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이 통과되고 난 이후 5년간의 경험을 우리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파괴'와 '노동기본권의 무력화', 그리고 '저임금·주기적 해고·노예노동의 확산'이라 요약할 수 있다.
2000년 6∼7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수만명의 파견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파견법 6조 3항 "2년 이상 계속 사용한 파견노동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직접고용의무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용업체가 파견노동자를 교체 또는 해고한 것이다. '파견노동자에 대한 학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2년의 기한이 돌아오는 파견노동자들은 주기적으로 해고되고 있다. 파견제의 합법화는 불법파견을 규제하기는커녕 반노동적, 반인권적인 간접고용 사용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파견제가 새로운 취업기회를 보장해 주리라는 자본의 논리는 철저한 기만에 불과했다.
정규직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고 그 자리를 파견·용역노동자들로 채우고 있다. 외주·용역화·분사화를 통해 정규직의 일자리는 급속하게 간접고용화되고 있다. 근로자파견제는 정리해고제와 함께 일상적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견·용역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이란 장식물에 불과하고,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도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의 집요한 노조와해공작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무권리의 노예노동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자본의 줄기찬 요구에 고무받아 또다시 이러한 노예노동을 제도적으로 확산하는 입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부에서는 2월 24일자 한겨레신문 탑기사를 통해 현재 건물청소원·전화교환원·경비원 등 26개 업종으로 제한해온 파견직을 특정 업종에만 금지하는 방식(네거티브 리스트)으로 바꿔 사실상 모든 업종에 파견 노동을 허용하고, 대신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파견업체에만 업종 제한을 풀어 파견직 남용을 막도록 하는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5월 노사정위원회의 공익위원안 제출 이후 노동부에서 자본의 입장을 대변해 끊임없이 제기해온 파파견업종 확대 논리에, '정규직을 고용하는 파견업체'라는 희귀한 논리가 덧붙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03년 민주노총과의 간담회를 통해 네거티브 리스트제의 도입과 함께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뒤에는 일정기간(6개월 또는 8개월)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파견직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휴지제'를 도입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파견노동의 남용을 규제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파견노동 관련 노동부 안
모든 업무에 파견제 사용 가능 (금지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제 사용 자유화 :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파견기간의 연장
-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사업완성에 일정한 기간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에 필요한 기간만큼 파견기간 연장
- 고령자 등 재취업이 어려운 계층에 대하여 파견기간 연장
- 제조업이 파견허용 업무에서 제외되면, 일시적 필요에 따른 파견을 1년까지 허용
특정 일자리에 파견근로자를 교체하여 계속 사용하는 것을 제한
- 파견기간 종료 후 일정기간 동안은 파견제 사용을 제한
- 이 제한기간 중 계약직으로 일시 전환 허용 검토
자본은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로 인해 파견법이 사회적 문제로 재등장한 2000년부터 파견법 확대를 계속해서 주창해 왔고, 우리는 이 오래된 논쟁 속에서 노동계의 입장으로 논의구도를 바꾸어내지 못했다. 결국 2003년 5월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으로 파견법 확대와 관련한 논의기구 설치안이 상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부는 파견업종의 전면확대를 비정규직 대책의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총선 이후 입법절차를 밝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파견법 확대 논리 비판
- 불법파견은 지나치게 엄격한 파견법 때문이다?
불법파견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조업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처럼 도급을 위장한 파견이 급증하고 있고, 서비스업에서는 판매직의 파견노동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증가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조달청물자계약 통해 파견노동을 양산하고 있고, 서울대병원 간병인 등 병원과 같은 공익적 성격을 지닌 사업장에서 역시 파견노동이 늘고 있다. 건설, 타워크레인, 레미콘, 경기보조원 할 것 없이 간접고용 노동자가 확산 추세에 있으며, 이중 상당수는 위장도급-불법파견 노동자로 볼 수 있다. 제조업, 판매서비스직, 공공부문 민간부문 할 것 없이 불법파견은 노동부의 방관과 비호 속에서 양적으로 이미 성장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는 분명 규제의 대상이지, 양지로 끌어올려 합법화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98년 파견법이 제정될 당시에 뇌까렸던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어이없는 핑계를 6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그간 6년여에 걸친 파견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스레 불법이 횡행하니 불법을 합법화하자니 말이 되는 논리인가.
2000년 SK인사이트코리아, 2001년 캐리어사내하청, 대송텍, 대성산소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개했던 투쟁을 통해, 우리는 불법파견의 문제가 또하나의 투쟁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 SK인사이트코리아 대법원 판결로 인해 한계적이나마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구제책이 마련되었고, 이에 고무받아 투쟁을 조직한 미포조선 용인기업, 금호타이어 사내하청 등에서 역시 확인할 수 있듯이 불법파견 문제는 비정규직투쟁의 또 하나의 매개고리로 작동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용사업자의 책임을 물었고, 노동부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2004년 금속연맹은 대대적인 불법파견 근절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파견법이 확대되면 불법파견에 관한 논란의 여지조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만 3년여의 투쟁의 결과인 SK인사이트코리아 판결의 수혜자 역시 더 이상은 없을 듯 하다.
- 파견업체 정규직이면 오히려 고용안정성이 보장된다?
올해 새롭게 정부에서 주요하게 제기하는 논리는 '파견업체에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파견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업종에 파견 노동을 허용하도록 하는 대신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파견업체에만 업종 제한을 풀어 파견직 남용을 막을 수 있고, 이 경우 파견업체는 사용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노동자에게 휴업수당이나 임금을 지급하는 등의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결과가 예상되는가? 먼저 예상되는 것은 맨파워사와 같은 대규모 파견업체의 등장이다. 시장에서 상품을 팔듯이 인력시장에서는 노동자가 거래된다. 인력상품시장 역시 대규모인력파견회사의 등장으로 인해 안정적인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것이고, 이로 인해 파견노동은 부작용을 줄이면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방송사에서 파견직 노동자들이 2년마다 MBC에서 KBS로, KBS에서 SBS로 옮겨가는 것처럼 몇 개 회사가 공동으로 파견노동자들을 돌려쓰는 것이 예상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선별고용이 가능함은 물론이다. 사용업체의 파견업체에 대한 입김은 절대적인 것인 만큼 사용업체의 눈밖에 난 노동자 파견업체 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다.
셋째로 휴업수당 등의 명목으로 인해 파견업체의 중간착취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그로 인한 파견노동자의 저임금실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뻔하다. 생산시설을 보유하지 않아, 그 어떠한 것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오로지 파견노동자 임금착취로 이윤을 담보하는 파견회사가 과연 휴업수당 등의 제반비용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파견노동자들은 오히려 증가된 엄청난 액수의 중간착취를 또다시 감내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자본력 없는 파견업체의 잦은 휴폐업과 도산을 노동부가 어떻게 일일이 다 감시 감독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무허가 파견업체가 더욱 판을 칠 것이고, 노동부의 소홀한 감시감독은 이들을 가려내지 조차 못할 것이다.
결국 실질사용자와 고용사업주가 다른 '파견'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 파견업체에 정규직인지 아닌지는 시실 중요한 것 아니다. 파견업체는 아무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는 브로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령 파견업체가 정규직으로 고용을 한다 하더라도 파견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무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파견노동자의 교체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정부는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대신, "파견노동자의 교체사용을 제한"한다는 명목으로, 어떠한 업무에 파견노동자 사용한 후 일정기간 동안은 다른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중단기간'을 두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단기간 동안 계약직으로의 일시전환은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 안이 전혀 비정규직 악용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노동계에서 주장해왔던 '파견노동자의 교체사용 제한'과는 완전히 질이 다른 것임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파견노동자의 교체사용이 의미하는 것은 해당업무가 임시업무가 아닌 상용업무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파견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비정규직 억제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정부안이 현실화 될 경우, 동일한 업무에서 <파견노동자 사용 계약직 사용 다시 파견노동자 사용>이 가능하게 되어, 사실상 비정규직을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파견법 확대의 본질
- 고용외부화의 이점 극대화
파견노동을 사용하는 자본에 있어 고용의 외부화는 수많은 이점을 가져왔다. 노동비용의 경감은 기본이고,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성을 회피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고, 또한 파견노동자들에게 노동쟁의의 당사자로 지목되지 않을 수 있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내몰린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다 열심히 일했고,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법원은 사용사업주를 파견노동자들의 실질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용사업주는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효과적으로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자본은 일본과 독일의 사례들을 끌어와 논리를 만들고, 정부를 설득했다.
대기업들은 이제 사용사업주의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견회사 를 직접 만들어 인력파견시장에서 역시 한몫을 단단히 챙겨가고 있다. 인력파견과정에서의 중간착취 역시 자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현대자동차는 웰비스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이 자회사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아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고용외부화의 이점에,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중간착취까지. 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대기업이 인력파견업에 뛰어드는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점차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파견노동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간주
고용'과 '사용'이 분리, 즉 근로계약관계와 지휘명령관계가 분리된 파견근로관계를 먼저 인정한 이상은 파견대상업무의 원칙적 자유화를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2001.3.8, 파견근로자법적지위에대한토론회 경총 발제문 중에서
98년 근로자파견제가 통과될 때만 해도 비정규직의 사용은 임시적, 간헐적 업무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이번 파견법 확대기도를 통해 확인된 것은 정부가 인정했던 그 알량한 전제마저도 이제는 송두리째 던져버리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은 파견법의 통과 자체가 파견대상업무의 원칙적 자유화를 전제한 것이라 끊임없이 주장해왔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건전한 발전 운운하며 정부는 자본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받아 안아 파견노동을 임시적인 업무에 사용하는 것 아니라 상시업무에 언제라도 투입할 수 있는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정규직의 사용을 임시업무가 아닌 상시업무에 활용하겠다는 정권과 자본의 의지는 파견법 개악 뿐 아니라 단시간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는 단시간근로자 특별법 입법화 시도에서 역시 찾아볼 수 있다.
- 불법파견 시비에서의 해방
불법파견 시비에서 자유로와진다는 것은 자본에게는 '불법'시비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 불법파견 판정시 함께 뒤따라오는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권고에서 볼 수 있는 사용자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굳이 도급의 모양새를 내기 위해 애를 쓸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불법파견의 여지마저 없어진다면 그야말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파견노동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모든 책임을 파견업체로 미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 목표는 제조업 노동의 파견노동화
'파견대상업무의 확대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제조업의 파견이 금지되어 있으나 해제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제조업의 파견이 금지되지 않고 대부분의 남자 파견근로자는 제조업 분야에 파견되어 있다. 원래 파견근로는 제조업 분야이든 비제조업 분야이든 기본적으로는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근로관계 아래에서 노무급부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조업 분야의 파견만을 계속 금지할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 2001.3.8, 파견근로자법적지위에대한토론회 경총 발제문 중에서
결국 정권과 자본의 의도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고용비율이 가장 높은 제조업 분야에 파견노동을 합법화하고 모든 노동자들을 노예노동으로 내몰겠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될 때만 해도 핵심쟁점인 건설과 제조업은 제외하는 것으로 논의가 맞춰지다가 정부입법안 논의단계에 있어서는 제조업에까지 규제를 푸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제조업에서 존재하는 1차, 2차, 3차하청 등이 모두 합법화된다. 상용화된 업무, 즉 라인업무에 투입되어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정규직 노동을 대체해 들어갈 것이다. 자연감원의 인원만큼, 또는 구조조정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만큼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하청노동자들은 2년마다 한번씩 해고될 수 있다는 주기적 해고의 위협 속에서 노동현장은 차갑게 얼어붙을 것이다.
파견법 확대는 민주노조운동의 사활을 걸고 막아내야 한다. 98년 파견법을 막아내지 못한 우리의 원죄로 인해, 이후 봇물 터지듯 불거지고 있는 파견법확대 논의구도를 아직 바꾸어내지 못하고 있다. 조직노동자들의 잘못된 합의로 인해 미조직노동자들이 6년간의 고통을 겪어 왔고 또 그 고통을 외면해 왔다. 이제는 파견노동의 고통을 전노동자로 확대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정권과 자본 앞에 또다시 무릎을 꿇을 것인가. 이제는 진정 조직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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