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폐연대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당황했다. 오랜 기간 조직활동을 하다보면 짧은 대화 속에서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법, 말투나 억양에서 벌써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읽을 수 있었다.
"철도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양보교섭을 한 게 아닌가?" "철도노조가 외주, 용역화 철회요구를 했다가 이를 용인한 것 아닌가? " 하고 내게 추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씁쓸했다. 철도 사정을 잘 모르는 바깥쪽의 활동가들에게는 4.20 철도노조 파업철회나 고려대학교의 혼란이 "철도노조 집행부가 당면한 투쟁을 배신하여 일어났던 것"으로 비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계속하여 받고 있는 바 설명하기에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 복잡한 요구안이나 환경을 또다시 설명해야 하다니." "그렇죠, 철도노조에서 투쟁을 회피한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면 복잡한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인데.
철도 활동가들은 벌써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뉘고 있다. 조합의 파업철회나 합의안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그룹, 조합이 조합원을 배신하였으며 부결투쟁을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그룹, 조합 지도부의 한계는 인정하지만 어쨌든 지금 집행부를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그룹 등이 그것이다. 나는 세 번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그룹을 재정비하는데 함께 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02년 2.25 파업에서 비슷한 시비에 휘말렸다. 당시 파업의 초점은 "민영화 정책철회, 구조조정 중단 및 철회, 3조 2교대제에 의한 근무형태 변경, 해고자 복직"등 이번 파업투쟁과 대동소이했다. 발전, 가스 등과 공투본을 만들었고 공동투쟁에 들어갔던 탓에 철도는 일찍 타결되었다. 공동투쟁에서 상대방은 그 전열을 파괴하는 게 초점인 것이고, 싸우는 동료를 버리고 회군하면 지도부에게 그만한 대가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요구조건의 부분적인 관철이라는 당근, 명분을 버렸다는 자괴감과 투쟁으로 돌파하지 못한데 대한 자부심과 긍지의 훼손이라는 -즉 조직력의 후퇴를 가져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운동의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결코 선택해서는 안 되는 길이기도 하다.
02년의 파업을 올해와 비교하라 하면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겠다. 02에는 민주노조 건설 뒤 첫 파업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타오르는 조합원의 동력이 있었다. 03년 4.19 상황에서는 02년에 비해 부실한 조직력과 동력, 그리고 지휘계통의 부실화라는 암초가 있었다. 다만 02년에는 위원장의 지도력이 부실한 반면 03년에는 위원장의 확고한 방침과 결심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부실한 조직과 확실한 위원장, 강한 동력과 부실한 지도력 중 택일하라면 그래도 전자가 낫지 않겠느냐고."
02년 파업에서 철도노조는 3조 2교대에 의한 근무형태 변경과 해고자 복직이라는 요구안을 쟁취하고 회군하였다. 그러나 해고자 복직은 노사정 위원회로 위임되어 일괄타결하지 못하고 분쟁거리를 남겨두었다. 노사정 위원회로 보냈다는 "운동노선의 불철저함"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별로 문제가 되지 못하였다.
문제는 회군과정에서의 직권조인, 이것은 변명거리가 필요 없는 완벽한 형태의 직권조인이었다. 그리고 회군 뒤의 탄압에 철도노조는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는 4.30일 보완교섭의 타결로 나타났고 조직력의 훼손으로 나타났다. "4.30 보완교섭은 굴욕적인 것이며 그 뒤 현장탄압에 조합이 대응하지 못한 결과 조직력은 극적으로 이완되었다."는 데 나도 동의한다. 해고자는 계속 늘고, 그것도 현장의 조합원이나 지부장은 해고되는데 조합의 핵심 중앙간부는 해고되지 않는다는 현실, 이런 상태에서 조합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신망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보궐선거를 통해 조직을 재정비하였지만 철도노조가 위력 있는 파업을 조직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활동가들은 별로 없었다.
03년 파업, 그 부실한 준비
보궐선거로 당선된 위원장이하 집행부는 파업투쟁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단체협약은 만료되고 사측은 훨씬 개악된 단체협약을 들고 나왔다. 유니온샵 제도 폐지, 전임자 축소, 조합비 일괄공제 거부 등 약화된 조직력에 걸맞게 사측은 어용집행부 시절보다 더 개악된 형태의 단체협약을 원하였다. 해고자 복직교섭은 공전하였고 구조개혁관련이든 노동조건 개선이든 서로간에 맺은 협약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조직력이 받치든 그렇지 않든 조합은 파업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번 떨어진 조합원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회복될 리는 없었다. 또 이것을 회복할 조합 지도부는 자신감도 능력도 없어서 파업 20여 일을 앞두고도 분위기는 여전히 그렇고 그런 것이었다. 2월 13일 조합이 의욕적으로 조직한 파업투쟁 결의대회는 3,000여명이면 꽉 찰 서울역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였다.
서울본부를 빼고는 파업투쟁을 제대로 준비한 지방본부가 없었다고 평가된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주력인 차량은 조합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지 못하였고 기관차 승무는 기회주의적인 지부장들에게 휘둘렸다. 역무는 수도권에만 몇몇 민주파 지부가 있었고 시설 쪽은 조합 지도부와 소통이 끊겨 여전히 어용 지부장들의 장악 하에 있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대오는 작년의 반정도에 머물고 각 지방본부의 각오는 파업지도부로서는 믿지 못할 상태, 주력인 기관사 대오는 4.20일 새벽 2시에 이르러 줄줄이 파업대오 이탈을 상황실에 통보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노무현 정권이 이런 철도노조의 조직력에도 백기항복에 가까운 합의안들을 내주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것이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 부실한 조직력으로도 철도는 경부선축과 수도권 전철을 마비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는데 이전과는 다른 방식 -경찰을 투입하여 연행하거나 농성대오를 해산시키는- 으로 단시간내 가능할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이번 파업에서 정부나 사측이 가능한 대응은 고작해야 대체인력의 투입, 대체 교통수단의 확충, 관리자 라인을 통한 회유나 압박, 일시적인 대량의 직위해제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량의 징계등과 같은 방식도 노무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원화되지 못한 정부의 의사결정구조는 철도노조의 파업조직보다 더 부실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4.19일부터 4.20일까지 정부의 대응은 철도노조 파업 상황실만큼이나 우왕좌왕하고 엉성하기 이를데 없었으니까. 갑자기 확 밀려버리는 사측의 분위기, 모두 합의해 놓고도 도장을 못찍겠다고 잠적해버린 철도청장, 그리고 몇시간이나 지나서 나타나 겸연쩍은 듯이 도장을 찍고 웃으며 악수를 하는 저 엉성한 사측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림이 없는 철도청장의 태도에서 중압감을 느끼며 두 번의 파업을 겪었던 나로서는 천만 뜻밖의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파업투쟁 그 뒤
벌써 한군데의 기고청탁을 받아 그 전말을 소상히 밝힌 나로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내가 "투쟁을 배신한 철도노조 지도부"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합의안을 놓고 "추리소설을 쓰는" 일부 활동가들의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 합의안을 다시 해설할 의욕은 없지만 어쨌든 이번 합의안은 정부와 철도청의 구조조정에 저지선을 친 것이며 그동안 진행해온 구조조정을 과거로 되돌린 것이기도 하다.
단체협약은 철도청의 의도를 분쇄하며 진전하였고 민영화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구조개혁안은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외주 용역화 철회는 안건에서 빠졌지만 병점자회사의 외주화를 철회하므로서 부분적인 성과를 남겼다. 계약직 여승무원의 정규직화(100여명)도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3000여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에 첫단추를 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성과를 애써 부정하고 "뭔가 이면이 있다. 사실상 용인해 준 것이 아닌가?"하는 태도를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첫 번째 대형사업장에서 우왕좌왕한 노무현 정권이나 사측이 곧바로 전열을 정비하여 빼앗긴 합의안을 되찾아갈 것을 걱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번 투쟁을 기점으로 "파업하지 않아도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는 실리주의적인 태도가 노무현 정권이 철도노조에 바라는 진정한 요구가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 대비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미뤄둔 구조개혁문제나 비정규직, 계약직, 외주화에 맞서 더 강력한 파업투쟁을 준비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철도와 같은 망산업은 하루 아침에 파업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조합원들은 지도부를 만나기 어렵고 대개 상징성이나 인상에 의해 투쟁의지를 파악하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 지도부를 갈아치울 능력도 되지 않는데 없는 사실까지 끌어내어 지도부를 공격하고, 그래서 투쟁의 구심을 해체해 버린다면,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적행위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은 벌써부터 시설과 운영의 분리를 전제로 한 구조개혁을 서두르겠다고 벼르고 있다. 빠르면 오는 6월 임시국회때 구조개혁법안을 상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도내 활동가들의 마음도 바쁘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나타난 부실한 조직력을 다지고 철도노조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믿고 있다. 02년 파업 뒤 완벽하게 단절되어 버린 활동가들과 조합 공식 지도부와의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역할분담을 통해 다가올 대회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02년 파업과 올해 단체교섭에 맺은 협정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다. 상하분리, 민영화를 전제로 한 공사, 노선별 분할 민영화, 이것을 막지 못하면 단체협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궁극적으로는 외주, 용역화를 통한 저임금전략, 감원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 그리고 요금인상을 통한 공공성의 포기, 사적이윤의 보장, 이것들이 철도를 포함한 국가 기간산업 사유화 정책의 근본적인 목표가 아니었던가?
비정규직 투쟁, 지금부터 시작이다.
철도에는 수많은 직종의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우선 선로보수에서 개량을 맡고 있는 선로 보수공들이 있는데 대략 1,000여명에서 2,000여명 사이로 짐작한다. 그리고 역에서 청소를 하는 계약직 노동자들, 이분들도 대략 수백 명에 이를 것이다. 철도 내에서 물건을 파는 홍익매점 노동자들, 이분들은 대략 14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연료주입, 검수, 전기 등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대략이니 추정된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이나 사유화 정책철회에 집중해 왔던 철도 민주노조 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조사할 만큼도 진전하지 못하였다.
이중 홍익매점 노조가 철도노조 산하의 지방본부로 가입되어 있다. 조합원 수는 아직 200여명을 넘지 못한다. 홍익매점 노조가 가맹하자 어용인 홍익회 -열차내 물건판매를 맡는 노동자들- 노조가 즉시 탈퇴하였다.
철도노조 집행부나 활동가들은 아직 목적의식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조직하거나 결합할 의식상태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홍익매점 노조는 철도노조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그런 정도일뿐, 계급적으로 함께 한다는 의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철도 민주집행부 쟁취 뒤 지리멸렬해왔던 활동가 조직의 활동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번 투쟁에서 열차승무원들의 정규직화는 중요한 진전이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산재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홍익회 노조의 민주화 투쟁, 한국철차산업 -열차내 청소용역-의 민주화 투쟁을 지원하고 함께 하려는 노력은 즉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철도 민주노조 운동은 워낙 격동기이다. 언제라도 파업에 돌입하고, 한번 파업하면 철길이 녹슬도록 유지할 수 있는 조직력과 파괴력을 가지지 못하면 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산업별 노조의 건설도 함께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