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회에 걸쳐 연재되고 있습니다.
'신노조운동의 배경'에 대해서는 11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새로운 노동조합운동 : 신노조운동
TUC의 신노조운동은 심각한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동조합의 새로운 전략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1993년 TUC 총회에서 새로이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선출된 존 몽크스(J. Monks)의 주도아래 1994년 공식적으로 시작된 신노조운동은 “내부적으로는 노조 조직을 현대화하여 보다 효율적인 조직, 노조원들에 대한 서비스를 높이는 조직을 만들면서, 외부적으로는 정부, 사용자 등 외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노동의 권리 강화, 완전고용 보장, 근로조건의 질적 수준의 향상 등 노동조합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전략이다”(윤진호, 1999b).
신노조운동은 크게 두 가지 전략으로 구성되는데 (1) 정부, 사용자, 기타 사회세력과의 관계 변화를 통한 사회적 파트너쉽 전략이며, (2) 조직 내적으로 조직화를 최우선 과제로 하는 적극적 조직화 전략이 그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들 각각을 검토하면서 그 성과와 한계를 도출해보도록 하겠다.
(1) 사회적 파트너쉽(social partnership)
① 사회적 파트너쉽의 내용과 실행 전략
구체적으로 TUC는 파트너쉽에 대한 원칙을 다음의 6가지로 제시한다(Gregory, 2001: 16).
■기업 성공의 중시 : 효과적인 파트너쉽은 노조와 사용자가 기업의 사업전략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그것의 성공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정당한 이해관계 인정 : 진정한 파트너쉽은 노조와 사용자가 이해관계와 견해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뢰 분위기 하에서 이러한 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제(arrangements)가 있어야 한다.
■고용안정의 중시 : 많은 사용자들은 파트너쉽을 작업장에서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훌륭한 파트너쉽은 작업장에서의 고용 안정성을 증대시키는 조치를 통해 유연성을 보완한다.
■노동생활의 질에 초점 맞추기 : 파트너쉽은 노조와 사용자가 맞서고 있는 고용 및 조직적 이슈까지 그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그것은 고용의 기간과 조건에서의 향상을 가져오고, 종업원들이 자신의 작업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다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명성 : 성공적인 파트너쉽을 위해, 경영자는 사업에 관한 정보를 초기단계부터 노조와 공유하며, 노조와 기업의 임원간의 유의미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윈-윈 : 효과적인 파트너쉽의 성패는 그것이 사업 성과, 고용의 기간과 조건, 그리고 종업원들의 헌신에서의 구체적인 향상을 가져오느냐에 있다. 파트너쉽은 노조와 사용자의 상호 이득에 관한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파트너쉽 전략에서는 노조와 사용자간의 적극적인 협력이 강조된다. 노조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유연적 생산방식과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노동력의 유연한 사용을 용인한다. 또한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임금 등에 있어서의 양보교섭을 받아들이고 작업장에서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경영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그 대가로 노조는 작업장에서의 생산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받게 되고, 또한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일정한 분배의 몫을 향유하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노사간의 협력적인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자본의 공세로부터 오는 불안정화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며 제도적 보호의 틀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정 정도의 고용안정성과 더 나아가 새로운 고용의 창출을 추구하기도 한다.
어쨌든 TUC는 이러한 목적 하에 사용자와의 관계 확대를 도모하게 된다. 영국산업연맹(CBI)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외에도 광범위한 사용자 및 사용자 단체와 새로운 접촉을 시도하여 일부 단체와는 공동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도 했다. 사용자와의 관계를 확대, 강화하는 활동은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에 대한 대안인 동시에 정치적 참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노조의 이해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TUC는 사용자들에게 사회적 파트너쉽(Social Partnership)을 제안하였다. TUC와 사용자들 사이에는 사용자들의 유연화 계획에 대해 노조가 동의, 협력하는 한편, 최저노동기준을 입법화하는데 대해 사용자들이 지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교환되었다(Heery, 1998a: 344).
한편 TUC의 사회적 파트너쉽 전략은 단지 작업장 수준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나 정치수준, 그리고 시민사회 제반 영역에서의 파트너쉽으로 확대된다. 즉 국가나 정치세력들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국가의 중요 정책결정에 참여함과 동시에 각종 운동단체와의 연대, 언론과의 관계개선 등을 통해 시민사회 영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노조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를 심어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정치권과의 관계확대가 시도되었다. 이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노동당만이 아니라 다른 정당과의 유대관계를 강화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상하양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압력, 로비활동과 TUC 정책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 강조되었다.
또한, 정당과 사용자 외의 각종 단체와의 정책적 동맹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자원봉사단체,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한 캠페인 조직, 교회, 전문직 단체, 공공기구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TUC는 이들과 공통의 지반을 마련하고, 자원을 서로 나눔으로써, 대중적 합법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공공정책 영역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언론 및 홍보활동에 변화가 있었다. 캠페인 방법에 있어서 전문성이 강조되었고, 이를 담당할 별도의 기구로서 ‘캠페인 및 홍보부(Campaigns and Communications Department)’가 만들어졌다. 홍보활동과 언론 매체도 중요시되었으며, 이전에는 간과되었던 여러 가지 방법들이 활용되었다(이상 Heery, 1998a: 343-346).
② 성과와 한계
이러한 사회적 파트너쉽 전략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져왔을까? 실제로 1995년 이래 약 40만 명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1,400개의 노조승인협약(union recognition agreements)이 체결되었고, 2000년에만 159개(58,000명 혜택)가 체결되었다고 한다. 또한 노조승인협약 중 94%에서 노조가 단체교섭권과 더불어 임금 이외의 다른 이슈에 대한 노사협의권을 확보했다고 한다(Pandya, 2001/정영태, 2001: 71에서 재인용). 즉 이제 일정정도는 노조가 사용자로부터 정당한 교섭파트너로써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임금을 제외한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사용자로부터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Terry, 2001/정영태, 2001: 71에서 재인용). 또한 작업장을 넘어선 국가와 시민단체와의 관계에서도 그 성과는 미미한 듯하다. 여전히 노조는 신노동당 정권으로부터 정당하고 책임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영향력도 과거와 비교해서 상당히 미약한 편이라는 것이다(Mcllroy, 2000/정영태, 2001: 71에서 재인용).
이처럼 국가와 사용자에 의해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 다시 말해 국가나 사용자가 노조를 여전히 부정적인 것, 없는 것이 더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파트너쉽 전략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욱이 최근의 고용불안과 구조조정의 맥락에서 파트너쉽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회적 파트너쉽은 사용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오히려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의거하지 않는 파트너쉽을 추구하고 있다. 즉 노조의 영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노동자와의 직접적 파트너쉽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노조와의 파트너쉽을 선호하는 경우는 노조의 조직률이 낮고 협상력이 떨어질 때일 뿐이다(Heery and Abott, 2000: 161).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나 조합원의 관점에서의 파트너쉽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고용불안과 같은 불안정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파트너쉽은 유연화와 양보교섭의 승인, 집단행동의 자제 등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을 전제로 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 노동의 불안정화를 가져온 핵심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유연화와 양보교섭의 승인, 작업장 혁신에의 협력은 결국 불안정화의 핵심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이를 조장, 용인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안정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직이 고용규모를 늘리는가 줄이는가에 관계없이 조직은 유연한 형태의 노동을 더 많이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유연 노동을 확대함으로써)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저임금, 정부보조, 권력행사(spending power)의 제한, 불안정의 형태를 띠게 되며, 따라서 일자리 창출로부터 나오는 이점들 중 많은 부분이 상실될 것이다”(Brewster , Mayne, and Tregaskis, 1997: 144). 이러한 가운데 노조의 조직기반은 더욱 줄어들 것이며, 결국 노동조합운동의 쇠퇴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Heery와 Abott(2000)은 Hecksher의 논의를 인용해서 파트너쉽의 필수적 특징을 비용의 외부화(externalisation of cost)라고 본다. 이들은 많은 기업에서 파트너쉽 협약은 기존 조합원들과 새로이 기업에 들어온 신참자들 사이에 서로 다른 고용체계가 적용되는 이중고용체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파트너쉽 협약을 통해 노조는 외부자(신참자)들에게 저임금과 낮은 고용안정성이 적용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기존 조합원들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다는 것이다(Heery and Abott, 2000: 160-161). 이러한 사실은 최근 중앙집중적 단체협약이 갖는 기능이 약화되고, 개별기업, 사업장 수준이 교섭이 중요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심화된다(Brown, 2001). 그리고 이것의 결과는 결국 장기적으로 소위 ‘핵심’이라고 불려지던 노동자층의 불안정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2) 조직화
① 조직화 전략의 내용
사회적 파트너쉽 전략이 외부와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조직화 전략은 노조 자체의 내적 변화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즉 TUC는 노조의 조직률 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조직화를 최우선의 과제로 상정하게 된 것이다.
조직화를 위해 우선 TUC의 대의전략(representative strategy)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즉 지금까지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을 넘어서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구로 자신을 위치 지으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고용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조합원을 포함한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세계(world of work)’라는 이슈로 표현되는데 여기에는 파트타임 노동자의 권리, 최저고용기준, 전국단일 최저임금제와 같은 다양한 캠페인이 포함된다. 이러한 캠페인 상당수는 특정 그룹이나 소수층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지금까지 조직 내부에서 소홀히 취급된 청년 노동자, 동성애 노동자, 가내 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여성 노동자, 유색인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과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Heery, 1998a: 342).
이와 더불어 다양한 조직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먼저 TUC는 1996년 특별총회를 통해 ‘신노조 캠페인(New Unionism campaign)’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신노조 과제그룹(New Unionism Task Group)’이 결성되었고, 캠페인은 2개년간의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 이 캠페인을 통해 TUC는 조직화 사업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조직화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인력과 자금을 조직화 사업에 집중 투입하였으며, 노동조합이 기존 성원들만을 대변하는 노조에 국한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미조직된 부문을 조직화함으로서 노조조직률의 하락으로 대표되는 노조침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편 1998년에는 미국노총(AFL-CIO)과 호주노총(ACTU)의 조직화 프로그램을 본따서 ‘조직가 학교(Organizing Academy)’를 설립하였다. 이를 통해 조직화 기술을 갖춘 전문 조직가를 양성하여 노동조합의 조직화 사업에 배치하였다(이상 Heery, 1998a: 343).
② 성과와 한계
이상과 같은 내적 전략상의 변화는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활동의 장을 확장함으로써 위기에 대처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이 운동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심화됨에 따라 갈수록 늘어가는 임시직, 일용직, 파트타임 등과 같은 각종 불안정 노동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포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인다. 즉 노동조합이 백인, 남성 노동자와 같은 소위 ‘핵심’노동자만을 대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 항상 노동조합으로부터 주변화, 배제되어왔던 집단들 -여성노동자, 청년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등- 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이들을 조직화함으로써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 대변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포괄적 노동조합주의(encompassing unionism)’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Heery, 1998a: 350).
또한 실제 노조조직률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즉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실제로 1999년 이후 약간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Pandya, 2001/정영태, 2001: 71에서 재인용).
여기에서 조직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직화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다양한 로비활동 등을 통해 상층부 차원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을 높임으로써,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전문 조직가에 의해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이들의 존재조건상의 불안정을 적극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부로부터의 동원을 조직화해내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조직화는 기층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는데 직접 참여하게 됨으로써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조합원으로 조직화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양자의 활동방식이 함께 결합되어 나타날 때 그것은 보다 많은 수의 활동적인 조합원들을 확보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노조운동에서 강조하는 조직화의 전략은 양자가 조화롭게 배치되기보다는 전자의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신노조운동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중요한 캠페인 중의 하나인 ‘파트타임 노동자 캠페인(Campaign for part-time workers)’을 들 수 있다. 이 캠페인은 크게 4가지 - 1)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실태와 의식, 노동시장조건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활동, 2) 캠페인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홍보활동, 3)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법적인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시도, 4)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주변적인 것으로 보거나 핵심조합원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그것을 노동조합의 중심 아젠다로 가져가도록 하는 새로운 노동조합 문화 창출 - 로 구성되었다(Heery, 1998b: 352-356). 즉 파트타임 노동자 캠페인은 광범위한 조사활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해 광범위한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부 및 유럽의회의 의사결정에 압력을 가하여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개별 노조를 강제하여 노동조합의 문화를 파트타임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바꾸고 전문 조직가를 양성함으로써 이러한 조직화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화 내용과 관련하여 볼 때, 캠페인은 서비스의 제공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캠페인을 통해 광범위한 조사활동이 진행되었지만, 그것이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파트타임 노동자 운동을 조직하려는 활동에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여론형성이나 상층부 차원에서의 법적 권리확보를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또한 외부 홍보활동이나 권리확보 운동도 단지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이러한 노동조합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에 그친다. 새로운 노동조합 문화의 창출이라는 것도 자세히 보면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의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노조의 가입 문턱을 낮추는 활동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의 주된 목적이 조합원들에 대한 서비스제공에 있다는 사고가 놓여있는 듯하다. 물론 서비스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오로지 서비스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상정하는 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서비스 자체는 노동조합의 지도부 차원에서 조합원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를 상층부 차원의 협약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면서 노동조합의 관료화, 수동적 조합원의 양산, 상층관료와 하층 평조합원의 거리 확대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파트타임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조가 이들을 조직화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노조활동의 의사결정과 기타 제반 이해관계를 주체적으로 제기, 확보해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기존 노조, 노조관료에 의해 서비스를 수혜 받는 수동적 집단에 머문다. 이것은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이들을 활동의 중심으로 포함시킴으로써 활동의 장을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편 캠페인에서는 조직화 기술, 자원, 대상, 실용적 전략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 이를 위한 노조 자체의 내용은 부재하다. 즉 조직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자원을 투자하고 조직가를 양성하며, 실현 가능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만이 강조될 뿐, 어떠한 내용으로 조직화할 것이며, 그 조직화의 성격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의 조직화는 실용적 기술을 가진 전문 조직가에 의해,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의 유혹을 통해, 일시적이고 수동적 조합원을 확대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 노조라는 집합적 조직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활동적인 기층의 조직화가 아니라, 상층부 차원에서 (다양한 로비 등을 통해) 파트타임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전문 조직가에 의해 이들을 조직화함으로써, 수동적이고 실리적인 조합원들만을 양산하는데 그치는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 신노조운동에 대한 평가
영국의 노사관계는 1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자원주의적(voluntaristic)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서 노사관계 당사자들간의 관계는 상호신뢰에 기초한다. 즉 각 당사자들은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 규제나 법제화 등을 통한 강제적 규제는 회피되어야 하고, 상호 합의에 의한 자발적 쌍방규제가 노사관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의 노동조합들은 노사관계의 법제화에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단체협약도 ‘특별히 명시하지 않는 한’ 강제력을 지니지 않는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의 형태를 취해 왔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높은 고용수준이 지속되는 시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영국의 노동조합은 사용자와의 제도적, 자발적 교섭을 통해서 일정정도의 자신의 몫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런 맥락에서 그러한 제도적인 틀에 안주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도적 틀을 넘어서는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활동들은 회피되었으며, 따라서 노동조합과 노동세력의 권력발전은 그 자체 내에서 이미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노사간의 권력균형이 급속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대처 보수당 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권력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상태에서 기존의 제도적 틀에 안주해있던 노동조합은 급격히 자신의 힘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자발적 교섭 속에서 노사관계 법제화에 소홀한 결과, 이제 노조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결여한 채, 국가와 사용자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노사관계의 법제화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는 결국 반노동적 법제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타난 신노조운동도 이상의 영국 노사관계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Kelly(1996)는 TUC의 신노조운동이 노사간 이해관계의 갈등적 측면을 축소하고 노사공통의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윤진호, 1999). 실제로 국가와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배제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핵심적인 전략으로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여기에 대해 문제시하지 못하고 파트너쉽을 회복함을 통해 국지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부분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거의 용인하고 있다. 신노조운동이 가지는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국가와 사용자가 노조의 파트너쉽에의 요구를 쉽게 받아주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파트너쉽의 시도는 사용자의 이해관계에 노동자의 요구를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사회적 파트너쉽에 대한 강조는 경영의 의도를 그대로 관철시켜 줌으로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동자를 개별화, 파편화 시키는 것의 근본적 원인을 그대로 방기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보호 노력은 그것이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을 그대로 방기한 채, 한시적이고 눈앞의 대응에 그침으로써 문제를 아주 부분적으로 완화시키는 것에 그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노동의 집단적 힘을 확립함으로써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가 이며, 신노조운동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파트너쉽을 중심으로 해서 진행되는 신노조운동은 이미 그 내부에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노동조합의 서비스 기능과 관련하여 Williams(1997)는 노동조합이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이 노동자들의 집합성(collectivism)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노사관계의 개인주의화가 아니라 집단주의에 토대를 둔 조합원 개인의 이익보호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Heery와 Kelly(1994)도 영국의 노동조합이 과거의 “참여적 노동조합주의(participative unionism)”에서 “관리적 노동조합주의(management unionism)”로 변화하였다고 지적한다. 관리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에 대한 현대적 경영기법을 채택하여 노조의 효율과 성과를 개선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일종의 ‘소비자’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서비스의 강화,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통한 조직화, 조합원의 숙련향상을 위한 훈련의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이들은 비판한다(윤진호, 1999b).
영국 노동조합이 서비스의 제공에 주력하는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노조 상층부의 인식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즉 “성원들은 노조에 대한 지향 면에서 도구적이며,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에 의해 노조로 올 수도, 소외될 수도 있는 반사적인 소비자로써 행동한다”(Heery, 1996: 187)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도구적 이해를 넘어, 적극적 활동세력으로 전화시킬 필요성에 대한 고려가 생략되어 있다. 즉 단지 (경제적) 서비스만을 소비하려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을 조직화하는 노동자, 그 와중에서 자신의 요구를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 속에 포괄, 연대적 관점을 확립할 수 있는 노동자로의 전화라는 관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전술했듯이 영국 노총의 신노조운동은 심각한 노동조합의 위기 상황에서 조직의 생존이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나타난 운동이다. 생존을 위해 정부, 정당, 의회, 사용자,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 각종 외부단체와의 유대를 강화하려고 노력했고,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 조직화를 최우선적인 내적 전략으로 상정해왔다. 목표 자체에 대한 평가를 제쳐둔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러한 전략이 애초에 목적했던 노조의 생존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단기적으로는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상승시키는 등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전략으로 생존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쇠퇴의 핵심적 원인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최근의 노동시장 유연성의 심화,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넘어선 어떤 근본적인 처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생략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신노조운동은 장기적인 생존을 가능케 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고, 또한 이의 중요한 원인이 각종 불안정 노동의 확대에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이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들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진행중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이 글에서 분석하고 있는 영국 노동조합의 조직화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즉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방안으로서 “조직화사업 추진단 구성”, “조직 아카데미”, 조직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개혁”, “비정규직에 대한 노조 대변기능 및 서비스 기능의 강화” 등과 같은 논의가 공론화 되고 있는 것이다(윤진호, 2001). 물론 훌륭한 프로그램은 적극적으로 검토,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타났으며, 또한 그것이 근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대한 검토 없이 무매개적으로 도입된다면, 애초의 긍정적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이후의 노동운동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서도 그릇된 판단을 내릴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TUC의 신노조운동은 이상의 프로그램들이 어떠한 한계를 보일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수정, 보완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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