난 번 사건에서는 이러한 방안들을 전혀 도입하지 않은 채 부부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예퇴직을 강권한 것이며, 3)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인력감축의 절실한 필요로 인하여 원고들의 향후 정리해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명예퇴직수당 등 명예퇴직에 따른 이익을 전혀 보지 못하게 되는데 반하여, 당시에 명예퇴직을 하는 경우 다액의 명예퇴직수당을 받고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등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므로 원고들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차선의 선택으로 자발적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이어서 명예퇴직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등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강제적인 해고를 단행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고 한다.
또한 이에 덧붙여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은 여자사원이거나 아내사원임을 이유로 원고들에게 특별한 불이 익을 가한 것이 아니라 절실한 인력구조조정의 필요성에서 농협의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 그 기준에 따라 인력감축노력을 하였고, 원고들도 스스로 명예퇴직을 신청하였던 것이어서 실질적인 해고로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므로 지난 번 사건과 그 결론이 달라졌다고 판단할 사항이 아니(참고로 전체 명예퇴직신청자는 기능직외에 정규직만도 2,205명에 이르렀음)“라고 하고 있다.
3. 판결에 대한 의문점
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있었는가
직접적으로 농협에 정리해고를 해야 할 경영상 긴박한 필요 여부를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위 ‘설명자료’에 드러난 바와 같이, 농협 뿐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들에도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은 법원 판결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금융기관에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사직 종용■의 합리적 이유가 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 농협에 그러한 구조조정의 현실적 필요도 없었다.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된 농협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1999-2000년 사이 인력감축계획은 2,510명이었으나, 실제 실적은 4,484명으로 나타나 계획보다 거의 두 배정도 초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정부의 지시에 의한 회사 측 계획에 의하더라도 그렇게 많이 해고할 필요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특히 이 사건 원고들이 퇴직신청을 한 것은 2년치 목표가 모두 달성된 이후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제로 농협에서 근무하는 인력의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거의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 사건의 원고들과 같이 명예 퇴직한 직원들은 거의 모두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되어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포함할 경우에는 심지어 그 수가 일부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경제위기를 기화로 한 광범위하게 비정규직화”가 농협의 구조조정의 실질이었으며, 그것이 특히 여성에게 집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 사내부부는 ‘상대적 생활안정자’인가
법원은 “순환명령휴직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정리해고를 실시할 경우에 부부직원의 일방을 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아 합리적인 정리기준에 어긋나지 아니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부부직원이 상대적 생활안정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과연 각기 다른 회사에 다니는 부부보다 사내부부가 경제적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판단에는 어떠한 근거가 있는가.
다. 남녀차별이 아닌가
애초 농협의 구조조정이 노동부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762쌍의 사내부부사원 중 752쌍(98$)이 퇴직 신청을 제출했고 그 중에서 688쌍(91%)이 아내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에 대해 “부부직원의 일방을 대상으로 정하였을 뿐 아내인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어느 편이 퇴직할 것인가는 당해 부부가 자율적으로 판단한 사항이며 실제로 남편 직원이 퇴직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남녀차별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여기서 “부부직원 중 정리해고로 연결되는 ‘순환명령 휴직 대상자’는 남편 직원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즉 다른 순환명령휴직 대상자들의 경우에는 “당신이 사표를 내지 않으면 당신이 구조조정 된다”고 퇴직을 종용했지만 부부직원들에게는 “당신(백 번 양보해서 당신 부부 중의 한 사람)이 사표를 내지 않으면 당신 남편이 구조조정 된다”고 퇴직을 종용했던 것이며, 법원 스스로 판결 앞부분에서 “둘 중의 하나가 명예퇴직하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순환명령휴직 → 정리해고 대상”이라고 인정하였으면서도, 그 결과 91%의 부부직원들의 아내직원이 퇴직신청을 하였음에도 “어느 편이 퇴직할 것인가는 당해 부부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사항”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둘 중의 하나가 퇴직하지 않는 경우 남편만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는 것을 고지하지도 않은 알리안츠 사건의 항소심 판결에서 “자진퇴직을 권유 또는 종용하는 중간관리자들의 지휘, 감독을 받는 지위에 있던 원고들 등 퇴직사원과 그 배우자들에게 있어서 위 권유 또는 종용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경우에 입게 될 것이라고 고지된 불이익이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들에게까지 미친다고 할 경우에는 그 압박감이 본인만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고지된 경우보다 훨씬 가중되고 지속될 것이라는 점과 그러한 권유 또는 종용이 본인들 및 주위에서 계속, 반복될 경우에는 더 이상 저항하여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임을 인정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다. 알리안츠 사건과는 다른 것인가
대법원의 설명자료에 의하면 두 사건의 차이점은 크게 ① 구조조정의 필요성, ② 합리적인 대안 설정의 유무, 그리고 ③ 명예퇴직금의 유무라고 한다. 그러나 농협측이 내세운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실이 아니고, ■순환명령휴직■은 실질적은 일자리 나누기 방법도 아니라 구조조정의 전단계로서 명예퇴직을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고 실제로 실시되지도 않았다.
법원이 실질적인 차이점으로 본 것은 명예퇴직금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명예퇴직금을 받고 사직서를 제출한 거의 모든 명예퇴직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확고하게 취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1년 연봉 남짓한 명예퇴직금을 받고 임금이 훨씬 적은 계약직으로 1년 일하는 것이 10년 이상 다닌 직장(특히 원고 중 한사람은 남자 직원도 붙기 어렵다는 과장 승진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기다리던 중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도 우수사원으로 뽑히는 등 두각을 드러내던 사람이었다)을 그만두는 이유가 되었을 리 없고, 이는 원고들이 이후 곧장 노동부에 진정을 하고 명예퇴직금 반환을 전제로 하는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4. 결론에 갈음하여
법원은 이 사건 원고들의 퇴직이 동종 업계나 여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사회■경제적 용인가능성’의 근거로 삼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부부직원 우선퇴직이라는 기준을 통해 가장 많은 여직원을 해고한 곳은 바로 농협중앙회이며, 농협의 대량 퇴직(762쌍 중 752쌍이 퇴직하고 그 중 688명이 아내 직원이었음)에 의해 오히려 ‘부부직원 우선퇴직’의 관행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 직장에서 부부가 같이 근무한다는 것만을 이유로 우선적인 해고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 뿐 아니라 혼인과 가족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고, 나아가 사실상 아내직원을 퇴직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다.
다른 한편 ‘해고’의 기법은 점점 더 세련되고 기술적이며 체계적이 되어 가고 있다. 농협은 “둘 중에 하나 사표를 내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조건만 제시하면 688명의 여직원들이 퇴직신청을 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스템만 만들어 두면 그 뿐, 다른 조치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체계적 방식의 인원 정리가 ‘해고’의 고전적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규제할 수 없게 된다면, 법률적 지식이나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해고 잠탈 의도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판결을 대하는 심정은 무겁고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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