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HOME | 운영자에게 | 소개 | 사이트맵
NO.1|창간호
검색
Home > 지난목록 > NO.1|창간호  

NO.1|창간호
초점3. 한꺼번에 몰려오는 희열과 좌절

:: 2002-10-23   조회: 1953  첨부파일: 2-초점3.hwp

지난 이년 동안 비웃음 속에 참 미친놈처럼 많이도 돌아다녔다. 알아주지도 않는 파견법철폐를 외치며 외로움, 박탈감, 뒤통수가 뜨거움을 느끼면서 바보같이도 외곬수로 살아왔다. 후회없는 삶,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방어하기란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보다 더 어려웠다.
내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걸 느끼면서 게을러짐을 스스로 한탄하면서 나를 질책하기보다는 고양이새끼 무서워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비맞은 생쥐처럼 초라함을 느끼면서도 내 신세를 한번도 한탄하지는 않았다. 무언의 목적을 찾아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까마득히 잃어버린 채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처럼 하나둘씩 지난 세월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몸부림쳤는지도 모른다. 역겨운 세상 토해버릴 만도 한데 내 스스로 거부했고 부식될대로 부식되어버린 나는 쓰레기장에 버려질까. 이대로 나를 묻기는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든다.
올 겨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세차장에서 세차를 하며 내가 설자리가 이 자리였구나. 웃음도 화도 나지 않던 그때, 노동운동을 한다는 자가 스스로 불법인줄 알면서도 도급택시를 몰고 졸음을 쫓으려 별 생쇼를 다하다가 어렵게 태운 손님은 목적지에 다와서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뒷문을 열자마자 줄행랑을 쳐버리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본다더니 내가 그 꼴이 되고 보니 너털웃음 많이 나오던 그때. 그런 날도 있었는데. 이게 마지막 나의 소신이라 생각하면서도 망설임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 비정규후보 선출이라. 비정규연대회의서 솔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실 난 회의적이었다. 민주노총 중앙은 이기적인 모습과 그동안 비정규문제에 대해서 시원한 대답 한번 들어보지 못했고 그 많은 비정규 노조가 탄생하였지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책임지는 놈 없고 고통은 고스란히 비정규 몫으로 남아있다.
해서 난 의문을 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비정규후보가 중앙에 올라가서 제대로 비정규사업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어느 선이 최적일까 많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왕따는 당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생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욕심도 났다. 악재가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선다. 4월2일 발전파업으로 인한 중앙의 직권조인. 그로인해 중앙대의원들의 연맹불신. 이것만 작용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순탄하지는 않았다. 후보가 선출이 되었지만 비정규후보진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통계약직 전 조합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낙관적으로 보기보다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았다. 노골적으로 나에게 불만의 목소리들을 털어놓는 한통계약직 동지들. 그 동지들의 심정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도가 오르내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 28세의 피끓는 젊은 이동구동지의 전신마비에 평생을 벙어리로 살아가야 하고, 42세의 한승훈 동지 또한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작년 5월16일 한 많은 세상을 뒤로 하고 그는 우리 곁에 무언을 남긴 채 떠나갔다. 인생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10살짜리 8살짜리 두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하자던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를 남겨두고서...
수많은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비정규후보로 나선다는 것이 홍준표 전위원장에게는 큰 부담이면서도 한통계약직 동지들 역시 심한 딜레마에 빠졌으리라. 하나 어찌하랴 주사위는 던져졌고 화살은 시위를 떠난 것을. 8월17일 마지막 대책회의 추천을 했던 비정규단위 위원장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동지들과 함께 연대했던 많은 동지들이 모여 점검회의를 열던 날, 우리는 다시 한번 좌절감과 실망감에 빠졌다. 침묵이 흐르고 홍준표 후보는 걱정을 깨는 발언으로 좌중을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든다. 후보 사퇴.
도저히 출마를 못하겠단다. 조직을 위해서. 결심했단다. 허참 시간은 없고 난감했다. 대통령선거도 아니고 국회의원 선거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네 이장선거도 아닌데 모레면 발대식이 잡혀 있는데...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설득하기로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좋다 여기서 사퇴하면 전국의 대의원들이 우리 비정규직들 어떻게 보겠느냐. 정 못나오면 발대식만이라도 나와서 참석해라. 그리고 전국유세는 나 혼자 다니겠다. 거짓말이라도 해서 후보가 함께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하겠다라는 나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곧 사퇴하겠단다.
만약 떨어지면 한통계약직 동지들을 볼 면목이 없단다. 나는 위원장 걱정마쇼, 민주노총 중앙은 썩었을지 몰라도 중앙대의원은 썩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고 대부분 대의원들은 살아 움직이는 민주노총이라고 문명은 사라질지라도 한통계약직 싸움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설득의 의미도 없이 옆에 있던 단위노조위원장과 연대해온 동지는 후보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후보사퇴를 종용하는 게 아닌가. 토닥거려도 아쉬운 판에 오히려 고춧가루를 뿌리고, 어려운 한판 승부 처음부터 삐걱거리더니 급기야는 비정규후보 발대식이 있던 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오후 4시쯤 먼저 서울본부를 나선 나는 후보현수막부터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지하철 5호선 역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다 잠시 의자에 앉았다가 그 자리에 현수막이 든 봉투를 놓고 열차에 오른 게 아닌가. 멍하니 그 봉투를 바라보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역순으로 돌아와 보니 그 봉투는 온데간데 없고, 눈이 뒤집힌 나는 지하철 쓰레기통이란 통은 다 뒤지고 역무실이며 환경미화원이 있는 곳까지 찾아봐도 오리무중이었다. 그때, 홍준표 전위원장한테 전화가 걸려오고 5호선 역사에서 만난 나는 "큰일났어. 현수막을 잃어버렸어." 홍위원장 역시 기가 막힌지 아무 말 도 못하고 사색이 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시간은 다가오고... 마지막 수단은 현수막을 담당했던 조형수 명월관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조위원장 큰일났어. 현수막 잃어버렸어."
조위원장도 기가 막힌 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위원장, 거기 전화해서 6시까지 현수막, 연맹으로 갖다 줄 수 있는지 좀 알아봐." 조위원장은 알았다고 했고, 초조한 시간은 가고 반가운 전화가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6시까지 갖다준대요."
휴우, 한숨을 돌리며 그래도 안심이 안돼서 왕십리에 있는 분실센터에 들렸지만 그 곳 역시 내 편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연맹으로 돌아와 허탈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이랜드위원장은 "형님, 형님이 부위원장선거에 못나와서 일부러 그런 거 아냐." 라며 비아냥 거릴땐 한방 날려버리고 싶기도 하고...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성대하게 발대식은 끝날 수 있었다.

준비된 것은 몸뚱아리뿐.
첫 유세지역인 광주로 향한다. 광주에는 안면이 있는 사업장이라고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지부와 함께 처절하게 싸웠던 캐리어사내하청, 기아사내하청 동지들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사실 지역에 내려가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수많은 고민들이 엄습해왔지만 도착하는 순간부터 캐리어 이경석위원장과 캐리어동지들이 길안내와 조언 등 많은 협조에 어려움 없이 광주에서의 첫 유세는 그런대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도착지는 대전. 광주보다는 낯설지도 않고 포근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7시부터 시작되는 연설회에 맞추어 대전에서 활동하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동지들이 도착하고, 뒤이어 한통계약직 대전본부 동지들이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하여 속속 도착하였다. 투쟁의 현장에서 보다가 현장에서 일하다 달려오는 한창원동지, 직대 등등. 대전지역 동지들이 달려왔을 때는 반가움보다는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왈칵 눈물이 나오려 했다. 짧고도 힘찬 포옹을 하며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가슴뭉클한 해후를 하고...
대전에서의 연설에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는지 자신감을 보이는 홍준표후보. 짜증을 낼 만도한데 오랜 감방생활에서 배운 인내심으로 버티는 것 같다. 시어머니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는데도 말이다. 잠깐 의자에 누워 졸기라도 하면 연설문을 외워라, 목소리 톤과 강약을 조절해라, 아마도 그때는 짜증이 났을 것이다.
거기에다 운전담당을 맡은 한상대 동지는 완전히 깡패운전이고,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가자고 하면 기본이 140킬로로 달린다. 청개구리 한상대...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 졸려라' 하며 뒷좌석에서 벌렁 누워버린다.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우회전하라고 하면 직진하고, 직진하라고 하면 좌회전하고. 아주 우리를 돌게 만든다. 두 번 다시 부위원장 선거에 이 넘하고 다니다간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517일의 동지라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휴게소에 들리면 우리는 500원짜리 음료수를 먹더라도, 한상대는 5000원짜리 동방불패를 먹이고... 그런 2박 3일간이 23일 같이 느껴진다.
거기에다 용진동지, 동근동지. 후보를 보위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시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동을 하려고 보면 화장실에서 만화를 보는지 나오질 않고, 어쨌든 간에 대구에서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동지들이 열심히 도와주었고, 대구의 농공단지 내의 투쟁사업장과 지역동지들의 만남이 재산이라면 재산이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 유세는 부산이었다. 마지막이라서인지 모두가 지친 모습과 긴장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푹 쉬고 싶다는 얼굴들이다. 처음과 끝은 있게 마련이지만, 사실 우리는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후보진영 역시 양파인지, 골파인지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 단체로 이동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지만 우린 여기에 개의치 않았다. 아직은 그래도 건강한 민주노총을 지키는 건강한 민주대의원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대의원들은 분명 비정규후보를 지지해 줄 거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민주노총 대의원동지들에게 감사드리며,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나마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과 비정규직들 간의 깊었던 갈등들을 하나둘씩 해소할 수 있도록 동지들의 질타와 격려가 있으리라 믿으며...

우리 함께 어깨 걸고 평화의 노래를 부를 때까지... 투쟁!
주봉희 | 방송사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 [주장] [성명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 시도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입장 2015/12/09
  :: [주장] 민주노총의 의무인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정부 지원에 의존해서 하겠다는 것인가? 2011/01/09
  :: [자료] [토론자료] 2003년 민주노총 사업계획(안) 2002/12/16
  :: [질라라비] 초점2. 민주노총 부위원장선거 2002/10/23
  :: [질라라비] 초점1. 2002년 하반기 민주노총 비정규직 사업계획 2002/10/23
  :: [질라라비준비호] 민주노총 비정규직 투쟁사례분석 토론회 2002/04/09
  :: [질라라비준비호] 민주노총 2002년 비정규직 사업계획 2002/01/29

 

△이전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출범의 의미
▽다음글: 초점2. 민주노총 부위원장선거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