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6월 29일에 진행된 철폐연대의 정규직 회원 워크샵에 발표되었던 글입니다.
한국통신계약직 투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제출되었으나, 그 투쟁에 함께했던 정규직의 눈으로, 어떤 한계와 고민이 있었는지를 다룬 평가는 아직 제출된 바가 없습니다.
그 투쟁에 함께했던 정규직 활동가로서 개인적인 고민이 담긴 글입니다.
이날 토론회의 전체 내용을 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철폐연대로 연락을 주시면 속기록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한통계약직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결합했던 정규직 활동가로서 민동회는 물론이요 노동조합을 포함하여 정규직 내의 공식적 평가가 전무한 상태에서 과거의 개인적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서술되어 있기에 구체적 사실과 투쟁의 전개 과정의 시간적 흐름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한통계약직 노동조합 및 이 투쟁에 결합했던 다른 단체들의 평가를 전제하지 않고 철저하게 정규직 개인의 관점에서 서술하였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 한국통신 민영화 구조조정의 과정 그리고 노동조합 및 현장조직 활동에 대한 시기적 약술
1. 95년에서 97년까지
내부적으로 이 시기는 민주노조와 노사협조주의적 집행부의 집권이 중첩되는 시기이며 외부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한 김영삼 정권이 한국통신을 포함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논의를 시작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94년 조합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한국통신 민주노조가 출범했고, 강력한 대정부 투쟁, 민영화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저항, 그리고 자본 내부의 갈등에 의해 민영화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수면 밑으로 가라앉으며 임기를 마치게 된다. 또한 한국통신에 대한 인원감축을 포함한 공기업개혁 조치 역시 노동조합의 저항에 의해 쉽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신규채용을 전제로 95년 초에 대대적인 희망퇴직이 실시되어 3,000명의 조합원들이 한국통신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에는 희망퇴직 관련하여 현재와 같은 실적할당 및 강제성이 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유덕상 집행부의 민주노조는 96년 말 선거에서 안타깝게 패배를 당하고 이제 한국통신에서는 지루한 노사협조주의적 집행부의 집권이 시작된다. 민주파 활동가들은 예상치 못한 선거패배에 혼란스러워했으나 곧 서울 등 선거에서 승리한 주요 몇 개 지방본부와 5대 민주노조 간부 및 지지 조합원, 그리고 해고자를 중심으로 민주통신 연구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의 현장 활동은 서울 등 선거에서 승리한 지방본부 중심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민주통신 연구소는 차기 노동조합 선거를 준비하는 정도의 모임으로 유지 되었다.
2. 98년에서 2000년까지
노사협조주의적인 김호선 집행부의 등장 이후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 대한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행위와 중간관리자들에 의한 현장통제에 의해 서서히 무력화되기 시작하였고, 외부적으로는 IMF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김대중 정부의 등장에 의해 공기업과 해당 노동자들이 개혁 대상으로 몰리며 한국통신을 포함한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및 민영화가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다. 또한 WTO에 의해 외국자본에게 통신시장이 개방되고 국내 내부적으로도 유선부문의 경쟁체제가 도입된다.
이시기의 특징은 한국통신에 대한 구조조정이 정부 정책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시기로 명예퇴직·희망퇴직 방식의 인원감축을 포함한 특정사업과 업무에 대한 매각, 외주·하청화 등이 진행되고 IMF 외환위기를 빙자하여 임금삭감 및 퇴직금누진제 폐지 등의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과 파괴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또한 한통경영진은 한층 더 노골화된 자본의 논리로 조합원들을 현혹, 강제하며 경영에 대한 책임만을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했고 이때부터 상품강매 및 할당에 실적관리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노사합의로 분기별로 시행되는 명예퇴직제도는 근속년수 20년이라는 제한 속에서도 관리자들에 의한 해당 조합원들의 강요와 협박, 그리고 노동조합의 방관에 의해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한국통신을 떠나기 시작한다.(지방본부별로 차이는 있다. 민주파 집행부의 지방본부는 상대적으로 퇴직자가 적은 편이었다.)
결국 2000년 말 계속된 상품판매의 스트레스와 퇴직강요, 부당인사 발령 등의 누적과 선로부문의 분사계획이 가시화되면서 노동조합의 방관과 무기력 속에서도 조합원들의 분노와 자생적인 힘이 폭발하여 역사적인 12월 총파업을 이뤄낸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이동걸 집행부의 기만적인 합의에 의해 이후 현장에서는 7,000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하고 전화가설 업무에 대한 도급화가 확대 진행된다.
예상치 못했던 조합원들의 저항에 놀랐던 정부와 한통 경영진은 이후 진행될 인원감축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내용은 이전과 같이 무리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조합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피하고 사업, 업무별 구조조정 방식을 도입하게 되고 그 첫 번째 대상이 114 교환업무와 체납관리 업무에 대한 분사이다.
99년 노동조합 선거에서도 패배한 민주노조 활동가들은 많은 고민 끝에 “전국민주동지회”(이하 “민동회”)라는 현장 조직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에도 서울 등의 몇 개 지방본부는 선거에서 민주파 후보를 당선시키기는 했지만 노동조합 및 민동회 등 민주노조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3. 2001년에서 2003년
114분사 저지 투쟁으로 시작된 2001년은 해당 조합원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기만적 대응과 합의 아래 사업 분사가 이뤄지며 대대적인 명예퇴직이 진행된다. 또한 민영화를 앞두고 명예퇴직이 실시되어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민영화의 압박과 주식을 미끼로 이용한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퇴직을 신청하였다. 이후 한국통신은 결국 2002년 8월 민영화된 사기업 KT 간판을 새롭게 걸게 되었다.
이 시기의 특징은 민영화 전후에 있어서 진행된 인원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이 정부의 간섭을 벗어나 주주(외국인 포함) 및 경영진의 이해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현장에서 더욱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나타났으며 또한 경영진 내부에서도 조직구조 개편을 앞두고 기득권세력에 대한 공격과 그로 인한 내부 갈등이 증폭되어 구조조정이 지체되는 경우까지도 발생하게 만든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결국 한국통신 KT 조합원들은 상품강매의 스트레스와 분리, 분사와 주기적인 퇴직 강요 등의 고용불안에도 불구하고 2002년 선거에서도 민주노조를 세우지 못하고 노사협조주의적인 지재식 집행부가 등장함으로써 조합원들은 마지막 희망을 상실하고 자본의 논리와 요구에 순응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2003년 결국 노동조합과 회사는 노사합의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5,500여명의 직원들이 반강제적으로 한국통신을 떠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조합원의 요구를 수용하여 이번 합의를 끌어냈다고 주장하는 무기력한 노동조합과, 계속되는 상품판매 강요와 실적관리 등의 스트레스와 개악된 인사/보수규정 등에 의한 고용불안은 많은 수의 조합원들로 하여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명예퇴직금에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맡긴 채 퇴직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또한 관리자들은 면담과정에서 이번이 명예퇴직의 마지막 기회이며 다음에는 명퇴금도 없다는 식으로 협박하기 시작했고 이에 조합원들은 쉽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초기에 민동회나 현장활동가들은 이번 명예퇴직 관련한 합의서나 이후 명퇴 신청 관련하여 원론적인 성명서 발표 외에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명예퇴직도 또 다른 변형된 정리해고라는 원론 역시 개인적 관점으로 숨길 수밖에 없었다. 현재 조합원의 상태와 정서상 명예퇴직 자체를 반대하거나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조합원들에게 희망의 대안으로서 민동회가 자신있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한국통신 KT에서의 인원감축식 구조조정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한국통신에서 비통신, 비핵심, 비수익 분야에 대한 매각 및 분리분사, 외주하청에 의한 사업구조조정에 의한 인원감축이다. 해당 업무를 한국통신 본체 직영에서 외주화 혹은 분사 자회사 형태로 분리시킨 후 해당 업무에 종사했던 조합원들을 일괄적으로 퇴직시키고 일정기간 고용보장의 형태로 비정규직으로 다시 채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업 구조조정과 연관성이 있지만 특정 업무와 부서에 관계없이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명예퇴직제도를 통해 인원감축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 인건비 절감의 차원뿐만 아니라. 퇴직 이후의 빈자리를 향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과 판매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유효시한에 맞는 노동을 구현하기 위해서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비정규 도급의 형태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또한 신기술·신장비 도입을 통한 업무의 단순·집중화 무인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잉여(자본이 말하는)인력에 대한 현재의 처리와 향후 계획에 의해서 진행된다.
그러므로 인원감축의 본질은, 결국 KT에서 노동하는 노동자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나 정규직이 대폭적으로 축소되고 낮은 임금과 해고가 자유로운 비정규직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이것은 인건비 절감 효과와 더불어 정규직 축소,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노동자간의 분리와 대립을 갈등조장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조직적 저항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 한국통신계약직 투쟁에서의 역할
1.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과의 첫 만남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000년 초 서울 혜화전화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규직 활동가(통신모임 회원)동지의 소개로 한통계약직 동지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한통계약직에서는 구강회, 고철윤, 홍준표, 강태봉 동지 등 지금은 서서히 잊혀져가는 이름들이지만 당시 한통계약직 노동조합 건설 이후 노동조합의 핵심간부로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동지들이 참석하였고 정규직에서는 통신모임 회원 중 본인을 포함해서 3인 정도가 참석하였다.
당시 한국통신에서는 계약직 노동자의 이름으로 많은 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조합이든 계약직 노동자들에서든 비정규직 관련한 조직과 투쟁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이날 한국통신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공식적 첫 만남은 늦은 저녁 식사와 술자리를 통해서 IMF 이후 본격화된 한국통신 민영화 및 구조조정 과정 속에서 비정규직인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적 대우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함께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통신 내부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정규직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민주노조라는 말이 무색하게 95년 민주노조를 마지막으로 연속해서 노사협조주의적 어용 집행부가 집권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서울지방본부를 비롯해 대구, 부산의 지방 본부가 선거에서 승리해 주요 지역에 민주노조의 거점을 유지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조직체계상 지방 본부가 가질 수 있는 힘은 극히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부와 한국통신 경영진은 노동조합 선거에서 노사협조주의적 집행부가 당선된 것을 토대로 공기업 한국통신에 대한 더욱 강도 높은 민영화 및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또한 노동조합조직 중심의 활동에만 익숙해 있던 다수의 민주노조 활동가들은 당시 아직 미쳐 노동조합 선거 패배의 후유증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본부만이 힘겹게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이후 민동회라는 현장조직을 만들어 서서히 현장 활동을 시작한다.
2. 한국통신계약직 협의회
첫 만남 이후 정규직 활동가들 일부가 통신모임을 중심으로 한통 계약직 조직화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규직 활동가들의 역할은 계약직 활동가들이 접근 조직하기 어려운 전화국에 해당 전화국 민주파 지부장을 통해서든 아니면 개인적 친분을 통해서든 계약직 조직주체들과 현장 계약직 직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었다. 초기의 이러한 정규직의 역할과 활동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극히 제한된 전화국에서만 진행되었으므로 조직적 성과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서울본부, 한통계약직, 정규직 이라는 3주체들이 공개된 공식적 조직은 아니었지만, 정기적인 회의를 지속하며 한국통신 계약직 조직화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였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한통계약직은 비정규직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통신계약직 협의회”를 공식적으로 건설해 내고 정규직 활동가 역시 통신 모임을 중심으로 “한국통신계약직협의회를 지지하는 정규직 모임”을 만들어 공식 대응을 시작한다. 지지모임은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한국통신 내에서 최초로 정규직을 대상으로 한국통신계약직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노동조건과 차별에 대하여 폭로하고 정규직 조합원들의 관심과 도움을 요청하며 소속 해당 전화국 계약직 직원들의 조직화 확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 한국통신 계약직 협의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일정규모의 조직이 확대되면서 당시 현 정규직 한국통신 노동조합 규약 상 가입대상에 계약직 노동자들도 포함됨을 알고 우선 기존 한국통신 노동조합에 가입을 신청한다. 민주파 집행부가 잡고 있던 한국통신 노동조합 서울본부와 함께 계약직 노동자들의 조합가입을 함께 시도한다. 그러나 당시 이동걸 한국통신 노동조합 집행부는 조합원의 정서와 희생자구제기금의 사용 등에 따른 조합재정 악화를 이유로 들며 계약직 노동자들의 가입 처리를 미루고 오히려 서울본부로 책임을 미뤘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민주파 집행부가 집권하고 있던 서울본부 역시 지부장 등 조합 간부들의 정규직 이기주의와 노동조합의 한계 속에 갇히며 비정규직 투쟁 및 한통계약직 조직 활동과 조합 가입에 적극적일 수 없었다.
이러한 정규직 노동조합 및 활동가들의 상태와 무관하게 한국통신계약직 협의회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며 양적인 확대를 거듭해나가고 있었다.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의 가입이 불투명한 상태였고, 조합가입 투쟁 속에서 계약직협의회 회원들의 신분 노출에 따른 불이익과 탄압이 본격화 되어 조직 유지 자체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 한국통신계약직 협의회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의 논의 속에 갑작스럽게 노동조합을 결성을 결정하고 법외노조로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한통계약직 투쟁에 있어서 노동조합 설립 등의 중요한 결정과정에 함께 하지 못한 정규직 지지모임은 기간의 친밀한 친분관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치며 기본적 소통의 부재의 아쉬움 속에 정규직의 개입 및 연대활동은 서서히 위축되며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한통계약직 투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비롯한 한통계약직 투쟁 주체들의 과정의 미숙함이기보다는 현실적 조건의 불확실성과 정규직 민주파 노동조합 및 활동가들의 역량의 한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과 판단이었다고 이해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관계의 불평등 및 소통의 부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517일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 투쟁 내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통계약직 동지들의 초기 조직과 투쟁의 과정에서 정규직 활동가들은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전 한국통신의 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의 활동에 익숙하거나 제약된 상태에서 비정규직 관련하여 철저하게 동정적 시혜적 관점으로 접근한 측면이 강했다. 당시 정규직 활동가들은 공기업인 한국통신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민영화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을 고민하면서도 공동 주체이자 연대세력으로서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을 인식하지는 못하였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훨씬 못 미치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고생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이해하고 연대가 아닌 도움의 관점 속에서 접근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의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3. 한국통신계약직 협의회에서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그리고 파업
이제 한국통신 계약직은 노동조합의 결성을 공식 선언하고 조직의 확대를 통한 전국화 및 노동조합 합법화를 위하여 당시 독자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제약하는 한국통신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투쟁에 돌입한다.
이동걸 집행부 역시 조합원의 정서 및 조합재정의 문제를 떠나서 계약직 노동자들이 현 노동조합에 가입 하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약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의 문제는 단순히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시 회사와 손잡고 힘겹게 장악한 통제된 노사협조주의적 노동조합 조직에 균열이 생기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통 경영진으로서도 계약직 노동자들이 독자적 합법적으로 조직하는 것 자체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현 노동조합에 비정규직이 가입하는 것은 더욱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본의 편에 있어 이것은 노무관리 비용의 증대와 또한 향후 민영화 구조조정에 비정규직이 우선적 대상이자 정규직 노동조합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커다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이동걸 집행부는 계약직 노동자들의 조합 가입 반대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연구를 의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계약직 노동조합을 분리시키기 위한 규약 개정을 선택하고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규약개정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그러나 계속된 한통계약직 투쟁과 압력, 그리고 자신의 실리적 이익이라는 판단 속에 임시 대의원대회를 개최 강제력을 동원하여 규약개정을 통과 시킨다. 많은 우여곡절 끌에 결국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합법적 조직을 쟁취한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정규직과의 관계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과 당시 517일간이라는 우리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전무후무한 힘겹고 고통스러운 투쟁이 앞에 놓여 있음을 예측하는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노사협조주의적인 이동걸 집행부가 계약직 노동자들의 조합 가입에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로 조합원의 정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국통신의 정규직 조합원들은 과거 민주노조를 만들며 임금 및 노동조건의 열악함 보다는 당시 관리자들과 사무직들의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부당함에 더욱 불만이 컸었으나, 민주노조 건설 이후 관료주의적 차별이 어느 정도 시정되었다. 그런데 현재에는 오히려 고용안정이라는 기본적 권리마저도 쉽게 파괴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민영화 구조조정 공세 앞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이 무력화되자, 개별적으로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한 관계를 요구하고 계약직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편리함을 누리며 고용의 방패막이로 이용하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조합 투쟁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표했던 민동회 및 민주노조 활동가 역시도 현장에서 계약직과 정규직의 왜곡된 대립에서 자본에 의해서 강요된 조합원의 정서에 굴복하여 정규직의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4. 정규직의 파업과 비정규직 파업 간 연대는 없었다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은 합법화 이후 한통자본에 교섭을 요구하나 한통 자본은 오히려 7,000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일방적 계약해지를 통보한다. 노동조합은 즉각적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고 기간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파업은 합법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합법 파업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혜택이기 보다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517일간의 파업의 시작일 뿐이었다.
당시 한국통신 정규직들은 민영화를 앞두고 계속된 인원감축 등의 구조조정이 더욱 강도를 높여 나가자 불만이 서서히 쌓여가기 시작하였고 결국 다수의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선로 업무에 대한 도급화 얘기가 나오면서 현장은 한층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중앙 및 대다수의 현장 지부장들이 회사에 밀착된 어용 간부들로 채워진 노동조합은 현장 조합원들의 분노를 조직해서 투쟁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당시 새롭게 출범한 민동회라는 현장 조직과 서울지방본부를 중심으로 이동걸 집행부를 물리적으로 압박 파업투쟁을 이끌어냈으나 사실 민주파 활동가들도 역시도 실제 파업이 성공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2000년 겨울 정규직의 파업은 시작되었으나 이미 파업을 진행 중인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에 전국에서 모인 계약직 조합원들의 연대 요구와 외침은 민주노총의 방관과 이동걸 집행부의 무시 속에 무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정규직의 파업 투쟁은 기만적인 합의안 속에 5일 만에 막이 내리고 조합원들은 휴지보다 못한 합의안에 만족하며 현장으로 복귀하고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예상치 못한 파업투쟁에 놀란 정부와 한국통신 경영진들은 현장에 대한 통제와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민주파 활동가 및 민동회에 대한 노동조합에 영향력을 차단하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영화를 완수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구조조정을 구상해 나간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 거절과 문전박대 이후 계약직 노동조합은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본사 앞 노숙투쟁을 시작한다. 다음해 1월 어느 늦은 저녁 본사 앞에서는 한통계약직 노동조합과 민동회의 연대 집회가 개최된다. 개별 조직의 요구를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연대 집회는 성사되었고 그날 역시 무척이나 추웠다. 민동회 역시 그날 한통계약직 투쟁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집회가 끝난 후 정규직 민동회는 집으로 돌아갔고 한통계약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차가운 얼음위에서 억지 잠을 청해야 했다. 결국 한 동지가 추위에 쓰러져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만다.
5. 공투위 참가, 목동전화국 점거
한통 계약직 파업 투쟁이 극단적인 처절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장기화되고 전체 운동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관련한 문제가 주요한 핵심 과제가 되면서 기간에 한통계약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던 단체 중심으로 “비정규직 철폐와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한국통신 정규직에서는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물론이요 서울본부 역시 참가하기 힘들었고 민동회 역시도 어렵게 제한된 역할 속에서 참가가 결정되었다. 공식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 사업장으로서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가끔씩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고 서울본부 역시 이 수준을 넘어 서지는 못했다.
민동회 역시 공투위 참가는 조직 내 전체 회의에서 결정하였으나 한통 계약직 투쟁에 대한 정규직의 독자적인 계획과 구상이 없는 상태에서 형식적인 참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며 공투위 회의 역시 한국통신 노동조합, 정규직 조직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 및 사업 결정이 이루어져갔다. 결국 민동회는 공투위 속에 정규직 들러리 정도 밖에 역할을 할 수 없었고 또한 민동회 역시 공투위 결정 사항에 대한 형식적 소통만 있었을 뿐 적극적인 사업과 투쟁의 구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계약직과 정규직의 관계 소통을 비공식적으로 한통계약직 노동조합 대협과 공투위 참여 주체의 개인적 관계로 유지하거나 서울본부를 통하여 이루어 나갔다.
이미 정규직 노동조합 및 서울본부, 그리고 민동회 역시도 한통계약직 관련한 투쟁에서 하나의 주체이기 보다는 방관자로 전락되고 있었다. 공투위 회의는 계속 참여하고 있었으나 공투위 논의 참여는 물론이요, 민동회 내부에서 역시 전혀 소통되지 못하고 관심을 갖는 회원들도 많지 않았다.
결국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은 3월 29일 목동 전화국을 점거하고 정규직 조합원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만다. 본인을 포함하여 정규직 어느 누구도 점거 전술을 알지 못했다. 사전에 알았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한통계약직과 민동회의 관계와 위치 속에서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통신 현장에서는 다수는 아닐지라도 조합원들은 이전에 가졌던 계약직 노동조합에 대한 동정적 태도마저도 버리고 애사주의 속에 매몰되며 한통 계약직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계속된 한통 자본 및 관리자들의 왜곡된 이데올로기 주입과 한통계약직 투쟁에 따른 조합원들의 현실적 불편함이 가중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이러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즉자적 반응 속에서 노동조합 및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사내 통신 등의 매체를 통해서 한통계약직 노동자의 절박함과 그 투쟁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 변호하는 정도였고 이 역시 쉽지 않았다.
6. 114분사 저지투쟁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의 파업 속에서도 정부와 한통자본은 지난 12월 총파업과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비통신 비수익 사업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114 안내업무와 체납업무에 대하여 구조조정 분사를 자행한다. 해당 114 조합원들은 즉각 본사 농성을 통해 114분사 철회를 위한 파업에 들어간다. 114 업무는 농성에 참가하고 있지 않는 일부 정규직 조합원들과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아무런 큰 무리 없이 유지되고 있었고 노동조합 중앙본부는 해결 및 투쟁 의지는 없이 농성장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결국 투쟁 초기부터 형식적인 단식으로 투쟁을 모면하던 이동걸 위원장이 병원에 실려가자 민동회 출신의 부산 위원장이 노동조합 직무대행으로 위임되고, 114 투쟁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민동회 회원 중심으로 새롭게 상집을 구성한 노동조합은 농성장을 벗어나 지역 선전전를 진행하고 해당 114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타격을 위해 분사철회를 공동의 목표로 114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시도하고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를 시도한다. 그 결과 한국통신 본사앞에서는 최초로 한국통신 노동조합과 계약직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연대 집회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이후 농성장은 회사 경비들에 의해 완전 초토화되고 이동걸은 수많은 어용 조합간부들을 데리고 직무대행 업무를 정지시키고 복귀를 시도한다. 수많은 농성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동걸은 복귀하고 직무대행을 포함해 민동회 상집은 무기력하게 철수하게 되고 계약직 노동자들과의 투쟁의 함성이 귓전에서 떠나기도 전에 114 정규직 조합원들은 분사철회를 포기하고 전환배치를 받아들이면서 계약직 노동조합과의 공식적 연대 투쟁도 한여름 밤의 꿈으로만 남게 된다.
역시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의 114비정규직 조직화도 실패하게 된다.
결국 이후 한통계약직 투쟁에 있어서 한통계약직과 정규직 민동회는 더욱 관계가 소원하게 되고 민동회 역시 한통계약직 연대 투쟁에서 더욱 위축되게 된다.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의 투쟁은 이렇게 정규직의 무관심 속에 계속되었고 한국통신 노동조합 및 민동회는 한통계약직 투쟁에 있어서 파업기금 마련을 위한 채권판매에 나름대로 기여를 하기는 했으나 이후 줄곧 무기력한 모습으로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불명예를 쓸 수밖에 없었다.
□ 정리하며
한통계약직 투쟁 관련하여 정규직 활동가로서 아쉽거나 주요한 고민거리를 정리해보면,
1. 한통통신 정규직 노동조합 및 민동회 활동가들은 한통계약직 투쟁 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적 시혜적 관점을 넘어서지 못하였고 결국 자본의 노동자들에 대한 분리·분할 공격과 어용세력의 조합원 정서 논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특히나 현장조직이라는 민동회 역시 다수의 회원들이 기존 노동조합 중심적 활동에 갇혀서 노동조합 간부를 넘어서는 현장조직의 회원으로서 독자적인 활동을 통한 계급적 노동운동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것은 정규직 현장조직으로 한통계약직 투쟁 내내 직·간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민동회가 노동조합, 그리고 조합원은 물론이요 민동회 자체 내에서도 비정규 관련한 교육이나 토론이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현실로 드러났으며, 결국 민동회는 비정규 연대에 있어서 내용 없는 도덕적 당위적 활동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곧 한계에 봉착하며 점점 투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되었다.
2. 한통계약직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투쟁했던 기간은 한국통신에 대한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정규직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에 대한 인원감축과 114분사 등의 사업구조조정, 노동강도 강화 등의 공격이 자행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정규직·계약직 어느 누구도 구조조정 저지라는 공동의 목표 속에 단일한 전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당시 정규직 노동조합이 노사협조주의적 어용 집행부라는 조건과, 전국 현장에서 민동회등의 민주노조 세력들의 취약한 조직상태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한통계약직 노동조합 역시도 신자유주의 공격에 의한 한국통신의 민영화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비정규직의 확대와 노동조건의 악화를 연결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문제만의 개별 사안으로 분리 대응했고, 정규직의 한계를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연대를 조직하지 못한 부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한통계약직 노동조합 투쟁 요구의 절박함과, 주요하게는 기간 정규직 노동조합과 민동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통신 내 민주노조 세력들이 활동의 과정 속에서 불신을 확대시켰던 모습이 영향을 미쳤음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비정규직 투쟁에서 정규직의 독자적인 계획과 구상을 갖지 못하면 동등한 주체로서의 연대는 불가능하며 작은 투쟁의 성과도 만들기 어렵다.
특히나 동일 사업장 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에 있어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당시 조직의 조건과 역량에 맞는 독자적인 활동 구상과 계획, 그리고 조직화 과정이 생략된 일방적인 지지·지원식의 활동은 연대의 출발일 수는 있지만 곧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러한 관계의 연대는 곧 자본의 분리·분할 이데올로기 공격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당시 노사협조주의 집행부는 차치하더라도 민동회 역시 한통계약직 투쟁 관련하여 민동회 조직 및 정규직 현장 내의 아무런 독자적인 활동 구상과 계획 없이 그저 형식적인 공투위 참여와 투쟁기금 지원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또한 민동회라는 현장 조직이 조직이든 회원 개인이든 자신의 운동적 과제로 비정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규직 민동회는 한통 계약직 투쟁의 방관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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