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HOME | 운영자에게 | 소개 | 사이트맵
NO.89|08|2010
검색
Home > 전체목록  

NO.2|11|2002
위기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영국노총의 ‘신노조운동’을 중심으로(제1회)

:: 2002-11-16   조회: 3656  첨부파일: 10-노동이론자료실.hwp

1. 들어가며

1980년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사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기였다. 2차대전 이후 성장을 구가하던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급격히 둔화되었고, 경제성장률이 침체에 빠졌으며, 높은 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선진 자본주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게 되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심각한 위기상황은 다시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야기하였다. 즉 198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과 같은 많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민주의 혹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의 집권이 종말을 고하고 신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들 정권들은 그때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왔던 케인즈주의적 노사타협체제를 붕괴시키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탈규제화, 노사관계의 재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자본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유리한 각종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이제 자본은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산업의 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명분하에 공세적으로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된다.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조직적 혁신이 단행되고, 노동력 사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유연적 생산방식이 도입되었다.
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국가 및 자본의 적극적인 공세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유연적 생산방식의 도입과 노동의 수량적 유연성의 증대는 고용을 심각한 문제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고용불안의 영향 하에서 노동조건의 악화를 노동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다. 한편으로 국가의 반노조 입법과 노동시장의 규제완화, 사용자의 노동조합 회피 전략 등은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과 정치적 영향력의 약화를 가져오면서 소위 '노동조합운동의 쇠퇴(union decline)'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1980년대 이후의 고용의 불안정, 노동조건의 악화, 노동조합운동의 쇠퇴 경향을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으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사회진보연대 불안정노동연구 모임, 2000).
노동조합활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상황은 노동조합의 대응의 폭을 매우 협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어떠한 전략적 대응을 하느냐는 이후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윤진호, 1999a: 124). 지금까지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노동조합의 대응전략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났다(Wever, 1998).
첫째, 가치향상전략(value-adding strategy)이다. 여기에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서비스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상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조는 노동자들의 가치를 증대시킴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대체불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임금수준을 높이거나 고용안정성을 확보해나가려 한다.
둘째, 제도적응전략(institution-adjusting strategy)을 들 수 있다. 독일과 같이 노사관계가 엄격한 법률하에 고도로 제도화되어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것은 보다 협력적인 관계에 기초하여 사용자의 유연성확대를 용인하는 노사관계제도에 어떻게 잘 적응해나가는가와 관련된다. 이를 위해 노조는 기존의 제도적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단체협약을 통해 일정정도의 고용안정성을 확보해 나가거나, 숙련을 향상시킴으로써 제도에 보다 잘 적응하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두가지 전략들은 모두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상황 에서 갈수록 축소되어갈 수밖에 없는 집단을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고 기존의 제도에 적응하려는 소위 '내부노동시장의 통제'로 후퇴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제도 유지를 위한 국가와 사용자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중요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양보해나가면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존재조건을 유지하려는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어떻게 국가와 자본의 반노동, 반노조 공세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연대의 전선을 확장해 나감으로써 노동의 집단성을 제고하여, 위기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느냐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때인 것이다.
어쨌든 이상과 같은 상황에서 영국노총(Trade Union Congress, 이하 TUC)은 지금까지의 노동조합운동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운동으로서 '신노조 운동(New Unionism)'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영국의 노동조합은 1980년대 이후의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대해 전략적 대응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최형익, 1998: 88).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TUC는 나름대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내부혁신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노조 운동인 것이다. 이 운동은 노동조합이 백인, 남성 노동자와 같은 소위 '핵심'노동자만을 대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 항상 노동조합으로부터 주변화, 배제되어왔던 집단들 - 여성노동자, 청년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등 - 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이들을 조직화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과연 이 운동이 기존의 노동조합의 대응방식을 극복하고 노동의 불안정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운동으로서 자리매김지워질 수 있는가? 아니면 이 운동 또한 가치향상전략이나 제도적응전략과 유사한 한계를 지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동인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1) 1980년대 이후 전면화되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를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2)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 국가와 자본은 어떠한 전략을 펼쳐나가고 있는가? 3) 신노조 운동은 이러한 불안정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적 지점에 정확하게 개입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러한 부분을 남겨둔 채 단지 일시적이고 단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이상의 문제들을 이 글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첫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는 오늘날 노동의 불안정화 현상은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본격화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타난 자본주의의 금융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전세계를 휘감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를 정책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오늘날의 불안정화는 '고용없는 성장'과 '상대적 과잉인구의 폭발,' '불안정 노동층의 증대'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두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국가의 노동정책을 검토한 후(2장 2절), 마지막 세번째 문제에 집중하여 신노조 운동의 내용과 성격, 한계와 가능성들을 검토하려고 한다.

2. 신노조 운동의 배경

(1) 영국 노사관계의 특징

Edwards 등(1998)은 영국 노사관계의 특징을 세가지로 들고 있다(Edwards et al., 1998: .2-5).
우선 이미 한세기를 훨씬 넘어 지속되는 노사관계의 강력한 역사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영국은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최초로 시작된 나라이며, 그만큼 노사관계의 전통이 깊다. 1880년대 Webb부처는 영국 노사관계를 분석하면서 노동조합이 상호부조(mutual insurance)라는 노동조합만의 일방적 규제형태에서 벗어나 사용자와의 쌍방적 합의를 통한 규제인 단체협약(collective bargaining)이라는 규제형태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Webb & Webb, 1879). 이처럼 영국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 이미 '자유로운 단체협약(free collective bargaining)'의 전통이 확립되어 있었으며, 19세기 말에 이르러 그것은 국가의 공공정책으로 승인되었다. 한편 오래된 역사적 전통은 영국 노사관계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명문화된 법률이나 협약문서보다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관행이나 습관에 의존하는 경향들로 나타났다.
둘째, 이러한 전통은 작업장 수준에서의 노사관계를 통해 발전해왔다. 노동조건이나 고용규칙은 작업장 내에서의 노사협약을 통해 결정되었으며, 그것도 명문화된 문서가 아닌 관습과 관행을 통해 결정되었다. 즉 국가나 산업 수준의 동의에 기초한 룰의 틀 없이 노사간의 작업장 내에서의 관행이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업장 수준에서의 상호협력적 접근은 거부되었는데 이는 그것이 경영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Zeitlin, 1990). 어쨌든 작업장 수준의 노사관계가 발전했다는 것은 두가지 함의를 내포하는데, 그 하나는 영국은 독일이나 스웨덴 등과 같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교해서 단체협약구조가 분산화 되어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작업장 수준에서 활동하는 현장위원(shop steward)조직이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영국 노사관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것으로서 자원주의(voluntarism)를 들 수 있다. 영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자유인으로 태어난 잉글랜드인"의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어왔다. (Thompson, 2000: 110). 이에 따라 국가의 법률적 개입은 노사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회피되어왔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법적 개입이 자유로운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 방해하는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한편으로 사용자들에게서도 그것은 경영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단체교섭은 법적인 명시가 없는 노사자율의 원칙에 맡겨졌고, 노사갈등이 발생한 경우에도 그것은 당자자간의 문제로 이해되어왔다(오건호, 1996: 58).
이러한 세가지 특성과 더불어 영국 노동조합의 특징을 한가지 더 든다면 그것은 노동당주의(Labourism)이라고 표현되는 경제주의적 노동조합운동일 것이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과 노동당의 분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즉 노동조합과 관련한 정치적 사안은 노동당에게 일임되며, 노동조합은 단지 임금이나 노동조건의 개선 등과 같은 경제적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은 노동조합의 실리적 성격을 강화하였으며, 기층으로부터의 "정치적 동원을 어렵게" 만듦으로써 노동조합의 관료화를 가져온 원인으로 이야기된다(오건호, 1996: 75).
영국 노사관계와 노동조합을 규정짓는 이러한 특징들은, 영국 노동조합운동이 갖는 성과와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그것은 1980년 이후 보수당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영국 노동조합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한편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신노조 운동에도 이러한 특징들이 깊이 내재하고 있다.

(2) 보수당 정권의 등장과 노동정책의 변화

1979년 집권에 성공한 보수당 정부는 집권 17년 동안 "산업혁명 이후 가장 발본적으로 노사관계를 변화"시켰다고 이야기된다(Hyman, 1995: 28/오건호, 1996: 57에서 재인용). 이 기간동안 노동조합활동을 제약하는 엄격한 법제화가 진행되었고, 각종 복지제도가 후퇴하였으며, 노동시장의 탈규제화가 진행되면서 임시직, 일용직, 파트타임과 같은 각종 불안정노동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영국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현격한 노동조합활동의 침체를 겪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정이환, 2001: 214).
노동조합과 관련된 보수당 정부의 노동정책은 크게 1) 노동조합의 약화시도와 2)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완화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기조는 보수당 정부가 물러나고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없이 지속되고 있다.

1) 노동조합의 세력약화를 통해 "노사관계를 '탈노조화' 하려는 정책이 취해졌다. 먼저 노동조합을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경제정책에 대해 노사정 3자가 협의해오던 국가경제개발위원회(NEDC)는 위상이 급속히 축소되다가 1992년 해체되었으며, 노동당 정부시절 노조와 정부간에 이루어졌던 사회계약(Social Cotracts)은 중단되었다. 1973년 스웨덴의 노동시장정책을 모방하여 만든 노사정 삼자가 참여하는 인력관리위원회(MSC)의 경우 1980년대 들어 설립목적이 훼손되어 1987년 노동조합의 참여가 배제된 채 지방경영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지방훈련위원회로 개편되었다(이상 오건호, 1996: 59). 이러한 노동조합배제정책과 더불어 노동조합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노동조합에 대한 법적인정의 철폐, 클로즈드 숍(closed shop) 금지, 노동쟁의시 노조에 부여하던 면책특권의 제약, 파업에 대한 조합원의 비밀투표 의무화, 피케팅에 대한 제한 강화, 노조의 업무·제정에 대한 정부 감사,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 권리의 강화, 노조에 대한 노조원 개인의 권리 강화, 조합비 일괄공제제도(check-off)의 폐지 등과 같은 노동조합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법률들이 제정되었다(윤진호, 1999a: 129).

2) 이러한 노동조합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정책과 함께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격화되는 국제경쟁과 경기침체, 고실업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보수당 정부는 고용보호조치를 완화하고 파트타임과 같은 비정규 노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파트타임, 하청, 임시노동자 등의 각종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이 확대되면서 고용불안은 한층 심화되었다. 또한 이러한 불안정 노동의 확대는 노동조합의 잠재적인 조합원수를 줄임으로써 노조의 활동 기반을 침해하며, 또한 심화된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의 악화 속에서 노동자간의 경쟁을 심화시킴으로써 노조의 활동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었다.

(3)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에 대한 인식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노동조합은 초창기에 전면적인 저항으로 맞서게 된다. 1984년 탄광노조의 파업은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1년동안 지속되었던 이 파업은 그러나 보수당 정부의 강력한 파업진압과 TUC의 외면, 다른 산업부문의 노조로 파급되지 못함에 따라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이후 노동조합운동은 심각한 쇠퇴를 경험하게 된다.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1979년 전체 조합원수가 120만명을 넘어서면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고용인원을 기준으로 할 때 52.45%로 역대 최고의 조직률을 보였으나, 1987년 41.57%, 1992년 34.19%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의 동원도 약화되었다. 노동자 1천명당 파업손실일수를 보면 1984년 탄광노동자들의 파업 등에 힘입어 1,280일이나 되었으나 이후 1985년 300일, 1990년 80일 등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였고, 1993년에 이르면 30일에 머무르게 된다(오건호, 1996: 65). 신노조 운동은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제 노조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을 깊이 검토"해야 함을 인식하기 시작한다(Connelly, 2001: 3).
즉 노동조합운동이 쇠퇴를 거듭하고있는 상황에서 조직의 생존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전의 틀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철식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 [자료] [교안] 위기와 불안의 시대, 제대로 이겨나가기 2010/05/13
  :: [질라라비] 칸쿤 투쟁의 성과를 반세계화·반자본 운동의 급진화로! 2003/12/29
  :: [질라라비] 위기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전략-영국노총의 ‘신노조운동’을 중심으로(제2회) 2003/01/15
  :: [질라라비] 신자유주의를 넘어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2003/01/15
  :: [질라라비준비호] 공동성명 - 소위 신자유주의 '비전 2011'을 비판한다 2002/03/04
  :: [주장] 소위 신자유주의 '비전 2011'을 비판한다 2002/03/03
  :: [자료] 신자유주의와비정규직노동자의노동권 2001/11/19

 

△이전글: 이 땅의 비정규직 싸움을 바라보며..
▽다음글: 파견·용역노동자의 노동3권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