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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유연화 - 역사적 고찰

:: 2002-10-25   조회: 2912  첨부파일: 10-노동이론자료실.hwp

독일에서는 1984년 이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주 35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자본은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의 전제조건으로 기계 작동시간을 연장하여 공장가동시간을 늘릴 것을 요구하였다. 주 40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에, 즉 주 5일 근무를 골격으로 하는 새로운 노동시간의 도입에서도 자본은 노동조합이 노동의 유연화를 수용하는 것이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이 글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공장가동시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노동 유연화의 중심에 놓고 분석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시간이란 노동자가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말하자면 노동시간이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직접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이러한 노동시간 정의에 의하면 일터로 가고 오는 출퇴근 시간과, 휴식시간, 교육시간 그리고 식사시간은 노동시간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노동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자본가들은 항시 새로운 경영기법을 발달시켰다. 우선 이러한 경영기법의 역사적 측면을 파악하고 최근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 유연화 논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I. 근대 공장체제


오늘 날 존재하는 노동시간구조는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다. 자본주의 산업화 이전에 실행된 노동시간은 자연현상과 종교적인 교리에 의존하였고 하루 노동시간의 전개는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였다. 서구 유럽에서 중세의 노동시간은 115일의 휴일과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한 52일의 일요일을 제외하여 연 200일로 줄어들었다. 이 당시 노동시간의 길이와 강도는 날씨, 계절, 산업재해 그리고 마스터의 습관에 따라 일정정도 불규칙적으로 실행되었다. 말하자면 이 당시의 노동시간은 보통은 구체적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13세기에 특정한 섬유산업도시에서는 작업시간과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설치되었다. 공장에 설치된 종은 당시의 도제들의 정치적 비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공장에 설치된 종은 또한 도시 임금노동자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공장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공장주가 될 수 없는 도제들의 수가 급증함에 따라서 일용직 임금노동자의 수가 급증하였고 이들은 일정한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투쟁단체로써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예는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도 자기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노동시간에 대한 계기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비로소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행위를 시간을 통하여 통제하려는 엄격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산업화와 진전과 전등의 발명으로 인공조명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규칙성, 시간훈련으로 표시되는 전체노동자에 대한 획일적인 노동시간 통제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노동시간 훈련은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것에서 노동자들 스스로가 이러한 규율에 순응, 습관화함으로써 내재화되었다. 노동자 자신이 아닌 외부로부터 정해지는 노동시간에 대한 시간규율과 노동자 스스로 이러한 외적 강제를 인정하는 것이 점차로 일반적으로 되었고, 오늘날 노동시간을 규정하는 본질이 되었다. 자본가가 노동시간을 구획하고 계획하는데 철도의 발전과 확산이 준 영향은 매우 크다. 철도는 자본가가 노동시간을 계획하고 조정하는 경영기법의 가능성을 열었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철도의 등장으로 자본가에게 생산의 공간적 제약이 현저하게 축소되었고 -원료나 노동력의 운반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공장의 위치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됨- 이제 단지 시간의 제어만이 생산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으로 남게 되었다.

여러 가지 기술의 발전과 이의 생산과정으로의 응용이 경영을 연구하는 자들에게 공장조직을 시계의 체제와 유사하게 하려는 사고가 발생하게 하였다. 공장을 조직하는 자는 공장을 소유자가 부재중에도 똑같이 그리고 쉬지 않고 계속 가는 시계와 유사하게 조직하여야 한다는 사고가 만연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대공장 시스템의 전 사회적 관철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시간조절의 가능성을 약화하였다. 공장체제는 삶에서 노동을 분리하여, 작업장에서 행하는 순수한 노동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사회적 시간의 의미와 내용의 다양함을 노동력 이용을 시간적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과정은 효율, 경제적 합리성의 범주를 거부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한 제거를 의미하는 자본의 권력획득 과정이었다. 노동시간의 측면에서 관찰하면 자본으로의 노동의 형식적 종속은 일정한 노동시간의 지속, 노동시간의 상태 그리고 노동시간의 구조 (생산하는 노동시간과 휴식형태의 노동중단)를 자본 임의로 확정하는 권리를 의미하였다. 자본가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노동시간이 통제 제어되면서 임금노동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간에 대한 주권을 점차로 상실하였다.
첫째, 경영상의 생산요구가 점차로 임금노동자가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시점과 노동의 지속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였다.
둘째, 임금노동자들은 노동과정의 시간적 구조를 자기의 능력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 짜는 가능성을 점차로 상실하였다.

위의 테제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오늘 날 진행되고 있는 유연화 논쟁에서 유연화가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주권을 다시 돌려 받는 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구조의 점차적인 경직화는 분업의 특수한 발전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개별 노동의 기계로의 결속은 노동자간의 그리고 각각 기계를 연결하는 축이 운동하는 공장가동 시간과의 시간적인 조화를 필요로 하였다. 전반적인 차원에서 관철된 대공장 체제와 이를 통하여 생겨난 조절과 통제 문제는 노동시간 집단적 규칙화의 경향을 강화하였고 이는 또한 경직된 공장가동 시간과 결부되었다.

기술적인 논리로부터 설명되는 시간규율이외에도 공장체제가 도입된 초기시기에는 개별노동자의 작업시간과 공장가동시간의 경직된 연결은 노동시간의 과도한 연장을 결과하였다. 개별 노동자의 작업시간과 공장가동시간은 하나로 통일되었으며 노동시간구조는 단지 기계나 장치의 기술적 논리와 임금체제의 경제적 논리에 따라 형성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 또는 단지 원가개념으로 저하시켰으며, 노동자의 육체적 심리적 재생산을 필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노동조건을 만들어내었다.


II. 임금노동자의 저항


노동자와 자본가가 계약 -생존을 해결하기 위한 임금을 획득하는 조건으로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의 사용을 일임하는-을 통하여 시작되는 노동의 자본에로의 형식적 종속은 결코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실제적으로 종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1800년경에 영국의 섬유산업 분야에서 대공장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할 때, 최악의 노동환경에서의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에 매우 유해하다는 것을 환기시킨 것은 의사들이었다. 법으로 통제되지 않고 자본가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규율되던 아동과 여성 노동 그리고 공장에서의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은 노동가능 인구의 건강을 매우 위협하였다. 하지만 콜레라 전염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노동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영국정부는 아동과 여성 노동시간의 통제를 위한 단초를 도입하였다.

로베르트 오웬은 여성과 아동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의 하나였다. 섬유 공장주인 오웬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하여 착취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노동시간과 일상생활 사이의 조화로운 타협을 시도하였다. 이미 1817년에 오웬은 자신의 공장에, 인간은 8시간 노동, 8시간 자유시간 그리고 8시간 수면해야 한다는 취 지하에 일 8시간 노동을 도입하였다. 또한 오웬은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동료 (공장주들)들에게 확신시킬 수가 없어서 노동시간 단축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섬유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시도하였다. 1830년대에 영국에서 노동자들의 정치 권리를 위해 진행된 챠티스트 운동에서 8시간 노동은 많은 지지자들을 얻게 된다. 정치적 권리행사와 노동자가 자기 마음대로 처분 가능한 자유시간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즉 정치적 선전 선동에 참여 할 수 있는 시간의 확보를 위해서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시 영국에서 위협적으로 퍼지고 있던 실업을 저지하고 일상적인 가족생활을 다시 영위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활발한 정치적 선전 선동의 결과는 섬유산업에서 아동과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고 노동시간에 대한 공장주의 자율적인 결정을 제한한 1848년의 새로운 공장법이었다. 하지만 자본과 국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남성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유럽에서만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내전 동안에 8시간 노동 구호는 파업하는 노동자와 군인의 상징이었다. 미국에서 8시간 노동간을 위해 투쟁하고 노동조합을 통하여 8시간 노동의 필수성을 논의로 끌어온 주체는 유럽과는 달리 섬유노동자가 아닌 좀 더 낳은 교육을 받은 기계산업의 노동자들이었다. 맑스는 이러한 미국 노동자의 노력을 제 1차 노동자 인터네셔날에 수용하였다. 1866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 맑스의 제안은 제 1차 인터네셔날이 추구해야할 기본조항으로 통과되었다.


"우리는 노동시간 제한을 위한 투쟁이 노동자 삶의 향상과 해방을 위한 다른 모든 노력들을 성공적으로 이끌 전제조건임을 공표 한다. 노동시간 제한은 노동계급, 말하자면 모든 국가의 민중의 건강과 육체적 에네르기를 다시 생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노동계급에게 정신적 발전, 사회적 교통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우리는 8시간 노동을 법적인 한계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8시간 노동시간 제한은 미합중국 노동자들에 의하여 이미 일반적으로 요구되었고, 회의의 결정은 이러한 요구가 전세계 노동계급의 일반적 요구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K. Marx "Instruktionen fuer die Delegierten des Provisorischen Zentralrats zu den einzelnen Fragen, MEW 16, Berlin 1962, S. 192)



맑스가 국가의 법과 영향력에 어떤 원칙적인 역할을 부여한 것은 매우 특이하다. 하지만 1848년의 영국의 공장법 조항들은 맑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그는 이 법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시간주권을 다시 찾는 수단의 하나로 파악하였다. 제 1차 인터네셔날이 실패 후 열린 제 2차 인테네셔날에서도 역시 법으로 규정된 8시간 노동은 회의의 안건으로 다시 수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870년 이후로는 메이데이 행사에서 8시간 노동시간 구호가 주요 구호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우리는 8시간 노동시간이 근대 공장체제의 전 세계적 확산 이전에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의 하나임을 확인하여야 한다. 근대 공장체제가 도입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의 8시간 노동에 대한 요구는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노동시간을 제한하려는 정치적 그리고 사회 문화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노동운동의 좌파는 8시간 노동에 대한 요구를 통하여 노동자 대중에 대한 커다란 동원력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대중 동원력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업에 대한 공포와 그리고 증가하는 노동에서의 부담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동시간의 명백한 한계를 요구하는 노력들이 점차로 커지고, 더욱 효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자본가들은 생산과정의 내부 시간구조를 최적화시키고자 하였다. 전문직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 직업품성의 이데올로기 격언인, 시간은 돈, 즉 개별자본가에게는 시간절약=돈=자본이라는 기본 행위 지침을, 점차로 의식하기 시작하였다. 8시간 노동시간을 위한 투쟁은 자본에 의하여, 즉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시간의 경제화와 합리화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었다. 즉 맑스가 설명한 것처럼, 절대노동시간을 늘려 필수노동시간의 단축과 이로 인하여 획득된 절약된 노동시간에 의하여 초과로 생산된 잉여노동을 자본의 부분으로 이전하려는 가능성을 여는 새로운 과정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당시 봉건제적, 전통적인 성향을 가진 노동자들이 아직도 획일적으로 짜여진 노동시간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그리고 과도한 알콜 섭취로 긴 노동시간과 싸우고 있는 반면에, 수공업자의 엄격한 규율과 공장 기계를 다루는 교육에 기초하여 양성된 전문직 수련 노동자들은 당시로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노동윤리를 가지고 노동시간을 위하여 싸우고 있었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결과된 점증하는 자본투입과 기계의 복잡함은 기업경영과정의 합리적 조직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시간의 규칙성과 노동투입량의 계산 가능성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합리화의 과정과 대공장 체제의 확산 과정은 노동운동의 역사가 충분히 보여주듯이 결코 분쟁 없이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III. 테일러 주의와 노동시간


미국의 기술자인 테일러는 1890년경에 은폐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내란을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는 조직과 인간의 행위가 자연처럼 실험이나 분석을 통하여 찾아낼 수 있는 법칙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과학적인 가정에서 출발하였다. 이러한 조직이나 인간의 행위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 생산의 최적화로 가는 유일한 올바른 길이었다. 테일러의 생각으로는 자본가(경영자)와 노동자의 정신적 혁명을 동반하는 생산과정의 기술적인 과학화는 이들간의 새로운 협력과 생산의 가속화를 결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의 최종결과는 이윤과 임금이 동시에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제로 섬 게임(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항상 손해를 본다는)이 드디어 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과 노동자의 동작연구는 이러한 생산과정의 과학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보조수단이었다. 인간 노동의 합리화와 그리고 시간 낭비의 회피를 통하여 생산성의 향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대공장에서의 모든 노동과정들과 노동자들의 각각의 손놀림은 정확하게 관측되고 연구되었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은 더 합리적인 노동과정의 조직화, 즉 계획과 실행의 분리를 통하여 시간절약을 하는 것이었다. 니랜드는 "테일러의 이상적인 계획은 단지 노동자의 노동시간 통제 이상의 무엇을 포함한다. 이는 과학적 방식을 조직, 행정, 분배 그리고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하여 어떠한 체계적인 접근이 유익한 모든 영역에서의 적용을 포함한다"라고 단언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테일러주의적 조직원칙은 노동자에게서 노동실행의 제반 조건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감을 찬탈하여 경영자의 계획영역으로의 이전을 결과하였다.

이러한 노동과정의 변화는 경영자들에게 기업이나 작업장에서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였다. 공장주(자본가)들이 독점적 소유에 기반 하여 노동시간을 일방적으로 결정 할 수 있는 공장에서는 경영자들은 자신들의 지식독점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노동과정으로의 침입을 정당화 할 수 있었다. 테일러주의에 -소위 과학적 경영- 심취한 공장주와 경영자들은 성과급제도, 계산가능성, 신뢰성 그리고 정확성을 통하여 노동자들에게 통제 이외에 동기 부여하여 생산력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노동과정은 가장 최상의 시간의 경제를 보장하였고 노동자는 기계에 대한 직접적인 연결 없이 기계처럼 기능하도록 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생산기술의 향상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는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하였다. 테일러는 1890년대 Simonds Rolling Mashine Company에서 행한 일련의 실험에서 생산과정에서 생산물을 마지막으로 검사하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으로 인한 피로감이 생산력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테일러는 이들의 노동시간을 10시간 30분에서 8시간 30분으로 2시간 단축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 테일러는 생산의 증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가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테일러주의자들은 노동시간의 과학적 분석이나 또는 노동관계의 육체적, 사회적 측면에는 관심이 없었다. 노동과정에서 지위를 향상한 숙련기술자들은 작업장에서의 인간적인 요소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았고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당시에는 단지 소수의 기업가들이 임금체계에 있어서의 성과급제도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의 상호작용과 잘 조화될 때 자본주의적 시간의 경제가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IV. 포드주의


자동자 공장주인 헨리 포드는 노동조합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구호가 생산력의 발전에 유용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몇 안 되는 자본가의 하나였다. 포드는 자신이 경영하는 공장설치의 몇몇의 기술적 혁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1914년 포드는 자신의 공장에서 실행되던 9시간 교대 근무를 8시간 3교대제로 바꾸었다. 동시에 일급이 2.3달러에서 5달로 인상되었다. 하지만 포드가 취한 일련의 조치는 노동자를 인간적으로 위하고자 하는 박애주의가 결코 아니었다. 포드는 1922년 자신이 취한 조치들이 원가를 줄이기 위하여 지금까지 취해진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포드의 목적은 자신의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생산방식은 노동자에게 무자비한 규율과 훈련을 요구하였고 공장 노동자들을 공장 가동 시간과, 기계의 연속성과 율동에 종속되도록 강제하였다.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이제 경영자가 공장의 계획과 이에 기반한 공장 내의 협력 관계가 어떠한지를 직접 설명 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경영자의 역할을 조작된 컨베이어 벨트가 이어 받았다는데 있다. 이제 공장에서의 집약적인 노동은 완벽하게 컨베이어 벨트에 구체화된 시계와 노동의 동시조작에 따라 진행되었다. 수공업자들이 완전히 개인적인 작업율동, 즉 주체적으로 노동시간과 구조를 정할 수 있던 반면에, 이제 많은 개개 노동자와 여러 조직들이 단지 시계를 통하여야만 보장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시간으로의 획일적인 종속이 원활한 생산의 필수가 되었다. 노동자의 행동은 이제 시간적으로 통제되었고. 이리하여 노동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 질서 지워 질 때만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개별노동자가 무엇을 해야할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언제,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가가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강제적으로 주어지게 되었다. 포드주의의 확산으로 자본주의 공장 생산양식의 새로운 단계로써 기술적이고 관료제적 통제가 발전되었다.

포드주의의 전 세계적 확산은 산업분야에서 어떤 새로운 시간배열이 전개된 것과 같은 시점에서 가능하였다. 말하자면, 사회적 그리고 기업과 공장에서의 분업이 확산되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이 노동영역과 여가영역간의 시공간의 양극화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일차 세계대전 후의 8시간 노동의 법제화는 이러한 양극화 과정에서 하나의 절정을 이루었다. 거의 모든 유럽국가에서 공장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8시간 노동이 동시에 도입되었다. 단지 영국과 미국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이 노동과 자본간의 단체협약 사항으로 확정되었다. 단체협상의 목적은 단지 노동시간의 단축뿐만 아니라 노동시간의 길이와 상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V.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위한 다양한 원인들


8시간 노동과 주 5일 노동을 위한 노동자와 노동자 조직의 투쟁의 원인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였다. 하지만 신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노동자의 조직적 투쟁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하여 남아있는 일자리를(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아닌) 더 많은 노동자에게 연대적으로 나누어주는데 목적이 있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이 광범위로 도입된 시점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실업을 줄이는 최상의 방식으로 강조되었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주요 산업국가에서 대대적으로 도입된 1930년대에는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제한하려는 요구가 활성화되었다. 유럽에서 포드주의 생산 방식이 전면화 되던 1950년대에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여가시간을 늘린다는 목표 하에 주 5일 근무제를 요구하였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은 노조에게 30년대에 실패한 주 5일 40시간 노동시간을 성공적으로 관철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 당시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는 실업의 위험을 나눈다는 것에서 실제적인 여가시간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독일 노조의 구호 중의 하나인 "토요일에는 아빠는 우리 것"이라는 구호가 이를 잘 말해준다).


VI. 공장가동시간과 노동시간


노동조합과 자본가 연맹의 단체협약으로 결정되어 많은 노동자에게 적용되던 표준노동시간이 전 사회적으로 관철되기 이전에는 기업 간의 경쟁에서 노동시간 자체의 길이와 강도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표준노동시간이 법적으로 관철되자 노동시간이 기업 간의 경쟁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그리고 8시간 노동시간과 5일제 근무의 도입으로 공장가동시간이 일반적으로 제한되기 시작하였다. 노동시간과 공장가동시간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20년대에 몇몇 학자에 의하여 연구, 분석되었다. 1929년 독일 학자인 하우크는 "노동문제와 산업비용경제"라는 저서에서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의 가장 적당한 길이는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에 종속 받는 공장가동시간과는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영국학자인 페르논은 1934년 자신의 저서 "단축된 주간 노동시간"에서 2교대제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하였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많은 영국의 여성 노동자가 군수산업에서 8시간 2교대제로 작업을 하였다. 페르논은 위의 사례연구에서 2교대제가 상품이 연속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과 더욱이 2교대제가 실업을 줄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민주주의 진영에서도 노동시간과 공장가동시간이 경제적 기능상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자인 카우츠키는 1937년 "개별 노동자의 일일 노동시간과 어떤 공장의 하루 가동시간은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공장에서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8시간에서 6시간으로 단축된다면, 비록 일급이 이전과 같고 단위당 상품 가격이 상승하지 않아도, 이윤은 상승할 수 있다. 이윤 증가는 2교대제를 도입함으로써 하루 공장가동시간이 지금까지의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어남으로써 이룰 수 있다. 위의 경우에는 공장에 투입된 고정자산은 동일한 반면에 하루에 생산되는 상품의 가치는 50% 상승한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는 오랜 동안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면 1960년대에 유럽에서 토요일 휴일제를 실업자의 고용에 이롭게 다시 포기한다는 것에 대하여 한번도 토론된 적이 없다. 이 당시에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실업이 발생한다는 우려는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이 당시에 정부와 자본의 걱정은 노동력 부족이었으며 수 십만 명의 이주 노동자가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이 당시 자본과 경영자의 관점에서는 노동시간은 단지 원가를 결정하는 요소이었다. 자본의 하수를 받은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들은 노동시간의 길이, 상태 그리고 노동시간의 내부구조가 기업의 원가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에 집중되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노동은 기술 혁신과의 관계에서 단지 생산요소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사고에 대한 대응의 하나로 소위 "인간관계에 기초한 접근(인적자원관리의 한 형태)" 방법론이 도입되었지만, 이도 결국은 생산력 증가를 위하여 생산요소인 노동을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이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면에서는 이전의 연구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VII. 자동화


이미 위에서 밝힌 데로 기술발전으로 인한 생산의 집약화가 노동시장에 미친 결과에 대한 논의는 이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1950, 60년대 고성장에 의한 자본주의의 황금기에는 실업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토요일 휴일제는 단지 여가를 즐기기 위하여 존재하였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기술진보로 인한 실업문제의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미 지났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56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학자인 프리드리히 폴라크가 "자동화"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는 엄청난 호황과 노동력 부족 상태에서도 당면한 기술진보와 실업의 증가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는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는 기술진보-자주 자동화라도 표현된다-가 선진 산업분야에서 주 4일 노동의 도입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멀지 않은 미래에 결정될 것이 이라는 사실이 토론되고 있다. 평화시에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급속히 축소되는 것과 노동력의 계속되는 증가에 직면하여 주 4일 노동을 통한 노동시간 축소만이 규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답보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주 4일 노동을 요구하는 미국 노동조합연맹의 제안은 다른 식으로 작용하였다. 말하자면 미국에서는 기업가와 경영자가 주 4일로의 노동시간 단축을 먼저 주장하였다. 60년대 초반에 주 4일과 주 40시간제의 도입을 가속화 한 것은 미국의 자본가들이었다. 미국의자본가들의 의도는 새로운 노동시간 모델을 통하여 이윤을 최대화하려는데 뿌리를 박고 있었다. 미국 자본가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의지에는 생산력의 증가 이외에도 생산계획의 유연화가 매우 중요한 동기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주 4일 근무제가 도입된 많은 미국 기업에서는 한 노동자의 5일도 근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주 4일 40시간 노동은 개별 기업의 특수한 요구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노동자나 경영자의 요구에 적응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었다. 즉 공장가동시간에서 개별 노동자가 실제로 일하는 날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고, 주 7일에 걸쳐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게 되어 "노동시간 유연화"가 자본의 새로운 전략적 변수로써 도입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었다. 60년대 후반 실업률이 증가하자 미국의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을 급진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완화하기 위하여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에 역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주 4일 40시간 (하루 10 노동시간) 노동은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는 수용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특히 8시간 노동을 위한 19세기후반의 투쟁- 노동자의 투쟁은 매우 장기적이었으며 유혈 낭자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일 10시간 노동을 도입인 주 4일 40시간 노동시간의 수용은 노동자들의 매우 격렬하고 감정적인 저항을 유발 할 수도 있었기에 노동조합에게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비로소 80년대에 이르러 심각한 실업률 증가에 따라 노동 유연화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끈 급속하고 장기적인 성장이 끝나고 경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기업과 공장에서의 자동화의 도입과 확산은 경영자의 기능과 자격조건을 변화시키었다. 이제 컴퓨터의 도움으로 생산은 더욱 효율적으로 되었고, 생산관리 분야에서의 조작연구의 발전은 새로운 경영자 상을 요구하였다. 개별 노동자에게 동일한 노동시간이 구조화된 한에서는 노동시간을 공장이나 기업 차원에서 계획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 유연화의 파고로 공장가동시간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개인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가 다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게다가 노동자의 "시간주권"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이 전개되었다. 비록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류 경영학 교과서에서 경영자와 자본가에게 경고하는 핵심 내용, 즉 경영자는 노동자 보다 기술적으로 더 낳게 무장하여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적 관계의 만드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1960년 자동화에 대한 또 다른 연구자인 존 디볼트(John Diebold)는 자신의 저서인 "자동화 -자동화된 공장의 도래- (Automation-the advent of the automatic factory)"에서 아래의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건설되고 있는 경영조직은 특별한 생산공정의 기계화가 노동의 전문화를 결과한 첫 번째 산업혁명의 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경영조직의 노동분업적 구조를 관통하고 그리고 이를 앞지르는 정보시스템을 건설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에는 기술발전이 가져 올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여러 가지 충고들이 무시되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80년대부터 진행된 "유연화" 논쟁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비로소 실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VIII. 노동자의 시간주권


많은 기업들이 신자유주의 노동시간의 도입을 통하여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더 길어진 공장가동시간 사이의 분리, 그리고 시장수요의 변화에 따라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를 통하여 생산력을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켜는 것에 경영의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경영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시간 결정에 대한 권한이 강화되었다는 주장, 즉 유연화가 노동자가 노동시간에 대한 주권을 되찾았다는 주장은 적합하지 않다. 유연화 논쟁에서 노동이 요구한 주 35시간 노동은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질적인 분기점을 이룬다. 40시간 노동을 35시간으로 단축한다는 것은, 비록 중요하지만, 주 5일 노동에서 하루 한 시간 적게 일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 35시간 노동시간 요구는 정치적인 상징을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 35시간, 네덜란드에서 주 4일 36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은 사회적 노동의 체계를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논의하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사회적 의미 사이의 제 관계를 다시 설계한다는 것이 어떤 새로운 사회로의 질적인 도약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문제는 오늘날 "노동시간주권"이라는 슬로건에서 구체화된다. 여기서 노동자의 시간주권은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규정되는 것을 철폐하고, 일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노동시간을 결정하며, 개개 노동자의 노동시간 결정에 있어서 일하는 작업장 동료들 간의 자유를 확대함에 의하여 노동자로써의 삶을 인간화"한다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불필요한 집단적 규율과 훈련이 요구되는 노동시간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보증하는 사회적 발전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권한이 커지면 커질수록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억압적 규율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발전은 노동자가 자본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계획되고 통제되는 노동시간과 자신의 노동력의 재생산 시간을 철폐하겠다는 각오와 이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정치적, 조직적 능력에서 출발한다.

노동을 규제하는 시간적 규율은 사회적 또는 자연과 결합된 주기적인 과정에 의하여 방해받는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이의 회복, 일에 대한 의욕과 혐오는 밤과 낮의 리듬 또는 사회적으로 표준화된 시간뿐만 아니라 노동력이 지나치게 많은가, 계속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가, 그리고 해고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공장주나 기업가의 계산적이고 단선적인 시간과 마찰한다. 이러한 측면을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인간관계연구도 이러한 측면을 거의 분석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류 연구에서 이루어진 분석, 즉 노동자의 다양한 욕구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모델화하고, 노동자들의 순응을 측정하는 주류 경영학의 방법론은, 문제의 해결에 결코 도움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든지 -자본주의건 자본주의이후의 사회에서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을 스스로 책임 질 수 있는 새로운 노동시간모델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기술의 혁신은 기술이 가진 잠재성을 경제적으로 최적화하기 위해서 조직성원의 행위영역의 확대를 필수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노동시간형은 단지 기업에 의하여 중앙 집중적으로 주어지는 목표, 결과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미리 파악 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성공 할 수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이 실행되고 그리고 도입될 기술의 종류와 이에 따른 필수노동시간과 자신의 시간주권 사이의 관계를 함께 의사결정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더 이상 경영자와 자본가의 소유와 경영지식의 독점에 뿌리가 있는 형식적인 공동의사결정권에 기초하여 통제 될 수 없다.


VIIII. 결론을 대신하여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의 결론을 이끌기 위해서 새로운 노동시간경영을 위한 기준을 만들어야한다. 새로운 기준은 우선 노동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추구하는 척도에 근접하는 능동적이고 상황에 타당한 노동시간의 구획을 추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준들을 만족하는 새로운 노동시간모델에 대한 결정영역의 범위를 모든 성원이 자각하게 하고, 이들이 모델을 받아들 있게 하기 위해서는 성원들간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체계가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개별 노동자의 일상계획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였던 일반화되고 획일화된 노동시간모형이 사라지게되면 새로운 계획에 대한 열망은 뚜렷하게 될 것이다. 현존하는 노동시간계획과 구조변형은 단지 노동시간의 집단적 규제만을 다루고 있다. 조직사회학자인 마르텐스는 개별 노동자가 자신의 상황에 기초하여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사이의 선호를 적절하게 결정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의사소통이론"이 필요함을 항변하였다(여기서의 기업은 물론 자본주의 기업이지만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계획은 단지 돈과 권력이라는 매개체만을 통하여 관철될 수 없다. 성원 상호간의 이해조정을 지향하는 노동시간모델은 조직적 결정의 승인과정을 촉진해야한다. 이러한 주장과 관계하여 마르텐스는 아래의 점을 지적하였다.


"어떤 조직시스템의 의사소통은 개별 성원들의 사고가 이미 조직의 의사소통에 관련되어 형성되었을 경우에 한하여 성원들에 의하여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조직에서의 의사결정과 행위를 위하여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개별 성원들의 재생산은 조직적인 의사소통이 개별 성원의 사고질서로 수용되는 것에 한하여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 조건들은 조직의 의사소통에 사용된 언어적 상징이 개별 성원의 사고의 질서에도 사용되어 질 때 충족된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조직의 의사소통과 개별성원의 사고의 배치와 연결이 동일한 질서 틀을 사용할 때 한하여 양 시스템의 교차가 어느 정도 보증될 수 있다".



위의 조건이 만족 될 때 신뢰에 기반을 둔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그리고 건설적인 분쟁해결을 보증하는 새로운 조직환경이 도달 될 수 있다.
황선길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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