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닌가? - 대법원 판례에 대한 비판
1999년 이후 학습지교사, 건설운송노동자,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A/S기사 등이 잇따라 노동조합을 결성함으로써 특수고용노동자의 기본권을 둘러싼 노자간의 갈등도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이 속에서 노동부, 검찰, 노동위원회, 법원의 판단이 엇갈려 혼란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판례가 연달아 나와서 이미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동자들도 애써 획득한 권리를 박탈당한 위험에 처해 있다. 한편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노사정위, 노동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등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오히려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로 보지 않으려는 시각 속에서 진행되고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꺼리이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특수고용노동자는 과연 ‘근로자’가 아닌가? 대법원의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 같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기준이 무엇이고 어떠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노동자성 판단과 관련하여 대법원의 기본시각이 나타난 것으로서 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22859 판결을 든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계약의 형식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위에서 말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하여 정하여지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과정에 있어서도 사용자로부터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 감독을 받는지 여부, 사용자에 의하여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여부, 근로자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업무의 대체성 유무, 비품, 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이 있는지 여부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져 있는지 여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 등 다른 법령에 의하여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지 여부, 양 당사자의 경제, 사회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대법원의 판단 기준을 현재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용해 보면 상당수의 경우 노동자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판례는 계속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법원의 판단기준과 실제 적용 사이에 괴리가 있을 뿐 아니라, 판단기준 자체를 지극히 형식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기존 판례의 노동자성 판단방식은 어떠한 면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첫째, 대법원은 사용종속관계 판단에 있어서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구체적, 직접적 지휘■감독을 받는가” 여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가 여부”등과 같이, 좁은 의미의 인적 지휘명령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사용자가 실시하는 교육에의 참가 의무, 업무실적에 대한 통제 등은 위탁계약의 이행과정이거나 회사가 위탁자의 지위에서 행하는 최소한의 지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외근형노동이 주된 업무인 경우 업무수행과정 그 자체에 대한 지휘■감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신 업무수행방식의 표준화, 일상적 교육, 업무실적에 대한 감독 등을 통한 지휘■감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의 지정 여부와 관련해서도 ‘위탁계약서’상에 정함이 없을 뿐이고 실제로는 일일업무수행 일정에 따라 근무시간■근무장소가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1997년 개정을 통해 근로기준법에 ‘선택적 근로시간제’(제51조), 사업장밖 근로에 대한 ‘근로시간계산의 특례’(제56조) 등의 규정이 신설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종래 정규직 노동자의 근무시간■근무장소의 고정된 유형을 잣대로 사용종속관계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대법원은 보수의 지급방법, 취업규칙 등의 적용여부,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나 사회보험의 적용여부, 사업자등록 등 회사의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사항들을 근거로 사용종속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모두 경제■사회적 지위가 우월한 사용자가 그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부수적이고 한정적으로만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 부천지원의 판결과 같이, 이러한 요소는 오히려 회사의 비용절감을 위하여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탁 내지 도급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완전성과급이라는 불안정한 보수, 법정임금 및 사회보험 미적용, 사업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지위를 열악하게 만들고 반대로 회사의 비용을 전가하는 수단이 되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대법원은 회사가 노무공급관계의 성립과 종료를 주도하고, 의무위반에 대해 사실상의 불이익 조치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취업규칙상에 징계규정이 없을 뿐이고 업무수행을 게을리하거나 규정■지침을 위반하였을 경우, 관리자를 통한 교육 및 상담, 순번의 대기, 출장금지 등 다양한 불이익조치들이 가해진다. 뿐만 아니라 위탁■도급계약서상에 일방적 계약해지규정을 두고 있어 사실상 가장 강력한 징계규정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넷째, 대법원은 노무공급자의 전속성, 동종업무에 종사할 수 없고 자유로이 제3자를 활용하여 노무를 급부할 수도 없는 점 등에 대해서는 지극히 형식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나 영업의 자유가 봉쇄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2. 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이어야 하는가?
그동안의 법개정 논의는 특수고용형태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종속노동의 출현에 발맞춰 노동법상 근로자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과, 기본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로 보지 않는 전제 위에서 부분적인 보호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져 진행되어 왔다.
전자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진영의 입장으로서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 제14조의 근로자의 정의에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라는 규정을 추가하자는 견해이다.
후자는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특별위원회나 노동부 등의 입장이다.
노사정위 비정규특위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보호와 관련하여 오랜시간동안 논의를 진행해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공익위원 의견으로 제출된 것은 대략 ■노조법상 노동자성 인정, ■ 사회보장관련 법제의 적용확대, ■ 근로기준법 중 일부 조항의 적용, ■경제법리에 의한 보호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요컨대 공익위원 의견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위에서, 법상 보호를 일부 적용하는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다.
노동부는 2000년 10월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을 신설하여 시행령을 통해 임금보호, 해고제한, 산재보험 적용 등 노동법의 일부규정을 적용하되 퇴직금, 근로시간, 휴일■휴가 등에 관한 조항은 적용제외하도록 하는 법개정 방안을 검토한 바 있지만, 최근에는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시각에서 단지 단체결성권만을 허용하자는 입장으로 보다 후퇴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특수고용노동자의 대부분은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엄연한 ‘근로자’이다. 이들의 노무제공형태가 종래의 정규직노동자와 다르다고 하여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장은 실용적으로 부분적인 보호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이면서 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열악한 계층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일정한 범주의 노동자를 노동법상 근로자로 보지 않는 법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곧이어 대부분의 기업에서 노무이용형태를 이 새로운 범주에 끼워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보호를 위한다는 법개정이 오히려 더 많은 특수고용형태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한편 노조법상 근로자로만 인정하자는 견해도 현실적으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을 받게 되어도 현행 노동법 체계 속에서는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할 때 부당노동행위를 다투기 어렵다. 사용자의 개념을 넓게 보는 입장에서도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는 노동자와 근로관계에 있는 자로 좁게 보는 것이 보통이다. 법원의 보수적인 태도를 감안한다면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어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전반,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결국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이 노동3권의 실질적 향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용자 개념의 확대 뿐 아니라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각각의 내용과 관계에 관한 현재의 해석론 전반을 바꾸는 작업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인데, 이것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논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에 부합하고, 고용■취업 형태의 다양화에 따른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유력한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보장을 위한 법개정을 고민하기에 앞서 분명히 할 점은,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무실태를 정확히 살펴본다면 현행법 하에서도 충분히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1978년 이래 폭발적으로 제기된 이른바 ‘자유공동작업자’(매스미디어산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등)의 노동자성을 둘러싼 소송에서, 연방노동법원이 전통적인 인적 종속성 이외에 특수고용노동자에게서 나타나는 경제적■조직적 종속성을 인정하는 법해석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한 바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무실태를 정확히 살피기만 한다면 현재 판례가 제시하고 있는 종속성의 기준에 비추어보아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를 내세워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보장을 위한 법개정이 논의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법원의 편협한 해석을 견제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분명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법개정 논의의 출발점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분명히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3.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판단의 새로운 기준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주장처럼 근로기준법 제14조의 근로자 개념을 넓히게 되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그 외연을 확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함께 제기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무실태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지점을 고민할 수 있다.
■ 노무이용자가 가지는 권한
노무이용자(기업)가 노무공급관계의 성립 및 종료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사용종속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판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채용과정이 정규직노동자와 다르고 취업규칙상 징계규정이 없고 다만 계약해지사유가 정해져 있을 뿐이라고 하여, 해당 관계가 일반 채권계약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채용과정을 정규직과 달리 하는 것은 기업의 내부노동시장에서의 위계화를 목적으로 하는 노무관리전략의 일반으로서 여타의 비정규직(계약직, 시간제, 파견제) 사용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수고용형태에서도 일정한 자격에 대한 심사와 업무수행내용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징표가 나타날 뿐 아니라, 다양한 불이익처분 및 계약해지권을 통해 업무수행과정을 지휘■감독하고 있다. 따라서 노무공급관계의 형성과 존속에 관하여 노무이용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거나, 계약서, 업무지침, 복무규정 등 명칭을 불문하고 업무수행내용이 정해지고 이것을 위반하였을 때 사실상의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사용종속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노무이용자가 임의로 또는 고지만으로 노무공급관계를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종속성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것이다.
■ 포괄적 의미의 지휘감독권
대법원은 종래 업무지시가 구체적인 경우에는 사용종속관계를 긍정하고 포괄적인 경우에는 이는 계약이행과정에서 필요한 지시에 불과하다고 하여 노동자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업무지시가 구체적이냐 포괄적이냐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무의 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시의 구체성이 노동자를 통제하기에 충분한가의 문제이다. 업무수행이 주로 회사 밖에서 이루어지거나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그때 그때마다의 지휘■감독이 어려운 경우, 기업은 대개 업무수행방식의 표준화, 일상적인 직무교육, 체계적인 보고 및 모니터링 체계, 성과급제 등의 방식으로 통제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통제방식의 변화는 노동시간의 탄력화, 연봉제 등 성과급제의 확산, 팀제의 도입 등으로 정규직노동자에게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업무수행과정에 대한 전통적 방식의 지휘■감독이 없다는 것이 사용종속관계를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반대로 교육참가의무, 업무수행지침에의 복종의무, 성과급제를 통한 통제 등이 있다는 것은 노동자성을 확인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 보수에 관한 사항 : 사용자의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고 있는가 여부
판례는 종래 보수 중 기본급 내지 고정급이 정하여져 있는지 여부, 휴업기간 중 보수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등을 중요시하여 보수가 근로시간이 아닌 업무실적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에는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연봉제 등의 확산으로 통상의 노동자의 임금도 업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사례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과에 기초한 보수체계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게다가 근로기준법 제46조는 도급제 근로자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보수의 결정 및 지급방식이 사용종속관계 판단에 주요요소가 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특수고용형태에 있어서 도급제 임금이라고 하는 것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는 담당하는 학생 수만 파악하면 수업하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으며, 레미콘 운전사들의 경우도 운송거리만 알면 대략의 근무시간의 계산이 가능하다. 근로시간의 정함이 노동의 양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도급제 임금이 노동의 양과 질을 평가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완전성과급제는 회사측에서는 법정수당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특수고용노동자에게는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도록 만드는 매개가 된다.
■ 제공된 노무와 해당 사업과의 관계
이러한 지표는 제공된 노무가 ‘자신의 업’으로서 제공된 것인가 ‘타인의 업’을 위하여 제공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즉 노무공급자가 자신의 목적에 따라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이용자인 기업의 목적에 따라 종속적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가를 살피는것이다. 이것은 근로자와 독립계약자를 구분할 때 ‘위탁 내지 도급계약’이라는 계약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제공되는 노무 자체의 성격을 실질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으로서, 미국, 독일 등의 판례법리에서 사용하는 주요 지표이다.
구체적으로 해당 업무가 그 회사의 사업에서 핵심적인 부분인가 여부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노무공급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기업의 목적 수행에 중요하거나 필요불가결할 경우 기업이 그 노무관리에 상당한 힘을 쏟는 것이 상례여서 노무제공과정에 사용종속관계가 형성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이유로 한다. 판례 중에도 이것을 판단지표로 사용한 예가 있다. 실제 학습지 업체의 94.7%, 보험회사의 100%, 골프장 측의 75%가 특수고용노동자에 의해 수행되는 업무가 핵심업무라고 밝힌 조사결과도 이러한 지표의 현실적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해당 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무와 회사가 이용하는 다른 노무와의 관련성의 정도이다. 회사는 해당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특수고용노동자를 사용할 수도 있고 정규직을 고용할 수도 있다. 만일 특수고용노동자가 회사의 직원이나 다른 특수고용노동자들과 팀을 이루어 노동을 한다거나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노무를 제공한다면 이는 사용종속관계의 지표가 될 수 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담당하는 업무가 과거 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였는지, 현재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있는지 여부도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레미콘 운전사들의 경우 과거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다가 회사의 구조조정에 의해 특수고용직으로 전환된 대표적 사례이다. 그 업무가 해당 회사에서 정규직에서 특수고용직으로 전환된 사실이 있는 경우나, 해당 노동자 자신이 과거 정규직이었다가 전환된 경우라면 보다 강하게 사용종속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일정자격요건을 갖춘 특수고용형태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단체협약조항이나 내부규정이 있다면 이는 노동자성을 강화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수습으로 있다가 정식사원이 되는 것처럼 특수고용형태가 독자적 계약형태가 아니라 정규직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로서 회사의 인사관리의 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 노무공급자의 사정
종래 판례는 ‘업무의 대체성 여부’, ‘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등 “양 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을 기본시각으로 제시하면서도,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계약상 규정되어 있는지 여부만을 형식적으로 살피고 있다. 다만 앞의 부천지원 판결이 “운송차주들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레미콘 운반차량의 소유권은 비록 운송차주들에게 있으나 실제로 운송차주들이 차량의 소유권을 행사하여 이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회사의 운송업무를 할 수 없으며, 운송차주들은 계약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전적으로 신청인에게 근로를 제공하여야 하고 운송차주들이 스스로 다른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할 수 없는 점■운송차주들이 독립성 및 전문성을 가지지 못하여 독자적으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봉쇄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회사의 운송차주들은 회사에게 종속된 상태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이나, 대법원이 “캐디의 업무의 성질이나 소외회사에 의하여 근무시간 등이 정해져 있고 매일 출근하여야 하는 관계상 다른 회사에의 취업이 사실상 곤란하여 캐디들은 소외회사에 거의 전속되어 있다고 보여지는 점”을 노동자성 인정의 적극적 요소로 판시한 사례가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사용자에 대한 노무공급의 계속성과 전속성의 정도, 시설■장비 및 주요 재료의 소유관계, 이익과 손실에 대한 독자적 기회의 존재 여부, 제3의 노동력의 이용 여부 등은 사용종속관계를 판별하는 지표로서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러한 지표를 외관상 판단해서는 안 되고, 노무공급자가 이익과 손실에 대한 위험과 기회를 부담하면서 독자적인 목적에 따라 영업할 가능성이 있는가와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레미콘 운전사의 경우처럼 고액의 장비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러한 장비소유가 독자적 기업의 실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노무제공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오히려 노동자성을 추정하는 요소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 ■, ■의 지표는 기존 판례의 판단기준을 보다 현실적합하게 수정해야 할 부분이고, ■의 지표는 종래 형식적으로 검토되던 부분을 제공되는 노무의 성격에 따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며, ■의 지표는 종래 판례가 간과했던 종속성의 요소를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기존 판례가 채택했던 판단 기중 중 취업규칙의 적용여부, 보수의 지급방법, 세법이나 사회보험법에서 근로자 인정여부 등 사용자가 좌우할 수 있는 형식적 지표들은 사용종속관계의 판단에서 부수적으로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4. 근로기준법 적용의 문제 - 보호규범의 구체화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근로기준법 적용’의 문제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그야말로 노동조건에 대한 ‘최소기준’을 정하고 있는 법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취업하여 노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무하는 모습이 보통의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집단적으로 함께 일하는 정규직노동자와 다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이미 고용■취업형태의 다양화를 반영하여 보호의 내용도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97년 근로기준법 개정 과정에서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만약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무형태가 전통적인 제조업■사무직 노동자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단시간노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단시간근로자가 정규직노동자보다 노동시간이 짧게 계약되어 있다고 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컨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의 배제가 아니라, 고용형태의 변화와 보호규범의 성질에 따른 근로기준법 적용의 구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구체적 방향성은 대략 다음과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다.
첫째, 고용■취업형태의 차이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할 보호규범은 전면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한 제한과 수당지급, 연월차유급휴가, 생리휴가 및 모성보호 등은 장시간노동을 제한하고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규범인 만큼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보장되는 것이 타당하다. 시간외근로수당 보장에 관하여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제 근무시간에 대한 산정의 어려움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등을 활용하여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제56조는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를 두어 “근로자가 출장 기타의 사유로 근로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때에는 소정 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 다만, 당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통상적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 업무의 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만약 간주근로시간 자체가 법정근로시간의 한도를 초과하도록 정해진 경우에는 사용자는 연장근로의 적법요건(근로기준법 제52조 등)을 갖추어야 하고, 연장근로수당도 당연히 지급하여야 한다. 단시간노동자의 경우도 소정 근로시간보다 초과하여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가산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시행령 제9조 제1항).
근로기준법이 시간외근로에 대한 제한규정과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정하고 있는 것은 장시간노동을 규제하고 금전적 보상을 통해 노동력재생산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많은 시간을 사무실 밖에서, 개별적으로 일하면서 성과급으로 보수를 받고 있다. 그런만큼 장시간노동이 규제되기도 어렵고 실제 근무한 시간만큼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시간의 문제는 근로시간규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실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둘째,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더욱 두터운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임금이 완전성과급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장시간노동이 일상화되고 노동자 스스로 생존을 위해 노동강도를 높일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특수고용노동자의 불안정성을 보상하기 위한 보호규범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근로기준법 제46조에서는 ‘도급근로자’라는 제목으로 “사용자는 도급 기타 이에 준하는 제도로 사용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근로시간에 따라 일정액의 임금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이러한 규정을 둔 이유는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시간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노동의 성과에 따라 정해지는 도급제의 경우, 노동자가 일정 수준의 임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면서 중노동에 혹사당하게 될 위험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도 일의 성과에 관계 없이 최소한의 보장급을 정하도록 하여 최소한의 보호를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법에서 정하고 있지 않아서 유명무실하게 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최소한의 생계비나마 사측의 책임으로 지우려는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영루미나CC노조 2000년 단체협약>
- 제101조 [생계 보상비]
1. 회사는 비시즌(1월~3월) 기간에 도우미 조합원에게 2002년부터 개인당 월10만원씩 지급한다. 2. 회사는 타구 사고시 부상을 입었을 경우, 진단서를 제출할 경우 진단서에 명시된 근무치 못한 기간에 대하여 근무로 인정하여 치료비 및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인정하여 입원기간내의 기간을 산출하여 일괄계산 한다.
<전국건설운송노조 모범단체협약안>
- 제5장 레미콘 운송비 제24조 [운송비의 정의와 구성]
2. 제 수당 (중략)
(4) 회사는 비수기 1월, 2월은 기본급 100만원을 보장한다.
<재능교육교사노조 2000년 단체협약>
제28조 [일시 계약 정지]
재능 선생님이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 일시 계약기간을 정지한다.
1. 관리중, 관리외 부상으로 14일 이상 입원 및 요양이 필요한 경우 : 6개월
2. 질병, 출산으로 인한 요양 : 3개월
제29조 [계약 정지자의 처우]
① 계약 정지 기간중 관리중 부상, 출산으로 인한 정지기간은 근무기간에 통산한다.
② 회사는 계약기간 정지자의 누계 순증수와 저축수당 지급등 제반조건을 복귀 후 종전 기준에 따라 인정한다.
③ 전조 1호의 관리중 부상일 경우 아래와 같이 생계비를 보조한다.
1. 2주 이상 입원 : 20만원
2. 3주 이상 입원 : 30만원
3. 4주 이상 입원 : 50만원
여기서 입원이라고 하면 입원, 입원에 준하는 요양을 말한다.
이러한 단체협약규정을 참조하여 현재 유명무실하게되어 있는 도급근로자에 대한 임금보장 조항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고객확보 등 특수고용노동자의 공헌에 대한 보상적 성격의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VRP(외판원, 상업대리인)에 대하여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이 기간만료 이전에 종료되거나 갱신되지 않는 경우, 사용자가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등에 ‘고객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노동법전 L. 751-9조).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불안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공통의 문제인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이용할 수 있는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일정한 사유로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라면 고용불안정성을 보상하기 위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경우 통상의 노동자에게는 퇴직금 제도가 없지만,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나 파견근로의 경우에는 ‘고용종료보상금’이라는 일종의 퇴직금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일방적 계약해지로부터의 보호도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수고용형태에 대한 법개정논의의 출발점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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