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성원개발 이원형 위원장님은 질라라비 1월호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우여곡절 끝에 질라라비 2월호에서야 뵐 수 있었다. 2월 7일 병원노동자 희망터의 ‘월례토론회’가 끝난 이후 잠깐 짬을 내서였다. 이날은 월례토론회에서 “병원사업장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사례와 조직화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고, 성원개발 사례도 발제되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시설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성원개발 노동자들은 ‘경비절감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업무형태를 감시·단속직으로 바꾸려는 것에 맞서 싸웠고, 연이어 이루어진 노조의 선거에서도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 핵심에 있었던 이원형 위원장님을 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이 만났다. |
감시·단속직 투쟁을 하면서 모두 5명의 동지들이 힘을 합했고, 승리를 일궈냈다. 일명 ‘독수리 5형제’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 동지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보았다.
감시·단속직이 정말로 나쁜 제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요. 예전에 ‘주간근무-24시간 근무- 비번’으로 이어지는 ‘주풀비’ 제도 아래에서 2년 넘게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개인생활도 없었고 정말 피곤했지요. 결혼할 생각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주풀비 제도를 시행하는데 ‘노조가 없어서 이런 제도가 유지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이번 회사에 와서도 감시·단속직으로 전환하면서 ‘주풀비’로 전환하겠다고 하니까 강한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노조가 있는데도 이것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합의를 해주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개별적으로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장이 자술서와 동의서를 강요하니까 더더욱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기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동제어 쪽에도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섯 명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섯명의 노동자들은 감시·단속직으로의 전환에 대해서 서울지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노동부 승인절차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선전지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조합원들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결국 성원개발은 이런 노동자들의 반발로 인해서 주풀비로의 전환과 감시·단속직으로의 전환을 철회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성원개발에는 이미 노동조합이 있었다. 이 노조는 1987년에 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한국노총으로 있다가 97년에 민주노총으로 변경을 하였고 다시 민주노총을 탈퇴하여 독립노조로 있었다. 조합원들을 위해서는 하나도 활동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노동자들의 권익을 해치는 감시·단속직에 노조가 적극 합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조를 민주화하지 않고는 이 투쟁은 끝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노동자가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출마할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원형 동지 역시 큰 부담을 가졌지만 결국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원형 위원장님은 말수가 적고 무척 조용한 편이다. 남 앞에 나서기도 싫어한다. 자기 일에 헌신적이고 성실한 한 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 운동의 한 주체로 서기로 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이원형 동지는 그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12월 7일 회사의 온갖 방해를 뚫고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처음에 모인 5명 중에 위원장에 출마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습니다. 1년 이상 근무를 해야 하고, 나이도 어느 정도 되어야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주풀비를 막았으면 되었다고 생각했고, 위원장에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에 주풀비를 막았을 때에는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괜히 웃음이 나올 만큼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선거를 해서 노조를 민주화해야 완전하게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나오기까지 전혀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떠밀려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이틀 동안 날을 새면서 고민을 하기도 했지요. 만약 다른 분이 여건이 되었다면 그 분을 밀었을 것입니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하청인 성원개발 노사합의서의 내용 중 ‘갑’ 즉 서울대병원 사측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무효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서울대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로서 느껴왔던 아픔도 많았을 것이다.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있습니다. 처음에 저희 다섯명이 도움을 얻기 위해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을 찾아가면서도 무척 거북했고 문전박대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대병원노조에서 희망터를 소개받아서 만났고, 교육도 받고 주풀비 싸움도 같이 하면서 조금씩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비정규직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고 노동자는 하나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보면 정규직이 관리 역할을 하고 비정규직들에게 사적인 담배심부름도 시키는 등 관계가 무척 안 좋습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요.
이 투쟁 과정에서는 서울대병원 노조와 희망터의 역할도 컸다. 희망터에서는 비정규직 모임의 교육과 법률적 문제들에 함께했고, 서울대병원노조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원청과 하청 노조를 압박하는 데에 동참했다. 이렇게 함께 투쟁하면서 신뢰감이 깊어졌지만 그래도 바라는 바가 있다.
투쟁을 같이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규직들은 오래 활동을 했고, 판단도 잘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와는 틈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의료연대가 산별노조이므로 지금 당장 규약을 변경해서 저희가 가입을 하면 됩니다. 지금처럼 다른 노조로 있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규약을 변경하여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가입을 하려면 정규직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 방안을 잘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철폐연대 총회가 열리는 날 이원형 위원장님은 처음부터 자리에 함께했다. 비정규직의 사안을 논의하고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귀를 기울여서 듣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철폐연대 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다른 동지들은 노조의 재정으로 질라라비를 정기구독 하는 정도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철폐연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저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자료도 많이 나누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척 힘든 길을 선택했다. 이원형 동지가 비정규직 투쟁에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동지의 의지를 들어보았다.
솔직히 고생문이 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위주로 생활을 해왔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노동조합 활동은 나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조합원 전체를 위한 활동이고, 그것을 위해서 함께 싸워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습니다.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인생에서 이런 기회는 처음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시작을 했으니 내 고집이 아니라 조합원의 의견을 통해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부담감은 큽니다. 잠도 제대로 잔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위해서 살아보고 시작한 것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많이 배울 것입니다. 이 길을 먼저 갔던 동지들로부터 배울 것입니다. 처음 가는 길이고 정답이 없으니 개척하는 마음으로 옳은 길인지 아닌지 매순간 판단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간접고용 투쟁은 매우 힘든 길을 걸어왔다. 전남대병원 원내하청 지회도 해마다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조합원과 더불어 생각하고, 작은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투쟁하며, 다른 활동가들과 신뢰감을 갖고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 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은 승리의 길로 한걸음씩 다가선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 길에 이원형 동지가 함께하고 있고, 우리는 그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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