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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04|2003
"4월 20일, 장애인의 분노로 야만의 현실을 고한다"

:: 2003-04-22   조회: 1797

1.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4월 20일은 정부에서 정해 놓은 ‘장애인의 날’이다.
정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거창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준비중이다. 더구나 노무현 참여정부의 ‘참여복지’ 라는 이상야릇한 말에 포장을 덧씌우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 상, 이번 ‘장애인의 날’은 또 얼마나 뻑적지근히 열릴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정부의 ‘장애인의 날’ 행사로 이 나라의 장애인 복지가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의 그 이벤트에서 보여지는 가식은 홍보와 기획력이 뛰어난 상업 이벤트사업의 그것에 비하면 부질없이 초라하며 오히려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비정상과 정상의 간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바로 이것이 국가가 만들어낸 ‘장애인의 날’의 효과이자 결과였다. 이날 관변단체들과 언론의 ARS후원모금의 지표는 다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작년부터 4월 20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시혜와 동정의 4월 20일에 대한 문제제기, 나아가 이날을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삶의 불만들을 사회에 당당히 제기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할 권리 발언하는 투쟁의 날로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2년 지난했던 장애 이동권 쟁취투쟁의 과정에서 제기된 것으로 지금까지 느린 걸음이지만 꾸준히 투쟁의 길을 일구어온 장애운동진영의 투쟁의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2. 2002년 4월의 특별한 기억

2002년 3월 26일, 최옥란열사의 죽음과 김대중 정부의 상식이하의 처사는 장애대중의 분노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하였다. 장애인의 복지의 문제 아니 생존의 문제에 대해 장애인들의 다양한 불만과 분노는 점차 하나의 목소리로 모아져갔다. 최옥란 열사 투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기만적인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자는 문제의식이 제출되며 4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일주일의 기간을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주간’으로 선포하고 이동권과 노동권 교육권에 대한 힘찬 투쟁이 이어진 것이다. 장애인의 최소한의 생존과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이동의 권리와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스스로의 노동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 등 장애인의 기본적인 삶의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 내용이다.
이를 계기로 2002년도 장애대중들의 투쟁은 위력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5월 월드컵을 앞두고 발생한 리프트 추락■사망사건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이동권 쟁취투쟁에 불을 당기게 되었고, 8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여 40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여 결국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추진위 구성이라는 성과물을 따내었다. 한편 4월의 장애인들의 투쟁은 당시 6년째 끈질긴 투쟁을 지속해왔던 에바다 정상화투쟁의 파고를 그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고 이제 구(舊) 비리재단 측의 발악은 한풀꺾여 올해는 드디어 에바다 투쟁의 승리를 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2002년 4월 장애인의 날에 대한 반정립으로 형성된 장애 대중들의 활발한 투쟁은 장애인의 복지문제를 대중투쟁의 사안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2003년 4월 20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 ‘420장애인 차별철폐투쟁 공동기획단’은 전국 62개 단체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되고 있으며, 지난해보다 한층 폭넓은 주체들이 참여하여 장애유형에 따른 장애인의 더욱 다양한 요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3. 2003년 420장애인 차별철폐 공동투쟁의 과제는 무엇인가?

올해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은 총 12가지의 요구안으로 취합되고 있다.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 이외에 장애여성의 권리문제, 에바다 완전 정상화를 공동행동,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 범위 확충,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편의증진법 개정, 자립생활의 보장, 장애연금법제정,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법보장. 이상의 요구안들이 그것이며, 이는 작년에 비해 한층 다양화되고 각 사안에 대한 접근방식 역시 구체화되었다.
무엇보다 성과적이라 평가되는 것은 그동안 실제적인 장애대중의 동력을 가지고 투쟁의 사안으로 만들어가지 못하였던 문제들이 이제 정책적인 요구를 넘어, 거리에서의 대중투쟁의 사안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요구안 중에는 장애인 복지와 차별문제와 관련한 법제정 및 개정에 대한 요구가 눈에 띄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의 4대차별 금지법 제정의 움직임 등 새정부가 장애인 복지의 질향상과 각종 사회적 차별을 개선할 수 있다는 바램으로 보여진다. 이렇듯 올해의 420투쟁은 요구안의 폭넓음과 투쟁주체들이 결합목표의 다양한 스펙트럼만큼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과제 역시 더욱 무겁고 엄중할 것이다.
420공동투쟁의 정치적 목표는 오히려 명징하다. 정부와 관변단체 주관의 ‘장애인의 날’ 행사를 거부한다는 의미는 단지 그 행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제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지금의 ‘참여정부’가 외치고 있는 ‘참여복지’의 실체를 명확히 분석하고 앞으로 5년 간 이어질 장애인복지를 포함한 민중복지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시작의 의미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의 기만성과 허구성은 최옥란 열사의 죽음으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또한 이것이 서민생활에 대해 국가의 책임강화가 아니라 시장의 역할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정책’이 공공성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불가능함은 지난 DJ정권의 5년의 세월이 내린 결론이다. 노무현 정부가 밝혔듯 ‘참여복지’는 ‘생산적 복지’의 미비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정책적 연관성 상에 있으며 생산적 복지의 기본틀 내에서 이를 보다 유연하게 적용하기 위한 실천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결국 어떻게 추진할 진 모르겠으나 복지에 대한 민간참여를 확대하여 민간복지영역에 시장 중심의 체계를 확보하는 것. 바로 이것에 대한 대국민적 정당성을 부여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김대중 정권의 대량실업자 관리 등의 위기관리책을 넘어선다는 참여정부의 ‘경제성장-고용확대-빈곤감축’ 이라는 정책기조에 대해 우리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금, 빈곤과 차별의 당사자이자 복지의 제1차 수혜자인 장애인들의 발언과 투쟁은 가장 날카로운 정치적 입장일 수밖에 없다. 2003년 420 공동투쟁이 바로 이러한 쟁점들을 안고 있음을 보다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420 공동투쟁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장애대중운동의 공백은 조직적 목표의 부재일 것이다. 다양한 사안을 연대의 틀거리로 모아내어 각각의 사업을 배치하고 공동의 투쟁을 벌여나가는 과정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지점이기도 하지만, 운동의 양적인 측면의 확장하는 실무와 활동가들의 재생산 과정이 동시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긴 하지만 각자의 요구안을 제기하기에 바쁠 뿐, 이 투쟁의 정치적 목표와 핵심방향을 공동으로 합의하기 위한 논의가 부재하다는 문제점과 다르지 않다. 장애운동의 중장기적 전망과 전략적 방향성이 별도의 현학적인 연구작업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장애운동 활동가들이 420 공동투쟁과 같은 특정한 정세적 계기의 정치적 경험을 통해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장애대중과 활동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동의 전망을 찾아갈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연대단위들간의 신뢰와 합의에 기반한 건강한 기풍이 전제되어야한다. 중심적으로 주관하는 단위가 모든 조직적 역량을 동원해 막상 공동투쟁이 끝나고 나면 많은 것들이 소진되기만 하는 최근의 연대투쟁의 관성과 악순환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3월 26일 최옥란열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추모의 날, 420 장애인 차별철폐 공동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으로 한달 여간의 긴 투쟁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민중운동 진영의 시선이 반전투쟁으로 집중되면서, 420 공동투쟁은 다소 왜소한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놓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에 의한 무고한 이라크 민중들의 학살을 중단시키고 평화와 인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반전투쟁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쟁취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의 420차별철폐투쟁은 결코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며 4월 20일 오후 2시, 대학로에서 이 야만의 현실에 분노하며 일어서려는 450만 장애인의 투쟁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소형 | 420 장애인 차별철폐투쟁 공동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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