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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89|0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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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4|01|2004
2차 동아시아 노동 원탁회의 참가기

:: 2004-02-12   조회: 5911

지난 12월 14일부터 17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차 동아시아 노동 원탁회의에 참가하였다. 한국에서는 민주노총 비정규·미조직실, 국제민주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참여하였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 미얀마, 홍콩, 대만,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노동조합, 노동단체가 참석했다.

2차 동아시아 노동 원탁회의(East Asia Round Table Meeting on Labor)의 배경

1차 원탁회의는 2002년 OXFAM이라는 국제적 재단의 후원으로 방콕에서 열렸다. 1차 원탁회의에서는 동아시아 각국의 노동 상황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각 국의 차이를 뛰어넘어 경험을 교류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주제들을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논의 결과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전략, 노동법 개정 방향, 노동의 비공식화, 노동자 건강권과 산업안전, 초국적자본에 대한 대응의 5가지 논의주제가 도출되었다. 이번 2차 원탁회의는 이러한 논의주제에 대하여 보다 더 구체적인 토론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되었다. 철폐연대는 민주노총과 함께 주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전략과 노동의 비공식화에 대한 대응 부문에 참여하여, 한국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투쟁 사례를 소개하였다.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관련한 동아시아 각국의 어려움

동아시아 각국의 노동운동이 처한 공통의 문제점은 노동조합운동이 포괄하고 있는 노동자층이 대단히 적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정치적·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노동조합운동이 극심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과 함께, 초국적자본의 지배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산 속에서 불안정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동아시아 각국 경제가 저임금을 추구하는 초국적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가장 큰 구조적 제약이라 할 수 있다. 초국적자본은 저임금을 따라 동아시아 각국을 이동하거나, 하나의 국가 내에서도 보다 임금이 싼 지역으로 이동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아시아계 초국적자본도 마찬가지여서 자본 이동을 무기로 동아시아 각국 정부가 보다 자본에 유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경제자유구역, 수출자유지역 등을 계속 확대하도록 만들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재 실업률이 20∼30% 정도로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최근 해고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노동의 비공식화(informalization)가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노동의 비공식화가 자본주의의 저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초국적자본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전략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초국적자본은 세계적인 생산연쇄를 조직하면서 동아시아 노동자를 하청의 고리에 편입시키고 있는데, 하청의 말단고리는 가내노동을 비롯한 가족노동 등 비공식적 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나이키, 리복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생산 일부를 동아시아 자본이 담당하고, 동아시아의 초국적자본의 생산 일부를 다시 국내 자본이 하청의 연쇄고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말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 자신들이 만든 반제품이 어느 브랜드나 초국적자본에게 가게 되는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노동의 비공식화는 저임금과 노동유연화를 노리는 초국적자본의 전략 및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마저도 부정하는 정부의 정책에 의해 확산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노조 조직화 방식으로는 이들을 조직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의 어려움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국가가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통의 문제였다. 한국에서 복수노조 금지규정이 비정규직·민주노조 조직화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도 법적으로 기업별 노조로만 노조형태를 제한하고 1기업 1노조를 강제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이나 수출자유지역에서 노조 조직화가 제한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반노조적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거나 어용노조를 조직하는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 각국 노동운동의 고민

이상의 공통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정치·사회적 특수성이 있기에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을 심도있게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다만 다음과 같은 고민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기존 노조 조직화 전략이 노동자대중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평가 위에서 새로운 조직화 전략으로 지역(공동체)기반 조직화나 업종별(sectoral) 조직화에 대한 고민이 많이 제기되었다. 불안정노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사업장 단위로 주로 임금·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에 집중하는 조직화 전략의 한계에 대한 인식 속에서 제기된 고민이다.
그러나 논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각국 참가자의 주안점이 다른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서비스노조적 모델에서 조직화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SIGTUR), 기존 노조는 사업장 내에서의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시야에 갇혀 있고, 새로운 전략으로서 의제와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타이), 노조의 역량 강화, 조합원에 대한 교육, 정치의식 제고 등이 중요하다는 주장(필리핀), 민중운동과의 연대·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뉴질랜드) 등이 제기되었다.

둘째, 노동의 비공식화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노동자 개념과 이에 기반하였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요구를 재정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가내노동자의 경우 고용관계상의 요구보다 노동자 건강권이나 작업장 안전의 문제가 더 절실한 문제일 수 있다. 또 노점상의 경우 노점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요구가 일차적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동아시아 지역이 처한 공동의 문제로서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구체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필리핀, 중국이 대표적인 송출국가라면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한국 등이 주된 수입국가라 할 수 있는데, 송출국가와 수입국가의 노동단체가 함께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었다.
특히 수입국가의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고 조직하는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점이 현실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여성화 경향도 지적되었다.

남는 고민들

전반적으로는 동아시아 각국 노동운동의 현재적 고민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였지만 몇 가지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이번 원탁회의의 배경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는데, 원탁회의를 후원했던 OXFAM이 노동 문제에 관점이 없는 국제적 재단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기 위하여 원탁회의를 후원했다는 점이다. 물론 실질적 조직화를 담당했던 인도네시아의 LIPS나 홍콩의 AMRC는 초국적자본에 대한 인식이나 노동운동 전략에 있어서의 건강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노동운동진영의 주체적 계획에 따른 교류의 장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아쉬웠고, 실제로 논의 과정 중 OXFAM과 동아시아 노동단체들간의 의견대립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또한 동아시아 노동운동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ATNC(아시아계 초국적자본)으로서 동아시아 각국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한국 자본의 문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소극적인 한국 노조운동의 한계, 동아시아 노동운동간의 연대에 대한 고민 부족 등이 원탁회의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경제자유구역의 전국화 등 전세계적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정권과 자본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도 남는 고민이다.
짧은 인상으로 간략한 보고를 마치고자 한다. 원탁회의 셋째날 밤에 각국 문화교류의 시간이 있었다. 각국 참가자들이 각국의 노동운동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자리였는데, 한국 참가자들은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동아시아 각국 참가자들의 주문은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 '처음처럼' 등을 부르라는 것이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는 거의 모든 참가자가 힘차게 팔을 흔들며 한국말로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들이 어떻게 한국 민중가요를 이렇게 잘 아는 것일까 끝나고 물어 보았는데 돌아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이것은 동아시아 민중의 노래이다"
윤애림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


  :: [질라라비] 2004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을 다녀와서 2004/02/12
  :: [질라라비] 필리핀에서 노동의 계약직화 2004/02/12
  :: [자료] ">> 비공식부문 국제대회(2003년 12월, 인도)" 200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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