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전략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소위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양보론 아니냐’는 문제였다. 일단 이 논쟁에서는 ‘노동자 양보론’으로 결론이 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에서 여전히 주류의 운동정책으로 입안되고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자의 양보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노동자의 투쟁을 가로막는 정책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회연대전략은 당장 이로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영원히, 그리고 더욱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로 옭아맬 것이라는 점에서 반대해야 한다. 차분히 살펴보자!
양극화 해소
작년 11월 10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위원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연대’를 발표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423만 명과 농어민,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221만 명 등 총 644만 명에게 5년간의 보험료 절반을 지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드는 8조5천억 원 중 3조원을 국민연금 가입자의 미래급여, 즉 국민연금 수급액을 줄여서 지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함께 추진하려는 국민연금 개혁안에 따르면 117만원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도 자신의 몫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요구안을 93만 7천원으로 책정하고 최저임금인상투쟁을 하겠다고 07년 임단투 방침을 밝혔다. 최저임금이 뭔가? 인간이 죽지 않을 만큼 입에 풀칠하고 살 임금이다. 그런데 117만원 받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삶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에게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해서 양보를 하자’는 발상이 타당하기나 한가? 세계 경제는 매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한국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은 항상 경제가 어렵다며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규직의 임금을 줄이라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서 자본가들을 설득하겠다는 민주노동당의 사회연대전략을 비웃듯이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다. 지난 19일 금융감독원은 10대 그룹 임원들의 보수는 1인당 7억 4천 379만원으로 작년에 비해서 19.24%가 올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06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5.4%다. 최근 몇 년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임원들의 보수는 매년 20%정도씩 올랐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 중 80%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지본가와 노동자의 부의 차이, 이로 인한 박탈감은 엄청나다. 99섬을 가진 자가 1섬을 더 채워서 100섬을 만들겠다는 태도인데 1섬을 가진 자가 양보할 이유가 있겠는가?
정규직 노동자 책임론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단지 국민연금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부설연구소인 진보정치연구소에서 밝힌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전략] 보고서는 노동자 내부의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고 조직된 대공장과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 먼저 소득세를 올리고, 사회복지 기여금을 내놓자고 한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을 설득하자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먼저 노동자가 양보하고 이를 통해서 자본가들에게 부유세를 내놓도록 하자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문제를 임금노동자 내부의 차이를 부각시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이다.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노동자 내부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이를 통해서 노동자계급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내부의 차이를 줄이는 것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많은 노동자가 적은 노동자에게 돈을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임금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는 자본가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윤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최근 민주노총 윤영규 산별특위장은 ‘사회양극화의 주범 중의 하나가 노조의 기업별 체계’라고 말했다. 기업별 노조든, 산업별 노조든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위해서 싸우는 노조가 사회양극화의 주범 중 하나일까? 그렇다면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공장 노조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임금동결 선언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하는 <전진>의 집행위원장은 한 토론회에서 “임금인상은 계급적이고, 임금인하는 비계급적이라는 오래된 집단적 인식오류가 남한 노동운동에 있다”고 했다. 착취 받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항상 정당하다. 지금은 자본가들에게 대공장(기업) 노동자들이 착취 받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 땅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양보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노동자 양보론, 책임론은 민주노조운동에도 심각하게 퍼져있다.
또 하나는 사회연대전략의 순진한 발상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세금을 더 내고, 사회복지기여금도 내고 나면 자본가들이 부유세를 낼까? 자본가들은 아마도 웃을 것이다. ‘너희나 잘 양보해라!’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할 것이다. 부유세는 아마도 사회주의에서나 하는 일이라고 공격할 것이다. 최근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가진 자들의 저항보다 더 심한 저항을 할 것이다. 때문에 자본가들의 것을 빼앗아 오는 길은 노동자의 양보가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투쟁을 조직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투쟁 파괴 전략
더 나아가 사회연대전략이 아무리 노동자계급의 형성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노동자계급을 해체하는 전략이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뭔가?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에서 착취 받고 억압받음으로서 자본주의 착취를 끝장 낼 세력이라는 의미이다.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고 노동자계급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모순에 저항하고 투쟁할 때만이 노동자계급은 형성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 노동자 투쟁의 역사가 보여준 진실이다.
사회연대전략, 즉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전략] 보고서가 모델로 삼은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이른바 복지국가라고 한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살기 좋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국가 역시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스웨덴의 청년실업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27.5%며, 스웨덴의 가장 강력한 부를 소유한 밸런베리 가문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 공장을 마음대로 해외로 이전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스웨덴에서 벌어지는 일은 동일하다. 기준은 이윤일 뿐이다.
그렇다면 임금 소득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연대임금정책을 구사한 스웨덴의 조건은 무엇일까? 연대임금정책이 실현된 1950년대 이후는 전후 호황기의 조건이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 연구소도 이를 인정하고 이 조건은 한국의 상황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현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들이 양보하자고 무책임하게 주장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노동자정당으로서 제시하지 않고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기 때문에 사회연대전략은 투쟁파괴 전략이다.
스웨덴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보자.
연대임금정책이 구사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스웨덴은 1938년부터 사회적 합의(사회협약)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1938년 12월 ‘살츠바덴’이라는 스웨덴 휴양도시에서 체결한 협약(살츠바덴협약)으로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파업을 하던 국가에서 가장 적은 파업을 하는 국가로 변했다. 파업이나 직장폐쇄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1937년 886,604일, 1938년 1,068,054일이었으나 1938년 이후인 1939년 123,936일, 1940년 65,610일로 줄었다. 사회적 타협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웨덴 노총은 산하 연맹의 투쟁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했고, 1941년에는 산하 연맹 3% 이상이 파업을 할 경우, 노총 서기국의 사전 승인을 얻도록 했다. 이처럼 자본가들과의 타협을 통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자본가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개량을 얻을 뿐이고, 그 대가로 노동자들이 치러야 하는 것은 노동자 정신, 투쟁의 말살이다.
서울대 병원투쟁을 방해한 보건의료노조 10장 2조 문제, 최근 산별 건설이후 산별노조가 현장투쟁을 통제하려는 시도 등은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사회적 타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타협의 당사자인 상층이 현장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연대전략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을 형성하겠다는 것은 사기다. 가능한 수준은 민주노동당에 총선이나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 투표나 할 사람들이다. 그 대가는 어마어마하다. 앞서 말한 대로 스웨덴의 청년실업, 한국의 삼성보다도 훨씬 힘이 강한 스웨덴 재벌 밸런배리 가문의 폭력이다. 삼성을 정부가 어쩌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스웨덴의 밸런배리 가문은 사민당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다.
다른 측면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왜곡하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언 발에 오줌을 눌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발은 더욱 혹독한 자본의 칼바람에 다시 얼어붙고 회생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동지들이 많지만 여전히 연대의 힘은 미약하다.
최근 현대자동차 같은 대공장이나 철도와 같은 대규모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떠했는가? 류기혁 열사 논쟁, KTX 승무원 동지들, 비정규직 요구안은 하나도 관철하지 못하고 접은 총파업과 임금교섭, GM 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보여준 대우차 노조 이성재 집행부의 태도 등 비정규직 투쟁에 정규직 노조의 연대는 소홀함 그 이상이었다. 때로는 투쟁을 파괴한 거나 다름없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연대보다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하자는 소리를 한다.
금속노조가 만들어지고 산별노조에 대해서 전문가라는 강신준씨는 비정규직을 인정하자고 한다. 대신 정규직 노동자 임금인상을 자제한 돈으로 비정규직 임금을 올려주자고 한다. 정몽구가 환호성을 지를 만하다. 이렇게 되면 현대-기아차, 대우차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산별노조가 해주는 임금인상을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자본가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이것이 투쟁파괴 전략이 아니면 무엇일까?
『질라라비』를 읽는 독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을 것이고, 정규직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그렇다면 당신의 대안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 대답은 투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개선하는 것은 투쟁뿐이다.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는 06년 임단투를 독자적으로 진행했었다. 정규직 노조가 올려주는 임금을 그냥 앉아서 받는 것이 아니라 단 돈 1원이라도 스스로 싸워서 올려야 한다는 정신이었다. 이것이 옳다.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동료들과 노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만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정규직 노조나 조합원 중 비정규직 투쟁에 가장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동지들이 누군가 곰곰이 생각해보자! 정규직 임금인상투쟁,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가장 열심히 싸우는 동지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가장 헌신적으로 연대한다.
어려운 시기다. 그럴 때일수록 원칙과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잠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정신과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 영영 사지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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