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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쿤 투쟁의 성과를 반세계화·반자본 운동의 급진화로!

:: 2003-12-29   조회: 3900

시애틀 전투 이후 WTO

1999년 12월 시애틀에서 열린 3차 각료회의는 전 세계 100여 개 국에서 모인 5만여명의 도심 점거와 시위로 개막식이 무산되어 '시애틀라운드'의 출범이 결렬된 바 있다. 시애틀 각료회의가 무산된 원인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를 둘러싼 미국·EU 등 선진국간의 대립과 갈등, 세계 무역자유화 흐름에 소외되거나 제외되었던 제2세계 국가들의 선진 진영에 대한 저항과 갈등, 그리고 새롭게 무장하여 부상하기 시작한 전지구적 차원의 국제연대투쟁(반세계화 투쟁)의 요소 때문이었다.
  알려진 대로 선진 자본 국가 진영간 대립과 남반구 국가들로 일컬어지는 제3세계 진영의 저항과 갈등은 자본 운동 자체에 내재된 이윤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시간과 협상 수준의 문제일 뿐 이 흐름이 WTO, 세계은행, IMF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한 자본 진영의 삼위일체 프로그램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90년대 중반 사파티스타 무장 봉기를 시점으로 전세계에 불붙기 시작한 반세계화 운동이 시애틀을 거치며 급성장한 반면 그 운동의 내용과 지향, 전략에 있어서는 아직 불분명한 요소와 전망의 불확실함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생존권 사수에 나서는 일국적 수준의 반세계화, 반자본 운동 및 국제적 차원의 연대 투쟁을 도모하려는 운동진영은 반세계화 운동의 지향과 목표를 반자본적 성격으로 구체화함과 동시에 일련의 경험과 자산을 더욱 풍부화, 현실화하여 세계 노동자 민중의 일반적 기치로 승인케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시애틀 전투를 겪은 후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 WTO 체제는 9·11을 경과하며 '소동'을 부렸다. 그것이 바로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있었던 '도하개발아젠다(DDA)'의 채택이다. 시애틀을 겪으며 급성장한 반세계화운동은 9·11의 반동 공세, 전지구적 공안 공세의 틈바구니에서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운동을 결합시키며 연인원 15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민중이 참여하는 2·15 반전 투쟁을 일궈냈다. 한편 자본 진영은 '도하소동' 의 약속을 2005년 1월 1일부터 이행해야 한다며 '소동의 연장전'을 벌여왔다. 바로 그것이 농업, 서비스 등 각종 의제별 협상인데 '소동의 약속'을 이행한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구분목표경과
농엽협상-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
- 수출보조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감축
- 국내 보조의 실질적 감축
- 세부원칙 수립시한(03.3.31)과 양허안 제출시한(5차 각료회의이전)을 모두 경과한 상황
- 5차 각료회의 합의 무산, 그러나 합의 초안은 존재
서비스협상협상 가이드라인에 따라 서비스 양허요청안을 02년 6월말, 양허안을 03년 3월말까지 제출하기로 함146개 회원국 중 40여개 국가만이 양허안 제출
비농산물 시장접근협상선진국의 관세정점과 개도국의 고관세 및 경사관세 문제를 크게 감축관세인하 공식에 대한 논란으로 03년 5월로 설정한 합의시한을 경과한 상황
싱가포르 이슈5차각료회의의 논의에 따라 협상 개시여부 결정5차 각료회의에서 합의 못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DDA 협상의 주요 의제 및 논의경과', 「WTO 칸쿤각료회의의 결렬 배경과 향후 전망」, 2003, 9.16. 에서 요약

시애틀 발 '반세계화'호(號)가 칸쿤을 경유하다!

시애틀의 경험과 달리 4차 각료회의가 열리던 2001년 11월은 매우 우울했다. 그들의 소동이 사막의 도시 카타르에서 날치기에 의해 자행되었던 반면 9·11 이후 반세계화 운동의 위축된 어깨는 아직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 수준의 자유무역을 달성하는 것이 반테러의 일환이라는 미국의 기치는 제3세계 진영의 갈등과 저항을 일정 '봉합'해내는 효과(?)를 누렸다.
동시에 밀폐된 공간에서 열린 각료회의였던 만큼 직접적인 물리적 타격과 동원투쟁이라는 포섭전술도 어렵다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애틀 전투를 일궈낸 요소들은 여전히 잠복된 상황이었고 최근에 열렸던 칸쿤 5차 각료회의는 바로 그 진앙을 출산 직전까지 잉태한 조건이었다. 여기에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이후 유럽을 진원으로 끓어오르던 국제적 반전 운동이 또 다른 지형의 반세계화 국면을 창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칸쿤에서 반세계화 대오와 운동의 성격을 목도하자 이러한 반세계화·반전 투쟁의 국면이 적절하게 혼융되고 만나지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1만∼5만의 대오를 추산하던 조직위원회의 계산은 차치하고라도 고 이경해 동지의 자결 이후 열린 13일 국제공동행동의 날은 칸쿤 3천, 필리핀 5천, 일본 6백 등이었다.
사실 고 이경해 동지가 자결하기 직전인 10일 오전(현지시간)까지 칸쿤 투쟁이 매우 격렬하고 바리케이트를 대치한 채 진행될 것이라 짐작한 사람은 없었다. 칸쿤 조직위원회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르면 7일부터 14일까지의 일정 중 분야별 행진과 시위(예를 들어 10일 비아깜페시나에서 주최한 국제농민공동투쟁), 13일 국제공동행동의 날 외에는 다양한 이슈에 따른 포럼과 세미나, 문화행사들이 빼곡하였다. 즉, 시위 일정과 시간을 제하고 열심히 돌아다녀도 부족한 '학습과 공부의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과 일정이 배치되고 기획된 배경에는 멕시코 국내 노동자민중운동의 침체와 조직위원회의 '구멍난 조직력'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5차 각료회의를 바라보는 전세계 반세계화 운동조직(활동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입장의 차이도 한 몫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정이 어떻든 고 이경해 동지의 자결을 시발로 한국 참가단의 투쟁은 칸쿤을 바라보던 반세계화 운동진영의 걱정 어린 시선과 자조 섞인 우려를 한 층 떨구어내며 급진전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컨벤션 센터에 들어가는 길목의 바리케이트와 마주하고 선 한국 참가단의 투쟁 캠프(천막 농성장)는 칸쿤 투쟁의 심장부이자 꺼지지 않는 촛불로 활활 타올랐다. 각 국 참가단 투쟁의 근거지이자 각료회의 기간 동안 반WTO, 반세계화 기치의 상징적 공간이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이나마 칸쿤의 중앙광장을 달군 투쟁의 막바지에 들려온 소식은 5차 각료회의가 결렬되었다는 승전보였다.

칸쿤 투쟁의 경험을 반세계화 투쟁의 급진화로 모아내자!

14일 이후 각료회의가 결렬되었다는 소식은 자본진영에게도 그렇지만 반세계화 운동진영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주었을 것이다. 사실 5차 각료회의가 개최되기 직전까지 각종 협의 테이블과 국가 간 협의를 통해 이번 각료회의의 진전을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IMF를 비롯한 자본의 세계기구에서 칸쿤을 주목하지 않았던 바를 이유로 칸쿤의 의미를 축소했던 그룹에게도 이번 회담의 결과는 의미심장했으리라 본다. 그것은 총자본 내부의 갈등과 긴장은 어느 정도 예상했더라도 고 이경해 동지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전개된 소수 정예 대오의 긴장감 있는 투쟁이 던져준 집중있는 반WTO 투쟁의 메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각료회의가 결렬되었을지언정 13일 배포된 각료회의 선언문의 초안과 각종 이슈별 초안은 아직 살아있다. 이후 개최될 공·비공식 회담과 이사회 및 그룹별 회의에서는 초안을 배경으로 한 협상을 전개할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농산물 개방은 대세라느니 70% 이상을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느니 하며 이상징후에 시달리는 WTO를 염려하는 보수언론과 자본진영의 호들갑이 눈에 거슬릴 지경이다. 이뿐인가, 국회 계류중이거나 정부간 논의중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과 한-미 투자협정 등을 예로 들면서 양자간 무역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수선을 떠는 한국 정부와 독점 자본의 몸짓은 노동자 민중이 반제·반세계화 투쟁의 고삐를 더욱 움켜쥐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을 따름이다.
툭 터놓고 말한다면 이번 각료회의의 결렬은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약간의 시간을 번 것'이기 보다는 그동안 느린 속도로 진전한 한국 민중운동의 국제적 연대투쟁을 더욱 가속화, 예각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고 본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다. 한국 노동자민중운동의 국제적 연대투쟁이 이번 칸쿤 투쟁을 계기로 일면 성장하고 새롭게 등장한 측면의 긍정적 성과가 있다면 '한 분야를 협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얻어야 한다', 'WTO의 합리적, 민주적 개조가 필요하다' 따위의 주장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의해 재구성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신자유주의 및 이의 본질적 얼굴로 드러나는 무장한 세계화에 맞선 계급적 재구성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고 이경해 동지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뜻대로 "민중을 죽이는 WTO에 맞선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위해!", 루차(lucha!-스페인어로 투쟁이라는 뜻)!!!

김영선 | 노동자의힘 정책선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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