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뉴코아-이랜드 투쟁 1주년이 되었다. 비정규악법이 통과되고 무기력에 빠져있던 비정규투쟁을, 다시 비정규악법 폐기 전선으로 일으켜 세우며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정규투쟁의 상징이 되었던 뉴코아-이랜드 투쟁. 사실 운동권이라면 누구나 매장 봉쇄를 한 번이라도 해보았을 것이고, 전국 지역의 홈에버, 뉴코아 매장을 타격, 봉쇄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작년 여름을 지냈다.
그리고 1년 후, 고된 1년의 투쟁으로 인해 작년처럼 뜨겁게 투쟁을 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투쟁 1년 다시 힘을 모아 투쟁을 해야겠기에 작년 1년을 되돌아보면서 투쟁의 기운을 높일 수 있는 인터뷰를 뉴코아 수석부위원장 김호진 동지를 만나 들어보았다. (정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조직부장 안그라미)
◯ 뜨거웠던 07년 투쟁을 준비해온 과정
2007년 투쟁을 하기 전까지 뉴코아 노조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IMF때 뉴코아가 부도나고 97년에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그때 당시에는 손쓸 틈도 없이 비정규직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특히 부도 난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깐 정규직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어요. 그래서 00년부터 비정규직에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03년도로 기억을 하는데 10개월 이상 근무를 한 직접고용 계산직 비정규직에 대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단체협약에 대해서 맺었어요. 그런데 노조에서는 전원이 전환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고, 회사는 채용절차에 따라서라고 해서 회사랑 이견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체협약에 의해서 꾸준히 정규직 전환이 된 편이지요.
그리고 05년도에 주5일제 투쟁을 했습니다. 15일간 파업투쟁의 요구 중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주 5일제를 비정규직 동일하게 적용하라는 요구였어요. 하지만 파업은 정규직만 했고, 파업한 정규직을 자리를 비정규직이 채워서 일을 했어요. 그리고 파업투쟁 승리로 근무했었던 비정규직의 주5일제를 따냈습니다. 그런 토대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조직화를 했었는데, 주5일제투쟁이 도리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괴리감만 늘린 결과로 나타났어요. 왜냐하면 정규직이 떠난 자리를 비정규직이 지켜야 했고, 정규직이 주5일제를 했지만 비정규직은 임금이 감소하는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주 5일제 하는 정규직과 불안정한 주 5일제를 했던 비정규직이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만 해도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비정규직을 시혜적인 관점으로 바라 봤던 것 같아요. 특히 그들의 요구도 무엇인지 몰랐구요. 그때 05년도에 1차 구체적인 조직화가 실패로 돌아가고, 비정규직에 대한 접근을 단순하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 그러다가 06년도에 구체적으로 조직화 작업을 하다보니 요구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정규직화만 되면, 현장에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러던 중 아웃소싱이 일부 진행이 되었어요.
: 실패한 원인을 살펴보자면 조직화를 하려고 했으나 그들의 요구를 몰랐다는 것과 그들을 조직화 하는데 전혀 노동조합이 토대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죠. 또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직가입이냐, 별도노조냐 라는 것도 내부적으로 정리를 하지 못했어요. 그때 당시에 조직하려고 했던 직종은 판매였습니다. 판매직이 뉴코아 같은경우에는 직접고용이 없었고, 이랜드는 판매직이 직접고용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로 생활용품 파는 매장이 이랜드랑 똑같이 될 것으로 예상했어요. 그래서 직접고용으로 채용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회사가 매장을 차리고 나서 아웃소싱을 해버렸어요. 기존의 이랜드와는 다른 방식이었죠. 그 과정에서 아웃소싱 반대투쟁을 했으나, 법적으로 그 매장과 뉴코아의 관계는 입점업체의 관계에 불과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투쟁에 힘이 실리지 못했고, 그러면서 조직화를 실패했어요.
: 또한 판매직종과 함께 킴스클럽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같이 논의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같이 조직하던 비정규직 조직화가 실패하고, 불법도급으로 싸우기가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같이 진행이 되었는데 한쪽이 잘 안되면서 둘다 진행이 되지 못했어요.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을 조직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 이랜드 인수 때부터 예견되었지만 많은 부채를 가지고 뉴코아를 인수한 상황을 보면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구조조정에 바람을 먼저 받는 곳이 비정규직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비정규직의 고용문제를 지켜내지 못하면 정규직이 그 문제를 다시 떠안게 된다는 두려움도 있었구요.
: 그래서 비정규직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게, 사유를 제한(유가 병가에 따르는 결원이 생겼을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것)하는 것과 근무하는 직원에 대해서 정규직화라고 이야기를 꾸준히 했었어요. 근데 그 때까지만 해도 킴스 할인점을 제외하고 비정규직이 없었어요.
: 실패이후에 간담회 등의 과정이 있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통의 문제가 크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07년 들어서 사 측의 구조조정 가속화를 감지를 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비정규직이 조직이 될 수 있었어요. 구조조정의 시작은 정규직부터 였습니다. 법 시행 전에 PDA를 통한 정규직의 구조조정과 함께 비정규직은 외주화라는 것이 뉴코아 사측의 입장이었지요. 그래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모두의 구조조정에서 구체적으로 싸우자라고 비정규직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이야기 했던 것이 "우리는 비정규직만을 위해서 싸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은 같은 운명인 것 같다. 그래서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싸우자 대신 정규직 노조가 먼저 저버리지는 않겠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 같이 하자!"라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조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니 '100%다 정규직 시켜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든 정규직이든 요구사항을 다 할 때까지 함께 싸울 때 가능하지 않겠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원을 조직하기에는 쉽지는 않았죠. 여전히 '못믿겠다'라고 하는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산원 비정규직 350명 중에 150명정도만 가입을 했고, 두 개의 노조가 아닌 단일노조로 직가입을 받았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조직할 때 항상 있는 것이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투쟁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아서 마찰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마찰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도 갈등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죠. 그러나 이 투쟁을 승리하든, 실패하든 현장으로 돌아가면 그간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신은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동조합이 생기고, 노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의식적인 사업배치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단 한 번의 계기는 인식이 전환된 것은 아닌 것 같고, 언제나 계속 직접적인 의제로 계속 논의되왔던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관적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사업장에 국한한 정세로 보지 않고, 총자본과 총노동의 구조적인 흐름과 과정에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 되었던 점들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한 두 번의 계기가 아닌 꾸준한 노력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 사실 노조로 직가입 받았을 때도 논쟁이 많이 되었으나, 그런 것이 그리 오랜논쟁이 되지 않고 수그러들었던 것은 비정규직 위한 정규직의 희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싸움에 비정규직이 힘을 보태는 것, 그러니깐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조에서 비정규직에 관련된 교육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에서 한 단계 나아가서 우리노조의 특성도 반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노조 운영이 중앙집중이었고, 그 간부들이 초창기부터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어쨌든 간에 현실은 어렵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현장에 국한해서 고민하면 같이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현장만 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싸움이 실패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겠죠. 사실 총노동과 총자본의 역관계 속에서 나타는 것들을 알아야지만 연대투쟁, 또한 하나가 되어 투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현장싸움이 되면 사실 이해관계가 충돌이 된다. 사실 일상적인 현장에 있었던 상황이었다면, 이런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정규직의 구조조정과 같이 맞물리고 파업이라는 공간에서 투쟁이 폭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면파업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큰 파장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결과론적일 수도 있지만 주 5일제, 그리고 07년 구조조정 파업도 의식적인 파업이었습니다. 법시행 전에 의식적인 파업을 돌입하지 않으면 이런 공간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라는 고민이 있었고, 서둘렀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작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파업에서 상쇄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 07년 뜨거웠던 투쟁
그동안 공장을 멈춰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매장을 멈춘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라고 많이 생각했는데, 이것을 현실화 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 저희는 의식적으로 매년 파업을 해왔습니다. 예전에 코스콤투쟁 초창기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파업의 공간 자체가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같이 될 수 없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파업을 한 해만 쉬더라도 현장에서 현장의 노조 장악력이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딜가든 의식적인 파업을 꼭 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파업을 해도 실질적으로 매장을 멈추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현장에서 나오는 방식이었죠. 업무를 거부하는 형태의 파업이었습니다. 항상 내부적으로 영업현장을 멈추지 못하는 한 파업도 한계가 있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엄두를 못냈어요.
매장을 멈춘다, 점거를 한다는 것이 구속이 될 수도 있는데, 조합원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마찰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 그때 저희가 무기한 파업을 돌입하면서 쉽게 다시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나가면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었죠. 왜냐하면 이 싸움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총체적인 구조조정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밀리면 모든 것을 내줄 수 밖에 없는 흐름이라는 것 위기감 절박함이 있었고, 그런 와중에 이랜드노조가 홈에버 상암점에 먼저 점거가 들어갔지요. 그래서 이 전술이 실제 가능하다고 하는 판단에 확신을 가졌죠. 그리고 내부적으로 고강도 투쟁을 했던 것이 짧고 굵게 끝내야 한다는 등이 이해받을 수 있는 분위기었습니다. 고강도 투쟁을 구사하지 않으면 파업은 장기화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조 내에 논란은 있었지만 큰 논란없이 동의 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체들도 스스로도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굉장히 힘을 받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해서 업되있다고 하죠?
:사실 용역퇴근투쟁을 고민을 하지 못했던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파업들어가기 전 될까말까 반신반의했는데,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실제적으로 용역퇴근투쟁이 실질적으로 진행이 되었고, 성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녹초가 되도록 용역들이랑 싸웠죠.
: 사실 우리 노조는 패배의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매년 파업을 해왔었죠. 그것이 하루든 이틀이든 그런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조합원들 내부적으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간부들이 결정한 전술이 집행이 되었던 결과를 나았던 것 같습니다.
1년간 정말 여러 가지 전술을 다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손도끼 사건이 있은 후로는 정말 조합원들이 매장으로 들어가기를 주춤거리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 지나와보니깐 강남 그 손도끼 사건이 굉장히 전환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도 제대로 준비하고 친 것이었죠. 그 이후로 솔직히 자신감을 많이 잃었고, 그것을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평가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폭발적인 투쟁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힘만 믿고 사 측의 돌발상황에 대해서 전혀 대비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 였던 것 같습니다. 영업손실이 많고, 업주들과의 싸움은 있었지만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도끼까지 들고나와서 설쳐대니 조합원들은 많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 다만 준비만 조금만 했다면, 가볍게 넘을 수 있는 고비였는데, 너무 예상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투쟁을 길게 하다보니깐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참 별것 아닌데서 온다는 느낌입니다. 그 당시 저 같은 경우에는 전화로 다쳤다라고 보고를 받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조합원들이 엄청난 심리적인 압박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죠.
: 또 한 가지는 계속되는 전술실패로 인해서 좀 힘들었다. 이랜드가 자체적으로 면목 들어갔을 때는 약간 시간이 많이 지나서였고, 잠깐의 문제였는데 그때 연타를 칠 수만 있었다면 정말 아릅다게 끝낼 수 있었지 않았을 까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된다. 잦은 전술 실패는 단순한 전술 실패가 아니었고, 조합원 모두에게 심리적인 위축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아요.
◯ 연대투쟁
투쟁이 소강국면으로 가면서 공동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공동투쟁을 하면서 정말 조합원 내부에서는 굉장히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을 극복하고 공동투쟁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 솔직히 이야기 하면 우리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데, 그 많은 사업장이 하나로 모아서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장의 문제를 현장의 문제로 국한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투쟁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뉴코아노조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또 다른 주체인 다른 투쟁사업장, 그리고 우리와 좀 다른 투쟁사업장(조건과 요구가 다른) 그런 연대에 대해서는 기회가 적어서 그런지 잘 안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조직적으로 대오를 끌고 나가서 연대 투쟁을 했던 것이 경제특구저지 경기도청집회였어요. 내부의 투쟁의 경험에 비해서 외부연대 경험역사가 짧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투쟁의 상승과 연대가 맞물려야 했는데, 어그러졌던 것도 있었고, 이것은 축적된 경험의 과정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것 또한 축적되었던 질적인 변화가 있는 과정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투쟁에서 다른 측면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면 연대를 하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연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내부에 있었던 것은 연대를 거부한다기 보다는 우리사업장의 절박함 때문인 것 같아요. 투쟁이 상승기에는 연대가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아요. 하지만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은 자기계획이 분명하지 않을 때 조합원들이 연대만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현실적으로는 저희가 활동공간이 경기도고,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연대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사실 재능 11시 집회에 경기도권에 있는 조합원들이 올라오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 파업 기간에 교육과 일상활동
파업을 하면서, 조합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단련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뉴코아 같은 경우는 파업기간 중 모범적으로 공동총회도 하고, 교육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세요.
: 지금은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는데, 나름 교육을 장기적으로 했습니다. 전면 파업들어가기 전에도 교육을 했었던 것 같아요. 꾸준하게 교육을 시도했죠. 다양한 주제로 교육을 고민하고 진행했는데 갑자기 이야기를 하려니 잘 생각이 나지 않네요.(하하)
: 사실 파업이라는 것이 역동적이기는 하지만 항상 머물러 있으면 침체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파업기간에 채워넣어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전술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파업이라는 과정으로 전술로서 채워넣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신이 아닌이상 전쟁이 아닌 이상 대단한 전술로 극복할 수 는 없는 것이고, 그런 부족한 부분을 교육으로 토론으로 채워넣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매일 투쟁을 하다보면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하지만, 욕을 먹더라도 해놓는 것이 축적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6.10항쟁이 어느 정도 기여해서 지금의 촛불을 만들었듯이,이러한 교육의 간접적 경험들이 제 2의 촛불, 제 2의 투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소개는 하기에는 그런데, 사실 총회는 자주했어요. 그런 것들이 투쟁이 힘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힘들어지고 총회를 자주하다보니깐 총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어요. 모이면 푸념을 많이 늘어놓으니깐요. 그런데 이런 소통의 공간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대오와 이렇게 투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현실이 힘든 것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힘든 것만 생각한 것으로 끝냈는데, 힘들다고 생각하는 확인 과정에서 동질감이 만들어지는 것이 버티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동질감을 갖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소통이라는 것이 모여서 이야기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건의함도 만들어보기도 하고, 몇가지 주제를 내서 답을 내보기도 하고, 지부별로 총회도 하고 또 전체 총회를 해서 이야기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서 보기도 하고, 기명으로 분임토론을 하기도 하고, 무기명으로 건의를 받아보기도 했어요. 또 게시판토론도 해봤지요. 그러고보니 참 다양한 것을 했네요. 잘 된다고 해서 그것만 계속해서 풀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을 들어봐야 되요.
사실 뉴코아노조는 투쟁을 시작하면서부터 뉴코아-이랜드 공동투쟁부터 시작해서 뉴코아-이랜드-코스콤 연석회의,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행동 그리고 지금의 공동투쟁단까지 많은 투쟁단위에 결합해있었는데, 이런 투쟁사업장과 단체들과의 공동의 행보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요즘의 공동투쟁단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세요.
: 얘기한대로 공투단이 투쟁사업장의 연합정도의 수준에 있기 때문에 방점이 다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이랜드랑 공동투쟁도 그렇지만, 실제로 연대를 뛰어넘는 공동투쟁가 되기 위해서는 요구와 목표가 같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동투쟁단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대 이상의 수준이 될 수없는 것 같아요. 요즘 공동투쟁단에서 가장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전술문제예요. 그런데 여러 목표와 요구를 가지고 있는 단위들이 모여서 공동의 목소리를 낼려면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요. 그래서 결국은 논의가 전술을 받을 수 있는지, 못받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되고, 일정중심의 이야기가 되고 사업장 내부의 요구가 다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한계적으로 다가와서 공투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것 같아요
: 우리 내부도 그래서 문제제기가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극복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투쟁을 하면서 뉴코아이랜드 공투, 공동행동, 공투단 다 가보고 있는데, 그런 단위들이 투쟁계획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기획력과 정책을 담보해야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 것인가를 전술논의를 해야하는데, 그런 것을 어느 단위에서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촛불정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촛불 국면이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도 무엇을 할 것인가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 위주로 이야기가 되고, 자꾸 회의적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손피켓이나 천막을 친다고 한다고 뭔가 해결되거나 시민들한테 알려지지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초,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권에게 비정규직은 끊임없이 요구하고,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촛불국면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안나오고 있어요. 이 국면에서 비정규투쟁의 이야기를 다시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 많은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듣는 것보다 조합원 내부에서 반응은 좋지 않아요. 같이 하지 못하고,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촛불집회에 사람들은 엄청나는데, 그 일은 내일이 아닌 것 같고, 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참 갑갑하기도 해요.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커져버린 느낌이예요.
◯ 다시 투쟁
현재 뉴코아-이랜드 투쟁 다시 한 번 더 일어서야 할 국면이다. 계획이 무엇인지?
: 일단은 비관적인 것은 생계문제가 더 절박해졌다는 것이예요. 그나마 노조에서 지원이 있었는데, 6월 이후에는 그것마저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생계 때문에 투쟁을 끝낼 수도 없고, 생계와 투쟁을 병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6월말이 기점인 것 같아요.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고, 조합 내부에서 집단농성을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계기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현실은 바뀌는 것이 없는 것 같고, 교섭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만난지 오래되었지만 내 스스로가 투쟁을 결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고 1년간 투쟁을 하다보니 참으로 많은 것들이 발목을 잡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다시 촉발해 낼 수 잇는 계기를 못 잡으니 내 투쟁으로 쉽게 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단 이랜드의 깡문제 등 회사의 불법행위를 압박하는 전술을 생각하고 있고, 간부들의 고강도 투쟁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버티는 것도 대단한 전술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버틸 수 있는 힘은 처음 비정규직을 조직했을 때, 먼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먼저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말을 했던 그 약속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