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이 올해로 세 번째를 맞고 있다. 4월 20일은 정부가 정해 놓은 장애인의 날이다. 어떠한 가치와 의미를 담지 못 한 채 1년 하루를 정해서 장애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 저러한 신체의 기능적 제한으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이 왜 ‘장애인’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은 정부가 만들어놓은 이러한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의 날’로 만들어왔다. 이제 4월 20일은 1년 365일 장애인이 안전하고 평화스러우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는 사회·물리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장애인 투쟁을 선포하는 날인 것이다.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투쟁의 날로 만드는 것이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의 목적이다. 또한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은 장애인 단체와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함께하는 연대투쟁이기도 하다. 이러한 4·20 투쟁은 기간 장애인 운동의 반성과 전망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배경과 의의를 살펴보자.
시혜와 동정의 ‘4·20 장애인의 날’을 넘어 주체로!
1980년 광주를 민중의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이슈를 내걸고, 비가 오지 않고 따뜻한 날을 골라서 1981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4월 20일은 장애인이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날도 아니고 그저 장애인을 불쌍히 여긴 통수권자의 의지에 의해서 주어진 날이다. 매년 체육관에서 영부인이 나오는 행사를 진행하는데, 1년 364일 집안에만 처박혀 있다가 하루만 도움을 받아 밖에 나올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따뜻한 사랑과 동정에 그저 감사하며 체육관에서 노래와 먹을 것과 경품 등을 받아가면서 그 하루만을 즐거워해야 했고, 그 날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장애인을 위로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그러나 그 날이 지나면 다시 사회적 감옥에 갇혀서 잊혀진 삶을 살도록 강요당했다. 이러한 시혜와 동정의 날을 거부하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간됨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이며, 투쟁의 주체로 다시 거듭나는 것이다. 시혜와 동정의 벽을 넘어 인간으로서, 장애인 당사자로서, 4·20을 차별철폐를 향한 투쟁의 시발점으로 삼기 위해서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기획단을 구성하였다.
최옥란 열사의 정신계승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이며 여성이고 도시노점상을 하면서 3중의 고통과 억압 속에서 삶을 꾸려가야 했던 최옥란 열사가 2003년 3월 26일 운명하였다. 최옥란 열사는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해서 전경련 앞에서 투쟁하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가고 아이를 잃어야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로서 지급받는 생활급여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한 겨울 명동의 들머리에서 “장애로 인하여 발생되는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고 생활급여를 실질화하라”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청계천8가에서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노점을 하였지만 집회에 앞장서고 투쟁하였다가 벌금고지서가 쌓였고, 동사무소로부터 수급권을 포기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시청 앞에서 전철을 멈추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소리쳤던 열사의 처절한 소리가 들린다. 이처럼 장애인 인권 확보를 위한 투쟁의 최선두에 최옥란 열사가 있었고 이러한 동지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 매년 3월 26일부터 4월 20까지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을 선포하고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장애해방을 향한 불꽃을 다시 세우며
남한에서의 장애인 운동은 1986년을 기점으로 한다. 그 이전에는 장애인의 입학 거부에 대한 투쟁, 고시에 합격하고서도 장애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이 거부된 것에 대한 투쟁 등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인식개선 운동이 주류였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시기였다. 80년 광주민주화 항쟁 이후 사회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발전으로, 개인적 차원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투쟁이며, 그것은 자본의 무한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장애인 배제적 사회구조와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1986년 장애인 운동의 출발은 억압적 사회구조를 철폐하고 장애해방을 이루기 위한 변혁운동이었다.
1992년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다가온 운동진영의 위기는 장애인 운동에도 중요하게 다가왔다. 위기 이후 장애인운동은 시민 운동적 장애인 운동과 변혁적 지향을 갖는 장애인운동으로 분화하였다. 1994년에는 장애인 대중과의 결합 모색과 살아남기 위한 조직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이후 전장협)로 변혁지향성을 유지해왔다. 1996년에는 체육관 행사와는 다르게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전국장애인 고용 촉진 걷기대회’를 통해 장애인 대중 중심의 투쟁을 했다. 노들야학을 만들고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센터를 만들고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연구팀을 만들고 강남구청에서 노점 단속에 항의해 분신하신 최정환 동지의 투쟁과 아암도 이덕인 열사 투쟁에 적극 결합하면서 전국노점상연합과 함께 장애인자립생활추진위를 만들어 청계천에서 장애인도 노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전장협은 투쟁의 현장에서 ‘장애 해방’을 기치로 1999년까지 투쟁을 전개했다.
전장협은 1999년 이후 기존의 방식으로는 조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고 보다 대중적인 장애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국제장애인연맹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기회균등’을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와의 통합하게 된다. 또한 운동의 방식에 있어서도 시민운동적 방식을 대폭 수용하면서 장애해방의 기치를 내리게 된다. 이 시기는 장애해방을 향한 조직적 지향이 침체되고, 개별적 차원에서 운동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게 된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수직형 리프트에서 추락 사망한 참사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 투쟁을 통해서 장애 해방을 향한 대중투쟁이 시작되고 투쟁의 전면에 중증장애인들이 주체로 나서게 된 것이다.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은 바로 시혜와 동정에 맞서 투쟁을 통한 권리의 획득에 나선 장애인들의 반격이며, 장애해방을 향한 대중투쟁의 기치를 세우는 투쟁인 것이다.
2005년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의 의미
2005년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슬로건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의 투쟁이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문제를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만들거나 재활의 문제로 인식하여, 장애는 개인의 운명이며 개인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을 재생산해내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계속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입각하여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장애 해방은 실현되기 어렵다. 분리에서 통합으로, 수용시설에서 자립생활로, 개인적 문제에서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의 문제는 역사적인 것이다. 사회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이 어떤 사람들에 대해 비로소 ‘장애인’이라는 차별적 집단으로 낙인을 찍고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물리적 환경이 장애인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실질적인 힘이기에 이를 극복하는 운동으로 전면화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참여와 평등이 실질적이며 구조화 되도록 장애인의 권리가 명문화되어야 한다.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은 각 영역별로 진행되는 사안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현 정부와 자본에게 장애인의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다. 각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가지고 제 시민 사회운동단체들과 함께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연대인 것이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서 장애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의제화하면서 자본의 경쟁과 효율성의 허구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대중운동인 것이다.
2005년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노동자들이 전태일 동지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전국노동자대회를 조직하듯이, 최옥란 열사가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제 1회 전국장애인대회를 조직하였다.
장애인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투쟁을 선포하고 장애인 스스로 쟁취한 장애인의 날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투쟁의 날로 다시 제정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역사 속에서 장애인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변혁의 담당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야 하는 것이다. 제 1회 장애인대회의 명칭을 이야기하면서 ‘장애인대회’라는 명칭이 관변스럽다는 이유로 문제가 제기된 바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의 장애인대회가 얼마나 관변화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장애인들은 2005년 ‘제 1회 전국장애인대회’를 통해 장애인의 역사적 사명과,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변혁의 주체로서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복원시켜야 한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로서 생동하고 살아있는 이름이 되어야 한다.
2005년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장애인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으로 권리를 획득하고 장애해방을 향한 사회변혁과 장애인 대중투쟁의 강화·발전에 복무해야 한다. 그동안의 4·20투쟁은 진보적 장애인연대체를 건설하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장애인 대중 투쟁은 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고 사회 역사적 발전과 합치되는 방향으로 장애해방과 인류의 보편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진보적 장애인 연대체 건설을 추동하고 있다. 2005년의 4·20 투쟁을 통해서 보다 광범위한 장애인 단체의 대중적 투쟁을 경험으로 하여, 사회적 차별과 차별적 구조를 생산하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진보성을 실현하는 조직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투쟁하자!
2003년 10월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연대가 결성되어, 2004년 11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고 법제정을 준비 중이다. 4·20 투쟁은 기간 장애인 복지의 틀을 깨고서 인권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복지에서 인권으로 넘어가기 위한 중차대한 투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 장애계가 이 사회에서 받은 억압과 차별을 담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었고, 이는 복지적 틀을 거부하고 장애인의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선포이다. 광범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은 제 시민·사회·인권단체와의 광범한 연대를 통해서 사회적 차별의 근원을 뿌리 뽑는 투쟁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이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현실로 나타내는 준거의 틀이자, 장애인 대중의 요구와 이해에 기반한 장애인 당사자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인간 보편의 권리이다. 2005년 4·20 투쟁은 부분의 요구가 아닌 전 장애인의 요구로서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되어야 한다. 이번 4·20 투쟁에서는 전 장애인의 염원인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과 국가독립기구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를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실효성 있는 법률이 되기 위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시정 명령 등 강제적 권리구체조치가 담겨져 있는 법안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의 모든 일상에서 차별에 저항하지 않으면 인간성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2년에 걸친 자립생활을 하다 우리 곁을 떠나간 이현준 열사를 생각하면 장애인에게 이 사회는 매일 목숨을 건 투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차별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