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던 날 한미FTA 2차 협상저지 투쟁의 정점인 범국민 대회가 시청과 광화문에서 진행되었다. 애초에는 그 날 아침 협상장을 타격하는 투쟁을 출발로 포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비로 인해 일방적으로 아침 투쟁은 취소되었다. 그리고 이 날 투쟁은 이른 새벽 동아일보사 옥상을 점거한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과 50명 연행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후 4시경 5만 명이 넘는 대오가 시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이 두 개의 투쟁은 하나의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결국, 그날 저녁 한미FTA저지 투쟁대오는 미 대사관 앞 대로를 승리적(?)으로 점거하고 정리 집회를 함으로써,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동아일보사를 내려옴으로써 이 두 투쟁은 따로따로 끝이 났다.
협상 불참으로 막을 내린 한미FTA 2차 협상
서울 신라호텔에서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에 걸쳐 진행된 한미FTA 2차 협상은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정부 측에서 협상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진의여부를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양국 협상단의 브리핑을 통해 정리해 보자면 미국 측 협상단이 11
일 의약품 분과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계속 추진하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는 형태로 13일 한국 정부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무역구제 협상과 서비스 분과 회의에 불참했고, 여기에 대해 한국 측 협상단이 14일 상품무역과 환경 분과 회의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1차 협상에 이어 2차 협상에서도 통합협정문을 모두 작성하고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2차 협상이 한미 양측의 협상 불참으로 서로의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엔진이 고장 난 기관차처럼 협상 타결을 위해 달려가는 것에 대해 다소 부담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문제가 된 약가 정책은 소위 4대 선결 조건 중의 하나였고,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국 측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 곧 졸속협상, 밀실협상을 이유로 한미FTA에 반대하고 있는 진영에게 혐의를 확정하는 빌미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미FTA 신중론, 우선순위 변경론, 낮은 수준의 FTA라는 입장의 한계
한미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운동진영에서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내부에서도 빗발치고 있다. 지난 4월 정태인 전 청와대 보좌관의 폭로를 기화로 정운찬 등 경제학자들과 김근태 열린 우리당 의장 등 정치권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추진(방식)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분모는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에 입각한 “국익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헤비급”과 “라이트급”의 대결로 표현되는 한미FTA가 어떤 파급효과를 가지고 올지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협상종료 시한에 쫓겨 추진되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 과연 한국측 준비는 충분한가 하는 문제제기이다.
그리고 결국 이들의 주장은 신중론, FTA체결의 우선순위 변경 또는 낮은 수준에서의 FTA체결 등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미FTA를 추진하기 전에 한중FTA 또는 한일FTA를 충분한 준비를 통해 체결한 후, 협상력을 키워서 미국과 FTA를 체결했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가 너무도 갑작스럽게 졸속적으로 추진했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이런 신중론, 우선순위 변경론, 낮은 수준에서의 FTA 등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본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국익’을 위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 정도가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류의 비판에 근거해 확산되고 있는 한미FTA 반대 여론은 지금 당장은 한미FTA저지투쟁에 도움이 되는 듯 보이지만, 한미FTA 저지투쟁의 방향각을 제대로 정립해내지 않는다면 이 일시적인 여론 바람이 지나간 후 오히려 신중론, 우선순위 변경론, 낮은 수준에서의 FTA등에 한미FTA저지 투쟁이 역으로 발목 잡힐 소지가 많아 보인다.
한미FTA 저지 투쟁을 민족주의 시각에서 보는 문제
이런 “국익”에 기초한 신중론들은 한미FTA저지 운동 내의 일부 시민운동 진영 및 민족주의 시각과도 교차한다. 한미FTA를 “미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진행되는” 졸속적, 굴욕적 협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한미FTA저지 투쟁에서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미FTA 협상 추진을 위한 “4대 선결조건”등의 문서들이 폭로되고, 공중파를 통해 이런 사실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이런 흐름은 여론을 타고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민족주의 시각은 한미FTA를 제국주의-식민지 논리, 혹은 미국과 한국의 국익문제로 치환시킨다.
그러나 WTO에서 FTA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는 이런 국익과 민족주의에 기초한 논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 체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한미FTA가 국내 독점자본의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타결되면 IMF 이후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세계화 공세가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국익 혹은 ‘민족주의’ 문제만으로 한미FTA를 치환해 버린다면 바로 이 점을 간과하게 된다.
자발적 자유화 조치와 또 다시 불어 닥칠 구조조정의 광풍
노무현 정부가 초기 한미FTA를 설파할 당시 한미FTA는 만병통치약이었다. 한미FTA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논리였다. 그러나 NAFTA의 사례 및 정부의 통계조작 등으로 인해 여론공세에 밀리자 한국 정부는 “일부 피해도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FT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농업 등에서 일부 피해가 있을 수 있으나, 한미FTA 전체로 본다면 얻을 것이 더 많다는 것으로 말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논리가 외부로부터의 충격요법이었다.
한미FTA를 통해 외부적 충격을 가하고 이를 통해 농업 및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또 한 번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6월 한 언론을 통해 폭로된 정부용역보고서 ‘한미FTA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국 정부가 한미FTA를 통한 구조조정 로드맵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는 FTA 피해기업의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대책 수립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및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문제, 고용경직성의 문제 등이 언급되어 있다. 한미재계회의 정책보고서에서 제기되었던 내용과 동일한 선상에 있는 요구들이다.
실상 한미FTA는 미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기도 한 동시에 이미 그 자체로 초국적 자본인 현대, 삼성, SK, LG 등 국내 독점자본 자본의 요구이기도 하다. 국내 독점자본들 또한 한미FTA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각종 규제완화 및 노동유연화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동시에 한미FTA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함으로써 국제자본운동에 편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한미FTA를 통해 노무현 정권이 의도했던 것은 개방 및 외부적 충격을 통한 국내 구조조정 및 공적서비스의 사유화 및 상품화였던 것이다.
이런 의도는 한미FTA 협상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추진되어 왔던 각종 자발적 자유화 조치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미 경제자유구역법 및 제주도 특별법 등을 통해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영리법인화가 추진되어 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6월 29일 재정경제부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리고 7월 11일 대통령 직속 의료산업선진화 위원회는 의료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는 자리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에서의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기로 함으로써 비급여 영역이 민간의료보험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결국 한미FTA에서 미국 측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한국 측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되어 왔던 교육과 의료, 그리고 공공의 몇 가지 사안들은 이미 자발적 자유화 조치를 통해 추진되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삼성 등 초국적 자본의 이익과도 밀접히 결부되어 있는 부분이기도하다.
한미FTA만 반대할 것인가, FTA 전체를 거부할 것인가?
한국사회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이 처음으로 회자된 것은 한-칠레FTA였다. 당시 한-칠레FTA 저지투쟁의 선두에는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될 농민이 서 있었다. 농민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뒤에서 노동자들은 방관자였다. 한칠레FTA가 제조업 부문의 이익을 늘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일FTA가 추진되던 당시 자동차부문 노동자들이 투쟁의 선두에 섰지만, 나머지 부문 노동자들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또 다시 방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일부 부문의 피해와 일부 부문의 이익을 이야기하며 운동진영을 갈라놓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투쟁관리 전략일 뿐이다. 이렇게 산업별, 부문별 피해를 중심으로 한 대응에 머무른다면 우리 노동자·민중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FTA 저지 투쟁을 해야 할까?
1960년대 전 세계적 자본축적 위기 이후 한 축으로는 신자유주의구조조정을 통한 자본의 활로모색이 있어왔고, 또 한축에서는 국가 간 세계시장질서 재편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있어왔다. 이것이 곧 세계화 및 지역블럭화의 흐름이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농업, 공공서비스 등 기존에 무역의 대상이 아니었던 영역과 부문이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WTO로 대표되는 다자간 무역협상의 틀 안에서 전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재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다자간 협상이 시애틀, 칸쿤, 그리고 2005년 칸쿤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민중들의 투쟁으로 좌절되었고, 바로 이 다자간 협상의 교착국면을 돌파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지역 간,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 즉 FTA이다. 따라서 FTA는 WTO와 쌍둥이인 셈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한미FTA가 IMF 열 개 쯤 합친 거 정도 될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 날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과 빈곤을 이야기 할 때마다 ‘1997년 IMF 이후 급격히 추진된 구조조정으로’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그리고 세계화는 한미FTA를 통해 그 완성을 향해 갈 것으로 보인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구조조정은 한미FTA를 통해 형식적으로 남아있는 모든 공적 서비스조차 해체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 개악입법, 노사관계 로드맵을 통해 노동유연화, 곧 노동 불안정화를 제도화 시키고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 자체를 원천봉쇄한 상황에서 한미FTA가 타결된다면 상황은 최악이다. 이미 ‘2005 한미 재계회의 보고서’에서도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굳이 지적한 것처럼, 한미FTA를 통해 노동 불안정화 공세 및 조직된 노동에 대한 공격이 진행될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의 협상초안 요지에서도 나와 있듯이 한국 정부 스스로도 투자자 조항에서 ‘투자자이행의무 부과 금지’ 및 ‘국가-투자자 제소권’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IMF외환위기 이후에 국가라는 틀 안에서 국가적 수준의 위기관리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한미FTA가 체결된 이후에는 국가라는 틀에서 최소한의 위기관리 및 조절 능력조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한미FTA가 가지고 올 여파는 IMF 보다 훨씬 크다. 이제 한미FTA 저지투쟁에는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앞장서서 비정규 개악입법 저지!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 한미FTA 저지! 그리고 노무현 퇴진투쟁으로!!!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양극화의 심화 곧, 빈곤의 심화는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붕괴시켰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중단할 것이냐 아니면 노동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감행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성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완전 무장해제 시킬 것인가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그리고 노무현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번 한국 독점자본에게 활로-바로 이 활로가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이야기하는 ‘국익’의 본질이다-를 열어주고 그 존재를 인정받는 것, 그것이 전체 노동자․민중의 생존을 건 한미FTA 협상에서 정부가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정부와 한판 싸움을 해야만 한다. 그 싸움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건 싸움이다. 그 앞에 노동자 계급이 앞장서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12일 동아일보사 위에서 진행되었던 투쟁과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된 투쟁은 현재 한미FTA저지 투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한미FTA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라는 동일한 선상에서 나타나는 즉, 같은 본질을 가진 다른 현상일 뿐이다.
동아일보사 위를 점거한 노동자들은 한미FTA 저지,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등 장기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고 농성을 했으나 광화문 일대의 5만 명이 넘는대오는 장기투쟁사업장 대오를 엄호해 내지 못했다. 이 두 개의 다른 투쟁은 이제 다시 대오를 가다듬고 노동자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노무현 정권을 퇴진시키는 전선에서 다시 만나야만 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엔진이 고장난 기관차를 멈춰야 한다.
비정규개악입법 저지! 노사관계로드맵 분쇄! 그리고 한미FTA 저지! 그 하나의 전선에서 우리는 노무현 퇴진을 걸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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