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래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봇물처럼 쏟아졌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노조가 결성된 분야라면 시설관리 쪽을 들 수 있다. 고령의 노동자가 대다수이고 용역회사 소속이라는 난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설관리 노조들이 결성될 수 있었던 건 시설관리 쪽에서 워낙 저임금, 중간착취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원래부터 열악했던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자 이에 저항하는 투쟁들이 아파트, 건물, 대학 시설관리 쪽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시설관리노조 중 반 정도는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깨졌다는 것이 시설관리 쪽 활동가들의 경험이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조들이 결성되자마자 작업장에서 쫓겨나고 장기투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동우공영, 서울대 시설관리노조 등과 같은 시설관리 노조들 중에서는 용역업체를 상대로 해서나마 단협을 체결하고 안정적으로 조직을 유지한 사례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시설관리노조는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한 사례로 여겨졌으나, 이들 또한 노조설립 2,3년을 고비로 해서 노조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를 이겨내고 노조를 유지한다해도 현 상태를 유지하는데 급급하는 경우도 많다.
1. 시설관리 노동자를 괴롭히는 용역계약
시설관리 부분은 80년대 후반부터 용역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용역회사 소속이라는 고용형태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이다. 한 회사에 계속 근무하기 보다는 경력을 쌓아가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청소, 경비의 경우 중고령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시설관리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의식을 갖고 투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설관리 노동자 특유의 어려운 조건들을 딛고 투쟁에 나선다해도 여전히 넘어야할 장애물은 많다. 용역사용업체와 용역회사 측의 끊임없는 노조 방해 공작은 어렵게 투쟁에 나선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용역업체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조합원들을 회유, 위협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용역사용업체가 시설관리 노조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막을 방법조차 없다. 용역사용업체는 사용자가 아니니 당연히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법해석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시설관리노조들은 용역업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어서 공격하는 용역사용업체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에 처하고 만다. 노조 설립 시기 노조의 힘에 밀려 노조를 인정하게 되더라도 이들이 쉽게 물러서는 것은 아니다. 부당 전직, 해고, 수당 삭감, 반장 교체, 업무 통제의 강화, 선별적 직접고용 계획 발표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조의 현장 장악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계속되는 이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용역사용업체와 용역업체가 노조를 공격하는데 있어 가장 대응하기 힘든 것이 바로 용역재계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대부분의 시설관리 용역(도급)계약이 1년 단위로 체결된다. 이 때 용역계약이 새로이 체결되는 과정을 이용해서 시설관리 노조에 대한 공격이 가해진다. 근로계약 기간의 만료를 통보하면서 고용승계를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용역(도급)계약서나 시방서 내용을 통해 일방적으로 고용 및 노동조건을 악화시킴으로써 단협을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 용역 업체가 재계약 시기에 고용 승계를 거부하는 경우
대부분의 시설관리노동자들은 매년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한다. 하지만 매년 자신들을 관리하는 용역업체가 바뀌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소속 또한 바뀌게 된다. 한 용역업체가 계속 용역계약을 체결한다 해도 1년 계약직이기 때문에 매년 새로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 회사가 바뀌는 경우에는 기존 업체와 맺은 단협의 효력은 사실상 사라지고 만다. 기존 단협에서 고용보장 조항이 있다해도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계약기간 만료를 통보하면서 고용승계를 거부하면 법적으로 문제없기 때문에 용역업체나 용역사용업체 입장에선 매우 간편한 방법이다. 과천 서울대공원에서는 95년부터 대원관리라는 용역업체가 계속해서 용역계약을 맺어 왔다. 이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은 2001년 4월 노조를 설립하였고 전면파업 끝에 단체교섭을 체결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2001년 12월 31일, 기존 용역업체와의 용역계약이 종료되자 서울대공원은 새로운 업체가 조합원 전원을 고용승계하지 않게 함으로써 노조를 뿌리 채 흔들었다. 노조에서 새로운 회사가 고용을 승계하도록 하라고 요구하자 서울대공원 측은 '용역업체도 엄연한 별도회사인 이상, 그 회사의 인사권에 대해 직접 개입할 수 없다'며 책임 권한 밖의 일이라고 외면하였다. 2001년 6월 결성된 전국여성노조 경북대 분회에서도 투쟁을 통해 임금협약을 쟁취했지만, 2002년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흘러나와서 고용승계 보장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 용역(도급)계약서, 시방서의 내용을 통해 고용 및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악화시키는 경우
서울대 시설관리노조는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투쟁을 선도적으로 알려낸 사례이다. 2000년 43일간의 투쟁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동조건 개선과 노조인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적으로 조직을 유지한다고 알려진 서울대 시설관리노조 또한 용역계약이나 시방서 내용 자체에 대해 개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2002년도 시방서 작성 시기인 2001년 가을경이 되자 노조에서는 시방서 내용의 공개를 요구하였다. 그러자 서울대학교는 "특별히 조합원에 관련되는 내용이 없다"며 시방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조합원들의 고용은 보장한다'는 대학 본부의 비공식적인 언급도 있었는지라 시방서 내용에 대해서도 믿었다. 그 해 말 12월 중순에 들어서자 '시설관리 노동자의 정년을 65세로 제한한다'는 시방서 내용이 알려졌다. 2001년 12월 31일, 기존 업체와의 근로계약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업체들은 65세 이상 조합원들(31명)과의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였다. 여성연맹 도시철도 청소용역 노조에서도 용역 도급계약서 내용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또한 용역 도급계약서 내용으로 인해 단협에서 쟁취한 내용조차 유명무실화되었다.
2. 용역계약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 용역계약, 시방서 내용에 대한 사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간접고용이면서 1년 계약직인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약점을 정확하게 노리는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방법들의 효과를 아는 이상 시설관리 노조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에 대한 탄압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관리 노조가 계속 조직되고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용역재계약에 대해 개입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용역재계약에 대한 시설관리노조의 개입을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용역업체와 용역사용업체 두 당사자간의 계약에 제3자인 시설관리 노조가 개입하는 것이 법적으로 근거를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은 노조의 투쟁에 의해 용역업체와 용역사용업체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용역 도급계약서나 시방서 내용을 이유로 쟁의행위에 돌입하는 것이 노동법 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그만큼 시설관리 노조들이 용역계약에 개입해야할 당위성을 얼마나 알려내고 얼마나 강고하게 투쟁하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에서도 2000년 파업 승리 이후 연말 용역계약 시기에 서울대학 측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가장 우려하였다. 이런 문제에 대비해 서울대 시설관리노조는 시설관리용역 업무시방서에의 개입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서울대 시설관리노조에는 학생들의 강력한 연대라는 유리한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유리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수세에 몰렸을 때에도 비공식적인 면담만을 허용할 정도로 실질사용자 책임에 대해 민감한 서울대학을 상대로 시방서 내용에 고용안정 조항을 넣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2000년 9월, 입찰공고가 붙은 이래로 지속적으로 선전전을 비롯한 투쟁을 전개한 끝에 2001년 용역 시방서에는 '현재 근무하는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한다'라는 내용이 삽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받았으나 앞서 말한 대로 2002년 계약이 체결되면서 서울대에서도 해고가 발생하였다. 다른 문제로 인해 노조의 사전 대응도 작년 만하지 못하고 대학도 시방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더 강하게 버티다보니 12월에 들어서야 시방서 내용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혹한 속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등 투쟁을 하였으나 '이미 작성된 시방서 내용을 바꿀 수 없다', ' 대학 본부에서 정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대답 앞에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서울대학은 일방적인 연령제한을 하기 위해 시방서를 공개하지 않을 작정이었겠지만, 서울대 시설관리노조가 2000년 하반기처럼 시방서 내용을 확인하는 투쟁을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해고사태를 더 효과적으로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은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2000년과 2001년 서울대 시설관리노조 사례를 비교해보면 용역계약에 대한 사전 개입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 시설관리노조들의 전국적인 공동투쟁을 조직하자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이미 전국에 걸쳐 수 십여 개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그동안 쌓인 분노들이 노조로 모여 분출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투쟁은 집단적이고도 전국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개별 용역업체나 원사용자를 상대로 한 싸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특수고용직, 파견노동자 문제는 전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100일을 넘긴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 전국을 휩쓸며 노조 인정 투쟁을 벌인 학습지 교사들의 투쟁 등과 파견법으로 인한 해고 사태를 알리며 나선 파견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면서 노사간의 첨예한 쟁점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시설관리 노동자의 투쟁은 아직도 개별 업체와 개별 사용자의 부당함을 비판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개별 사업장에서의 부당한 대우라는 문제로 쟁점이 좁혀질수록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적 쟁점이 되기 어렵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대세로 굳히려는 사회구조적 흐름이 있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시밭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운동은 투쟁의 쟁점을 얼마나 사회적,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시키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시설관리노조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노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용역업체 소속의 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 상의 약점을 이용해 사측은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를 흔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내하청 노조, 파견노동자 노조, 시설관리 노조들이 설립되고도 금방 깨지는 것은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관리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적인 쟁점이 되어야 개별 사업장에서의 투쟁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다. 시설관리노조들이 모여서 전국적이고도 집단적인 공동행동을 한다면 '이 사회에 이렇게 많은 시설관리노동자들이 있고 이런 요구를 내걸고 있구나'라는 것이 보다 뚜렷하게 보일 수 있다. 아직은 매우 취약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쟁의 전국화, 사회화를 미룬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작년 전국여성노조는 '전국 용역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의 열악한 임금을 폭로하고 최저임금인상 투쟁을 벌였다. 이것이 시설관리 노동자의 문제가 사회화된 거의 유일한 예이다. 이렇듯 시설관리 노동자의 현실을 알려내고 시설관리노동자들의 요구안을 주장하기 위한 계획들이 필요하다. 전국의 각 시설관리 노동조합들이 각각의 현안을 갖고만 싸운다면 각개격파 당하는 길 밖에 없다.
아직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시설관리노조들의 공동 대응, 공동 투쟁을 찾기 어렵다. 이는 시설관리노조들이 단위 사업장에서의 문제에 대응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여성연맹, 각 지역 지역일반노조, 전국시설관리노조 등 다양한 상급단체 아래 시설관리 노조가 조직되어 있다는 점도 전국적인 공동행동을 조직하는데 어려움이 된다. 그렇다 해도 공동 투쟁은 포기할 수 없는 일. 공동투쟁을 조직한다는 측면에서도 '용역재계약' 문제는 공통의 쟁점이 될 수 있다. 용역 재계약 문제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틀을 꾸리고 공동 투쟁의 경험을 쌓는 것은 전국적인 시설관리노조 투쟁을 조직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제까지 50개 이상의 시설관리노조가 만들어졌지만 용역재계약을 둘러싸고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대응했는지 정보가 교환되지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계약 문제 공동대응을 위한 첫 단계로서 전국의 시설관리 노조가 모여 '재계약 문제 대응을 위한 시설관리노조 활동가 워크샵' 같은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자리는 개별 노조들의 투쟁 경험과 이후 계획이 공유된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공동 대응을 하기 위한 틀을 꾸릴 수 있다면 시설관리 노동자 문제의 적극적인 쟁점화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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