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투쟁 배경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은 2000년 8월달에 설립이 되었다. 설립 당시만해도 타워크레인기사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입력 시키면 움직이는 로봇이나 마찬가지였다. 임금은 사장이 주고 싶은 대로 주는 것이 법이고, 내일부터 그만두라고 하면 당장 보따리 싸고 집에 가야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웬만한 부당노동행위는 차라리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전국 수천 곳의 건설현장에서 뿔뿔이 흩어져 작업하는 타워크레인의 특성상 노동자들이 모여서 조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업계의 특성을 이용하여 철저하게 개별 노동자들을 탄압하였다. 타워크레인기사들은 대부분이 간접고용형태의 현장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공사현장이 종료됨과 동시에 대부분이 실직 상태에 돌입을 하게 된다. 현장이 종료되면 곧바로 취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취업은 철저하게 인맥 구조로 이루어진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현실 구조를 악용하여 조금이라도 회사의 방침이나 현장에서의 작업방법 에 이의를 제기하면 곧바로 해고 조치를 취하고, 부당해고에 조금이라도 항의하면 향후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어려움속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2001년도 전국 총파업을 통해 노동조합의 위상을 알려내고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 왔다. 2003년도는 건설업계에서 대변혁이 이루어졌다. 건설업계 역사상 처음으로 일요일에 작업이 중단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타워노조의 일요일 휴무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요일 휴무 투쟁은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마침내 성공을 거두고, 그 투쟁의 힘으로 2003년도 임단협을 체결하였다.
2003년도 임단협의 내용은 년월차, 4대보험, 각종 수당, 퇴직금, 성과급과 기타 근로조건을 아우르는 투쟁의 성과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일요일 휴무 투쟁의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연히 일요일도 작업을 해야만한다고 생각하는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일요일 휴무는 대단히 충격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130년 동안 행해져왔던 건설업계의 잘못된 관행들이 마침내 타워노조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사용자들의 반격은 대단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고, 마치 노예처럼 부려먹던 현장의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 내지는 역전이 된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건설업은 파견근로 자체가 금지된 업종이다. 선원, 광산업종과 더불어 중대 재해 사고가 많이 발생을 해서 미숙련 노동자가 투입될 경우 중대 사망사고의 발생비율이 더욱더 높아지기 때문에 파견근로 업종에서 제외된 업종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타워크레인운전과 관련한 부분을 불법용역이나 소사장들에게 넘기게 된다. 현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타워크레인기사가 있다면,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해지 된 것처럼 꾸며서 해고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예전처럼 회복해서 최대한의 착취구조를 만들기 위해 파견근로를 도입한 것이다
불법용역, 소사장은 1년 사이에 급속히 늘어나서 전체 타워크레인기사들 중에 30% 정도가 이들 밑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불법용역, 소사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경험미숙과 내부의 조직적인 문제로 인하여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용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정부에 타워크레인기사에 대해서 기능 인력 배출을 늘려 줄 것을 요구 하였다.
이에 노동부는 실업대책 사업을 빌미로 사용자단체에 위탁해서 파주에 경기인력개발원을 통해서 타워크레인기사 기능 인력 배출에 들어갔다. 당시에 상황은 부동산 경기 과열로 인해 정부의 각종 투기 억제책이 나오는 상황에서 건설경기 하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민의 혈세로 타워크레인기사 기능 인력 배출에 돌입을 하였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타워크레인기사 실업률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건설경기 하락으로 타워기사들의 실업률이 심각한 상황에서 파주교육원을 통해 배출된 기능 인력들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파주교육원 출신들은 미숙련 노동자로서 현장 취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법용역, 소사장들은 이들에게 취업을 미끼로 저임금, 4대 보험, 각종수당, 퇴직금 미지급, 일요일 작업등을 요구하며 우선 채용에 들어갔다. 가뜩이나 산재사고가 증가하는 건설현장은 그야말로 산재 사고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2003년도 임단협 내용조차 악의적으로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총파업투쟁
1, 표준근로계약서 체결
2, 불법용역 및 소사장 철폐
3, 파주교육원 폐쇄
4, 2003년도 임단협 준수
5, 임금 14,4% 인상
이번 파업투쟁의 핵심 요구 사항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단순히 임단협의 문제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용자들과 마주앉아 임금이나 기타 근로조건에 대해서 논의를 하여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본질적인 문제인 잘못된 제도나 관행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된 구조속에서 가장 첨예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은 파업투쟁을 준비하면서 철저하게 현장의 울타리를 넘어 길거리로, 사회속으로 투쟁의 목표로 삼았다. 타워크레인기사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의 족쇄를 달고 있는 불법파견의 문제를 최대한 사회문제화 시켜내면서 임단협의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마침내 4월 28일 새벽6시를 기해 총파업 투쟁이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에게 남원 민주노동당 연수원으로 집결 지시가 내려갔다. 먼저 조합원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상당수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이 고립 분산적으로 흩어져 있다보니 조직하기도 어렵고, 특히 교육사업을 진행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타워노동조합 역시도 조합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박 3일 남원 연수원 집결기간동안 총파업 투쟁 관련 교육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다. 80% 이상의 조합원들이 파업을 처음 경험한 터라 모든 것이 순조롭지 만은 않았다. 특히 비좁은 숙소탓에 500여명 정도의 조합원들은 2박3일 동안 운동장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노숙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낯설고 불편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조합원들이 투쟁의 열기를 모아 잘 참아내어 주었다. 하지만 현장을 벗어난 길거리 투쟁은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용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대체근무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회사측 운전기사까지 동원하여 타워를 가동하고 있었다. 400여명 정도의 현장 감시단을 전국 각 지역에 분산 배치하였지만 400여명의 인원이 전국 각 건설현장을 감시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서 조합원들 사이에서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의견들도 있었다. 우리는 흔히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파업은 역시 노동자의 학교이다. 그 어떠한 교육보다도 몸으로 실천하면서 모순 구조를 스스로 깨닫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파업투쟁은 하루가 다르게 투쟁의 강도를 높이면서 진행이 되어갔다.
4,30일 노동절 전야제에서 조합원들 스스로가 모두들 놀랐다. 모레알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현장에 흩어져 있다보니 평소에 지도부에서 통제하기 조차 버거웠던 조합원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없이 지도부의 통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며 노동자들의 단결된 모습들이 어떠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왜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하는지, 노동자들이 왜 연대를 해야만 하는지를 4․30 노동절 전야제 집회 한번으로 백번의 교육보다 나은 효과를 거두었다.
사실 파업투쟁을 준비하면서 지도부에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들이 음주 문제이다.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다보니 평소 술실력도 대단했고, 또한 전국의 조합원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다보니 평소 보다 음주에 대한 욕구는 정말 대단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음주 문제를 얼마나 통제하느냐가 파업투쟁의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정도였다.
파업투쟁에 동참한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옆에서 포장마차가 있는데 뒷구멍으로 도망가서 소주한잔 먹는 조합원들이 단 한명도 없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기적이다. ‘모세의 기적보다도 더 훌륭한 기적이다’ 라고 농담삼아 말할 정도였다. 그러한 모습은 ‘더 이상 예전의 타워크레인기사들의 모습이 아니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의 단결된 모습에서 나오는 투쟁의 열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불법대체 근로를 자행하면서 조합원들 스스로가 지쳐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합원 개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머지않아 파업투쟁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라면서 온갖 흑색선전을 감행하고 있었다. 실제 현장의 타워가 불법대체근로로 가동률이 60%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사용자들은 이를 빌미로 형식적인 교섭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총회에서 정부 ,사용자들의 기만적인 전술에 말려들지 말고 즉각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을 결의 하였다. 하지만 실제 고공농성을 결의하였지만 성공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사용자들과, 경찰에서도 이미 고공농성에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목표는 수도권 요지에 타워크레인 100대를 1개조 5명에서 총 500여명이 점거하는 시나리오를 짰다. 일부러 연출조들을 만들어 회의를 가장하고, 점거농성조는 한사람씩 흩어져서 500여명이 4시간에 걸쳐서 집결지인 서울대학교를 빠져 나갔다. 마침내 5월4일 새벽 0시 30분에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에 성공을 거두었다.
파업투쟁을 마치며
보안유지 문제로 인해 서둘러 타워크레인 농성에 돌입한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지상과는 달리 80M 상공의 타워크레인 위에는 기온차가 다르다. 밤에는 추위와 바람으로 인해 무척이나 고생이 심하였다. 얇은 옷 한 벌만 입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필요한 생수만 갖고 올라간 조합원들은 허기와 추위를 달래가면서 3박 4일을 버텨냈다. 마지막 날에는 보급대 동지들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최소한의 물품을 전달받기는 하였지만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역시 노동자들이 믿을 것은 오로지 투쟁밖에 없었다. 3박4일의 고공농성 투쟁 끝에 용역, 소사장 철폐, 원청과 직접근로계약서 작성등 대부분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수가 있었다.
조합원 찬반 투표가 끝나고 조합원들은 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투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현장으로 돌아가자마자 일부 사업주들은 조합원 해고부터 시작해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거부, 연월차 미지급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또한 사업주들은 조합원들은 현장 체용을 하지 않겠다고 총단결해서 설치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두려울 것이 별로 없다.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켜내고, 현장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꿔낼 수 있는것은 오로지 투쟁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조직화 사업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낮은 조직율과 조직된 노동자들조차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산발적인 일회성 투쟁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되어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하겠지만, 당장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최소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주체만이라도 임단협 시기만이라도 단일화시켜, 힘찬 연대투쟁의 깃발을 세웠으면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예산안 보고를 할 때 한 조합원이 한말이 생각이 난다. 노동조합에서 연대사업비가 고작 이거냐 라고 질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
|
|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