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장애여성이 양육권을 논한다는 자체가 생소하게 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장애여성의 양육권은 곧 장애여성의 인권과 직결된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장애여성의 인권문제가 선행되지 않고서 어찌 장애여성의 양육권이 보장 될 수 있단 말인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행복은 결혼이라 여기며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포기한 채 남편의 사회활동을 내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러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또한 전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양육해야 마땅한 전통성에 기반한 여성의 '도리'는 장애여성에게만은 예외로 작용하는 것이다. 장애여성은 장애를 가진 육체적 한계로 인해 여성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 의식구조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비장애여성들이라고 해서 양육권이 사회적으로 특별히 보장받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적으로도 여성에게 있어 양육은 여성으로서의 '도리'일 뿐 권리라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양육권에 있어서도 모권보다 부권을 더 우선시 하는 풍토가 있음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여성에게는 양육의 도리가 있고 남성에게는 양육의 권리가 주어진다. 그러기에 전반적으로 여성의 양육권의 가치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이 우리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2. 양육권을 얻고자 했던 최옥란 열사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최옥란 열사의 경우는 더욱 열악했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양육권을 우선시 하는 현실에서 경제적 능력마저 없는 중증장애여성의 몸인 그녀에게 법은 결코 양육권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법적으로 어느 한 쪽이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엄마와 아빠 중 경제적 능력이 더 앞서는 쪽에 양육권을 준다는 것인데, 장애가 없더라도 여성은 남성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제력이 더 나은 쪽에 양육권을 준다는 것 자체가 모권에 절대 불리한 것이다.
장애여성 엄마인 그녀에게 법은 참으로 냉혹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몸소 키우고자 몸부림 쳐야했던 열사의 그 모성애를 생각하니 같은 장애여성 엄마로서 참으로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아이를 향한 열사의 그 눈물겨운 투쟁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나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손을 잡아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3. 장애여성 양육권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최 열사와 같은 연배로서 아이의 나이 또래도 비슷한 것 같다. 주변에 사람들은 장애여성 엄마인 내게 양육권에 대한 얘기를 해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특별히 이거다! 하고 제시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보다 충분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왜 별로 말이 없을까 하고 의아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겪어야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은 충분히 많이 있다. 장애여성 엄마들을 위해 국가적으로 지원되는 것이 전무한 실정에서 장애여성 엄마들은 엄마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눈총을 받으며 헉헉대며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러한 것들을 나열하려면 한이 없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욱 절실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입 밖으로 확 토해내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 자신도 매우 답답한 심정이다. 나의 이러한 답답증은 과연 무엇일까? 실질적인 제반적 어려움 보다 더한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고민 끝에 그 해답을 찾아냈다. 그것은 내가 서론에 언급했듯이 장애여성의 인권이 무시되는 현실이 낳는 양육권의 권리 없음인 것이다. 나는 지금껏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에 대한 답답증을 항상 느껴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것을 하나의 언어로 표현을 못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아이 아빠와 이혼 후 아이를 나의 본가에서 가족들과 같이 키웠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때만큼 나를 힘들게 한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면 가족들은 전적으로 아이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봤으며 나의 시각에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 말은 장애 있는 나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의 존재가 너무 대단한 것이기에 모든 것이 아이 위주였으며 거기에 나의 존재는 없었다는 얘기다.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의식구조가 내 가족 안에도 예외 없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낳은 엄마로서의 나의 위신은 간 곳 없고 가족들은 아이와 나를 동격으로 여기며 엄마로서의 나의 권리 행사를 묵살하기 일쑤였다. 가족들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장애여성에 관한 한 너무나도 그릇된 가치관이 가정과 사회에 난무하다보니 나와 같은 장애여성들이 심적으로 다치고 피해를 입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장애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 어른 대접을 해주건만 장애여성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아도 어른 대접을 가정과 사회에서 해주지 않는다. 가족들은 아이 앞에서 내게 엄마로서의 권리를 주지 않았다. 엄마로서의 권리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엄마로서 아이를 야단치거나 혼내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이 나서서 나를 더욱 혼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네가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야단치냐는 논리인 것이다. 바로 가정에서의 이러한 양육권 침해가 내가 아이를 데리고 독립을 감행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내게 애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하는 반면에 내가 애를 낳아서 가족들이 고생한다는 식의 분위기는 나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남도 아닌 나의 가족들 앞에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양육권은 양육권대로 유린당하며 지은 죄도 없이 죄인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여성 엄마로서 독립을 감행하였고 지금은 양육권 침해를 훨씬 덜 받으며 살고 있다.
4. 양육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장애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다른 가족들이 아이를 키워줘야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를 낳은 장애여성에 대한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 전무하기 때문인 것이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면 나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족들의 눈치를 그렇게까지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했다면 장애여성들 스스로도 결혼에 대해 지금 보다는 좀 더 긍정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전반적으로 장애여성 결혼에 대한 의식들이 양호해 졌을 것이다. 장애여성들은 비장애남성과 살든 장애남성과 살든 양육은 여성의 몫이라는 의식으로 인해 어렵게 아이들을 양육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여성들은 장애가 있든 없든 양육으로부터 해방돼서 살아가고 싶다. 양육이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이라는 기본적 의식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여성들은 자신의 영역을 펼치면 살아가기가 정말 힘들다. 양육의 도리에 있어서도 남녀평등이 선행 돼야하고 양육의 권리에 있어서도 남녀평등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5. 시급한 국가적 지원체계
장애여성이 엄마로 있는 가정은 특히 손도 쓸 수 없는 중증장애여성이 엄마로 있는 가정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탁아적 의료적 지원책이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렇듯 심한 몸으로 애는 왜 낳았냐는 식의 얘기들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떠한 장애를 가졌든 자신이 정말 원한다면 엄마가 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결코 죄 일수는 없는 것이다.
6. 양육권 확보를 위한 장애여성의 인권 확립
이 사회에서 가장 인권을 짓밟히는 자 누구인가? 사람으로서 인격적 대우를 가장 받지 못하고 저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는 자, 그 누구란 말인가? 그리하여 엄마로서의 권리마저 땅에 떨어져야 하는 그는 바로 장애여성인 것이다! 장애여성의 입장과 목소리로 말하건데 장애여성의 양육권은 곧 인권이다. 진정한 장애여성의 양육권을 위해 우리는 장애여성의 인권을 외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해야만 더 이상 이 땅에 제 2, 제 3의 최옥란 열사와 같이 아픔을 안고 스러져가는 장애여성이 없을 것이다. 장애여성의 진정한 인권 확립이야말로 최 열사의 한을 풀 수 있는 첩경이 됨을 굳게 믿는 바이다.
7. 글을 마치며(장애여성의 인권을 말한다.)
이 땅의 여성들은 참으로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 여자들은 세월 잘 만나서 호강한다고. 여자들은 갈수록 드세지고 남자들은 갈수록 기죽어 산다고....... 그러나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 아직도 이 사회는 남성들이 절대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묘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받아야 하는 고통은 비장애 여성들에 배가되고 있다. 지금껏 그 누가 장애여성들의 한 많은 삶을 말 해 본적이 있는가? 이 땅의 여성들의 한 많은 삶 속에 장애여성들의 삶은 한 번도 제대로 언급 된 적이 없다. 여성의 인권신장을 부르짖으면서도 장애여성의 인권은 별개의 것으로 여겨졌으며, 아니 장애여성의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장애여성공감은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장애여성의 문제를 풀어가면서 장애여성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이다. 장애여성공감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장애여성들이 이제 입을 열어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억눌려 살아왔던 세월들을, 입이 있어도 말 할 수 없었던 그 억압의 순간들을 이제는 말하고 표현하게 함으로서 그 상처받은 심정들을 치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달 2회에 걸쳐 교육과정을 갖고 있다. 매년마다 주제를 정해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장애여성들의 자기 치유와 더불어 장애여성들의 자아를 일깨우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가을에는 그 해의 주제를 정해 인권캠프를 가기도 한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무시당한 채 살아온 장애 여성,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로서 여러 가지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된 채 살아온 장애여성, 이러한 장애여성들을 위해 우리는 있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온 장애여성들의 한 많은 역사를 되새기며 새로이 다가올 장애여성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장애여성은 분명히 여성이고 이 땅에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장애여성 문제야말로 여성문제의 핵심임을 우리 모두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