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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4|05|2009
09년 산별노조의 현실과 전망

:: 2009-09-14   조회: 2254

<특집> 09년 산별노조의 현실과 전망


산별노조가 투쟁을 통해 ‘건설’되지 않았지만 산별은 만들어졌습니다. 산별노조의 건설은 어떤 이에게는 꿈이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어떤 이에게는 좌절의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지역에서, 현장에서 투쟁을 만들어나가다 중앙차원에서 직권조인을 하면서 투쟁력을 무너뜨리고, 조합원을 주체화시켜내지 못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비정규노조에서 독자적으로 스스로의 문제들을 가지고, 모여 이야기 하고 소통하고 투쟁하던 공간들이 산별노조로 옮겨지면서, 산별노조 중앙차원에서 비정규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제기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서 각 개별의 비정규노조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꼭 좌절만은 아닌 것은 산별이 되고 나서 지역별로 미조직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한 흐름들도 생겨났고, 이를 위한 고민도 시작된 곳도 있었고, 그 고민을 현실로 옮기고자 하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이번호 특집에서는 산별건설이후의 흐름과 현 상황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산별은 어떠해야하는 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현 상황을 진전시키기 위한 시동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 09년 산별노조의 현실과 전망 | 양규헌
■ 금속산별노조 이후 지역지부의 활동과 한계 | 정진홍
■ 산별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 | 류남미





산별노조란


산별노조는 동종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직종과 기업을 초월하여 단결한 노동조합 형태이다. 특정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임시직 노동자, 계약직, 파견 노동자, 기업에 속하지 않는 자유노동자(Free Lance), 나아가 실업자, 예비노동자, 퇴직자까지도 모두 노동자로 규정되기에 산별 노조에서 조직대상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는 바로 이러한 모든 노동자이다. 즉 특정기업에 일하는 노동자만을 조직대상으로 한정하지 않으며 현재 노동하고 있지 않더라도 임금생활자라면 노동자로 본다는 것이다.
산별에서 실업자와 예비노동자까지 조직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계급적 범주를 규정하는 측면도 있고, 투쟁의 사안이 노동자계급의 포괄적 이해를 담는다는 의미도 있다. 산별노조는 실업문제 해결을 놓고 자본가계급과 투쟁하고, 신규고용창출, 노동시간 단축, 신규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투쟁을 통해야한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의 임무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비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하는 것도 같은 논리이며, 퇴직자도 조합원으로 할 수 있음을 규정하는 것은 노조에서 일반 조합원에게 주고 있는 혜택을 퇴직한 노동자라 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조 소유의 복지시설 이용 등을 위해 퇴직 후에도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별노조에 있어서 이렇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산별노조자체가 노동자의 계급조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두 가지 과제는 계급적 산별건설과제와 민주노조운동을 계승, 발전시키는 과제라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건설’이 아닌 ‘재편’된 산별의 한계


자본주의사회에서 산별노조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유지, 확보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대립전선을 통해 투쟁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노동력의 착취를 통한 이윤배가에 집착하는 자본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와해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활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로 비롯된 구조조정과 불안정노동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안착시키기 위한 포섭과 배제전략, 차별과 차이를 통한 노동자 계급 내부의 경쟁과 계급의식의 와해를 위해 기업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문화적 침탈뿐만 아니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물리적 탄압까지도 병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산별노조 건설과정은 기존 기업별 노조들이 조직통합 경로를 통해 산별노조로 재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조직발전전망에 치명적은 오류를 낳았고, 현장 동력을 조직하기 위한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형식적 조직재편은 법·제도적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이 방기된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층의 조직화는 거의 방치되고 말았다. 억압적 기제와 모순에 대한 치열한 투쟁이 없이 진행된 조직건설 경로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소멸되는 위기로 나아갔고, 대중투쟁동력으로 운동의 전망을 열어왔던 노동운동은 움직이지 않는 현장으로 고착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조직발전 전망의 목표를 암울하게 만드는데 몇 가지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현장에서 조직되는 기획과 투쟁은 실종된 채, 지침으로만 움직이고 조합원과 소통이 없는 간부, 투쟁과 지침을 만들기까지의 비민주적 과정,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외 등이 중첩되고 있으며, 둘째는 산별노조 건설과정이 노동계급의 질적·양적발전으로 조직되는 게 아니라 기업별노조의 기계적 결합이라는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다양한 문제점 - 기업지부의 인정,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 확대 방기, 조합원 의식발전의 지체 - 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 놓여있는 산별은 계급성은 물론이고 노선조차 보이지 않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새로운 노선이 아니다.
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 낸 우리의 노선을 확인하자


민주노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노선은 ‘변혁노선’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변혁노선’이란 천재의 책상머리에서 나온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인류와 세계노동자계급의 실천의 논리적 집약이며 과학적 법칙이다. 즉 이론과 노선 그 자체가 인간의 투쟁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변증법적으로 완성되어 갈 무기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의 무기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노선에 입각한 실천은 없다. 이론이, 노선이, 전략이 투쟁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지금 시기에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화 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에게 희망이 없다는 결론이 된다. 특정한 사안이나 쟁점에 대해, 시민사회와 민중연대를 통해 공동대응하고 전선에 복무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말 그대로 계급운동일 수밖에 없고, 노동운동의 궁극적 과제는 반자본운동으로 발전해 간다는 자신의 목표가 선명하다. 그러나 시민운동 자체는 삶에 대한 질의 향상과 시민권을 강조할 수는 있지만, 해방된 세상에 대한 전망과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체제변혁에 동의하지 않기에 운동의 질을 명백히 달리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과제인 ‘계급적 산별건설’은 조직의 형태를 중요시하기보다 질적 내용을 확보해가는 과정이며 노선을 선명히 세워나가는데 의미를 부여한다. 민주노조운동이 지향했던 노선은 한국노총의 ‘복지사회건설을 위한 노선’ 이 아니며, 실리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도 아닌 ‘변혁노선’으로 규정되어 왔다. 현 시기 노동조합의 조직발전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런 민주노조운동의 노선이 실종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윤배가를 자신들의 목표로 하며 노동자들을 억압, 착취하기 위해 다양한 고용형태와 착취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자본주의에서 변혁노선을 이념적 바탕으로 하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쟁점과 사안에 대해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억압과 탄압에 대응하는 투쟁을 해야 하고, 법·제도적 모순에 대해 투쟁을 해야 하고, 생존과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고, 계급적 산별을 가로 막고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도 투쟁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성격을 투쟁조직이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도적 모순에 맞서 계급적 투쟁을 실천하지 않고 계급적 산별건설은 불가능하며, 민주노조운동의 노선인 ‘변혁노선’에 대한 전망도 갖기 어려운 것이다.
경제위기 국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이 추상적 투쟁의 목표와 구태의연한 투쟁방식에 거대한 대중의 힘이 분출되기 보다는 소멸되어 무기력해지는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만든 공황시기에 고통이 노동자계급에게 모조리 전가되고 있는데, 투쟁의 방식이 구태의연하고 형식적이다.
수 천 명이 모이는 집회에서 투쟁가를 부르고 힘찬 목소리로 선전·선동을 해도 집회에는 긴장도 없고 결의도 보이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생활운동으로 경도되고 시민운동화 될 때, 노동운동은 희망을 상실했다고 표현한다. 노선이 보이지 않는 노동운동이 아무리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도 그 운동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목적과 목표가 없는 투쟁이 존재할 수가 있는가? 목표와 전망이 분명하지 않은, 형식적으로 외치는 집회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요구는 있으나 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결의와 투쟁이 없을 때, 그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긴장이 실종된 집회, 분노가 잠식된 투쟁, 노동자계급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투쟁, 희미해지는 노선의 끝자락은 노동자계급의 미래 또한 불투명할 수밖에 없고 노동운동의 과정 자체가 나침반 없는 항해와 다를 바 없다.
새로운 노선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거창하게 민주노총의 운동 노선이라고 규정하자는 게 아니다. 노동해방정신과 운동노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지불했던 우리의 노선을 현재 시점에서 확인하자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노선은 ‘변혁노선’이다. 노동부산하 노동연구원에서 조차 전노협(변혁노선), 민주노총(변혁노선)노선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민주노총 내부에서,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투쟁으로 세워낸 노선을 외면하는 경향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기에, 이런 우려를 떨치고 정세가 입증하는 공황시기에 선진노동자들이 떨쳐 일어나 전선에 불을 지펴야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에 선진노동자들의 임무가 운동의 전망을 밝혀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으며, 그 전망은 노동운동의 ‘변혁노선’을 대중적으로 확인하고 복구하는 것이다.


박종태 열사 투쟁으로 본 산별 ‘재편’의 한계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투쟁의 파고가 정세 반전의 계기를 부여하고있다. 삶의 위기에 처한 화물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거듭되는 열사정국이 하나의 분수령으로 자리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화물노동자의 죽음은 단순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복남, 김동윤 열사에 이어 박종태열사까지의 행렬은 화물노조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특수고용이라는 딱지를 붙인 화물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쟁취하기 위해 운수노조에 함께 해 왔다. 보다 큰 계급적 단결을 향한 그들의 선택이 ‘운수노조’를 만들었으나 ‘운수노동자의 집합체’로서 의미는 있으나 산별조직으로서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노동권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 같은 조합원(화물)의 ‘노동자성 쟁취 투쟁’을 함께 한 흔적이 없으며, 같은 노조에 간부가 자본의 비열함을 절규하며 목숨을 거두는 비극으로 전개된 상황에서 화물노동자들만 투쟁을 하고. 파업을 조직하는 건 조직형식으로도 맞지 않다. 노동조합은 부서별 조직이 아니다. 아울러 각각의 조합원은 개개인이지만 조직으로서는 동일한 존재인 공동체이기에 열사투쟁에 함께 하지 않는 중대한 오류가 갖는 의미는 같은 조직으로서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조직은 형식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계급의 일체감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수노조가 운수노조(화물, 철도, 택시)의 파업을 조직하는 못하는 이유는 형식적 산별재편이 낳은 당연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고용형태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수’라는 동질성만을 형식적으로 고려하고 간부중심의 논의에 따른 재편의 결과가 산별노조의 희망은 고사하고 절망을 암시하고 있다.
운수노조에 결집한 철도, 택시, 화물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의 경험이 없이, 그들의 기본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적 모순에 대한 투쟁의 성과 없이, 운수산업에 노동하고 있는 미조직노동자에 대한 공동사업과 투쟁 없이, 형식적으로 재편된 산별의 전형은 운수노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편이 완성된 모든 산별의 상태를 ‘운수노조’가 앞서서 보여주고 있으며 당면한 사안에 대한 공동투쟁의 성과 없이 형식적으로 재편하는 산별은 기업별노조의식을 지닌 형식적 산별이 된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계급적 산별조직 건설’을 멈추지 말자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의 분할하는 핵심전략이었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성장한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성과가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으로 결집되었으나, 자본의 공세(문화적 지배, 이데올로기, 계급분할)에 무기력으로 일관해 왔다.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과제가 ‘계급적 산별건설’로 설정 되었지만 현재 완성단계에 있는 산별조직을 어느 누구도 ‘계급적 산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산별건설의 과정은 노동조합운동의 양과 질을 계급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인 동시에 미조직,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는 과정이며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제도적 모순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이다. 계급적 단결을 저해하기 위해 자본이 설치한 억압의 장치를 투쟁을 통해 파괴를 해야 계급적 산별건설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주도했던 ‘산별건설투쟁’은 투쟁적 과제를 외면한 채, 형식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형태로만 결집시켰다’는 이상의 의미가 없기때문에 ‘계급적 산별건설’이라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전략이 실종되고,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전략도, 전술도 없고, 미래를 향한 노선과 목표도 없이, 형식적 조직화와 공식성에 빠진 형식적 노동조합운동의 현재를 ‘암울함속에 위기’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형식적 산별재편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조직적과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기만인 동시에 ‘계급적 산별’을 포기하는 오류일 뿐이다.
군부독재로 명성을 떨쳤던 유신시대에 노동조합 조직형태는 ‘산별노조’였다. 조직형태가 산별이라고 해서 만능이 아니다. 모든 권한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산별형태가 관리적, 통제적으로 변질되면 그 산별은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형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난 역사에서 확인하고 있다. 현재의 산별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과제였던 계급적산별이 아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복원시키고, ‘변혁노선’을 선명히 세우는 가운데 ‘계급적 산별건설’은 비켜갈 수 없는 과제이다.
산별재편이 완성단계라는 이유로 계급적이지 않은 산별에 대한 조직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 미조직 노동자와 불안정노동,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여성노동자들에게 단결의 자유조차 용인되지 않는 유명무실해진 그런 산별이 아닌, 계급적 단결의 대오에 모든 노동자계급을 결집해 내는 명실상부한 ‘계급적 산별’에 대한 전망을 분명히 하고, 현재의 기형적이고 형식적 산별에 대한 평가와 함께 계급적 산별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과제와 조직과제에 대해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있는데?’ ‘누가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계급적 산별을 조직할 수 있을까?’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만을 고려하는 사고는 변증법적 사고가 아니다. 계급적 산별이 노동자계급의 노동조합조직형태의 희망이라고 확인한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머지않아 ‘복수노조시대’는 피할 수 없다. 복수노조가 가져오는 문제와 한계들도 있지만 정세적으로 작동하는 조직화에 대한 유리한 국면과 운동노선을 선명하게 규정할 수 있는 기회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같은 현장에 몇 개의 노조가 조직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 무노조가 불문율처럼 되었던 대규모 사업장에 노조가 생겨날 것이다. 뉴라이트가 조직하는 수구적 노조에서부터 다양한 경향의 노조들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변혁을 기본 노선으로 하는 계급적 산별이 없다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성과 정통성이 소멸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계급적산별을 조직한다는 건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특히 우리가 주목하고자하는 지점은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하나의 노동조합을 결성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계급적 산별’을 조직하는 주요한 과정으로 판단해야한다.
규모가 큰 노조가 있는 현장의 경우, ‘변혁노선’을 운동의 잣대로 ‘변혁적 산별건설’에 대한 논쟁을 시작으로 복수노조시대를 준비하는 것, 그 자체가 운동의 노선과 정신을 세워내는 계기가 되기에 매우 중요하다.
산업의 구분에 있어서 다양하게 쪼개야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다. 가령 제조업(금속, 화학, 섬유 등)의 경우는 하나의 산별로 조직하고, 언론, 사무금융, 등으로 분할의 규모를 크게 하는 방안이 계급적 산별의 의미를 살려내고 계급적 투쟁을 조직하기 유리한 방안될 것이라 판단한다. 지역이 골간이 되는 계급적 산별건설투쟁이 중앙으로 결집되어 양적 질적 발전을 모색함에 있어, 현재의 형식적 산별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산별 스스로도 계급적 산별건설투쟁에 대한 결의를 모아내고, 노동자대중이 함께하는 산별건설의 청사진을 시급히 마련해야하며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자 운동의 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저조한 노동조합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내고 실종되고 있는 민주노조정신과 노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연대투쟁’, ‘공동투쟁’이 계급의 함성이 독재정권에 대한 전선을 구축하며, 변혁을 향한 계급운동의 전망이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운동의 조직발전전망이 희망으로 자리할 것이다.

양규헌 | 사회주의노동자정당 준비모임 대표, 철폐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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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라라비] 금속산별노조 이후 지역지부의 활동과 한계-금속노조 경주지부 사례 2009/09/14
  :: [자료] [산별노조 세미나자료] 공공연맹 산별논의 자료 추가 2006/02/01
  :: [자료] [산별노조 세미나자료] 공공연맹 산별건설논의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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