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역사는 또한 노동자 운동의 역사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새로운 산업들의 팽창을 동반하고 이는 또한 고용의 확대와 새로운 노동자 집단을 낳는다. 노동자들은 노동강도의 강화와 실질임금의 하락에 저항하면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을 형성한다. 반면 자본주의의 위기는 기존 노동자 운동을 위협하는 객관적 조건이 된다. 이 때 고용은 축소되고 실업이 증가하며 노동자 내부의 경쟁이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5년이나 10년 정도의 주기적 경기변동은 특정한 산업이나 부문의 성장과 쇠퇴를 낳지만, 그것이 노동자 운동 전체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성적 불황이나 구조적 위기는 노동자 운동 전반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객관적 조건이 된다. 우리가 1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9세기말과 20세기초 노동자 운동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세기말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구조적 위기에 처했고 이는 영국 자본주의의 금융적 팽창과 독일 자본주의의 식민지 재분할 시도가 충돌한 세계전쟁으로 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전반적 불안정화와 기존의 제도화된 노동자 운동의 위기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저항과 정치적 급진화, 나아가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출현을 낳았다. 그러한 변화의 출발점 중 하나가 바로 19세기말에 형성된 '새로운 노조주의'다.
1890∼1914년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새로운 노조주의가 출현했다. 새로운 노조주의는 기존의 '구' 노조주의와 연계된 전략, 정책, 조직형태에 반대하는 일련의 새로운 전략, 정책, 조직형태를 채택하고자 했다. 또한 새로운 노조주의는 이제까지 조직되지 않았거나 조직될 수 없었던 노동자들에 의해 창조되고 주도되었다. 이러한 혁신의 영향으로 구래의 노조들도 변형되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노조주의는 노동자 운동의 이념적 급진화와 결합되었다.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와 자유주의적 이념의 실패는 다양한 사회주의적 이념의 노동자 운동을 촉발시켰다. 영국의 새로운 노조주의는 이러한 물결의 출발점이자 전형적 사례의 하나다. 이들의 성장과 쇠퇴에 관한 검토는 오늘의 노동자 운동을 위한 교훈을 제공해 줄 것이다.
영국 노동자 운동의 역사적 조건과 새로운 노조주의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영국의 노동자 운동은 영국 자본주의가 본 궤도에 오르기 전인 1800년대 초에 다양한 급진적 실험들을 조직했다. 그러나 1840년대 이후 영국 자본주의의 고도성장 속에서 대부분의 노동자 운동은 성장에 동참함으로써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당시에 제도적으로 인정된 영국의 노동조합은 주로 직종을 중심으로 숙련 노동자들의 주도하에 확립된 것이었다. 이 때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파업기금'을 확보하고 개별교섭 과정에서 어떤 조합원이 조합에서 설정한 임금이하로 노동력을 판매하라는 고용주의 요구를 거부하면 파업급여를 제공함으로써 '노동시장'을 통제할 수 있었다. 또 노동조합은 종종 클로즈드 샾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고용을 통제했다.
요약하면, 1850년대 이후 영국의 노동조합은 숙련을 통해 노동과정에서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이에 기초해서 노동시장을 통제하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협소한 직업개념에 입각해서 조직되었고 전형적인 지역성에 기초한 부문주의가 이들을 지배했다. 또 노동자들 중 숙련 위계의 상층에 위치한 일부는 고임금을 얻어내고 '중산층적 생활'을 모방했고, 다수의 노동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그러한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1873∼1896년 동안 유럽 전역은 대불황을 경험했고, 영국은 그러한 불황의 진원지였다. 1873년 이후 10년 이상 영국 자본주의는 불황에 빠졌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주요 성장 산업들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해 자본은 기계화와 노동강도의 강화로 대응했다. 동시에 자본은 기존의 숙련구조를 점차 해체시키고자 했다. 실업이 증가하고 미숙련 노동력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면서 노동자 내부의 불안과 경쟁은 증가했고 자본은 이를 이용하면서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 했다.
노동의 전반적 불안정화는 다양한 노동자 집단 내에서 상이한 수준과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숙련 노동자들에 기초한 기존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부문에서는 기계를 도입하고 그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려는 전략이 주로 이용되었다. 특히 생산의 지점에서 노동자 통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자본은 노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조의 권위와 규율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협력을 이루어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숙련을 유지하려는 방어적 전략에 입각해서 고용주와 타협했던 기존의 노조들은 기층의 노동자들과 괴리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반숙련 또는 미숙련 부문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기계의 도입과 노동비용을 절감하려는 자본의 전략이 결합되어 반숙련 또는 미숙련 노동자들은 점차 증가했지만 이들은 기존의 직종 노동조합에 포괄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고용의 불안정성에 직면해야 했다. 게다가 이들을 고용하는 산업이나 직종의 이질성과 다양성은 이들 내부의 단결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었다. 이들은 종종 자신들의 독자적 노동조합을 건설하고자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소규모의 지역적 투쟁으로 머물고 말았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지속되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는 심화되었다. 동시에 역사의 진보 또는 경제발전을 통한 고용 및 소득의 증가와 계급적 이해의 조화에 관한 자유주의의 약속은 더 이상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과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노동자 대중의 공통적 경험은 새로운 투쟁을 낳을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형성했다. 동시에 기존의 노조주의가 더 이상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할 수도 없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기존 노조를 통한 단체협상 보다는 직접행동에 대한 호소가 설득력을 얻게 되었고 이는 특히 기존의 숙련 직종 노조 외부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보다 급진적 이념과 새로운 노조주의를 제시하고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이 되었다. 1889-90년과 1911-12년의 파업과 노동운동의 상승물결은 이러한 객관적·주체적 조건이 결합된 결과였다.
영국 신노조주의의 성장과 쇠퇴
영국의 신노조주의는 1889년 런던 부두파업을 계기로 폭발했다. 부두의 대중적 파업에서 기존의 노동조합에 포괄되지 못했던 미숙련 노동자와 임시 노동자들은 주축을 이루었고, 이들은 파업의 승리에 뒤이어 노동조합의 대중적 형성으로 나아갔다. 파업 직후 다양한 노동조합 조직화가 이루어져서 노동조합원은 대략 5000명에서 25,000명으로 확대되었다. 또 미숙련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파업과 노동조합 조직화의 모델은 여타의 부문과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동시에 '구' 노조들 내에서도 노동조합 운동은 새롭게 활성화되었다. 그 대표적 예는 1880년대에 붕괴되고 있었던 광산노조의 재구축이다. 이들은 파업과 노동조합 형성의 물결 속에서 1889년대에 재조직화를 추진했고 이는 전영국탄광노동자연합의 건설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들은 과거 조합원 수의 5배에 달하는 조합원을 확보했다. 또 과거에 숙련 노동자 중심의 노조가 존재했던 철도에서도 1889년에 저임금 노동자와 임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려는 목적을 지닌 철도노동자일반노조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상호부조'라는 전통적 노조의 활동을 넘어서는 '전투적 노조'를 천명했으며 8시간 노동이라는 급진적 요구를 위해 투쟁했다.
신노조주의의 주도세력은 기존의 노동조합에 포괄되지 못한 미숙련, 저임금, 일용 노동자 집단이었다. 이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공식적 노조의 조합원 자격이 아니라 파업에 기초한 협상력이었다. 이들은 또한 '부문주의'를 극복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이는 전체 노동자를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조직한다는 '일반노조'의 이념으로 표현되었다. 이 때 일반노조는 구체적인 조직형태를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는 이념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했다. 일반노조는 직종이나 숙련 등과 같은 배타적 기준을 뛰어넘어 누구든지 일반노조의 이념에 동의한다면 가입할 수 있는 '개방적' 노조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과 노조 조직화 물결에 뒤이어 국가와 자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새로운 노동조합들은 조합원을 상실하고 소멸했지만 또 몇몇 노동조합들은 지속되었다. 또 새롭게 형성된 노동조합뿐만 전통적 노동조합도 새로운 노조주의의 원리를 채택하고 미숙련 노동자 집단을 노동조합 구조 내부로 포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반노조라는 이념과 노동조합의 유지라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심화되었다. 1890년 이후 새로운 노동조합은 경제적 이유나 이념적 이유로 최초의 조합원 중 상당수를 상실했고, 자신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직종이나 지역의 노동자들을 새롭게 조직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내적 조건은 노조주의의 현실적 변화를 낳았다. '일반노조'라는 명칭이나 규약은 유지되었지만 노조의 기본적 전략은 특정한 산업이나 부문에 토대를 두고 스스로를 하나의 새로운 '직종'으로 인정받고 직종의 전통을 확립하며 직무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결국 새로운 노조들은 숙련과 직업 안정성을 추구하고 노동조합의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교섭력을 강화하려는 '구래의' 전략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이제 새로운 노조는 그들이 반대했던 '구'노조주의와 유사한 것이 되었다.
역사의 교훈
노동자 운동은 언제나 '제도화된' 노동조합 운동을 뛰어넘는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은 언제나 단기적인 물질적 이득을 넘어서는 이념과 노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이념과 노선이 어떤 것이든 노동조합은 그것을 통해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사회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 내부의 주도적 집단이 전체 노동자들의 요구와 밀접히 결합되지 못하고 전체 노동자 운동의 모범이 되지 못할 때 기존 노동자 운동은 정체와 위기를 겪게 된다. 이 때 노동자 운동 내부의 균열은 심화되고 기존 노동자 운동조직 내에서도 지도부와 기층 사이의 괴리가 커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다 대중적이고 급진적인 노동자 운동이 출현할 가능성은 커진다. 영국의 신노조주의는 '일반노조주의'라는 이념 속에서 공세적 투쟁을 통해 기존 노조 조직에 의해 포괄되지 못했던 노동자 대중들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들은 파업을 통해 고용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노동조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는 초기의 이념과 조금씩 괴리를 보였다. 새로운 노동조합들은 기존 노동자 운동의 '기득권'을 모방하려는 전략과 노동자 운동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는 노력 사이에서 결국 전자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들은 결국 사회운동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근로인민 대중을 포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거나 임금이나 고용이라는 쟁점을 넘어서는 지역적·민중적 생활의 요구들과 결합하기보다는 특정 산업이나 직종 내에서 그 부문의 상대적 성장을 기대하면서 '자기중심적' 실리를 추구했던 것이다.
물론 특정 산업의 성장이 노동자 운동의 권력을 증가시키는 조건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의 논리'에 종속된 노동자 운동은 산업적 특수성이나 그것이 제공해주는 기회에 매몰될 위험을 갖는다. 노동자 운동의 진정한 힘은 노동자 대중의 단결에 기초한 '연합적 권력'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반추해 볼 때 노동계급은 몇 번의 역사적 계기들 속에서 형성되고 재형성되어 왔다. 노동계급은 새로운 산업적 토대와 새로운 이념적·조직적 전망 위에서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 누가 '새로운 노동계급'의 형성을 주도할 것인지는 열려진 문제다. 그러나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잠재력은 노동자·민중의 내부적 분할의 극복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