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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4|05|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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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4|05|2009
패배와 오류를 인정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 2009-09-14   조회: 2410

강남성모병원에서 간호보조업무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으로 일하다가 2006년 10월에 파견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나서 파견법에 있는 ‘2년 이상 정규직 전환 의무’ 조항에 의해서 2년만에 해고되었다. 2008년 9월 28일의 일이었다.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로비점거농성, 촛불문화제 등 지속적인 투쟁을 해왔고 2009년 4월 말에 복직에 합의하여 투쟁을 마무리했다.


파견법은 병원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파견노동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파견법에 의해서 쫓겨나는 노동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지만 이제는 그 파견법이 얼마나 문제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조차 드물다. 다른 고용형태로 장기간 일하다가 파견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2년만에 짤리는 것이 억울하여 투쟁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파견노동자들은 자신이 2년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알아서 포기하기 때문에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다. 파견법은 그렇게 노동자들의 삶을 두해살이 풀로 만들고, 그래서 삶은 엉망이 되지만 이제는 원망할 대상도 분노하고 투쟁할 대상도 분명하지 않은 파견노동자들은 지금도 구인구직란을 뒤적이고 있다.
그래서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너무나 소중한 투쟁이었다. 노동부에서는 파견법이 일자리를 늘리는 법이라고 선전해대고, 파견허용업종을 더 늘리겠다고 떠들어대는데, 한 쪽에서 파견노동자들은 길거리로 지속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부가 우수파견업체를 선정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우수파견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삶은 겨우 2년짜리. 파견업체와 병원과의 계약이 해지되는 즉시, 이 노동자도 그 파견업체로부터 계약이 해지되는 2년짜리 인생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투쟁은 그렇게 사회화되지 못했다. 이 동지들이 투쟁을 열심히 하는 동안 이 투쟁에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은 파견법이 얼마나 쓰레기같은 법인지를 알리고, 다른 파견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다른 활동을 해야 했다. 병원사업장에서 파견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다. 행정이나 간병만이 아니라 절대금지업무인 간호보조업무에도 파견이 슬그머니 들어와있다. 파견은 그렇게 병원의 안정적인 고용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병원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를 왜곡하고, 오로지 이윤만을 위한 병원의 야심을 강화시켜주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폭로하고 파견으로 일하는 많은 동지들을 다시 조직하고 불러세우기 위한 노력을 이 투쟁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투쟁을 사회화하지 못한 채, 이 동지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 모든 짐이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의 어깨에 얹혔다. 그래서 이 동지들은 열심히 투쟁을 했지만 투쟁의 마무리 과정에서 힘든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 투쟁의 성과는 파견법의 문제를 드러내고 파견노동자 조직화 하는 것으로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철폐연대는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일이 아니라, 이 투쟁을 파견법 및 정부의 비정규법 개악에 반대하고, 병원사업장에 들어와있는 파견제도의 모순을 드러내고 알림으로써 이 동지들의 투쟁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도록 ‘함께’하는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명분을 챙겨간 강남성모병원


이 투쟁에서 합의된 내용은 1)조합원 7명은 5월 1일자로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한다 2)조합원 대표는 투쟁의 책임을 지고 1개월 사회봉사, 2개월 자숙기간을 거쳐 3개월 후인 8월 1일 복직한다 3)민형사상 고소 고발 및 가압류는 취하하지만 가압류 금액 6,000만원 중 일부인 3,000만원은 1년 후부터 2년에 걸쳐 상환한다는 것이다.
강남성모병원에서 간호보조업무는 상시 업무이다. 원래 직접고용으로 노동자들을 채용해왔고, 파견으로 전환하고, 이 노동자들을 다시 해고한 이후에도 그들은 이 업무에 노동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비정규법 조항을 악용하여 고용형태를 마음대로 왜곡하고 기간제와 파견과 용역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늘리고 더 많은 이윤을 착취하였다. 투쟁 과정에서는 정규직들에게 ‘이 투쟁에 연대하면 단협을 해지하겠다’고 협박을 해서 정규직 지부의 연대투쟁을 가로막고 숨죽이게 했다. 그럼으로써 강남성모병원 사측은 정규직 지부를 통제할 힘을 갖게 되었다.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인해서 강남성모병원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고 병원에서도 조합원들을 복직시킬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그들은 1월 22일에 합의를 해놓고도 그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하며 평화기간을 갖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압류를 자행해서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결국 투쟁에 대한 손해배상을 노동자들로부터 받아냈다. 사측은 조합원들이 힘을 소진하도록 유도하고 구두합의를 번복하여 손배·가압류를 통해 타격을 입히고, 마지막 타결 과정에서 노동자 대표에게 사회봉사와 자숙을 명령함으로써, 자신들의 시혜로 인한 복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자본가들에게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이 될 만하다.
그러나 강남성모병원은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비록 힘이 부족하여 이 투쟁에서 패배했지만 이 패배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강남성모병원이 얼마나 비정규직을 탄압하고 악랄한 사업장이었는지를 우리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왜곡된 이분법으로 마지막 결단을 내몰아서는 안 된다


비판적 평가는 단지 조합원들만의 몫은 아니며, 이 투쟁을 확대하지 못해서 결국 이런 선택으로 조합원들을 내몬 철폐연대를 비롯한 지원대책위원회의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선택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렵게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놓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의 용기에 더해, 철폐연대와 우리 운동 전체가 고민해야 할 바를 이야기하려는 것이기에 의견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이 최종안을 선택했는지 알고 있다. 최종안의 문제점을 잘 알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힘든 토론을 거쳐서 “7인의 복직과 1인의 징계거부-당장의 복직 거부”라는 수정안을 만들었고 이것마저 거절당하자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종안에 합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을 마무리하며>라는 글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합의안은 투쟁에 대한 책임 운운하며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였고 복직이 투쟁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원의 시혜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왜곡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최종안 수용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다. 처음 최종안이 나왔을 때에는 이 투쟁에 함께한 동지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해서 수정안을 제출한 조합원들이, 수정안이 관철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함께한 단위들의 견해나 판단 없이 일방적으로 최종안 수용을 결정하고 통보했다. 최종적인 결정은 당사자들의 몫일 수 있으나, 조합원 동지들이 이 투쟁을 자신의 과제로 안고 연대와 지원을 해왔던 동지들을 마지막 순간에 대상화하고 왜곡된 선택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이나 혹은 자신들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노동자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할 방법을 찾는다. 바로 그 시점에 우리의 투쟁의 성과와 의미가 어떻게 남는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강남성모병
원 동지들은 수정안이 거부된 이후 “투쟁을 선택해야 하는 길과 굴욕적인 안을 받는 두 가지의 길만이 놓였”고 투쟁할 수 없기 때문에 굴욕적안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두 가지 길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사측의 최종안이 ‘자회사의 정규직’이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의 요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안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투쟁을 지속하기도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안을 받지 않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즉 실리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투쟁의 의미마저 잃지는 않겠다는 결단을 한 것이다.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이 이런 선택을 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투쟁인가, 실리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지가 왜곡된 선택지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2009년 이후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투쟁은 소강상태였다. 너무 힘들게 투쟁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건의료노조의 교섭에 기댄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보건의료노조가 12월 집중계획을 폐기했을 때에도 수용했고, 1월 22일 노사교섭안을 이야기하고 평화기간을 갖자고 이야기할 때에도 조합원들은 그 안을 수용한 것이다. 그런 과정과정마다 보건의료노조에 교섭을 내맡겼기 때문에 최종안에 대해서도 결국에는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만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적극적으로 교섭안에 대해서 제기하고 무엇을 받을 수 있거나 아닌지 토론하면서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투쟁을 하고, 교섭은 보건의료노조가 하는” 이원화된 구조 안에 있었기 때문에 마무리과정에서는 왜곡된 이분법적 선택지가 된 것이다.
마지막 결정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이후 삶이나 보건의료노조의 다른 비정규직들이나 강남성모병원 사측과의 역관계나 전체 비정규직 운동에 미칠 영향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 결정 과정에서 이분법적선택지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최종안을 받는 것을 정당화하는 언사가 될 수도 있다.


‘문제해결’의 관점으로 이 투쟁을 바라본 보건의료노조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내몬 것은 ‘투쟁에 대한 자신 없음’이었다. 이 투쟁에 함께 해왔던 단위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조합원들에게 “투쟁할 수 없다면 굴욕적인 안이라도 받으라”고 강요하여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내몰았던 보건의료노조의 태도는 정당하지 않다.
보건의료노조는 투쟁 초기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지부 설치를 요구하였을 때 거절했고, 12월 집중투쟁 계획을 잡을 때 “CMC다운 문제해결을 해보겠다”면서 그 계획을 폐기했다. 1월 22일 노사교섭안을 갖고 4월 15일까지 병원을 상대로 한 일체의 투쟁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는 구두합의 내용이 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가압류가 들어왔는데도 사측에 책임을 묻지 않고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평화기간 동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조합원들에게 흘렸는데 그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사측이 제시하는 바 ‘대표의 사회봉사’와 ‘자숙’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방식의 사측의 강제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들이 최종안을 받으라고 강요했다. 많은 경우 대표나 간부들이 투쟁에 책임을 진다. 감옥에 가기도 하고,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투쟁의 힘이 부족할 때 간부들이 원직복직 대상에서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책임과 ‘자숙’ 및 ‘사회봉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자숙’과 ‘사회봉사’는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이 투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의가 병원의 시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급단체라면 조합원들이 이런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사측에게 일자리를 구걸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흘리고, 조합원들이 어렵게 토론하여 제출한 ‘수정안’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한 것은 사측이 아니라 바로 보건의료노조였다.
왜 보건의료노조는 이 투쟁 내내 이런 모습을 보였을까? 그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이 투쟁을 ‘문제해결’이라는 관점에 입각해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복직을 하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투쟁의 전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 동지들을 투쟁의 주체로 인정하고 강남성모병원 투쟁을 확산시키기보다는 철저하게 8명의 복직 문제로만 가져가려고 했다. 이런 태도는 비정규직 문제를 오로지 ‘문제해결’로만 바라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주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측의 요구를 비정규직들에게 전달하면서 비정규직의 투쟁을 통제하고 수동적이 되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와 판단을 갖고 투쟁을 만들려고 할 때에는 “당신들 목적이 투쟁이냐 복직이냐”는 부당한 혐의를 제기하며 ‘교섭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우리가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태도로 접근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보건의료노조의 조합원이고 스스로가 주체였고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하고자 했다. 그런데 결국 노동자들에게 반성과 자숙을 요구하는데 동참함으로써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존엄성을 의미없는 단순한 일자리 구걸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무리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원직복직을 하게 된 성과조차도 조합원들의 투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남성모병원의 시혜에 의한 것으로 둔갑시켰다.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서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양극화를 비롯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중앙 의료원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표명은 가톨릭 이념을 구현한 것으로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려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결단이 병원 사업장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굴욕적이고 왜곡된 합의안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비정규직 투쟁을 ‘시혜’로 전락시킨 강남성모병원의 작태와 노동자들의 굴욕이 ‘우리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이 될 것’이라니. 보건의료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문제해결’과 ‘대리주의’에 입각해있다는 것을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을 하는 이유는 ‘문제해결’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드러내고 그것을 제거할 힘을 키우지 않으면 ‘문제’는 영원히 반복된다. 비정규직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고민하고 판단한 내용을 존중하며, 투쟁의 경험을 쌓도록 할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해결’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게 되면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결정을 쉽게 내리게 되고, 조합원들의 주체성을 가로막게 된다. 교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결과물도 조합원들이 단련되고 주체화되지 않는 이상 주고받기 이상이 될 수 없으며, 이번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저쪽에 넘겨주고 몇가지 실리를 얻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실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비정규직들이 주체화되지 못하고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계속 상실하게 되면 우리의 근원적인 힘을 훼손당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처럼 ‘문제해결’과 ‘대리주의’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비정규직의 주체화’라는 관점에 입각해 있어야, 현실에서는 비록 우리가 쟁취할 실리가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후의 문제의 원인과 맞서 싸우기 위한 제대로 된 힘을 구축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계와 오류를 넘어서기 위해 분투하자


우리는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끈질긴 투쟁이 이번 복직의 힘이자 원천이었음을 알고 있다. 많은 동요가 있었으나 8명의 동지들이 결단을 하면서 투쟁에 끝까지 함께하였고, 복귀 후 활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들의 복직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은 어떤 이유로도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최종 합의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비록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복직의 의미와 정당성을 훼손하는 선택을 했지만, 이 결정을 합리화하지 않고 문제점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스스로 비판적 평가를 했다.
강남성모병원 조합원 동지들의 투쟁의 정당성에 동의하며 함께 투쟁했던 철폐연대는 이 합의안에 모욕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이 합의안을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이것이 비정규직 투쟁의 원칙과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음을 밝히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동지들을 보면서 그 동지들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투쟁을 제대로 확대하지 못하고 이 동지들이 ‘더이상 투쟁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게 만든 우리들의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에 뼈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이 투쟁이 평가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고, 잘못과 오류를 제대로 밝히는 것만이 이 투쟁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결정은 ‘몇 명이 회사의 시혜에 의해 복직하게 된 사건’이 아니라, ‘당당하게 투쟁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고 이 투쟁을 실리와 시혜로 남기려는 시도들을 뛰어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야, 열정과 삶의 걸고 투쟁해왔던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투쟁의 의미를 살리고 그 동지들의 반성적 평가를 의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폐연대도 이후 투쟁하는 동지들과 함께 우리의 한계와 오류를 넘어서기 위해서 더욱 고민하고 분투할 것이다.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종철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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