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래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아마도 가장 많은 노조가 결성된 분야라면 시설관리 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령의 노동자가 대다수라는 난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설관리 노조들이 결성될 수 있었던 건 시설관리 쪽이 워낙 저임금, 중간착취가 만연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원래부터 열악했던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자 이에 저항하는 투쟁들이 아파트, 건물, 대학 시설관리 쪽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시설관리노조 중 대부분이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깨졌다는 것이 시설관리 쪽 활동가들의 경험이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조들이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작업장에서 쫓겨나고 장기투쟁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시설관리쪽 노조들은 용역업체를 상대로나마 단협을 체결하고 안정적으로 조직을 유지한 사례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시설관리노조는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한 사례로 여겨졌으나 이들 또한 노조설립 2,3년을 고비로 해서 노조 존립과 관련된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시설관리 노조들이 가장 큰 위기를 당하는 것은 연말, 연초이다. 동일한 용역업체가 매년 시설관리 업무를 낙찰받는다해도 대부분의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1년짜리 계약직이기 때문에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될 수 있다. 또한 아예 업체가 바뀌는 경우에도 새로운 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연말, 연초는 시설관리노조에 있어 매우 위태로운 시기인 것이다.
업체변경과 함께 전원 해고당한 서울대공원 시설관리노조
서울대공원의 시설관리노동자들은 대공원 내의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인데 이전에는 직영 상용직이었으나 95년이후 외주화되면서 용역업체 소속이 되었다. 95년부터 대원관리라는 용역업체가 계속해서 용역계약을 맺어 왔는데 이 회사는 노동자들의 퇴직적립금 및 임금을 체불하는 등 엄청난 노동착취를 해왔다. 결국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월 50만원도 안되는 임금과 용역회사의 폭압적 노무관리에 맞서 2001년 4월 노조를 결성하였고 이는 곧 서울대공원에 대한 투쟁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었다. 노조가 2001년 5월 4일 파업에 돌입하자 곧 대체인력을 투입하려는 서울대공원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면파업 끝에 임금인상등의 성과를 얻었고 단체교섭 자리에 서울대공원측을 불러 앉힌 것은 서울대공원의 실질사용자 책임을 확인시키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2001년 12월 31일 기존 용역업체와의 용역계약이 종료되자 서울대공원은 새로운 업체가 조합원 전원을 고용승계하지 않게 함으로써 노조를 뿌리채 흔들기 시작하였다.
서울대공원측은 '용역업체도 엄연한 별도회사인 이상, 그 회사의 인사권에 대해 직접 개입할 수 없다'며 대공원측에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2001년 초 용역계약 만료해지 수법으로 갓 노조를 설립한 60명의 기능직 용역노동자(IBS노동조합)들을 모조리 해고시킨 전력이 있다. 이러한 서울대공원에 대해 시설관리노동자들은 동물분뇨 수거차량을 막으면서 직영직으로의 고용승계, 노조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유지를 위한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의 시도들
사실 이런 노조탄압 방식은 시설관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간접고용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로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다. 2000년 설립된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에서도 43일간의 파업을 승리로 끝낸 후 연말 용역계약 시기에 서울대학 측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가장 우려하였다. 다른 간접고용 노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1년 단위 근로계약 만료, 또는 용역계약 만료를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시설관리노조는 용역계약 시방서에의 개입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서울대시설관리노조에는 학생들의 강력한 연대라는 유리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투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의 파업투쟁에 밀렸을 때도 비공식적인 면담만을 허용했을 뿐 실질사용자 책임을 지는 문제에 대해 민감한 서울대학을 상대로 시방서 내용에 고용안정 조항을 넣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2000년 9월 입찰공고가 붙은 이래로 지속적으로 노조가 선전전을 비롯한 투쟁을 전개한 끝에 2001년 용역계약 시방서에는 '현재 근무하는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한다.'라는 내용이 삽입되었다.
또한 2001년 들어 새로 들어온 용역업체들과의 단체교섭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서울대 시설관리노조는 단협에 '단협의 효력을 1년으로 하되, 새로운 단협이 체결되기까지는 기존 단협의 효력이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 조항은 설령 다음 해에 단체교섭이 지연되더라도 노조활동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2001년 단체협약을 맺으면서 서울대 시설관리노조 내부에서부터 매년 새로 들어오는 용역업체들(2001년부터 서울대는 7개의 용역업체들에게 분할용역을 주었다)과 단체교섭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니 아예 시방서에 '시설관리노조의 활동을 인정하고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자는 제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실질사용자에 대한 투쟁
이렇게 해서 조합원들의 고용과 노조활동을 보장받은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에서도 2002년 1월 1일부로 31명의 해고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2002년 시설관리 용역 입찰을 위한 시방서 작성 시기가 다가오자 서울대시설관리노조는 시방서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서울대학교는 "특별히 시설관리노조 조합원에 관련되는 내용이 없다"며 시방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대 시설관리노조는 2001년 12월 중순에 들어서야 '시설관리 노동자의 정년을 65세로 제한한다'는 시방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12월 31일 기존 업체와의 근로계약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업체들은 65세 이상 조합원들(31명)과의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였다. 서울대시설관리노조는 서울대의 일방적인 연령제한과 고용승계거부에 항의하며서 천막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결국 간접고용 상태인 이상 노동자 및 노동조합은 다양한 측면으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질사용자가 원하기만 하면 계약종료로 인한 고용승계 거부뿐만 아니라 정년, 다른 사업장으로의 전환배치, 임금삭감, 노동시간 변경 등과 같은 방법으로 시설관리노조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서울대학교 당국은 일방적인 연령제한을 하기 위해 시방서를 공개하지 않을 작정이었겠지만, 서울대시설관리노조가 2000년 하반기에서처럼 시방서 내용을 확인하고 노조 및 조합원 보호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해고사태를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은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노조 내부사정으로 인해 시방서 문제에 대해 전년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할지라도 용역계약 시방서가 시설관리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지나쳐선 안될 사실이었다. 시설관리노조가 실질사용자의 공격에 -간접적인 형식을 취한다 할지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이는 곧장 조합원의 신뢰 상실로 연결될 것이다. 수시로 업무에 간섭하고 조합 활동을 간섭하는 대학 행정실, 직영 노동자들 속에서 조합원들은 굳이 법적인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시설관리노조가 용역업체가 아니라 서울대라는 실질사용자와 대치하고 있는 상태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연말 계약만료 시기에 들어올 수 있는 사측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실질사용자의 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을 계속적으로 준비하고 배치하는 것이 기본 전제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