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협상의 종료는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다
한미 FTA저지 투쟁이 이제 막바지 국면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올해까지, 서울과 워싱턴, 제주도와 로키 산맥을 넘나들었던 한미 FTA저지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시점이다. 협상 타결을 목전에 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난해 평가를 해야 한다면 일정과 사업 개별에 대한 평가보다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놓치고 온 것이 무엇이냐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2006년에는 다양한 투쟁이 있었지만 ‘FTA로 시작해서 FTA로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FTA가 차지했던 비중은 컸다. 한국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정책과 FTA협상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진 여러 투쟁과, 정세적인 쟁점들이 비록 형태상으로는 FTA 투쟁과 다르지만 실제로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심하게 한 해를 뒤돌아보면 이런 연관성 사이의 효과적인 융합이나, 한미 TTA저지 투쟁과의 유기적으로 전개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다. 비록 한미 FTA협상이 2007년 체결된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저지 투쟁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2. 미국과의 FTA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미 FTA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요한 흐름이다. FTA는 그동안 WTO협상이 각 국가별 이해관계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타결이 늘어지자 그 우회로로 진행되어 왔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세력은 그 틈을 각 지역 블록을 강화해서 WTO협상을 추동하는 한편 개별 국가 차원에서 FTA협상을 완료함으로써 신자유주의 흐름을 강화해 왔다. 결국 신자유주의를 특정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로(민족국가 간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는 것처럼 한미FTA협상 또한 이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2006년 한 해 동안 전개된 한미 FTA저지 투쟁은 전 민중운동 세력을 망라했다. 그만큼 대중적이고 힘 있게 진행됐다. 한미 FTA반대는 여론 조사에서도 ‘6:4’, ‘5:5’, ‘4:6’을 넘나드는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정부가 수십억의 홍보비용을 쏟아 붓고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를 총동원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이 속에서 우리는 한미FTA투쟁에 대해서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 먼저 전반적인 총평을 내려 보자면 이번 한미 FTA협상 저지 투쟁은 한마디로 “결론을 남기지 못하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훌륭한 결과야 협상을 저지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협상은 진행 중이며, 결과는 미지수이고 궁극적으로는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결론을 남기지 못한 투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올 한해 FTA 저지 투쟁이 얼마만큼 전진했고, 얼마만큼의 대중 동원을 통한 ‘승리’ 혹은 ‘승리적 관점’으로 판단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총체적인 사회지배 시스템이자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노동현장에서 시민운동 영역까지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총체적인 사회운동으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이어가기 위한 근거와 발판을 만들지 못했다.
한국 운동사회가 민족국가 사이의 대립과 신자유주의 본질, 그리고 시민운동과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중도개혁세력 관계 설정 등이 모호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결론’을 내려야만 이후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이 더 본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지배세력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그에 맞서는 투쟁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등이 확인하고 전 사회적인 투쟁과 운동 전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런 지점은 향후 한미 FTA 이후 찾아올 여타의 다른 FTA나 다른 신자유주의 지배방식과 한국 내 자발적 조치들과 맞서 싸우는데도 중요한 발판이 되는 만큼 그 중요성이 컸는데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말이다.
3. 우리는 진정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웠는가
이런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먼저 미국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대응방식이 주를 이루다보니, 구체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양식에 대한 대중적인 선전 선동이 부족했다. 그렇다보니 4대 선결요건 등 한국 지배세력의 능동적 대응조차도 미국의 압력만으로 설명했다. 이런 판단은 한국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보다는 협상 내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지 모른다는 분석과 기대로 이어졌다. 이런 기대는 결국 협상 자체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대한 전술과 전략이 충분하게 생산되지 못하는 한계를 낳았다.
이후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펼침에 있어서 한국에 유리한 FTA 혹은 제3세계와 진행될 FTA등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나올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대중교육이 반미 교육 위주로 흘러갔다. 이것은 ‘반미’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올바른 정세 인식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기에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과 관련해서 살펴보자면 이번 FTA투쟁은 분명하게 노무현정권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중심이며, 반 노동자민중 정책의 주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이 분명한 현실을 놓고 범국본 등 FTA반대 운동 진영에서는 지리한 논쟁을 했다. 2007년 대선이나 다양한 정치일정을 앞두고 신자유주의 세력과 노동자 민중간의 긴장관계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큰 실수다.
이와 함께 지난 한해를 돌아보자면 폭발적인 대중투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안세계화 투쟁이 효과적으로 결합되지 못했다. 이것은 특히 비정규법안 및 노사관계 로드맵 등 노동법 개악 국면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FTA반대 범국본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를 내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양쪽 모두가 문제였다.
민중총궐기까지 가는 폭발적인 대중투쟁의 국면에서 범국민 운동본부가 노동자들의 투쟁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점은 분명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1년 내내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대한 상을 잡지 못했던 것도 분명히 동시에 존재했다. 노동자들도 결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져오는 다양한 사회적 착취 효과에 대해서 노동문제 이외에는 개량으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했다. 결국 비정규법안 개악이라는 긴박한 국면에서 한 쪽은 국회 앞을 중심으로 투쟁하면서 대 사회적이고 정권을 집적 겨냥한 신자유주의 저지 투쟁을 펼치지 못했고 한쪽은 광우병과 반미투쟁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슬로건을 내세우며 구체적인 신자유주의 지배형태인 노동법 개악 문제를 투쟁에 결합시키지 못했다.
한편 한미 FTA저지 투쟁이 총체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 한미FTA협상에 모든 관심과 투쟁이 집중되고 여타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한 대응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소위 자발적 자유화 조치라는 이름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다양한 수준의 법률 개정과 신자유주의 정책이 2006년 한 해도 진행되었지만 이를 막아내기에는 운동진영의 대응 폭이 너무 한미FTA로 집중되어 있었다.
상수도 민영화 움직임과 같은 공공영역에서 민영화조치나 금융통합법 개정 등은 이미 진행된 경제자유구역이나 기업도시와 혁신 도시 등 다양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함께 진행된 신자유주의 지배양식인데 한미FTA 문제의 특정 부분에만 언급해서 이야기했을 뿐 구체적인 운동 형태로 만들고 전선으로 모아내는 데는 불충분했다.
이런 점은 지난 한해 많은 지역 조직을 만들고 투쟁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지역의 투쟁을 만들고 지역에서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에 대항하는 운동의 내용을 만들도록 하는 지원은 미비했다는 점과 연결된다. 지난 해 투쟁을 돌아보면 지역이 중앙의 계획이나 지침을 수행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부문별 공대위가 06년 초반부터 구성되어 활동했다. 정세를 주도하고 협상내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많은 활동을 했지만 중반 이후로는 활동력이 현저하게 감소해서 많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공대위가 하반기로 갈수록 활동력이 떨어진 것은 각 공대위 내부의 기본적인 문제도 있지만 한미FTA투쟁이 이런 공대위의 활동력을 더 배가시키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나 전농과 같은 거대한 대중조직이 대중조직 내부로 부문별 공대위의 활동 내용이 들어올 수 있게 사업배치를 해야 공대위 활동도 더 배가되고 문제의식이 전 사회적으로, 대중 속으로 파고 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쉽게 범국본이나 민주노총은 공공서비스공대위나, 보건의료 공대위 소속 노동조합이 부문공대위 활동을 더 잘하도록 지원하고 그 문제의식을 다른 노동조합으로 풀어지도록 해야 함에도 민주노총 사업에 해당노조를 참여하도록 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4. 결론
결국 지난 해 한미 FTA저지 투쟁은 중앙 중심의 정치 전선으로 지역차원,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다양한 사회적 전선을 만드는데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범국본과 민중총궐기 조직위원회라는 전체 민중운동 진영의 커다란 투쟁을 만들기는 했지만 덩치가 크다고, 대중조직이 공동으로 참여한다고 사회운동과 전선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사회운동이 2007년을 경과하면서 가져가야 할 투쟁의 지점은 한미FTA와 한미FTA 추진 세력들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알리는 것이다. 이제 양국 간의 협상은 거의 타결 국면에 다다르고 있다. 한국 측은 성과여부와는 무관하게 협상타결 자체에 집착할 정도로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한미FTA는 중요한 문제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회 곳곳에서 이제 더 전면화 될 것이기에 한미FTA자체의 싸움은 협상결과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
또한 범국본에서 구성된 각 부문별 공대위의 성과를 한미 FTA 이후에도 조직적이든 내용적이든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도 있다. 물론 2006년처럼 고립된 부문별 공대위가 아니라 공대위의 내용이 실제로 대중조직 안으로 침투해서 각 대중이 자기조직의 투쟁과제로 받아 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서 말했던 다양한 신자유주의 자발적 조치들에 대한 현장에서의 싸움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서 정책의 현실화를 현장에서 무력화시켜야 하며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투쟁전략을 더욱 개발하고 지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세계화 투쟁은 하나의 사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중앙전선에 국한되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더 본질적이고 지역착취체제 맞서는 투쟁, 그리고 더 장기적인 투쟁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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