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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탁상 조세행정에 눈물 짓는 아파트 경비원들

  미디어다음   2004.2.4(수) 22:59  

[취재수첩] 탁상 조세행정에 눈물 짓는 아파트 경비원들

-“경비비에 부과된 부가세, 고스란히 임금삭감으로 이어질 판”  

미디어다음 김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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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단지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근근히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박 모(43)씨는 최근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하는 경비비에 올해부터 부가가치세가 부과돼 이로 인한 경비원의 임금삭감이 불가피하다는 경비반장의 얘기였다.

하루 24시간 꼬박 근무하고 다음날 쉬는, 고된 2교대 근무를 서고 있음에도 월 실수령 급여는 90만원선. 이 돈으로 세 식구 생활비에 아이 학비 대기도 버거운 상황인데 여기서 12만원 정도가 삭감된다고 생각하니 암담할 따름이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아이도 커가는 데 나아지지는 못할 망정 더 나빠지게 생겼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틀에 하루 24시간 풀타임 근무를 해야하는 아파트경비원.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지만 그 마저 탁상 조세행정으로 인해 대폭 삭감될 전망이다. ⓒ미디어다음  
주민들이 부담하는 아파트 관리비 중 경비비에 부가세가 부과되는데 왜 그 피해가 경비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새로 부과된 부가세를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 고덕주공아파트 9단지 관리소장 이상은(63)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관리비 100원 인상하는 것도 힘든 게 아파트 입주자회의 분위기 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부과된 부가세를 주민들이 부담하게 되면 한꺼번에 세대당 3,100원씩 인상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 정도 부담쯤이야 하겠지만, 주민회의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대폭 인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 겁니다”. 관리사무소가 납부를 대행할 뿐인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에도 항의민원이 빗발치는 게 아파트주민-관리소 간 분위기라고 그는 말한다. 대형호텔 등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부가세를 소비자가 제대로 부담하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한 한국적 현실을 생각하니 그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

이 소장은 며칠 후 예정돼 있는 아파트 입주자회의에서 결국 부과된 부가세만큼 경비원 임금 삭감 쪽으로 결정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며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이 대책이란 주민대표자들의 양해를 최대한 구해 부가세를 주민과 경비원이 반반씩 부담하자는 절충안을 제안하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 같다며 그는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말이 안됩니다. 그나마 조금 더 받는 제 월급이나 사무직원 급여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한다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근무환경도 제일 열악한 경비원 임금에 대해서 유독 과세를 한다고 하니 속이 터질 수 밖에요…”. 경비직과 달리 사무직, 기술직의 급여부분은 기존 일반관리비에 남게 돼 연말까지는 과세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30일 건설교통부는 주택법시행령을 공포하면서 경비원 고용에 소요되는 비용을 기존의 일반관리비에서 경비비라는 별도 항목으로 분리시켰다. 이어 재정경제부가 연말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면서 별도로 분리된 이 경비비에 부가세 과세방침을 내렸다. 개정에 따른 별도의 유예기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입법예고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장의 혼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1월분 경비비에 대한 부가세 징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경비원 임금에 대해 삭감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이대로 가면 4월 말 부가세 신고를 앞두고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경비원의 급여명세서. 임금이 낮아 갑종근로소득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실수령액 932,000원. ⓒ미디어다음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위탁관리 업체가 주민들에게 부가세를 받아 납부하면 되는 것 아니냐”, “부과세 면세인 자치관리로 전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아파트위탁관리업계와 아파트입주자단체 측은 목소리를 높였다.

재경부 관계자의 말처럼 전문관리업체에 관리를 위탁한 아파트의 경우 자치관리로 전환을 하면 부가세 면세가 가능하기는 하다. 지금도 일부 아파트의 경우 자치관리 체제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소규모 단지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 일정 규모 이상의 대단지의 경우 전문적인 관리 노하우와 불의의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 등을 이유로 위탁관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민대표자들의 운영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는 자치관리로 전환하기 보다는 경비원 임금 삭감을 통해 부가세 부담을 상쇄하는, 보다 쉬운 방향으로 결정이 이루어지기가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자치관리로 전환될 경우 기존 계약유지에 지장을 받게 될 업체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알아서 경비원 임금을 낮출 가능성 또한 크다.
아파트 입주자들의 대표단체인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자회의연합회(회장 이재윤) 최병선 사무차장은 "일단 부가세 부과 방침을 철회하도록 강력대응할 방침이나, 그대로 시행될 경우 자치관리로 전환하거나 인건비 인하로 세부담을 상쇄해야 하는데 업체 측에서 (계약 유지를 위해) 먼저 인건비 상쇄를 제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외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부가세 부담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긴 하다. 일반관리는 위탁관리업체에 맡기되 경비업무는 별도로 경비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어 경비업무 일체를 맡기는 방법. 그러나 이 경우 역시 결과적으로 경비원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현재 위탁관리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경비원들이 용역업체 소속으로 전환될 경우 용역업체가 부담해야 할 부가세 및 비용, 이윤까지 경비원 임금에서 공제되기 때문이다. 현재 용역업체에 소속된 경비원들의 경우 위탁업체 소속 경비원에 비해 약 20만원 가량 임금을 덜 받고 있는 상황이다(반면 위탁업체는 소속 경비원의 임금에 손을 대지 않고 입주자들로부터 별도의 위탁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결론적으로 건교부와 재경부의 졸속행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위치한 저임금 경비원들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경비원 김 모씨(59)는 “근로소득세가 면제될 정도로 저임금을 받는데 실수령액의 10%(9만원)도 아니고 회사 측 사회보험부담금, 피복비까지 포함된 제경비의 10%(12만원)를 떼인다고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는다”며 허탈해 했다. 대학생 아들에 고령의 노모까지 부양하고 있다는 김씨는 퇴직 후 창업에 나섰다가 퇴직금을 날리고 빚까지 지게 돼 지금도 대출금 상환에 생활이 어려운 실정이다.

“재경부 담당자가 법 개정을 하기 전에 자기가 사는 아파트단지 사정을 한번이라도 알아봤더라면 이런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현장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내놓은 탁상정책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힘없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

이 달 중순 국세청은 부가가치세 징수액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 2002년에는 4년전인 98년에 비해 금액이 2배 가량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무리하게 부과된 세금이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현실은 외면한 채, 서류에서만 손쉽게 해답을 찾는 관료적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경제부처가 진지하게 돌아 볼 일이다.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퇴출 칼바람 속에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저소득층 고령인구에게 아파트 경비직은 일종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경제정책을 안민(安民)의 관점이 아닌 회계장부 짜맞추기쯤으로 사고하는 관료주의적 조세정책으로 인해 이제 그마저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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