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난 16일 인도 뭄바이 네스꼬 그라운즈에서 시작된 4회 세계사회포럼은 21일 폐막 집회로 그 막을 내렸다. 행사가 열린 인도 뭄바이 네스꼬 그라운즈는 1980년대 중반 땅값이 오르면서 공장들이 폐업하면서 방치됐던 공장지대로, 대회 조직위원회는 공장 건물에 수십 개의 회의장과 전시장을 설치하고, 주변 공터에도 칸막이를 이용해 수백 개의 소규모 회의장과 이벤트 장소를 만들었다. 조직위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132개의 나라들에서 2천6백여 개의 단체, 8만여 명이 참가했고 (이중에 80% 넘는 인원이 인도의 참가자들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1천 개가 넘는 회의와 세미나, 워크숍과 2백여 개의 행사를 준비했다.
뭄바이는 인도에서 경제의 도시, 영화의 도시라 불리는 상대적으로 발달된 도시다. 이런 곳에 뭄바이 산업경제의 상징이었던 이 옛 공장지대에는 농민과 인도의 최하층민인 달리트(Dalit), 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등이 매일 반전, 반신자유주의, 인종차별반대 등의 시위를 벌였고, 주로 인도를 비롯한 서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참가단은 전통적인 격렬한 춤과 율동, 강렬한 타악기 연주로 시선을 모았다. 먼지가 뿌옇게 인 행사장, 집회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이벤트로 시끌벅적했던 2004 세계사회포럼은 다양한 인종과 언어, 종교, 문화와 각종 이슈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닌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구호 아래서 모두 모였다.
2. 세계사회포럼은 무엇인가?
세계사회포럼은 2001년 1월 브라질의 남부 도시인 포루투알레그레에서 '세계화'에 반대하기 위한 모임으로 시작하였다. 자세히 말하자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여러 나라의 경제 장관들과 다국적 기업의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화'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에 반대하여 같은 기간에 개최되었다. 1971년부터 매년 개최되어, 유엔의 자문기구 중 하나인 스위스의 한 재단이 조직하고 10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의 재정적 후원을 받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변호하고 촉진하는 논리를 공식화하는 전략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에 세계사회포럼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에 의한 세계화에 반대한다. 인간 중심의 세상을 건설하는 데 참여하는 시민사회 운동들의 개방된 모임의 장으로서, 민주적으로 논쟁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경험을 자유롭게 공유하며 효과적인 행동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올해로 4회 째를 맞이한 세계사회포럼은 약 십만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움직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3. 2004 세계사회포럼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 지배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깼고, 국제적인 참여로 전세계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6일간의 일정이 진행된 4회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이렇게 모아진다. 한계는 있지만 모두들 그 규모와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의 흐름에 일침을 놓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전히 결의문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번 세계사회포럼 기간 중 네 차례의 사회활동가 총회를 거쳐 만들어진 '사회운동과 대중 조직의 호소문'은 공식적인 논의 결과를 반영한다. '투쟁의 세계화! 희망의 세계화!'를 주창한 이 호소문에서 활동가들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동맹국들에 의한 이라크 침략에 항의하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을 3월 20일에 가질 것'과 함께 '홍콩 또는 다른 장소에서 열리게 될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고 공유재, 환경, 농업, 물, 건강, 공공서비스와 교육을 지키기 위한 사유화 반대 투쟁에 연대할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투쟁 일정으로는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 3월 30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종분리 철폐 투쟁의 날, 4월 17일 국제농민의 날 등이 합의되었다. 포럼 기간 내내 주창되었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는 반전운동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합에 대한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한국 참가단의 대거 참가와 아시아 문제로의 집중
세계사회포럼이 3회까지는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렸으나 이번 4회 포럼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으로 관심을 넓힌다는 취지에서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포럼에서는 지금의 정세와 개최지인 인도의 상황을 반영하여 △제국주의적 세계화 △가부장제 △군사주의와 평화 △종교적 종파주의와 근본주의 △카스트와 인종차별주의 △세계화, 경제와 사회 안보 △지속 가능한 발전: 토지, 물과 식량 주권 △노동자와 노동의 세계 △미디어, 문화와 지식 등이 주요 의제로 결정되었다.
이외에도 △정당과 사회운동 △세계화와 그 대안 △세계화, 지구적통치(Global Governance)와 국가 등이 논의되었고, 이번 사회포럼의 핵심 주제는 세 차례 열렸던 이전의 포럼처럼 '반신자유주의'와 '반전'으로, 이에 대한 각국의 경험과 전략,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들이 논의되었다.
한국에서도 상당수 단체에서 참가단을 조직해 포럼에 참여했는데, △민주노총 △WTO반대국민연대 △아래로부터 세계화 △2004 인도 세계사회포럼 대학생 참가단 △한국사회포럼 등이 조직돼 4백여 명 정도가 참여하였다. 지난 2003년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제3차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된 포루투알레그레에 민주노총, WTO반대 국민행동을 비롯해 30여명 정도가 참가한 것에 비하면 그 참가자 수가 자못 놀랄 만 하다. 브라질에서 개최된 3회의 세계사회포럼에는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중남미 활동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면, 이번 사회포럼은 인도를 중심으로 하여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티벳, 부탄 등 아시아 지역의 참가가 두드러졌고 그만큼 아시아 문제가 많이 얘기되었다.
400여 명이 참가한 한국 참가단은 △칸쿤투쟁 이후 WTO 협상전략 △아시아지역 투자자유협정 반대 투쟁 조직 △사유화 반대투쟁에 대한 각국의 경험 공유 등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있어서 아시아 지역의 공동연대 구성에 힘을 쏟았고, 행사 이틀째인 18일에는 일본 참가단과 함께 파병 규탄 공동 집회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4. 2004 세계사회포럼의 문제점
(1) 두 개의 포럼 - 워크샵 중심의 장내 포럼, 거리의 민중 포럼
브라질에서 열렸던 3차례의 포럼이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강의형 포럼'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인도포럼은 다양한 민중문화를 동원한 길거리 시위와 퍼포먼스, 공연 등이 주가 된 '길거리 포럼'이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세계화의 직접 피해 당사자격인 농민,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 아동, 빈민, 불가촉천민(Untouchables) 집단인 '달리트' 등은 자신들의 전통 타악기와 춤을 앞세워 공연과 행진을 조직했다. 그들은 반전, 반미 구호도 목소리 높여 외쳤고 자신들의 문제를 외쳤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려의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사위주의 세계사회포럼도 문제이겠지만, 논쟁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공연과 행진만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의 알 수 없는 간극이 행사 내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의 한계와 문맹으로 인해 인도의 민중들이 참가하지 못하는 부분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었고, 또한 그만큼 투쟁의 내용을 알차게 준비하고 논의하지 못한 현실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2) 행사장안과 행사장 밖
그러나 더 문제는 춤과 행진, 연설로 먼지와 함께 뒤덮인 행사장의 열기 뒤에 정작 뭄바이의 민중들이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조직위가 발행한 비표를 착용하지 않는 한 경찰이 지키고 서 있는 행사장 문을 아무도 통과할 수 없었기에 뭄바이 시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행사장인 네스꼬 그라운즈 입구가 최대였다.
행사장 밖을 벗어나면 신발도 신지 못한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고, 가족 단위의 빈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하지만 빈곤의 심각성과 반인권성, 신자유주의에 의한 빈곤의 확산 문제를 논의하는 그 자리에 실제 주인공들은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나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과 행사가 시작된 16일 행사장 근처의 거리를 나갈 일이 있었는데 구걸하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에 마음을 아파한 적이 있었다. 행사 전에는 그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던 아이들이 행사가 시작되자 나에게 '맑시스트, 맑시스트' 라며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빈곤의 당사자인 이 아이들에겐 사회포럼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자신의 빈곤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것, 그 모인 사람들이 '맑시스트' 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것 밖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행사장 담 밖의 뭄바이 시민들은 세계사회포럼이 열리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세계사회포럼에서 주장되는 세계화의 문제도, 반전의 주장도 듣지 못했다. 인도의 대중조직들은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준비하면서 대중들을 교양하고 조직하지 못하였고, 또 그러기에는 너무 영향력이 미약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3) 여전히도 존재하는 서구중심의 운동
행사장에서 각종 공연과 행진을 할 수 있었던 인도 사람들은 기독교계 단체들에서 지원을 받은 단체 소속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비단 인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3세계에서 민중들과 밀접하게 결합하여 활동하는 단체들이 이번 포럼에 참가했다기보다는 서구의 펀드를 받고 언어구사능력을 갖춘 단체 활동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세계 절반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서 열렸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서구 단체들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서구의 단체들은 제3세계 민중들의 투쟁의 성과물들인 토지와 물, 식량에 대한 권리를 승인해 주고, 그 투쟁을 마치 자신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외양을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참여한 비공식노동, 미조직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는 포럼에도 그 대상이 아시아의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의 주최와 발제가 대부분을 이루었다. 그들은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을 몸소 실현하고 있음일 것이다.
(4) 뭄바이 레지스탕스 (Mumbai Resistance)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다양한 입장그룹이 생기기 마련인데, 인도 공산당 그룹들이 세계사회포럼과 같은 기간 주최하였던 '뭄바이 레지스탕스'가 세계사회포럼이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유보하고 있고, 기회주의적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던 것은 한번쯤 되씹어 봐야할 것이다. 실제 인도 공산당의 20개 분파들은 다른 장소에서 세계사회포럼을 비판하는 '뭄바이 레지스탕스 2004'(Mumbai Resistance 2004)를 별도로 조직했다. 이들은 "세계사회포럼은 논의만 무성하고 실천에는 소홀하다. 대회 상층부는 말로만 반신자유주의, 반전 투쟁을 외친다"고 비판한다. 아직 여기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렵다. 세계사회포럼이 아직은 시작단계이고, 가진 자들의 세계화에 맞서 진보진영의 세계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아직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서 4회 째를 맞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이들의 행보 역시 주목해 봐야 할 일이긴 하다.
(5) 또 다른 단상들
장애인들의 접근권 보장 요구
16일 시작된 개막식은 아프리카 무용단의 격렬한 리듬 무용, 파키스탄 그룹의 노래로 막을 열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다른 세계를) 함께 건설하자"는 구호가 대회장 전광판을 장식했고, "반전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세계적 차원에서 결합하자", "뭄바이에서부터 그 행동을 조직하자"는 발언도 쏟아져 나왔다. 개막식 주변 광장에는 5만여 명의 각 국 참가단과 인도 참가단들이 개막식 내내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치고, 자신들의 주장을 알려나갔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은 아예 없고, 행사장에도 편의시설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으며, 개막식에조차 수화통역도 없다"며, 대회 조직위가 장애인들의 접근권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우리는 조직위에 이미 6개월 전부터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대회 조직위는 다음 대회에서는 이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여전히도 존재하는 성폭력의 문제
행사 기간 중 참가자들의 입과 현지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것은 남아공 출신의 변호사가 저지른 강간 사건이었다. 주요의제로 '가부장제와 성'이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건은 또다시 일어났고, 더욱이 가해자가 남아공에서 인정받던 진보적인 인권 변호사라는 이유로 사건의 방향은 더욱 가해자 비호로 흘러갔다. 현지언론도 그 사건이 심각하지 않은 사건임을 강조하며 이슈 거리로만 다루는 사이,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행사장을 청소하고, 설치하던 인도 노동자들의 노동의 권리
행사 기간 중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행사장안의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시설관리 노동자들(?)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 곳곳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화장실이며 행사장 거리의 곳곳의 각종 쓰레기를 분주히 치우는 여성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과연 이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행사 내내 고민이었다. 빈곤이 심각하고 일자리가 워낙 없는 인도에서 일시적이나마 일자리를 창출하는 계기는 되었을지언정, 행사가 끝나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하고 이들이 노동하는 동안 얼마나 노동권이 보장받았을 지는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개막식 행사장을 설치하던 인부가 안전장비 없는 환경 속에서 개막식 시설을 만들다 떨어져 다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노동자의 노동이 말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노동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에게 노동의 권리는 공허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5. 주된 활동과 우리에게 줄 시사점
지금도 인도를 떠올리면 먼지와 구걸하는 아이들, 노숙자, 향신료의 맛과 냄새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의 절대적인 빈곤은 정말로 심각하기에 그들의 삶에 모두들 절망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활동가로서 이들의 빈곤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경비로 가지고 간 몇 푼의 돈으로 이들의 빈곤이 해결 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인도 참가자들이다. 그들은 세계사회포럼 기간 중에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유인물을 나눠주고 퍼포먼스, 시위를 하며 끊임없이 말했다. 카스트 제도의 철폐를 말했고, 그들의 빈곤과 열악한 노동을 말했다. 그들 중 많은 수를 차지했고 눈길을 끈 것은 비공식부문 여성노동, 아동노동, 주거권 보장 등이었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비공식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착취당하는 아동들, 거리에 노숙하며 빈곤한 상태로 살아가는 노숙자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1) 여성과 비공식 부문
인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의 여성노동력은 대부분 비공식 영역에서 존재한다. 우리와 같은 비정규직의 문제보다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경우 주로 여성들의 비공식 부문이 심각성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사회포럼에서는 잘 알려진 인도의 SEWA뿐 아니라 NCL 등의 조직들이 인도의 비공식노동에 대한 심각성을 말했다. 비공식 부문 성공사례나 미조직 노동자와 조직 노동자 사이의 단결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주제로 이루어진 워크샵과 세미나에 참가했는데, 이 비공식 부문의 노동은 우리 나라에서 심각한 여성노동의 문제다.
5개의 주제를 가지고 '여성과 세계화'라는 3000명 정도가 참여하는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많은 여성들이 참석했으며, 폭넓은 여성들의 상황을 논의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세계여성행진", "아시아 이주여성노동자", 필리핀 ISGN의 주최로 진행이 된 아시아 수출지역에서의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룬 "세계화, 여성, 그리고 유연화" 등에 참가해서 많은 좋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2) 아동노동
인도에 흔한 노동이 바로 아동노동이다. 주로 5살 때부터 시작하는 아동노동이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이들은 '공부할 권리'를 저당 잡힌 채, 어린 시절부터 착취를 받으며 노동자로 살아간다. 아동노동반대국제행동에 따르면, 인도 10억 인구 중 2억4600만 어린이가 아동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주로 5∼6세에 시작해 16살까지 이어지는 노동인데, 돌 줍기나 가사노동(물 길어오기, 빨래하기, 갓난아이 돌보기)이 주를 이룬다.
벽돌공장에서 기계 속에 들어가 돌을 꺼내올 수 있는 일은 몸집이 작은 아이들만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장에서는 주로 부모가 진 빚을 대신 갚게 하기 위해 아동을 고용하고 이들에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 부모 빚 탕감조건으로 애를 팔아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래서 아동노동반대국제행동은 이런 노동을 '노예노동'이라 부른다고 했다.
(3) 이주노동자 문제
참가의 주된 목적 중 두 번째는 이주노동자의 현안 문제를 알리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행사 기간 중 이주노동자 관련한 포럼에 참가하고 집회를 해서 한국 정부의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정책을 알리고, 이에 항의하는 서명을 받아 1·28 국제행동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서명은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의 많은 참가자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진행되었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투쟁했던 네팔 출신의 버즈라 동지와 12월 30일 강제추방 당한 방글라데시 비두 동지가 참석하여 이주노동자 관련 포럼에서 한국의 적나라한 투쟁 사례를 선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회 준비와 현지 사정의 문제로 21일 폐막행진 전에 사전집회로 예정된 아시아 공동집회는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이미 91년 ILO에서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정부는 어떠한가. 아마도 한국정부는 그런 상식조차 모르는 무식한 놈들인가 보다 싶은 생각만이 머릿속에 절로 났고, 한국처럼 강제추방을 시킨다거나 하는 극악한 나라가 없음을 알고 내가 이런 야만적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내내 부끄러웠다. 이제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전세계적이다.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제3세계 아시아의 국가에서 동북아로, 동북아 노동자는 유럽과 미국 등의 1세계로 그렇게 노동력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에만 있지만, 노동이 이동하는 지금의 흐름은 전세계에 이미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가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6. 나오며 - 2005년 세계사회포럼은 다시 브라질에서, 2006년 사회포럼은 아프리카에서
그럼에도 2001년 다보스 포럼에 대항해 처음 개최되었던 때와 비교하면, 매년 되풀이되는 소모적인 논의를 넘어 구체적인 세계적 차원의 운동을 합의해나가게 된 것은 소중한 발전이다. 이 세계사회포럼의 영향으로 유럽사회포럼, 아프리카사회포럼, 범아마존사회포럼 등 대륙별 토론이 활성화되고, 각 국에서도 사회운동간의 연대를 높여 가는 포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세계사회포럼은 내년에 다시 브라질로 갔다가 다음 해에는 아프리카로 가 더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낼 예정이다. 물론 세계사회포럼은 아직도 많은 난관들이 존재한다. 세계사회포럼이 말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대안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세계사회포럼 헌장에 명시된 정당대표의 참여 불가로 정당의 참여 문제가 여전히도 논쟁거리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받아 안아야 할 것도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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